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사유인문학

인문학 공부에 기초가 되는 책, 이 시대에 영감을 주는 책들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강의합니다

루터와의 사사로운 접점에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읽는 내내 루터가 법실증주의의 선구자? 법전과 판례 속 양심이 루터의 고안이라고?’

너무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읽었더니, 눈만 더 아팠습니다.

 

학창시절 배운 세계사 속 ‘95개조 반박문으로만 어렴풋이 남아있던 루터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법실증주의 선구자였고,

루터가 말한 양심은 선량한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신의 성실의 원칙, 선관주의의무, 법관의 양심 등등 우리 법전과 판례에

여전히 살아 숨쉬며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법학공부를 결심하게 된 건,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법서 앞에 누군가 정성들여 써놓은 문구 때문(덕분?)이었습니다.

말 못하는 이의 송사를 위해

 

경험상 성서와 법전은 꽤 비슷했습니다.

 

우선, 매우 안 읽힙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번역이 나쁘다고 하지 말고, 읽고 또 읽어라고 했지만, 그래도 성서와 법전의 번역은 나쁩니다.

성서도, 법전도 일본어 번역본을 들여왔으니까요.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읽고 또 읽어야만 겨우 눈에 들어왔고,

머리를 지나 가슴까지 가 닿는 데는 또 하세월이었습니다.

 

성서나 법전이나 그것을 읽는 사람, 읽을 수 있는 사람, 읽고 해석하는 사람, 그리고 쓰고 말하는 사람, 쓰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됩니다.

 

루터가 성서를 읽고, 성서를 다시 쓰고, 세속법에 성서를 입히면서, 이는 법 혁명으로 이어졌고, 

결국 교회가 갖고 있던 불멸의 신성권력에 금이 발생합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작더미(루터가 <교회법 대전>과 <안젤로의 양심문제에 대한 전집>를 태운 사건) 이전에 

교회는 루터의 책을 태웠습니다. 

 

모 행정부처의 불온도서 23권 선정이 떠올랐습니다. 불만 지르지 않았을 뿐.

 

<미군 범죄와 SOFA>, <대한민국사>, <나쁜 사마리아인들>, <소금꽃나무>

아무것도 모른채 해맑게 제 책장에 꽂혀있는 불온도서를 지그시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도서들은 곧 보란 듯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합니다. 2008년의 일입니다.

 

혁명의 현장, 전복의 공간에서는 대자보와 깃발이 휘날리고, 구호가, 시가, 노래가 넘실댑니다.

   혁명은, 자격인가, 형식인가, 내용인가

   '읽고 쓰는 것'만이 혁명인가, 읽고 쓰는 자만이 혁명을 할 수 있는가, 텍스트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가

   '읽고 쓰는 것'이 읽고 쓰는 것을 읽고 써야만 혁명의 간판을 내걸 수 있는가

  '읽고 쓰는 것'만이 주체이고, 형식이고, 내용인가

    다 불타 버려도 읽고 쓰는 것은 남을 것 같은, 전지전능한 읽고 쓰는 것

    '읽고 쓰는 것' 역시 영원히 계속되는 종반전

   ‘내가 기필코 읽고 쓰고 만다.’는 악만 남는, 그래서 텍스트를 읽고 쓴다는 것은 광기의 행위인가

괜히 반감이 커지기 전에 여기서 그만 수습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계속 읽고 쓰고 싶거든요.

 

독일농민전쟁에 대한 입장에서 드러난 루터의 편향성

그렇다면 루터는 기독교 원리주의자인가

(셋째밤을 읽어버려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안 읽은 척 쓰는 후기입니다.

3강이 있으니까요초조해하는 것은 죄이니까요.)

 

정말 좋아하는 것은 시간이 나서하지 않고, 애써 시간을 내서한다죠.

시간을 내서함께 공부할 수 있어 좋습니다. 

조회 수 :
221
등록일 :
2019.01.13
10:53:26 (*.130.24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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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잎사귀

2019.01.13
12:14:55
(*.94.153.231)

스페인 여성신비주의자들이 사계절 내내 읽고 쓰며 신(혁명)을 기다렸던 시간들이 내는 짙은 향기에 취하네요.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삶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살아가며, 몸으로 체험할 때만 진정 변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번에 잘라라~를 읽으며 제대로 읽지 않아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커집니다.

뭐든 제대로, 깊이 있게 반복해서 행동할 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음식을 만들든, 기도하든, 책을 읽든 제대로, 깊이 있게 한다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미트라

2019.01.14
17:06:47
(*.223.37.118)

<잘라라~>를 읽는 순간순간 생간 무수한 틈을 요요님의 강의를 듣고,  잎사귀님을 비롯하여 함께 공부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메우고 있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내다보니 생기는 틈 역시도 읽고 쓰고 나누며 채워 나가야겠죠? ^^

자누리

2019.01.15
10:20:34
(*.61.156.155)

미트라님 만나서 좋았어요..일년 예약하신 것은 더 좋았구요^^

전 사사키 아타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같이 공부하니 좀 달라지더군요. 공부에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을 반성했어요~

미트라

2019.01.18
08:34:26
(*.223.27.26)

자누리님^^ 지난주에는 짧은 만남이 아쉬웠습니다, 감기는 다 나으셨는지요?? 내일은 좀더 오래 같이 공부해요^^

게으르니

2019.01.16
11:03:08
(*.168.48.151)

두번째 시간에서 만난 루터를 둘러싼 여러분의 생각은 또 다른 질문을 남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후기는 여러분의 질문을 기록하는 것으로^^


ㄱ: 첫 시간에 읽었던 글이 기존의 읽기에 대해 균열을 낸 지점이 있었다면,

두번 째 시간에 루터를 읽으면서는 '앎이 주는 안락' 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혁명적 읽기로서의 루터를 알아가는 안온함을 어떻게 봐야 할까?


ㄴ: 읽기의 혁명성을 이야기하면서 루터에까지 이른 사사키 아타루의 글쓰기가

농민전쟁에 임하는 루터의 태도에서는 슬쩍 눈감아 에둘러 간다는 느낌? 

사사키 아타루 왜 그랬을까?


ㄷ: 사사키 아타루가 쓴 글을 읽으며 루터가 취한 농민전쟁에서의 입장에서 루쉰이 떠올랐다.

스스로는 혁명을 관통하면서도 제자들이 혁명의 현장으로 뛰쳐나가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를, 또 생각해 보기를 권하던 스승 루쉰.


ㄹ: 사사키 아타루가 농민전쟁에 관한 부분을 그렇게 다룬 것은 혁명에 대한 다른 관점이 필요해서 아니었을까?

폭력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관철한 것으로 읽히지는 않는데?


ㅁ: 이 책은 폭력을 2차적인 문제로 보는 것 같은데.

우리가 혁명이라고 떠올릴 때의 표상 "혁명의 과정에서 폭력에 의해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선행하는 것"을

질문하게 하게 하는 징검다리로서의 폭력, 그런 면에서 혁명에서 폭력은 2차적인 것이라는 사사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루터의 대혁명


ㅂ: 루터는 '혁명가'는 아니었던 듯, '오직 성서,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을 주창한 그의 사유로 짐작건대

루터는 근거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다른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아니었을까?

읽는 사람을 해석자적 주체로 만들어버린 것?


사족: 이번에 다시 사사키 아타루를 읽으면서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사상의 힘을 모욕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이네는 피히테나 셸링의 낭만주의적 관념이 언젠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112)


이 문장의 맥락에 의하면 내가 아는 낭만주의가 이 낭만주의가 아닌 것은 분명!

낭만주의가 뭐지? 내가 아는 낭만주의가 있나? ㅋㅋ 있다~

"넌 너무 낭만적이야!" 뭐? 이 낭만이 그 낭만이 아니잖아! ㅋㅋ

하이네가 말한 저 낭만주의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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