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문탁네트워크에서는 신고리 공론화과정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신고리공론화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공론화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정책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 숙의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탈원전은 가능할까? 등)에 대해 회원연속칼럼을 게재합니다. (<문탁뉴미디어> 편집자)




[신고리5,6호기공론화-연속칼럼⑧]


소중한 기회, 공론화

    



 

글 : 건달바



공청회는 들어봤어도 공론화는 처음이다. 작년 6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원자력위원회에서 졸속으로 승인되면서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 나갔었다. 그때의 문제의식이 이어진 것이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라고 할 수 있다. 즉 5, 6호기 건설에 앞선 어떤 국민적 의견 수렴도 없었다는 것이고 찬핵과 탈핵의 입장이 공평하게 반영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공론화를 한다니 좋은 것 같긴 한데 난 솔직히 걱정이었다. 이렇게 팽팽한 의견들이 맞붙어서 어떻게 합의를 도출하지? 나도 내 입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텐데 찬핵 쪽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렇게 분열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등등. ‘정치’가 화두가 된 올해의 공부 속에서 의문은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또 이 공론화 문제에 대해 문탁 내에서도 어떤 활동을 할지 의견들이 분분했다. 이런 분분한 의견 속에서도 다들 공론화라는 형식에 대해서 낯설어 하고 있었다. 크게 의견은 두 가지었다. ‘탈핵 입장을 사람들에게 잘 알려야 한다’와 ‘공론화가 뭔지부터 알려야 한다’. 내 입장은 전자였다. 왜냐하면 핵 발전에 관련된 왜곡된 정보들도 많았고 또 제대로 된 정보라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난 ‘공론화’에 대해서 완전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공론화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녹색평론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공론화에 대해 공부했다.



공론화는 협상이 아니다1

공론화 또는 공론조사에 있어 핵심은 숙의(또는 토의) 과정이다. 상충하는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적정한 절차 밑에서 내부적 토론을 행하면서 숙의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이 공론화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보다 사회에 가장 좋은 것을 찾으려는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다른 참여자들과 토론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해야 하는 과정에서 토론 이전에 가졌던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이런 변경 가능성이야말로 수준 높은 숙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별, 성별, 계층별, 세대별 층화무작위추첨을 통해 선발되기 때문에 대표성을 지닌 표본이 된다. 즉 “공동체 전체를 대변하는 일종의 ‘소우주’ 혹은 미니-퍼블릭(mini-public)을 만들어 낸다.” 이런 무작위 선출의 배경에는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 모두가 누구든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모 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참여자들이 숙의과정을 거쳐 최종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누구의 의견이 맞으니까 그것으로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의견을 투표로서 표명하고 그 결과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더 숙고된 정치라고 할 수 있고 더욱이 무작위 추출된 참여자들로부터 다양한 관점과 폭넓은 주장들이 포함되고 고려될 수 있다. 이해 당사자들 간의 또는 정치가들 간의 협상이 아니기에 결과적으로 불편부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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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그간 나에겐 탈핵은 ‘선’이고 찬핵은 ‘악’이었다. 그러나 공론화의 장은 선과 악이 싸우는 곳이 아니다. 그래도 난 탈핵이 선이라고 우기고 싶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시위 나가서 만나는 반대 입장인 사람들도 찬핵이 ‘선’이라고 주장한다. 서로가 자기가 맞다고 하는데 가위바위보로 해결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쪽수로 해결할 수도 없다. 선과 악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버리면 절대 양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가? 우리가 선이어서 좋다고 하고 악이어서 싫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좋은 걸 선이라 하고 싫은 걸 악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런 좋고 싫음의 감정은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생기는데, 이런 감정들은 어디에 집중되기에 소외된다. 이런 소외된 감정들을 넓게 적용시켜 일반화가 되어버리면 바로 프레임(전도된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편견과 미신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을 가지고 자기편을 칭송하고 적을 깎아내리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실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고 말하는 것에서 오만이 생겨난다. 내가 모든 ‘선’을 소유했다는 오만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난 돈으로 동원되었을 거라고 의심하지만, 촛불 집회에 나간 한 친구는 태극기 집회 사람들에게 같은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가 태극기 집회에 나갔고 소위 박사모란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악의 편에 있다고 싸잡아서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나도 내 가치판단이 편견에 빠지지 않았다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렇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는 누가 맞고 누가 틀리냐를 가리는 장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정치인, 관료,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숙의하는 기회이다. 

나는 이번 공론화가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아주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론이 건설 중단으로 나오면 좋겠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 그다음 공론화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 반복해서 하다 보면 안 좋은 점들이 개선되고 좀 더 좋은 방법들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공론화가 제도화되고 앞으로 여러 중요한 사안에 일반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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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노자는 감정의 소외만이 아닌 감정 모방을 얘기한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유사성에서 생기는 감정 모방은 결국 사회성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감정 모방도 복잡한 관계 속에서 소외되지만 우리가 노력한다면 극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존재는 인간이라고. NM


 “잘 정돈된 사회에서 개인적 욕망들은 아예 뿌리까지 갈라져 있지는 않으며, 그것들의 공통분모는 민주적 토론을 거쳐 평화롭게 도출될 수 있다.2




녹색평론 154호, <무작위 선출과 숙의민주주의가 정치를 되살릴 수 있을까?>, 녹색평론 156호, <공론조사에 대한 이해와 오해> 참조함.


2 알렉상드르 마트롱, 김문수.김은주 역,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그린비.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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