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사유인문학

인문학 공부에 기초가 되는 책, 이 시대에 영감을 주는 책들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강의합니다

9월 <파지사유 인문학>에서 한병철 저작을 읽기로 했는데, 마침 최근 방한해서 강연을 했더군요...

그리고 경향신문에서 인터뷰를 해서 그가 생각하는 디지털 사회와 <땅의 예찬>을 들을 수 있었구요.

기사 스크랩했으니 같이 보고 우리도 <파지사유 인문학>에서 이런 저런 얘기 해보면 좋겠습니다.



정원사가 꽃 돌보듯 타자에게 귀기울여야


“사계절 꽃을 보려고 텃밭을 빌려 3년간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하루 종일 땅을 파고 육체노동을 하면 굉장히 피로합니다. 그런데 그때 피로는 <피로사회>의 피로와는 다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건강한 피로가 뭔지 몸으로 알게 되죠.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땅의 느낌은 나를 해방시켜주고 행복하게 합니다.” 


독일에서 <피로사회>(2010년)를 발표한 후 잇단 논쟁적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화제의 작가가 된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교수(59)가 지난 17일 환경재단 초청강연에서 신작 <땅의 예찬>(김영사)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지난 3년간 베를린에서 거의 매일 기차를 타고 텃밭에 들러 정원사로서 수고로움을 자처한 계기를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강의를 하러 갔는데 너무 많은 관광객들에 의해 땅이 짓밟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완전히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죠. 내가 발 디디고 있는 땅속을 경험하고 싶었던 거죠. 사람들은 돌아다니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나무처럼 가만히 서 있는 거에요.” 


환경재단 강의가 끝난 다음 날 시와 음악, 철학이 어우러진 <땅의 예찬>을 좀 더 자세히 듣고자 그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다. 전날 강연에서 감기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는 다행히 원기를 되찾았다.


세계 20개국 언어로 번역된 <피로사회>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착취수단으로써 ‘자기착취’와 이로 인한 ‘우울증’을 분석한 진단서라면, 8년 만에 나온 <땅의 예찬>은 일종의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땅의 예찬>과 <피로사회>에서 ‘피로’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 <피로사회>에서 말한 자기착취로 인한 피로는 세계가 없는, 자기 속에 갇힌 피로예요. 반면 <땅의 예찬>에서 정원사가 느끼는 피로는 세계를 여는, 세계가 포함된 화해의 피로입니다.” 그는 정원의 피로를 통해 느끼는 연대의식 역시 디지털사회의 접속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디지털사회에서는 접속은 있지만 공감대가 없었요. 그러니까 서로 묶이지도 못하죠. 서로 소통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 결과는 화해와 연대가 아니라 분열입니다. 휴대폰만 보고 자기 속으로만 몰입이 되는데 어떻게 타자의 눈길을 느끼고 세계와 연대를 할 수 있겠어요. 세계 속에서 눈길이 마주치고 서로 바라봐야 연대가 되는 겁니다. 땅에서 멀어지면 인간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인데 디지털화되면서 인간은 점점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겁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라 철학과 문학, 신학을 전공한 그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자란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학교 가던 길에 친구들과 함께 메뚜기와 잠자리를 잡던 경험을 떠올리며 땅이 주는 깊은 맛을 설명했다. “겨우내 먹기 위해 김장 김치를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두잖아요. 땅속에서 우러난 김치나 동치미의 맛이 땅이 우리에게 주는 깊은 맛이에요. 냉장고에서 숙성한 김치와는 차원이 다르죠. 그 땅이 주는 깊은 맛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편한하게 하는 건데 그런 땅을 우리는 떠나고 있어요. 땅을 구원함으로써 인간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땅을 구원한다는 것은 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중단하는 겁니다. 맺힌 것을 풀어줌으로써 땅을 본질로 되돌아가게 하는 거죠.”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성장 논쟁에 대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논쟁”이라며 정원사로서 느낀 교훈을 들려줬다. “꽃을 많이 피워서 성과를 내고 싶은 정원사가 있긴 하겠지만 내가 아무리 열을 내도 꽃이 빨리 피나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정원에서는 경험할 수 있어요. 기다림이라든가, 인내라든가, 봄에 대한 희망이라든가.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잖아요. 점점 참을성이 없어져요. 


그는 정원을 다양한 식물이 각자의 시간을 갖고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표현하며 신자유주의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로 죽음에 대한 경시를 지적했다. 이 때문에 <땅의 예찬>에는 인간이 본래적 실존을 회복하는 데 있어 피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운명으로서 죽음의 역할을 강조한 하이데거가 자주 언급된다.  “신자유주의는 젊음을 생산과 일치시키면서 노동 대신 ‘자기계발’ 혹은 ‘퍼포먼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자기착취를 이끌어내기 위한 신자유주의 언어는 매혹적이고 교묘하죠. 사람들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더 젊어지기 위해 피트니스를 하고 보톡스를 맞는 겁니다. 그 속에서 죽음은 별 의미가 없어요. 삶에 죽음을 포함시켜야 깊은 삶을 살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는 죽음을 노동의 중단, 생산의 중단 정도로만 취급할 뿐입니다.” 


인터뷰 내내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자기착취에 맞서 땅의 소중함, 몸의 느낌을 강조하는 그를 향해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 역시 마땅히 떠오르는 해법이 없는지 고민을 거듭했다. “저출산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고 독일이나 프랑스를 보면 재정지원으로 어느 정도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는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의 공간이 줄어드는 겁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타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배우게 되는데 성과사회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경청, 사랑할 여유가 없습니다.”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을 둘러싼 우리 사회 내부의 심각한 진통에 대해서도 그는 “자기착취 문화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노동시간이 줄어들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원에서 광장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정원이 곧 광장”이라고 했다. 


“타자들이 모여 상대방에게 신경을 쓰고 경청하는 게 광장입니다. 정원의 꽃들은 저마다 시간을 갖고 소원을 갖고 있어요. 정원사가 꽃들을 경청하지 못하면 시들어 죽습니다. 정원에서는 타자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보호하고 인내해야 해요. 그 점에서 정원은 광장과 통합니다. 정원사의 지혜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정원사가 되고 세계가 정원이 될 때 미래의 세계도, 광장도 완성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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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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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누리

2018.09.28
08: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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