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야기

문탁네트워크에서는 신고리 공론화과정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신고리공론화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공론화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정책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 숙의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탈원전은 가능할까? 등)에 대해 회원연속칼럼을 게재합니다. (<문탁뉴미디어> 편집자)




[신고리5,6호기공론화-연속칼럼⑦ ]


최선의 선택

    



 

글 : 뚜버기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둘러싼 공론화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지난 달 모처럼 녹색다방의 탈핵릴레이에 동참했다. 그날 준비한 퍼포먼스는 행인들에게 <건설 중단>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는 스티커 붙이기였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론화가 뭔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고, 또 공론화를 아는 사람들도 상당수는 중단해선 안 된다고 반대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런 분위기를 접하니 사태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도 그때까지 공론화과정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일종의 공청회와 여론조사를 결합한 형태 정도로 시민참여단을 이해하고 있었다. 좀 더 조사해보니 시민참여형 공론조사라는 것의 키포인트는 학습과 토론이었다.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이 처음에 가졌던 막연한 찬반의견이, 충분한 정보를 학습하고 토론을 거쳐서 보다 합리적인 의견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 최초의 통계조사 결과와 극적인 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 실제로 1996년에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미국 텍사스주에서 8차에 걸친 공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예상과 달리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의 수가 52%에서 84%로 급증한 사례가 있다(녹색평론156, <공론조사에 대한 이해와 오해>).


공론화를 통해 우리는 최선의 판단을 하게 될까?

놀랍게도 이 방식은 스피노자가 <<정치학논고>>에서 언급한 내용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대중에겐 진리도 없고 판단능력도 없다는 주장이 완전히 그릇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데 그 이유가 국가의 주요정무는 대중들 배후에서 비밀리에 처리되며, 그들에게는 감춰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사안을 토대로 해서 정치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를 추측할 수 밖에”(<정치학논고>,727)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관련된 정보와 사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대중들도 누구나 가장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숙고하고 협의해서 결정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에 맞닿아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민주주의야 말로 가장 자연적이고 자유에 부합하는 정치체이며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서로 협력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시민참여단은 숙의 과정을 통해 가장 좋은 판단을 내리게 될까? 공론화는 허울 좋은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완전한 민주주의로 한발 내딛는 기회가 되는 걸까?

 


학습과 토론.jpg



내가 생각할 때 이미 가장 좋은 판단은 건설 중단임이 분명하다.

신고리5,6호기는 건설을 중단하고 이어서 탈핵의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라디오포비아를 비판한다는 어떤 글을 읽었다. 필자인 방사선 산업학회의 모 대학교수는 처음 불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했지만 그것을 잘 다루면서 문명이 발전했으며 불을 무서워하고 멀리한 사람들은 경쟁에서 도태되어 사라졌다고 (믿거나말거나 식으로) 이야기한다. 불처럼 잘 다루어서 사용하면 될 핵에너지를 비합리적으로 혐오하고 멀리한다면 우리는 현대문명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겁을 준다. 또한 탈핵 진영은 비과학적·비전문적 무지 속에서 원자력발전을 원자폭탄과 동일시하는 사이비종교집단이라고 비난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누구나 불은 조심해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핵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전문가인 그들보다 핵을 잘 알 수 없는 우리는 그들이 제공하는 핵에너지 서비스는 안전하다고 믿고 따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방사선 산업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입장에 있는 전문가이긴 하지만, 전문가는 항상 중립적이니 무조건 믿으라는 말인가? 비록 부정부패로 얼룩진 대한민국 관료사회이긴 하지만 원전관련 관료와 전문가들만은 절대 그럴 수 없도록 잘 설계했다는 말도 무조건 믿으라는 말인가? 필자는 탈원전 정책으로 정전 불안에 떨면서 2만불 시대로 후퇴할 것인지, 전기를 안정적으로 쓰면서도 지구온난화를 막고, 수출을 통해 4만불 시대로 전진할 것인지가 오늘 우리 국민 손에 달려있다는 말로 다급하게 독자를 종용한다. 그는 방사능 공포를 버리고 못사는 나라 공포를 생각하라고, 수출 4만불과 나의 행복을 동일시하라고, 탈핵미신에서 벗어나 찬핵으로 갈아타라고 독자의 입장전환을 촉구한다. 과연 수출 4만불이 되면 내가 행복해진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런 주장이야말로 사이비종교가 아닌가.

 

공론화를 통한 최선의 선택은 가능할까?

이런 글들이 공론화 위원회 홈페이지를 도배하고 거기에는 지지의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있다. 탈핵릴레이에서 느낀 위기감은 이제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고 공론화에도 회의가 들었다. 최근 확정된 시민참여단의 구성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해당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권 참여자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 연령별로도 50-60대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핵발전소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 더 오래 신고리5,6호기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신고리5-6호기와 관련이 먼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고 대중적 홍보도 없이 토론회 등이 진행되고 있다. 공론조사라는 것 자체가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린 것이다. 전기요금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게 문제라고, 편리하게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문제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들어줄까? 심층적 논의 없이, 경제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참여단들의 가치판단 역시 경제적인 것을 넘어 윤리적인 가치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2.jpg

   ** 정부의 시민참여단에서 배제된 10대로만 구성된 '미래세대 시민참여단'을 통해 실시한 공론조사 결과 (한겨레신문)



나의 스피노자를 의심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평범한 사람들이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정치적 과정은 너무나도 요원한 일 아닐까? 이렇게 투덜거리는 사이에 문득 이게 우리의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론화과정이 이 모양, 이 꼴인 것 역시 나의 역량이 여기까지이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이 내 능력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하고만 탈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현재 상태가 내 역량이다. 추석 때 일가친척과 신고리5,6호기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껄끄럽게 여기는 현재 상태가 내 역량이다. 딱 내 역량만큼 우리는 탈핵 쪽으로 갈 수 있을 뿐이다. 그게 나의 최선이고 우리의 최선이다. 만일 이번에 공론화 결과가 건설하자는 쪽으로 나와도, 그래서 탈핵이 아니라 계속 핵발전소를 지어대는 방향으로 가도, 핵폐기물이 계속 쌓여가도, 그러다 끔찍한 재앙이 닥쳐도 그게 우리 능력만큼의 우리의 최선임에 틀림없다. 그러다가 인류가 절멸한다면 그것은 지구로서는 최선의 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3' 댓글

건달바

2017.09.22
22:37:35
(*.206.240.214)

네 맞아요. 우리의 능력만큼이겠죠.

그래도 공론화는 해야합니다.

차후의 더 나은 공론화를 위해서.

새털

2017.09.24
08:57:27
(*.212.195.119)

건설계속의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핵발전의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

그게 우리가 공론화를 거치며 밟아가야 하는 스텝인 것 같네요


도깨비

2017.09.25
05:42:07
(*.168.83.253)

공론화는 위원회와 시민참여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회 곳곳에서 정치적 사안이 피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과 견해를 들어보는 기회가 되어

그것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기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번 공론화 과정이 그런 작은 출발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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