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통신

(69호) 마을공유지에서 벌어지는 사건

2013.09.24 06:36

봄날 조회 수:2362

[문탁공감] no.89

마을공유지 874-6에서 

벌어지는 사건


글 : 봄날







[ 마을공유지 874-6은 날마다 조금씩 진화한다 ]


통유리창이지만 바깥을 내다볼 수도,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던 유리문을 걷어내고, 음식냄새가 진동하던 실내의 장식물들을 걷어냈다. 머리 위를 덮어 답답했던 천정보드를 모두 떼어내서 우리 목소리와 공기가 떠돌아다닐 공간도 늘렸다. 며칠을 걸려 공간을 만들었을 때의 수고스러움에 비해 파괴하는 것은 한 나절이면 족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새로운 영토를 그리며 설레고 있다. 저마다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 그것들이 모여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first time.jpgsecond time.jpg


‘마을카페’로 시작된 공간의 컨셉은 ‘마을살롱’ ‘마을실험실’을 거쳐 ‘마을공유지’가 됐다. 어쨌든 카페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카페’로 불릴만큼, 새 공간은 커피를 마시는 곳이라는 정체성만큼은 확실하다. 그러고 보니 공간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카페와 카페주방 공간은 아무도 전문성이 없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맨 나중에야 구체적인 스케치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어찌 보면 커피를 모르는 사람들이 카페를 차린다고 나설 때부터 문제는 시작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마을작업장이나 문탁 식구들의 ‘무모함’은 오래 전부터 이어지는 기풍일지도 모른다. 대책 없는 카페운영팀은 결국 ‘섬세한’ 커피를 선보이기보다 ‘균질한’ 커피를 내자고 결론 내리고 전자동 커피머신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균질한’ 커피의 맛은 어떨까? 현관을 열자마자 보이는 오렌지색 벽만큼이나 따뜻하고 부드럽고 솔직한 맛을 보장한다. 이익을 따지지 않는 우리의 모토에 따르면 원두품질은 매우 높을 것이기 때문에...


cafe wall.jpg


지금까지 유일하게 독립되어 있던 공간은 주방. 가장 허름하고 손을 못대던 공간도 주방이었다. 지금 주방은 환골탈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 되었다. 당초 생각보다 좁아지기는 했지만 여기서 도깨비 방방이를 휘두를 때마다 희안한 먹거리들이 매일 쏟아지기를...

나머지 공간을 나누고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세미나실과 자누리 작업실(요요님은 각각의 방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오늘도 고민중이시다)은 ‘따로 또 같이’를 실현한다. 때로 독립적으로, 때로 결합해서 사용하는 공간이다. 


부엌.jpg


자누리팀은 그동안 변변한 수납공간 하나 없이 작업장에서 공간을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몰리다가 각방을 쓰게 됐으니 그 뿌듯함이야 말할 수 없겠는데, 그러다 보니 수납장 하나를 설치하는데 설계가 수십번 변경됐다는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설계라는 건 사실 ‘바꾸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생각을 확실하게 가지기까지 설계는 무한 수정된다. 세미나실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구조, 바뀔 것이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이트보드를 설치할 면에 있던 창문을 끝까지 고수했지만 벽을 친 다음 날 가보니, 창문의 흔적이 없다. 기왕 만들어진 반반한 벽은 빔프로젝터로 쏘아 창이 뚫릴 만큼 자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일 듯 하다.


b&w.jpg


광화문 길담서원의 ‘한 뼘 갤러리’에서 영감을 받아 고집스럽게 확보한 공간이 이 ‘갤러리 틈’(틈갤)이다. 가로로 나 있는 외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함께, 사선이 가져다 주는, 불안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이 전시공간이 나는 너무 사랑스럽다. 갤러리 자체가 좁은 틈에 박힌 ‘쐐기’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맘에 든다. 이 틈새공간에 마을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화가, 솜씨쟁이들의 작품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한 쪽 눈을 지긋이 감고 손바닥만한 작품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 공간은 사진가 이상엽 선생님의 사진전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틈갤.jpg


벌거벗은 것처럼 휑하니 틀만 남은 카페공간의 정면창에는 폴딩새시문이 달릴 예정이다. 공간을 위한 수많은 회의 도중 가장 큰 시각의 전환을 이룬 곳이 바로 외부와의 접점인 정면창이다. 이전까지 우리는 카센타가 세 군데나 몰려 있는, 결코 카페와 어울리지 않는 외부 환경을 탓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배제한 바깥풍경을 만들어낼까를 고민했었다. 그러나 카센타, 교회, 미장원, 횟집이야말로 마을 골목의 자연스러운 구색이고, 명색이 마을공유지를 말하면서 그 무슨 욕망이란 말인가. 무대를 열고 인문학 모임을 여는 곳이 마을이라면 마을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보도록, 민낯의 우리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여주자고 결정한 것이 접이문을 달게 된 배경이 됐다.


polding door.jpg


마을작업장 월든 목공소에서는 마을공유지의 카페공간에 들어갈 탁자와 세미나실, 자누리작업실에 들어갈 가구들, 책장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10명 이상이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은 신목수님의 의욕의 산물이다. ‘최후의 만찬’이 생각나는 이 테이블은 그의 희망대로라면 마을공유지의 ‘명물’이 될 것이다. 저마다 마을에서의 사건을 만들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며 예약하는 날이 오리라.

롱테이블.jpg




[사유로서 깨건(破之思惟), 사사로이 가진 걸 깨건(破之私有)]


사유를 깨고 몸을 움직이건, 마을공유지 874-6에서는 수많은 신체들이 움직이며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다. 10월 5일, 문을 여는 <마을공유지 874-6(파지사유)>에 앞서, 우리의 파지사유는 이미 시작됐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포질, 스테인칠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몸을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시간을, 마음을 들이는 일인지 느낀다. 또한 먼지나는 공간에서 서툴게 시멘트 벽을 긁어대고 낡은 벽지를 띁어내는 일 속에서 내 몸과 이 공간의 바람이 직접 만나는 순간은 또 얼마나 극적인가.


work01.jpg


조금이라도 싸면서 품질은 떨어지지 않는 ‘중고’를 찾아 서울시내 곳곳을 누비면서도 예산의 빈약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사물들(의자들)이 찾아왔고 우리 눈에 띠어 주었다. 이 의자는 누가 좋아할 것 같고, 저 의자는 또 누가 좋아할 것 같고...나 말고다른 친구, 이웃들이 보고 좋아할 의자를 고르는 것은 내 만족을 위한 것보다 훨씬 힘들지만 훨씬 기운을 북돋게 해준다.


chair01.jpgchair02.jpg


또 우리에게는 밤이나 휴일에 소리없이 찾아와, 정말 소리없이 작업하고 사라지는 ‘우렁이들’(우렁각시는 아니니까)이 있다. 광부처럼 헤드랜턴을 켜고 어둠으로만 숨어드는(전기배선 작업) 무아님과, 입체적이고 폭발적인 효과음을 위해 정작 당신은 입을 다물고 계시는(음향설비 작업) 가마솥님이 있다. 코빼기를 볼 수 없는 이미지 크리에이터 신매실님이 있고 하루를 두배로 늘려 웹작업에 매진하는 무담님이 있고 연휴를 리플렛 작성에 봉헌하신 우록님이 있다.


가마솥.jpg

무아.jpg


마을공유지에서 이루어지는 첫 번째 강좌가 이미 공지되어 있다. 10월12일 오픈행사에는 약 이백명 정도의 손님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을 맞을 준비가 필요하고 아직 카페 메뉴며 프로그램 구성 등, 생각할 것이 태산 같지만 파지사유는 이미 블랙 앤 화이트의 단장을 끝내고 제자리에서 워밍업하고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머뭇거릴 것인가. 손발을 움직여 파지사유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리듬을 만들면서 기꺼이 그 속에 몸을 던질 뿐이다. 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