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밀양에서 삶정치를 묻다




 글 : 김혜영(문탁네트워크 회원)






 

문탁네트워크는 밀양을 만난 뒤, 기꺼이 밀양의 친구가 되기를 자처했다. 우리는 밀양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손발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에게 밀양은 탈핵 탈송전탑 싸움의 사회적 상징 그 이상의 무엇이 되었다. 밀양을 지원한다고 생각했던 연대활동은 밀양을 돕는 것을 넘어 우리 스스로를 살리고 역량을 키우는 활동이 되었다. 밀양을 통해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탈핵은 윤리적 삶을 성찰하는 공부가 되었다. 지난 5, 밀양은 문탁의 공부와 활동에 언제나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텍스트였다. 밀양과의 이야기는 문탁의 역사가 되었다. 2017년 여름 밀양 인문학 캠프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밀양을 만나다

2012년 여름, ‘민주주의정치를 화두로 그 해 문탁의 공부를 갈무리하기 위해 개설한 강좌에서 우리는 밀양싸움에 대해 들었다.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투쟁의 주체라는 것도, 765kv송전탑 반대라는 이슈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멀고 먼 뉴욕에서 벌어진 오큐파이 운동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읽으면서 밀양의 싸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내심 부끄러웠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직접 만나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로 농활대를 꾸렸다. 밀양과의 돌이킬 수 없는 만남이 시작되었다.

송전탑반대 이전에 탈핵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2011년 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뒤 우리는 문탁의 방식에 걸맞게^^ 공부로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녹색평론에서 나온 <원자력신화로부터의 해방>을 같이 읽었고, 탈핵활동가의 특강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은 몇 사람은 주머니를 털어 원자력? 나는 반대' 배지를 만들어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탈핵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의 질문은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았고 삶을 바꾸는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듬해 가을, 밀양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고 나서 우리의 몸이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게 되면 몸과 마음이 같이 바뀔 수밖에 없다. 탈핵이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밀양의 투쟁, 문탁의 공부

밀양의 송전탑 반대싸움은 오묘하고 놀라웠다. 농사일과 싸움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운동의 스타일. 송전탑건설예정지를 점거하여 싸우면서도 움막 앞 공터에 씨앗을 뿌리고 싹을 돌보며 꽃을 피우는 농성. 공사를 위해 올라오는 용역들을 막기 위해 옷을 벗고 쇠사슬을 목에 감지만, 또 날이 밝으면 된장국을 끓이고 김치 부침개를 부치고 밥을 지어 서로에게 먹이는 일상이 이어지는 싸움. 눈앞의 보상금이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되어 싸움을 멈출 수 없다는 어르신들. 마을 공동체가 깨져서 자신들은 고립되어 가면서도 아픔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너른 품이 된 밀양. 소수 활동가와 환경단체가 겨우 명맥을 이어왔던 탈핵운동의 불씨를 널리 퍼뜨린 운동. 밀양의 싸움은 일터와 삶터, 정치와 일상, 당사자와 연대자, 광장과 마을의 분리를 당연하게 생각해 온 상투적인 생각과 실천을 조용히 흔들었다.

이 운동은 전염성이 높았다. 문탁 역시 밀양이 퍼뜨리는 연대와 기쁨의 증식운동에 피할 수 없이 감염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두 팔 벌려 환영한 감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밀양이 우리를 감동시킨 것들은 모두 기존의 정치투쟁이나 조직활동의 문법과는 다른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가 공부를 통해 새롭게 깨우쳐가던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농촌 노인들이라는 세상의 속견에 하이킥을 날리며 민주주의와 자기 삶의 새로운 주체가 되었듯이 우리도 공부를 통해 주부, 직장인 등의 정체성을 깨고 다른 삶을 발명할 수 있기를 원했다. 우리는 공부 역시 연대와 기쁨의 증식 운동이고 어르신들이 겪어내고 있는 싸움만큼 치열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탁의 공부가 세상의 습속과 가치를 뒤흔드는 급진적인 것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밀양들이, 서로 다른 문탁들이 접속하고 뒤섞이며 증식되기를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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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의 밀양 시즌2

2014년 행정대집행 이후 문탁의 밀양 연대활동은 독자적인 녹색탈핵활동으로 전환되었다. 문탁에서도 밀양 시즌2가 시작된 셈이다. 시즌1이 밀양과의 연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시즌2는 탈핵과 녹색에 대한 공부와 활동이 중심이 되었다. 먼저 행정대집행 이후 한전 앞 항의시위를 동네로 가져와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76.5일간 탈핵 탈송전탑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 1인 시위 형식의 릴레이는 20154월에 다시 시작되어 지금까지 24개월(원안위 앞 65, 동네릴레이 53)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에 탈핵과 관련된 책을 읽고 북 콘서트와 세미나를 하고 특강을 여는 한편 틈틈이 탈핵영화상영회도 개최했다.

밀양과의 만남은 인문학 공부의 형식과 내용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전강독에서 읽은 <논어>의 한 구절은 피켓의 단골 구호로 변형되었고, 북 콘서트에서 함께 읽은 <밀양을 살다>는 연극대본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한국탈핵>은 유인물의 내용이 되었다. 탈탈탈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과 밀양으로, 부안으로, 홍성으로 다니며 길 위에서 공부를 했다. 5년 동안 열 번 넘게 농활을 다니는 동안 문탁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였던 청년들이 문탁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동화전 마을과의 인연이 깊어지고, 밀양 대책위를 통해, 전송넷을 통해, 녹색당을 통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처럼 새로운 공부와 관계가 생겼고 그 관계는 문탁의 움직임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 넣었다.

 

탈핵이 수행적 실천이 되고 있는가

그 사이에 문탁에서 탈핵은 언제나 주요한 이슈였고 논란거리였다. 1년의 공부와 활동을 갈무리 하는 문탁 인문학 축제 첫날의 주요 프로그램이 3년간 연이어 탈핵시위나 집회였던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2014년은 축제 첫날 미금역에서 수 십 명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76.5일 시위를 마무리했고, 2015년은 꽹과리를 울리며 방독면 탈을 쓰고 커다란 평화의 새를 날리며 탈핵퍼레이드를 했고, 2016년은 이명박과 박근혜 가면을 쓰고 탈핵집회를 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 밀양과 탈핵의 의미를 묻는 퍼포먼스였다. 과연 수도권에서 도시적 삶을 사는 문탁 학인들에게 탈핵이 삶을 바꾸는 수행적 실천이 되고 있는가라는 물음말이다.

문탁에서는 우리가 벌이는 일들이 모두 공부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릴레이 시위를 하고 농활을 하며 후기를 쓰고 느낌을 나누는 것 이상으로 문탁의 안팎에서 앎과 실천의 연쇄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온 것일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탈핵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떤 사람들은 문탁의 공부나 활동이 공동체 안에서 자족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문제는 자족성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는 끊임없이 활동을 벌이고, 나름의 실천을 만들어 왔지만 우리 자신의 공부하는 삶의 양식을 잘 만들어 오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우리는 말로는 자기 삶의 발명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몸은 여전히 밀양 연대자, 세월호 연대자, 인문학의 소비자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뭔가 찝찝했던 우리는 지난 3년간 인문학 축제에서 탈핵이 뭐냐고 물으며 이 문제와 거듭 대결하려 했는지 모른다.(올해부터 인문학 축제에서는 주제와 대토론회를 없애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를 보니 결국 밀양에서 축제의 프롤로그와 대토론회를 미리 앞당겨 하고 있는 것 같다.^^)

 

삶정치란 무엇인가

밀양과의 만남에서 시작해서 공부와 활동을 둘러싼 문탁 내부의 고민까지 멀리 돌아왔다. 포럼의 발표 주제인 삶정치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삶정치는 삶권력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삶권력은 다중의 삶을 지배하는 힘이고 통치성의 형태로 사람들의 삶을 자본과 국가 장치 속으로 포획하려 한다. 그러나 삶정치는 그것에 대한 저항이고 새로운 대안적 주체를 낳는 삶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정치는 사람들을 나누고 분류하는 기존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그 분류 자체를 문제 삼는 자율적 주체를 만드는 실천이다. 삶도 정치도 함께 하는 것이기에 삶정치란 곧 대중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치화하는 것이다.

나는 밀양어르신들을 삶정치의 주체로 이해한다. 밀양의 송전탑 반대 싸움은 탈핵운동 이상의 하나의 삶정치적 사건이었다. 문탁이 밀양에 감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도 그랬다. 그러나 삶은 가치화를 둘러싼 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를 끌어 내리려는 중력과 맞서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매번 공부와 활동을 통해 배우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러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구성해가는 그런 신체가 되고 있는가. 삶정치적 사건이란 바로 그런 신체로의 변화이다. 바로 이런 삶의 변형 속에만 삶정치가 있다.

밀양인문학캠프는 이런 질문의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문탁 안에서 시작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신고리 5,6호기 반대라는 당연한 대답을 문탁 학인들에게 들으려고 공론화를 시작할 리가 있겠는가. 이 과정에서 각자의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공부가 연결되는 삶정치적 사건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서도 공부에 대해서도 심지어 탈핵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밀양인문학캠프에 와 있다. 문탁이 제안하고 밀양이 화답하여 공들여 만들어진 이 자리가 우리에게 작지만 그러나 소중한 변화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문탁의 밀양 시즌3에 대한 논의가 활기차게 시작되었으면 좋겠다NM

 

운동은 먼 미래에 쟁취될 승리를 약속한다. 반면, 사소한 순간들에 이루어지는 소박한 행동은 그때그때의 성취를 약속한다. 삶을 고무하면서, 때로는 삶의 비극적인 면을 들추면서, 자유를 향한 경험이 구체적으로 행동화하는 때가 바로 그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들은 인간의 통상적 이해를 뛰어넘어 초월적이고, 스피노자가 말한 영원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 순간들은 저 광대한 우주의 별들만큼이나 아주 다양하다.”(존 버거,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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