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사유인문학

인문학 공부에 기초가 되는 책, 이 시대에 영감을 주는 책들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강의합니다

최근 몇년 사이 혈육을 연달아 잃었다. 내내 서글프고 거칠었던 그 삶을 애도해야할지, 쓸쓸하고 적막한 그 죽음을 애도해야할지, 남겨진 자들의 그 허망함을 애도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나의 슬픔은 그렇게 몇년째 박제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부가 떴을 때 자연스럽게 신청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강의를 들을수록 속에서 어지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을 접하며 이것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기 요청을 받았다. 내 안의 내밀한 질문들에 답할 사이도 없이 후기로 써지는 글들이 너무나 비루하여 쓰고지우길 반복하다  '죽음'에 대한 사유가 그렇게 쉽사리 정리될 수 있는 주제던가 싶어 그냥 떠올랐던 질문들을 어지러운 채로 쓰기로했다.  (고백하자면 텍스트를 끝까지 읽지 못해서 텍스트나 강의에 대한 후기라기 보다는 개인적 상념에 가깝다.)

 

1. 죽음은 정말 모두에게 공평할까?

우리는 자주 그렇게 말한다. 죽는건 모두 똑같다고...

몇년전 지인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서울 대형병원 장례식장에 간적이 있다. VIP실이었고 입구부터 줄지어 화환이 늘어서 있었으나 50평이 훌쩍 넘는 조문객실은 텅 비어있었고, 가족들은 침착해보였다. 자살이라는 소문이 있던 직장동료의 형제 장례식장은 그 소문만큼 적막하고 불안했으며, 다른 한 친구의 아버님 장례식장은 남겨진 가족 사이의 따뜻하기까지 한 분위기와 발디딜틈 없이 가득찬 문상객들로 잔칫집같은 들뜸마저 있었다. 내가 겪은 여러 죽음처럼, 노화로인한 자연사부터 상상조차 쉽지 않은 사형수의 죽음까지, 병사부터 하루아침에 당한 급작스런 사고사까지, 나는 그 어느 하나도 같은 죽음, 그 죽음 이후의 남겨진 자들의 같은 분위기를 본 적이 없다. 생의 첫 호흡이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처럼 어떤 모습으로든 생의 마지막 호흡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것만이 공평하다면 공평하달까. 그럼에도 여하의 선택이나 의지가 투영될 여지없는 탄생과 달리 죽음은 그 삶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너무나도 다른 마지막 모습을 남기게 된다. 그렇기에 더.. 우리는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2. 나의 죽음과 너의 죽음

처음 죽음을 인식하게 된건 초등학교 3학년때 큰아버지의 죽음에서였다. 나를 무척이나 아끼시던 큰아버지의 죽음은 잠든 사이에 이루어진 호상이었으나 환갑을 넘기지 못한 이른 죽음이었고, 오랜 병환 중이었다고해서 낯선 상실감의 아픔이 완화되는 건 아님을 알게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가까운 친척들, 아버지, 친구, 형제들까지...  또래보다 비교적 많은 죽음을 가까이 접한 탓인지 나에게 있어 죽음은 언젠가 다가올 훗날의 일상이자 순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의 죽음에 관해서만 갖는 상념이었다. 자신의 죽음엔 딱히 억울하지도, 두렵지도, 슬프지도 않은 덤덤한 마음이고 다만, 죽기 직전의 순간이 공포스러운 사건사고가 아니기만을, 나의 죽음이 남겨진 자들에게 한동안의 슬픔 그 이후엔 좋은 추억으로 더 많이 기억되기를 욕심낸 게 다였다. 그러나 남편, 아이들, 아주 친밀한 이의 죽음을 상상하면 상상만으로도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 휘청거리게 된다. 내게 있어 순리였던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다가올 땐 거부해야할 무엇, 적대해야할 무엇이 되어버리는 이 이중적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나의 의식이 아직 낭만주의에 머물러있어서일까? 아마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후에 남겨진 자가 바로 나여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죽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 차라리 미리 걱정하거나 상상할 것이 없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남겨진 영혼이 받게 될 충격과 슬픔은 치유가 더디고 답답함을 알기에, 차라리 그 슬픔을 유예시켜주던 장례절차가 끝난후 찾아오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황폐함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알기에, 죽은 자에 대한 다하지 못한 사랑과 아쉬움이 얼마나 끈질기게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지 알기에... 남겨진 자들이 감당하고 건사해야할 죽음 이후의 현실에 대한 경험이 그런 다른 감정을 야기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질문은 다시 내게 죽음이란, 죽는 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겨진 자의 문제이기도하며,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해야하는 것만큼, 남겨진 자들의 영혼이 떠나는 자의 죽음을 잘 받아들일수 있도록 생전의 관계들과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정성을 다해야한다는 성찰로 다가왔다.

 

3. Dying is not death

리 호이나키의 책 아미쿠스 모르티스의 원제는 Dying is not death라고 한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쩡!!하고 가슴이 울렸다.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이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자를 보고 우리는 쉽게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들이 죽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이나키는 '죽어간다는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이걸 이렇게 읽고 싶었다.  '죽어간다는 건 죽음 그 순간까지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죽음이든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것이고, 의식의 혼돈 순간에도 우리의 곁에는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단 한순간이라도 말이다.)  결국, 어떻게 죽느냐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사느냐의 다른 물음인 것이다. 이것이 이번 강의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질문이기도 하다.

  

4. 노인 오계명

운이 좋아 의학과 과학이 제멋대로 늘려온 생명연장의 환상을 쫒지 않고도 맘껏 늙어 죽음을 맞게 된다면, 그 직전 순간까지 몸도 마음도 늙어버린 내 노년이 할 수 있는 생활의 계명을 생각해보았다.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을 것 같아 최소한의 것만을 적었다.(다른 분들도 한번 해보시길~)  적다보니 팔십을 훌쩍 넘은, 딸들이 걱정할까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럼에도 날마다 조금씩 쇠잔해져가는 내 어미의 하루와 닮았다. 

1. 관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 소박한 밥을 함께 먹는다.

2. 운동: 기력이 딸려도 자기 전에 누워서 발끝치기를 오백번 이상 한다.

3. 정신: 큰글씨 책이나 오디오북을 통해 매일 조금씩 책을 접한다.

4. 하루: 저녁 노을이 지는 시간엔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5. 준비: 바람이 따뜻한 날엔 내가 묻힐, 혹은 내가 뿌려질 곳에 가서 한가로이 산책을 한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에게 줄 선물이나 편지를 매일 조금씩조금씩 준비한다.

죽음 그 순간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싶다.  기왕이면 신이 주신 '삶"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비록 그 선물이 받는 이의 취향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해도 말이다.  ^^

조회 수 :
126
등록일 :
2018.04.10
14:01:59 (*.221.24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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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오영

2018.04.10
19:06:33
(*.211.199.36)

강좌 후에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더 많아졌다고 하셔서 후기로 풀어보시라고 부탁드렸었죠. 

근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샘 모습에 제가 넘 부담을 드렸나 싶어 쬐금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ㅎㅎ

샘에게는 그저 얽힌 실타래 풀어내듯 샘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 정리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네요. 

마음 담아 쓰신 후기 고맙습니다~




문탁

2018.04.11
17:50:32
(*.130.201.140)

아, 선물샘 정말 고맙습니다.

강의 마지막 날, 샘이 여러 상념이 생겼고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겼다고 했을 때 그걸 꼭 듣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한땀 한땀 후기를 남겨주셨네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자누리

2018.04.12
08:12:08
(*.238.37.229)

제가 생각하는 노년은 이렇습니다. 몇명의 친구들이 모여 얘기합니다. 주제가 뭐든 결론은 어제와 같습니다. 그새 잊어버렸든, 살아온 세월의 반영이든, 저는 저와 친구들의 그 완고함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과는 달리...

2018.04.13
17:26:32
(*.121.203.183)

선물샘, 잘 읽었습니다.

퇴근길에서 함께 하지 못하지만 파지사유 인문학에서 공부를 이어가시니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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