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통신

(88호)문탁 제2텃밭 인클로저 보고서

2014.06.25 06:30

시습 조회 수:1098

[작업장통신]

문탁 제2텃밭 인클로저 보고서




글 : 시습






3월 어느 날 요요님이 문탁네트워크가 살고 있는 건물의 3층 할머니가 이사하시면서 파지사유 옆에 있는 텃밭을 우리에게 양도해 주셨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할머니께서 하시던 곳 이래. 파, 시금치도 뜯어 가시고 나면 거기도 마저 하래~” 영역을 확인한 후 돌아와 몇 몇 분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다들 사정이 있어 못한다 하셨다. 일단 혼자 시작했다. 비어져 있는 곳에 상추씨앗을 뿌리고 돌아왔다.

다음날 가보니 씨를 뿌린 곳이 흙들로 덮여 있었다. 건축을 하려고 텃밭 주변에 흙을 채워 놓은 것이다. 요요님에게 달려가 여차여차해 속상하다고 투덜거렸다.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텃밭 인클로저 사태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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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정철수고팀과 프리다와 함께 매주 목요일 아침 9시에 함께 모여 작업을 했다. 문탁 밥상에 쌈거리가 가득한 모습을 상상하며, 토마토를 심어 그것으로 케찹을 만들어 문탁 식탁에 제공하겠다는 자누리의 야무진 생각에 웃음지으며 우리는 퇴비를 뿌리고 상추와 쑥갓, 아욱 등 쌈거리 씨앗을 뿌렸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농사를 짓다 보면 집에 새끼를 두고 나온 어미 새처럼 궁금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발길이 텃밭으로 향하게 된다. 나는 거의 매일아침 텃밭으로 나가 싹이 나오는 걸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텃밭의 광경은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정성들여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씨를 뿌린 곳을 누군가가 파헤치고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 비닐을 덮어 놓았다. 2년 전 푸딩과 함께 텃밭을 일구려다가 씨앗 뿌린 곳을 누군가 파헤치고 그물로 출입을 막아 결국 텃밭을 포기해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곳에 씨앗을 뿌려놓았으니 비닐을 치워달라’고 나무판에 적어 세워놓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우리는 이 푯발을 치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3층 할머니는 그곳을 다른 분께 양도하셨다고 했다.)


4월 중순 우리는 3층 할머니께서 시금치를 수확한 빈 곳에 퇴비와 씨를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할머니께서 오셔서 당신 땅이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우리들은 안되겠다 싶어 목공소에서 나무를 갖고 와 이랑마다 문탁 표기를 해서 꽂아두고 주변에 돌 따위를 모아 영역표시(?)를 했다. 결국 가장자리는 할머니께서 하기로 하고 가운데는 우리가 하기로 타협을 봤다. 우리는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 영역에 문탁 푯말도 꽂고 돌도 쌓아 표기를 하고 돌아왔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한 시간 후쯤 다시 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님께서 돌도 치워놓고 푯말도 뽑아 내동댕이 쳐 놓으셨다. “할머님 왜 이렇게 하셨어요? 여기에 퇴비랑 씨앗을 뿌렸다고 말씀 드렸는데... ” 라고 말하고 나는 다시 돌을 쌓고 푯말을 세워놓았다. 이번에는 할머님이 포기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년에는 저 땅 내게 줘” 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할머님께 양도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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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밭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면 빨리 모종을 심어야 한다는 말들이 나왔다. ‘모종을 심으면 어떻게 못하겠지....’하는 생각에 4월 말경 우리는 고추, 토마토, 가지, 호박, 오이, 상추, 양배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모종을 심은 우리는 "설마 모종을 어떻게 하겠어!" 라는 생각을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날 밭에 간 나는 경악했다. 심어놨던 상추와 양배추 모종이 한 쪽 귀퉁이에 모여져 있고, 우리가 심어놨던 그 곳엔 다시 비닐이 덮여 있었다. 모종은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모종을 심어 밭을 확실하게 선점하려는 우리들의 욕심도 그다지 칭찬받지 못하겠지만, 그 여린 모종을 다시 파내어 옮긴 사람들의 ‘땅’에 대한 놀라운 집착이 분노보다는 허탈함을 느끼게 했다.


이상의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왜 텃밭농사에 집착했나, 돌아보게 됐다. ‘50이 넘도록 땅 한 평, 집 한 채 가져보지 못해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의 표현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농사짓고 있는 문탁 제 1텃밭도 원래 내가 혼자 농사짓던 곳이었는데 문탁이 만들어지고 나서 나는 흔쾌히 문탁의 공동 텃밭으로 내 놓았다. 그렇다면 ‘수확물에 대한 욕심 때문인가?’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농사지어 수확한 대부분의 농산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기 때문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선 나는 텃밭농사가 너무 좋다. 좋은 이유를 굳이 찾자면 어릴 때의 정서(?)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기에 바구니 한 가득 나물 캤던 아련한 추억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밭에 앉아 있으면 엄마의 품속에 있는 듯 마음이 평안해진다. 특히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날 더욱 그러하다. 뿌린 씨앗이 땅을 헤집고 나올 때의 그 신비, 식물의 강한 생명력을 느낄 때의 경이감은 더욱 촉매작용을 하며 수확물은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한 줌의 씨앗에서 몇 십배, 몇 백배의 수확을 얻게 해 주는 대지의 넉넉함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두 번째는 잡다한 생각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번잡한 인간관계로 직장생활이 힘들 때 더욱 그러하다. 텃밭 농사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누가 나를 해코지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한 말이 다른 뜻으로 와전 되는 것은 아닌지, 나의 공을 가로 채는 것은 아닌지’ 라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땅만 갈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립과 관계가 된다. 어릴 때부터 어렵게 살아왔던 나는 최소한 내가 쓰는 용돈은 내가 벌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농사는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본이 된다고 생각한다. 밥과 김치만 있다면 먹거리는 걱정이 없을 듯하다. 아직까지 논농사는 지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년에는 논농사를 지어봐야겠다.

네 번째는 노후대비책이다. ‘죽기 전까지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고 생각한다. 그게 건강의 비결이기도 하다. 텃밭 가꾸기나 농사짓는 일은 정년이 없다.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조그만 농사, 텃밭 가꾸기가 아닐까 한다. 나는 노후 대비를 위해, 아니 오늘을 즐겁게 살기위해 텃밭 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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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인클로저 운동은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다. 아니, 인간의 욕심으로 이리저리 밭이랑이 옮겨지고 넉넉했던 통로가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좁아졌지만, 가지며 오이, 고추모종이 부쩍 커서 저마다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식물들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듯하니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누구의 밭인지, 싹이 커서 자라봐야 알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어쩌면 그곳을 거쳐간 주인들의 저마다의 씨앗들이 시금치, 아욱, 쑥갓으로 함께 어울려 자라면서 우리 인간들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궁금해서라도 나는 매일아침 텃밭으로 향한다.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