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플라톤이 돌아왔다 8회]

백종원에겐 뭔가 '좋은 것'이 있다

-국가』 6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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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일어날지도 몰라, 골목식당의 기적

나는 회기동 고깃집 사장님의 눈물이 분당 시청률 12%를 찍으며 백종원의 골목식당 최고의 1을 기록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방송에 나가서 전국적으로 욕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가다간 제가 해왔던 비슷한 방식으로 가고 제 인생도 그런 식으로 갈 것 같았다.”는 인터뷰 이후 그는 간절함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날 밤 방송국 전파를 타고 그의 간절함이 나에게 전송되었다. 그의 눈물이 마리텔, 한식대첩, 집밥 백선생, 푸드트럭 등으로 이미 물리고 식상해진 백종원의 방송을 다시 챙겨보게 만들었다. 하루 3000명이 식당을 시작하고, 2000명이 식당을 폐업한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에게도 자영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왔다는 백종원은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살릴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방송이 끝나면 게시판에는 백종원에 대한 항의와 출연자들에 대한 악성댓글이 도배를 한다. 대표적으로 백종원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에 대한 불만을 근거로, 백종원이 멘토로서의 자격이 없음이 성토되고 있다. 실제로 골목상권을 죽이고, 자영업자의 숨통을 옥죄는 데는 프랜차이즈업계의 횡포가 가장 먼저 손에 꼽힌다. 그렇다면 요식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통하는 백종원이 골목상권에 대해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백종원의 솔루션은 논리적으로도 허점이 있다. 백종원의 시그니처가 된 대중적인 입맛으로 전국의 식당들이 천하통일하게 된다면, 우리는 천편일률적인 식당음식을 더 이상 사먹지 않게 되지 않을까? ‘지역경제 심폐소생 프로젝트라는 공익성을 기획의도로 내세웠지만, 방송의 최대수혜자는 존폐 위기에 몰린 골목식당이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가치를 높여가는 백종원이라는 비판으로부터 골목식당 제작팀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일 밤 예능강자로 등극한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홍은동 홍탁집 아들과 백종원의 갈등은 식당의 개선이 아니라 인간개조라는 새로운 관전포인트를 가져왔고, 장사의 기본이 안 된 청파동 피자가게편은 시청자의 공분(公憤)을 사는 막장드라마를 찍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기획의도와 무관한 자극적 요소를 동원해서라도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 상업방송의 본령이라는 것을 표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고깃집 사장님의 눈물이 내 마음에 동요를 가져왔던 것처럼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가 있다. 저성장의 시대를 살아가는 취준생과 자영업자는 고용 절벽과 소득 양극화라는 동일한 조건 아래 놓여 있다. 취준생은 알바생이기도 하고 미래의 자영업자이기도 하다. 자영업자는 언제든 취준생이 될 수 있고, 잠재적인 실업자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욕을 먹더라도 식당을 바꿔보고 싶다는 사장님의 결의 속에서 우리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서글픈 생존의 철칙이다. 이 슬픔의 연대감으로 우리는 골목식당 사장님들을 응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방송국놈들을 욕하고, 모든 게 시청률 때문이라는 것을 눈감아주면서, ‘성공한 사장님백종원의 솔루션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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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종원과 천 개의 식당

천 개의 식당에는 천 개의 문제가 있다. 김치찌개에서 돈가스까지 수십 개의 메뉴가 문제인 집, 준비 없이 가게를 열어 조리의 기본을 익히지 못한 집, 셰프로서의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고객과의 소통이 어려운 집, 상권 분석과 원가 계산이 부재한 집 등등. 그 각각의 문제와 해법은 다르지만, 백종원의 조언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될 수 있다.

회기동 피자가게는 사장님의 성실함으로 단골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났지만, 사장님의 실력과 들이는 노력을 감안할 때 장사가 안 되는 축에 속했다. 백종원은 우선 이 집의 수십 가지의 메뉴를 정리했다. 스파게티와 사이드메뉴를 없애고, 다른 피자집과 차별화될 수 있는 피자 개발에 집중했다. 매출에서 스파게티가 차지하는 비중을 포기하지 못해 메뉴를 정리하지 못하면, 골목식당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상의 고질적 문제(협소한 주방 동선과 서빙 지연)들은 개선되기 어렵다. 백종원의 안목과 식견이 빛나는 순간은 골목식당 사장님들이 간과하고 있는 취약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할 때이다. 이때 그의 친근한 카리스마가 빛을 발한다.

플라톤의 국가6권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골목식당 사장님들이 보는 것과 백종원이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가져오는 의 문제다. 플라톤은 이상국가가 헤쳐가야 하는 난관을 파도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첫 번째 파도는 남녀평등설이고 두 번째 파도는 처자공유설이다. 국가5권에서 수호자들의 남녀평등설과 처자공유설이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면, 6권에서 드디어 세 번째 파도인 철인왕의 문제가 거론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완성된다. 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건 골목식당 사장님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백종원이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철학자는 보통 시민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메뉴, 가격, 조리, 서빙, 식재료 구입 등 식당을 운영하기 위한 무수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백종원의 매뉴얼과 같이, 철인왕에게도 공동체의 공동선을 유지하기 위한 노하우가 요구된다. 통치자는 법률의 제정과 수호, 기타 국가의 내외사와 관련하여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한다. 이 같은 작업들에서 공동체 전체의 좋음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 때, 그를 진정한 의미에서 통치자라 부를 수 있다. 플라톤은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보자. ‘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가?’ 가 아니라 좋음의 이데아는 무엇인가?’ 라고.

 


3. 그것이 알고 싶다, 좋음의 이데아

플라톤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세계를 가시(可視) 세계라고 분류하고, 가시 세계에서는 무수한 변화와 생성이 일어나고 그것에 따른 의견(doxa)들이 넘쳐난다고 보았다. 한편, 감각기관이 아니라 사유능력에 의해 인식하게 되는 세계를 가지(可知) 세계라고 분류하고, 가지 세계에서는 변화와 생성의 근거와 그것에 대한 앎(episteme)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현상세계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무 자르듯이나누었다고 해서 선분의 비유라고 불리는데,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가시 세계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본다. 우리의 눈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본다. 그런데 의 시각능력과 보이는 대상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볼 수 없다. 여기에 이라는 제3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빛이 있기 위해서는 태양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진정성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백종원의 인간미, 유머감각, 예능센스가 아니라 그가 요식업계 사업가라는 타이틀이 방송을 믿고 보게 한다. 그의 전문성이 판단의 척도가 된다. 그렇다면 그의 전문성은 어떻게 입증되는가? 이 부분에서 백종원이 실력 있는 셰프가 아니고 요리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들려오지만, 그의 사업수완과 재력이 그의 전문성을 보증해준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 빛이란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척도(진리)’와 그 척도를 보증해줄 근거가 필요하다.

-대상--태양은 플라톤표 인식론의 도식으로, 여기서 태양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이다. ‘이데아는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형상을 이르는 플라톤의 개념으로, 현상세계의 변화무쌍한 존재들의 원형을 말한다. 현상세계에는 무수한 삼각형이 존재하지만, 삼각형의 이데아는 하나만 존재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많은 이데아들이 있다. 삼각형의 이데아, 셰프의 이데아, 식당의 이데아, 건강의 이데아, 정의로움의 이데아 등 영원불변하는 많은 이데아들이 있다. 이 이데아들의 원형이 좋음의 이데아이다. 좋음의 이데아는 이데아들의 이데아이고, 척도들의 척도이다.

선분의 비유와 태양의 비유를 통해 플라톤의 인식론에서 좋음의 이데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좋음의 이데아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저절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척도들의 척도’ ‘좋음 그 자체로 번역될 수 있는 좋음의 이데아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백종원의 전문성을 보증해주는 것은 그의 성공과 돈인데, 성공이 좋음의 척도인가? 잠시 티마이오스로 우회해서 그 의미를 파악해보자.

 

우주를 구성한 이가 본들 가운데 어떤 걸 바라보면서 우주를 만들어냈는지, 말하자면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랬는지, 아니면 생성된 것을 바라보면서 그랬는지를 말씀입니다. 만약 이 우주가 과연 아름답고 이를 만든 이(demiourgos) 또한 훌륭하다면, 그가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서 그랬을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중략)왜냐하면 생겨난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우주이며, 원인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이 그걸 만든 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바로 이렇게 해서 생겨났기에, 그것은 합리적 설명과 지혜에 의해 포착되며 똑같은 상태로 있는 것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티마이오스, 29a)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 티마이오스에는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데미우르고스의 신화로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식의 창조신화이다. ‘장인을 의미하는 데미우르고스라는 명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신화는 데미우르고스가 주어진 재료들을 가지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우주를 만드는 제작의 과정을 보여준다. 장인에게는 주어진 재료들을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노력이 필요하다(48a). 설득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장인이 어떤 규칙과 질서가 가장 적당한지를 측량하고, 측량에 따라 재료들을 섞고 나누고 버무리는 과정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규칙과 질서가 있는 상태와 그 최적의 비율을 좋음이라고 말한다. 티마이오스에서는 밤하늘에서 관측할 수 있는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운행주기와 같은 질서정연한 법칙을 좋음의 예시로 들고 있다.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의 작업이 완벽한 법칙과 질서를 만들어낸 까닭은 그에게 제작의 표본이 된 완벽한 이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데미우르고스에게는 ’(좋음의 이데아)을 볼 수 있는 지성과 그것에 따라 주어진 재료를 다루는 솜씨, 이론과 실기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기술이 갖추어져 있어야 했다. 이는 이상국가에서 철인왕에게 요구되는 기술인 통치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소위 철학자라 불리는 명망가들이 현실 정치에 등용된 경우를 보아왔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가 올바른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들은 진정한 철학자들이 아니었던 것인가? 플라톤의 생각과 달리 그들의 앎이 현실 정치에서는 소용이 없는 것인가? 이상국가와 철인왕은 그저 설계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인가? 건축될 수 없는 설계도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면 이데아야말로 허상이 아닌가? 플라톤을 공부하다보면 무수히 헷갈리는 질문들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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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라톤의 작업실과 연장들

레시피가 있으면 초보자도 요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재료들의 신선도와 씻고 다듬는 과정, 불의 세기와 조리시간 등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많다. 이 모든 것을 레시피대로 계량한다고 해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맛은 또 달라질 수 있다. ‘간을 맛춘다는 것이야말로 요리의 기본이며 전부일 수 있다. 맞춤한 간의 음식을 우리는 맛좋다라고 평가한다. 보기 좋다, 듣기 좋다, 쓰기 좋다 등 우리가 두루두루 사용하는 좋다에는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히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나름의 척도와 측량이 이루어지고 있다. 맛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누어질 수 있지만, 그 호불호에는 근거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에 대한 고찰이다. 이는 사물과 현상은 근거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존재론이며, 근거가 있어야 인식할 수 있다는 인식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원리에 대한 논의를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플라톤은 하나의 영원한 근거가 있다고 보았다. 근거가 하나 이상의 다수가 되면 파악할 수 없는 혼돈(카오스)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오스가 아닌 상태, 근거에 의해 질서지어진 상태가 코스모스다.

물론 반대의견도 가능하다. 플라톤주의를 전복시켰다고 평가받는 니체의 철학이 그러하다. 니체가 보기에 세계는 카오스의 연속이다. 일시적인 코스모스의 교체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원리를 근거가 아니라 코스모스의 교체를 가져오는 힘들의 의지라고 보았다. 힘들의 대결에 의해 근거는 만들어지고, 근거는 늘 힘들의 대결 가운데 있다. 니체는 플라톤의 근거의 근거는 무엇인지 따져 물으며 근거 자체의 근거 없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플라톤이 태양과 같은 존재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아폴론적인 철학자라면, 니체는 그러한 근거를 해체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철학자이다. 플라톤의 철학은 건축적이고 니체의 철학은 음악적이다. 그렇다면 건축에는 음악이 없고, 음악에는 건축이 없을까? 공간의 분할과 배치에도 리듬이 있다. 음들의 분할과 배치에도 조형이 있다. 나는 두 사람 모두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건축을 위해 니체는 해체를 위해.

나는 플라톤의 철학을 연장을 만드는 장인의 작업실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플라톤의 페르소나인 소크라테스는 늘 정의’(定義)로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현상과 사물의 진위를 파악하기 전에 점검해야 하는 것이 대상의 개념이다. 대화자들의 합의에 의해 정의를 확정하고, 논박을 통해 진위를 판단한다. 이때 진위를 판별해줄 척도와 설계도가 필요하다. 플라톤은 철학이라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연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이다. 망치, 모루, , 줄자 등등 그는 철학의 도구적 개념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가 제작한 연장이 지금의 우리에게 불필요하거나 용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의 연장통을 통째로 버릴 이유는 없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나사못을 찾기 위해 우리는 가끔 안 쓰는 연장통을 뒤적거릴 때가 있지 않은가?

이 글에서 백종원은 식당의 이데아를 알고 있는 요식업계의 철인왕으로 비유되었다. 적합한 비유였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백종원의 노하우가 속 답답한 골목식당 사장님들에게 요긴한 매뉴얼이 되고, 백종원의 레시피가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는 자취생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한다. 그에게는 성공과 돈만이 아니라 뭔가좋은 것이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