필름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영화는 서사가 아닙니다. 영화는 재현도 아닙니다. 영화는 운동과 시간의 관계를 이미지로 보여주며 우리의 습관적인 인식체계를 흔들어놓는 사유기계입니다. 들뢰즈의 영화론은 “영화에 관한 사색인 이상으로 세계로서의 영화에 관한 것이며, 영화에 개입해서 어떤 면에서는 영화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 세계에 관한 사색”(우노 구니이치)입니다. 지금 우리는 헐리웃과 cgv에 완벽하게 포획되어 있습니다. 그들, 거대 미디어 산업은 우리가 봐야 할 영화를 지정하고, 우리가 느껴야 할 감성을 명령합니다. 하여, 이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나보고자 합니다. 영화를 사유한다는 것, 익숙한 사유와 습속을 뒤흔드는 시간 이미지를 통해 삶의 원점에서 다시 질문한다는 것! 가능할까요? 여기 변방, 동네의 작은 배급사 [필름이다 Film Ida]에서 그 실험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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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천국 07]

페르세폴리스 - 지적이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글 :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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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epolis, 2007 (감독 마르얀 사트라피뱅상 파로노)




 

 

 

혹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는지? 오늘 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한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흑백의 강렬함과 소박함이 두드러지는 2D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나는 그 영화를 아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킥킥거리고, 깔깔대고, 데굴데굴 굴렀었다. 때론 주인공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었고...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나에게 <이란>은 어떤 곳일까?,라고.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축구, 팔레비, 호메이니, 차도르, 이슬람근본주의, 악의 축, 핵.. 물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같은 것이 생각나긴 한다. 하지만 이란에서 후자를 먼저 떠올리는 건, 사실 쉽지 않다.

 


<페르세폴리스>는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였으나 동시에 우리만큼 아픈 현대사의 질곡을 안고 있는 <이란>의 정치사를 배경으로, '마르잔'이라는 한 이슬람소녀가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먼저 만화로 그려졌고 이 만화를 바탕으로 다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것이다.

1978년 테헤란, 이란 민중들은 '팔레비'왕조에 맞서 민중봉기를 일으킨다.  할아버지도, 삼촌도, 부모도 모두 운동권^^인 우리의 주인공, 케첩 바른 감자칩과 아디다스 운동화를 좋아하고, 다리털에 면도하는 것과 예언자가 되는 것이 꿈인 우리의 주인공, 꼬마 '마지'는 이제 "왕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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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팔레비왕조의 붕괴 이후 이란은 호메이니의 이슬람근본주의 정책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혹독한 상황에 처한다. 이제 차도르를 쓰게 된 우리의 주인공 '마지', 하지만 강단있는 엄마와 함께 일상을 꾸려나간다. 그에게는 여전히 펑크록이 삶의 낙이다.

하지만 삶이라는게 어찌 펑크록같기만 할까?  젊음과 자유가 거침없을수록 인생은 수없이 많은 반격과 배반에 직면하는 법!  '마지'는 이제 '빈'으로 간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빈'도 이란/여성이 살기엔 만만치 않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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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격변의 이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이란 현대사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만 단지 정치영화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안토니오스 라인'을 떠올렸다. 영화의 마지막,  "영원히 떠나는 거야. 너는 자유로운 여자야..."라며 딸을 또다시 파리로 보내는 '마지'의 엄마도 근사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는 '마지'의 할머니이다.

손녀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이혼의 상처로 눈물짓는 손녀에게 "이혼?..난 누가 죽기라도 한 줄 알았네. 그깟 이혼 때문에 눈물이나 질질짜고.. 첫번째 결혼은 두번째 결혼을 위한 준비과정이야.."라면서 손녀를 가볍게 비웃는 이 할머니는 이미 55년전에 이혼을 감행했던 용감하고 낙관적이며 유머가 넘치는 여성이다.

멀쩡한 남자를 치한으로 몰아 개인적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한 손녀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방법은 있어. 방법을 항상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 할머니, 늘 정치적으로 단호하다. 무엇보다 이 할머니, 그 나이에도 브래지어에 자스민꽃을 넣고 다니고, 젖꼭지에 10분씩 얼음찜질을 할 정도로 상쾌, 유쾌, 발랄하다.

그러나 내게 가장 강렬했던 것은 남편을 감옥에 보내고 아들이 감옥 속에서 살해되었지만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수없이 많은 나쁜 놈들 때문에 비통해하거나 복수심에 사로잡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는 무한한 내면의 힘과 삶에 대한 긍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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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대소할만큼 재치와 유머가 넘치고 (주인공이 배신한 애인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웃느라 거의 뒤집어질 뻔 했다.) 삶에 대한 긍정과 정치적 통찰로 넘쳐나는 지적인 영화, <페르세폴리스>!!   참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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