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93호)낯선 철학자, 베르그손

2014.09.04 06:49

봄날 조회 수:769

[Inter+view] 04

사물의 법칙 그 너머의 창조와 자유,

낯선 철학자, 베르그손

- 황수영 선생님 인터뷰



글 : 봄 날







베르그손이라는 철학자는 문탁에서 매우 낯선 이름인 것 같았다. 아무도 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만든 서너 개의 질문을 간신히 만들어 보냈다. 약속시각이 가까워지면서 어떻게 인터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황수영 선생님은 밝은 웃음과 함께 베르그손에 대해 그 폭넓은 지식의 향연을 베풀어주셨다. 그야말로 우문에 현답. 인터뷰 내내 선생님의 철학에 대한 깊은 내공을 감동으로 들었다. 오래 전에 만났어야 할 ‘생성철학’의 베르그손. 깊어가는 가을, 황수영선생님이 말하는 베르그손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롭고 가슴벅찬 시간이었다.



Q : 앙리 베르그손은 문탁 사람들에게 아주 낯선 철학자인 것 같습니다. 들뢰즈나 스피노자는 조금씩 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 그의 텍스트나 이론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생님께서는 베르그손을 어떻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수영(이하 황) : 들뢰즈가 참조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니체, 스피노자, 그리고 베르그손을 들 수 있습니다. 들뢰즈의 책을 읽으셨다니 하는 말인데 들뢰즈는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전유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초기 들뢰즈의 철학은 베르그손을 아주 적극적으로 참조한 것이지요. 그래서 들뢰즈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베르그손을 공부해야 합니다. 들뢰즈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약간 비어있는 틈을 베르그손이 메워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탁은 3,40대 주부들이 많이 드나든다고 들었습니다. 가정이나 아이 등, 돌보아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공부의 측면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쉽게 베르그손에 접근하는 방법이 들뢰즈나 스피노자 등, 훨씬 실천적 지성을 제시하는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베르그손의 근본정신 만큼은 위의 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베르그손의 사상과 들뢰즈의 그것은 어떤 지점에서 분기하고 있으며 같은 뿌리에서 어떻게 가지가 벋어나갔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Q : 베르그손의 근본정신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스피노자를 ‘긍정의 철학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베르그손을 상징지을 수 있는 키워드가 있을까요?

황 : 베르그손의 철학은 ‘창조’와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자유’는 많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베르그손의 자유는 19세기 말부터 이루어진 과학적 성과들에 기인한 기계론, 결정론적 사고에 문제를 던지며 제기된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사물의 법칙을 제대로 사유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했다면 베르그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사물의 법칙대로, 법칙이 정한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그 법칙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베르그손과 니체는 ‘시간’을 중시하고 시간에 따르는 ‘변화’를 사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베르그손의 ‘생성’ ‘창조’의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 막연하게나마 베르그손의 ‘생성철학’이 들뢰즈의 ‘되기’나 스피노자의 ‘마주침’처럼 실천적 철학의 맥락과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걸까요?

황 : 어떻게 보면 베르그손의 사유는 실천의 의미에서는 들뢰즈보다 약한 편이지요. 들뢰즈가 오히려 베르그손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고 할까요. 여기에서 당시의 프랑스 상황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프랑스는 1870년대까지 거의 백 년 동안 전쟁을 비롯해서 내외적인 혼란을 겪은 후 파리꼬뮌을 계기로 사회적인 안정을 찾게 되지요. 그러면서 국제적으로도 프랑스의 위상이 높아집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베르그손이예요. 어떻게 보면 그는 시대의 혜택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근본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그리스식의 고전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시대, 프랑스어로는 벨 에뽀끄Belle Époque라고 하는데 베르그손은 바로 그 파리의 황금기에 활동한 철학자입니다. 

또 그 시대는 유례없이 과학이 발전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베르그손은 생물학, 심리학 같은 다양한 이론과 싸우며, 과학이 발전하는 시기에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서 베르그손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가져옵니다. 즉 전통적 철학이나 과학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겁니다. 자연, 사회, 우주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생성, 소멸합니다. 한편 자연과학은 ‘태초부터 그것은 이러했다’는 결정론적 태도로서 사물과 우주에 대한 고정된 해석을 틀을 가지고 있었지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당시 프랑스는 이렇게 자연과학이 분석하는 ‘존재’와 베르그손이 말하는 ‘생성’이 대립하는 시기였습니다. 이같은 구도에서 결과적으로는 플라톤식의 ‘존재’의 철학과 과학이 지지를 받게 된 것이죠. 

그런데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베르그손의 생성의 개념을 ‘되기’라는 실천적 문제로서 이끌어낸 것입니다. 베르그손이 ‘존재론적 사물의 인식’에 대립해 ‘생성’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방식을 던졌다면 들뢰즈는 그것을 ‘되기’라는 구체적인 문제로 다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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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베르그손이 ‘직관’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른 철학자(예컨대 스피노자의 직관지)들이 말하는 ‘직관’과 어떻게 다른가요?

황 : ‘직관’이라는 말에 내포된 일반적인 의미가 비슷할 수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직관에 대해 말한 철학자는 많이 있지요. 플라톤도 직관을 이야기했지만 플라톤의 직관지는 이성의 의미가 있어요. 스피노자의 직관지도 분석지의 느낌이 있습니다. 베르그손의 직관은 공감(sympathy)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이 직관은 그렇다고 ‘내가 전체와 하나가 되는’ 공감은 아닙니다. 베르그손의 공감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숲으로 들어가서야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직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누구나 직관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물질적 사고, 계몽적 지성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이것은 반대로 물질의 시선으로는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말합니다. 물질적 시선은 개인주의적 인간을 낳게 마련이고 그 시선을 나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것이 정말 어렵게 되는 거지요. 베르그손의 ‘공감하는 인간’은 아마도 ‘공동체적인 인간’의 모습일 겁니다.


Q : 베르그손의 ‘이미지론’은 흐름의 철학, 변화, 연속, 생성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이론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황 : 사실 베르그손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뢰즈가 그의 ‘영화철학’에서 다룸으로써 화제가 됐던 개념인데, 사실 베르그손의 철학이나 논리의 전개로 볼 때 그의 ‘이미지론’은 일종의 변종과도 같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물질을 설명하면서 나옵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지요. 이것은 카오스 이론에 대한 설명인데 이미 베르그손은 ‘분기’라는 개념으로 이 이론을 세웠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요. 베르그손의 물질에 대한 해석은 ‘연속’에서 출발합니다. 연속을 가지고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을 설명하지요. 과학적 인식의 측면에서 이미지를 불연속적인, 원자처럼 각기 떨어져 있는 것들의 표상으로 표현했다면, 베르그손의 이미지는 모든 것은 이어져 있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이 혼재되어 있는데 떨어져 있는 이미지는 그냥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며 진짜는 이어져 있는 것이지요. 과거처럼 이미지를 실체화해서 이해한다면 그 물질의 흐름은 파악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들뢰즈는 이러한 베르그손의 이미지를 들여오면서 약간 다른 식으로 해석합니다. 들뢰즈는 영화철학에서 ‘이미지’를 언급하면서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환상도 아니다. 그 이면을 흐르는 감흥같은 것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베르그손은 그것이 지성주의적 입장, 즉 전통적인 지성에 입각한 사물인식의 방법과 영화작업이 비슷하다고 보고 영화를 부정적으로 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당시 영화의 기법이 그다지 세련되지 못해 들뢰즈가 말하는 ‘영화적 시선’이 존재할 것이라는 상상이 어려웠던 탓도 있겠지요.



베르그손 철학의 핵심개념인 ‘엘랑 비탈’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물거리는 질문도 정확하게 그 요지를 파악해 너무 흥미롭게 설명해주시는 통에 마냥 신기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자를 읽고 있는 진달래는 장자와 베르그손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었다. 선생님은 덧붙여 마뚜라나/바렐라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베르그손에 접근하기가 쉽다는 말씀도 전해주신다. 우리는 여태 베르그손을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의 공부는 같은 금맥을 파고 있는 것 같았다.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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