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강독

제 것과 함께 인디언샘 것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수정해석 정리 순서도 알려드립니다.

101절 : 요요

102절 : 인디언

103절 : 건달바

104절 : 뚜버기

보론 : 띠우, 토용


아마도 제가 돌아올 때쯤이면 끝났을 수도 있겠네요.

본의아니게 오랫동안 빠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끝까지 열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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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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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썰매

2017.10.08
13:02:23
(*.70.146.67)

p.346-347 수정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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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17.10.22
21:32:15
(*.178.61.222)

347~348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앙스크립시옹은 아직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문자가 있고, <거울>이 있고, <근거율>이 있기 때문에. 의례도. 물론 들뢰즈-가타리가 제시하고 있는 3단계는 순수한 이론적 모델이어서, 현실에서는 한 시대에 겹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일단은 말할 수 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새로운 진화론은 아니라고. 그러나 그렇다면 그들이 자본주의의 재영토화에 의한 편집광적인 전제군주의 시대착오하나의 회귀로서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인용한 것처럼 시대착오, 시대지체란, 에크리튀르이고 <거울>인 것에 왕관을 씌운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우리의 이러한 에크리튀르란, ‘낡은 것이 파괴된 뒤에 만들어진 새로운 시대착오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것은 정말일까?

그들의 묘사에 의하면 여기에서 자본주의는 어떤 동요를 잉태하게 된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사이의 동요이다. 자본주의는 혁명적인 분열병 과정을 밀고 나감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착오를 만들어 낸다. , 분열병의 미래주의와 회귀하는 편집광적 전제군주의 시대착오의 대립. 그러나 그들에게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는 해도 우리는 그들의 혁명 프로그램인 분열병의 미래주의를 믿을 수 없다. 그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모든 차원(세계, 국가, 이슬람 공동체, 지방공공단체, 협동조합, 가족)에서 소격을 결여한 작은 편집광적 전제군주의 무한한 학대(그것은 이미 에크리튀르의 괴롭힘은 전혀 아니다)가 계속되고, 푸코가 20년 가까이 먼저 비판해 온 신자유주의적인 시큐리티장치, 경쟁원리를 중심축으로 한 확률론적 게임이라는 사고에 기초한 사회의 조정의 개념, 르장드르의 말을 빌리면 생의학과 인지과학에 의한 유전에 의한 육처리적개념, 새로운 정보처리의 테크놀로지, 유치한 이야기의 시장에서의 확산이라는 프로파간다의 수법과 극단적인 폭력을 수반하는 관리경영권력이 부상하는 것과 함께, 분열병은 사라지는 것 같다

띠우

2017.10.28
03:22:23
(*.136.214.120)

p345 수정해석 띠우

 

그렇다면 제3의 단계인 자본주의 기계에서 에크리튀르는 어떻게 변할까. 답은 간결하다. 그것은 죽는다. 에크리튀르의 죽음은 <>의 죽음이나 아버지의 죽음과 같이, 훨씬 이전에 일어났던 것이다’. 확실히 자본주의는 여전히 인쇄기술을 통해서 에크리튀르를 사용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서 에크리튀르는 전형적으로 있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의 역할을 행하고있는 것이고, ‘전자 언어가 음성과 에크리튀르를 경유하는 것 없이, 또 정보 과학도 이것 없이 때우고있으므로. 그럼, 그것에 대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매클루언, 옐름슬레우, 리오타르의 논의를 불러내면서 그들이 제기한 것은 내용과 표현의 탈코드화했던 흐름이 구성하는 <형상>이고 <형상형태>. 그것은 이미지를 맺는 것도 있지만 조금도 상형적이지 않고 시니피앙기호아니다’. 또 리오타르가 욕망이라고 부른 순수형상형태자궁형상프로세스로서의 분열병의 문으로 우리를 이끄는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후 바로 그 평가를 철회하고 리오타르를 욕망을 거세의 법 아래에 두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들답지 않은 애매모호함과 혼란의 인상을 씻기 어렵다고 말하면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만둔다.

흥미 깊은 논점을 아마도 많이 포함할 것인, <형상>을 엄밀하게 검토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하다. 자본주의 기계에서, 즉 현재에 있어서, 안스크립시옹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가. 실제, 그토록 자주 등장하던 안스크립시옹이라는 말은, 이 절에서 갑자기 나오지 않게 된다. 그것은 후경으로 물러난 듯하다. 그것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건달바

2017.11.04
21:01:02
(*.206.240.214)

p 342-343  수정해석 건달바 


  그들은 우선 이렇게 말한다. ‘사회는 우선은 순환하고 순환되는 것을 본질로 하는 교환의 장(미리우)이 아니고, 표시하고 표시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앙스크립시옹의 사회체(소키우스)이다.’ 사회체는 앙스크립시옹을 행한다. 그것은 등록하고, 써넣고, 표시한다. 사회체의 본질은 ‘문신하고, 절제하고, 베어서 자국을 넣고, 오려 내고, 공희()를 하고, 절단하고, 둥글게 껍질을 잘라 내고(=할례하고), 통과의례를 행하는’ 것이다. 기억을, 공동의 기억을, 말을 체득하기 위한, ‘신체에 기호를 직접 아로새기는 이런 조직화’이다. 그들은 이렇게 계속해서 데리다에게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이 도톰한 살에 문자를 새겨 넣는 것(앙스크립시옹)을 에크리튀르라고 부르고 싶다면, 이야기하는 말(빠롤)은 적는 말(에크리튀르)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말해야만 한다’고. 

  <거울>과 에크리튀르는 앙스크립시옹이다. <사회적인 거울>은 이미지를 주고 텍스트를 주어, 그것에 의해 인과율과 근거율을 상연하고, 사회적인 재생산=번식을 행하는 것이었다. 즉 문화=숭배에서 ‘써-넣기’의 반복에 의한 분화이고 주체화의 프로세스였다. 사회에서 재생산=번식은 이러한 ‘앙스크립시옹의 연쇄’인 ‘가계(家系)’에 의해 행해진다. 이러한 이미지와 말과 사물이 돌연히 교착하고 침투하는 앙스크립시옹에 있어 써넣고 써넣어진, 그 ‘정형외과’의, ‘조련’의, ‘절단’의 하나의 효과로서 주체는 성립하는 것이다. 애초에 거울상 단계론에서 거울조차도 이러한 프로세스에 관계된 것이었음을 떠올려 보자.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야생의 원시토지기계’라는 것이고, 그들의 역사적 모델의 한 단계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원시토지기계의 앙스크립시옹의 기법, 코드화를 파괴하면서 잠정적으로 보존하는 것에 의해 나타나는 ‘전제군주기계 혹은 야만의 사회체’이다.


건달바

2017.11.04
22:03:54
(*.206.240.214)



p 349-352  수정해석 건달바


  그렇다. 이제 됐다.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틀렸다고. 무엇도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앙스크립시옹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 형식이 무한하게 변용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과정을 그대로 진행시켜 간다면, 분열병적 혁명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푸코의 논리로 말해도 라캉의 논리로 말해도 르장드르의 논리로 말해도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하자. <거울>은, 근거율은, 앙스크립시옹은, 투쟁하는 정치적 영성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회귀한 것이 아니고, 그것은 거기에 줄곧 있었다고. 종교의 회귀나 부활을 말하는 자들이 지나치게 세속화라는 신앙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전략병기에 대한 신앙에 너무 경건한 것처럼, 우리의 앙스크립시옹이 사라져 없어진다고 믿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지나치게 경건한 행동거지에 불과하기 때문에.주825) 앙스크립시옹은 변할 수 있다. 그것을 재차 새롭게 창안하는 것은 가능하다. 앙스크립시옹의 형식이 3개밖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명민하게도 이것을 알아차리고 『천 개의 고원』을 향해 전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하자. 왜 그들이 잠시 동안일 수 있는 이러한 ‘역사의 종말’ 이라는 거짓 소문에 가담하는 듯 말해버린 이유를 우리는 간파할 수 있다. 이렇다. 그들은 욕망하는 기계를 대상a라고 부르고 동일시해버렸던 것이다.주826) 욕망하는 기계가 잉여향락의 조절기에 지나지 않는 대상a일뿐이라면, 그것은 서서히 욕망을 흡수하고 치수하고 조정하고 순환하고 관리시키는 것일 뿐이고 거기에서 분열병 혁명 따위는 일어날 수 없다, 절대로. 그렇다. 앙스크립시옹이 끝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그 프로세스 자체에 의해 ‘끝난다’는 것은, 그것이 향략을 흡수하고 조정하는 욕망기계에 의해 자극받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래부터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조정하고 치수하고 관리하는, 즉 살기를 강제하고 임의로 감금하는 것, 즉 그러한 의미에서 ‘끝나게 해둔 것’이라고 정의된 것이 끝났는데 무슨 이상함이 있을 것인가. 그 해방의 꿈이야말로 푸코의 의심을 산 것은 아니었을까. 때문에 들뢰즈=가타리는 다른 장소을 향하여 발을 내딛게 된다. 그렇다. 들뢰즈는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천 개의 고원』의 이탈리어판 서문에서, 차분히 『안티 오이디푸스』가 심각한 좌절을 품은 실패였음을 인정하고, 분열병 혁명의 필연성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의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또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도 끝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라고. 투쟁의 프로세스는 대상a로부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의 향락에서 밖에는 절대로 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끝나지 않는다. 끝날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말과 이미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장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주체화의 새로운 <거울>을, 안트로포스의 근거율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창안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것을 쓰고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시대착오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의 모든 이미지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 그것들은 사막 속에 있고, 거기로 찾으러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장 주네)


*


  자, 들뢰즈를 부르자. 그는 이미 알아채고 있다. 그의 푸코론에 의해, 푸코가 만년에 잊고 있었던 것 같던 그 자신의 논리를, 되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우리의 논리는 결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연성의 역사쪽으로. 도박자의 싸움의 밤으로. <밖>으로.


주825) 몇번이라도 역으로 말한다면, 세속화된 관리경영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실은’ 종교적인 구조가, 신앙이 숨어있고, 기능하고 있다라고 흔쾌히 말하는 담론은 치명적으로 불충분하다. 그것은 자신만이 메타레벨에 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퍼뜨리는 것밖에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은 서양적인 관리경영의 담론 ‘이고’, 자기비대적인 니힐리즘일 뿐이다.

주826) Gilles Deleuze/Felix Guattari, ACE, 99. 107쪽. 정확하게 번역하면 ‘대상a는 지옥의 기계, 즉 욕망하는 기계의 방식으로 구조적인 평형 속에 침입한다.’ 구조적인 평형에 대한 ‘침범적인’ 기능상, 완전히 대상a와 욕망하는 기계는 동일시되고 있다.

요요

2017.11.12
10:30:31
(*.178.61.222)

101절 수정해석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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