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사유인문학

인문학 공부에 기초가 되는 책, 이 시대에 영감을 주는 책들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강의합니다




아동의 탄생 (4강) 

근대가족 그 아름다운 블랙홀 



가족, 가족, 가족이 무엇이기에  가족 블랙홀에 빠져 문탁선생님 강의를 세번이나 빠지고 마지막 강의에 겨우 참석했습니다. 문탁선생님이 간단히 3부까지 강의를 요약해주셔서 그래도 흐름을 잡을 수 있었는데요. 


14.15세기를 경과하며 아동에 대한 새로운 감성이 출현하고, 아동에 대한 새로운 감성은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의식(가족의식)의 한 측면이 됩니다. 학교제도는 이러한 아동에 대한 특정 감정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규율체제이고요. 그리고  '모더니티는 흔히 이야기하듯 '근대적 개인'의 출현이라 말할 수 없고, 승리한 것은 개인이 아닌 근대가족이라는 점입니다. 


간단한 도식으로 중세와 근대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중세까지만 해도 성聖과 속俗이 분리되어 있었고 학교는 그 중간에 성직자양성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앙시앙레짐기를 거쳐 성의 세속화가 이루어지면서. 종교생활이 가족 내(식사기도)로 끌여들여지고, 직업소명론이 대두됩니다. 


17.18세기로 들어서면, 공(public)과 사(private) 영역 분리가 생기는데요. 공적인 '회사 일'과 사적인 '가족', 그 사이에 '학교'가 위치합니다. 회사/가족/학교로 나누어지는 분리는 지금까지 가까스로 근대 사회를 유지하는 장치이긴 하지만 모두 붕괴 위기에 쳐해 있지요. 




1. 

4부에선 도상분석을 통해 가족의식이 어떻게 등장하고 확대되었는지 먼저 보여줍니다. 14세기의 그림에서 보여진 세속적 도상엔 직업이 주제였습니다. 15세기엔 거리가 등장합니다. 이 시대에 거리란, 사생활의 연장이었고 일과 사회관계까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다 16세기에 들어서며 도상에 여성과 아이가 등장합니다. 실내장면, 즉 방에서 일어나는 대화 모습, 부인들이 일하는 식당, 부엌도 나타납니다. 가족초상화도 등장합니다. '나'는 늘 가족 속에서의 나가 되고, 사람들은 가족의 현재 상태를 붙잡아두고 죽은 사람들을 회고하기 위해 초상화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 접어들면 인생의 여러시기를 묘사하는 달력의 형식은 남아있지만 내용이 모두 가정생활에 대한 삽화로 채워지게 됩니다. 또한 "천상의 법에 복종하고 신과 가족과 왕을 섬기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은 행복하리리"라는 당시에 매우 낯선 관념도 등장하는데요. 다시 말해 부르주아 계급이 출현한 겁니다. 




2. 사회사가, 법제 사가의 기본입장은 혈연관계는 가족과 가계(가문)으로 구성된다는 건데, 이 둘은 대립한다고 합니다. 세습재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가된 '가족'을 원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라는데요. 실제론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고 합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개인에게 국가의 권위가 약화되면 가족이 강해지고, 정치기구가 개인에게 충분한 보장을 하면  가족적 속박은 느슨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하게 볼 점은, 가계의 유대가 약화되어가면 아내의 지위가 약화되어간다는 거고, 아내와 자식들이 부권에 철저히 종속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사회의 세포, 국가의 기반, 군주권의 토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학교, 여자는 집에, 남자는 회사에 감금되는 거죠. 



3. 세속적 태도(이윤추구, 결혼) 를 무시하는 중세에 결혼이란 단지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의 세속화가 이루어지면서 가족의 지위도 재평가받게 됩니다. 세례식은 갖고의 종교의식이 되고, 축제도 어르들이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조직된다. 즉, 집단적 대축제가 아니라 '가족적 축제, 아이들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16세기 예법서에선 가족의 가장 작은 아이가 기도를 하는 것이 예법이 되어갔고요. 중세말에서부터 가족은 새로운 감정의 영역이 되는데, 특이한 점은 강한 가족의식은 부모와 자식 중심인 핵가족이고, 가족 초상화에서도 두세대 이상을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독특한 결합만이 표현됩니다. (한국에서도 1920년대 신문에서 명사들의 인터뷰와 함께 가족사진을 보여주는데 조부모가 함께 있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4. 16-17세기엔 양육방식도 변화합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들은 유아기가 지나면 친척이나 다른 사람 집에 보내졌습니다. 아이들은 견습생이기도 하고 시종 혹은 기숙생이기도 했습니다. 가르송(garcon)이라는 말이 아이, 하인, 견습생, 종업원을 모두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위탁양육 = 가내봉사 = 견습수업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직업생활을 한다는 건 사생활을 함께 한다는 의미였고 주인은 다른 사람 아이에게 지식, 실무, 인성 교육을 모두 해줬습니다. 이 시대에 학교는 없었습니다. 학교란 성직자 양성기관에 한정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점차 학교교육이 확대됩니다. 위탁양육 관습보다 학교에 들어가고, 가까이서 부모가 아이를 돌보면서 감시(관찰,돌봄,배려)하는 경향이 늘어나게 되는 거죠. 부모는 이제 자녀를 위해 돈과 필수품을 보내주고 잠자리에 들기전 복습도 시킵니다. 점점 현대 부모 역할에 익숙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전히 대귀족이라거나 기술장인층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학교에 보내는 계층은 부상하는 부르주아계급이지요. 이들에겐 학교에서  교양획득->신분상승이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최종적으론 학교가 승리합니다. 



5. 가족의식은 주거공간 변화와 아주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요. 심성(습속)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가족사이가 돈독해진다고 해도 '닫혀진 방을 통한 내밀성'이 보장되지 않았을 땐 전통적인 사회성이 폭넓게 존재했습니다. 거리에서 여전히 많은 생활이 이루어지고, 개인의 삶은 공개되었죠. 17세까지만 해도 각 방은 사생활을 전혀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방에서 방으로 계속 이어지는 구조였으니까요.  특히 대저택은 공적공간으로 기능했는데 방들은 다목적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먹고 자고 춤추고 일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용도였습니다. 방문을 걸어잠근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들어서며 방이 분화됩니다. 부부 침실이 독립하고 예고없이 방문하는 관행이 후퇴하고 방문전용 공간인 응접실이란 게 생깁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랑도 생겨납니다. 아이에게 애칭을 쓰고, 아이의 건강과 교육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가족은 세상,사회와 단절된 부모 아이들의 고립된 집단으로 변모해갔습니다. 




6. 승리한 것은 가족주의! 


흔히 근대는 신분이나 가문 등의 구속에 대한 개인의 해방과 개인주의의 승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부부의 에너지 전체가 가족에게 쏠려 있고 자손 출제로 향해 있는 근대적 생활 어디에 개인주의가 있는지 이 책은 묻습니다. 가족은 사회성을 희생시켜가며 강화되었습니다. 사생활의 내밀함은 이웃,친척,명성과 같은 전통적 관계를 희생시키며 강화되어 갔습니다. 최종적으로 근대는 개인이 아닌 가족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 토론 시간이 부족해 문탁샘의 문제제기와 질의응답정도로 간단히 마무리되었습니다. 


문탁선생님은 우리가 과연, 가족, 회사, 학교, 이 각자를 그대로 둔 채 근대/모더니티를 넘어설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회사, 학교, 가족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데, (그 핵심에 가족이 있겠지요)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반동적이라고요.  


문탁공동체는 일,정서, 앎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런데 가족공동체도, 회사도 아닌 공부공동체를 만들며, 번번히 '가족'에 의해 많은 회원들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하는데요. 저만해도 아직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문탁에 나오기 어려웠지요. 


문탁에서 첫번째 축제 주제가 '가족을 넘어 마을로' 였습니다. 문탁 주요 회원들은 '주부들'인데, '가족 안에 감금'되어왔던 주부들이 가족 바깥으로 나온다는 건 공고하던 가족주의에 위협이 되는 사건이 되는거죠.(대체 엄마가 애 안 보고, 밥 안 하고 어디가는 거야? ) 7년전 '가족을 넘어 마을로'라는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점차, 가족들, 특히 자식들을 데리고 문탁을 오고가게 되고 그렇다보니 문탁에 다양한 세대가 오고가게 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10대들을 위한 활동을 또 구성하게 되면서 파지스쿨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연령화'로 나뉘어지면서 10대와 2,30대 혹은 4.50대까지 '우정'의 관계로 어울리지 못한 채 여전히 10대를, 아동 혹은 청소년으로, 다른 연령은 선생 아니면 부모처럼 관계가 또 만들어지는 문제점은 여전하다고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근대는 '개인'이 아닌 '가족'의 승리다라는 아리에스의 결론이 와닿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 하나를 '상전'모시듯이 돌보고, 아이가 하는 행동 정서 모든 것은 '엄마 탓'이라고 하는 육아서들을 읽으면서 자책하고, 남편은 돈버는 기계, 저는 독박육아로, 아슬아슬한 핵가족 체제로 살고 있는 저에겐 <아동의 탄생>이, 살아가는 모습을 해석해주는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남편. 아이. 나 3인 가족으로 이루어 몇 년 살면서도 '홈스위트홈'이 얼마나 허상인지도 절절히 깨달았지요. 많은 사회적 관계가 끊기고 오로지 '가족'만 남았지만, 그 가족마저도 위태위태하게 유지되고 있죠. 


또 한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고민'을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도 그랬지만, 서구에서도 유아기가 지난 자식을 '남의 집/친척 집에 보내는 관습-위탁양육'이 있었다는게 매우 솔깃(?)했어요. 1.2년 아니고 막 10년씩. 근대 학교가 생기기 이전엔 그렇게 해야 뭐라도 배우게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홈스쿨링- 부모가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침'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미 검증된 거라는 것..역시 엄마표는 못할 짓이다, 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고요. ^^  또, 부모가 자식에게 (스스로 먹고 놀고 입고,가 가능한 이후에도) 지속적 관심과 사랑(다른 말로 감시)을 주어야만 멀쩡하게 잘 큰다는 관점 역시 '만들어진 근대의 양육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에 한발짝 무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가족'만 남아버린 인간관계. 그리고 '가족'부모-자식 관계가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발생하는게 아닐까요.  




비록 4강 밖에 못 들었지만, <아동의 탄생>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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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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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자누리

2017.11.09
21:20:22
(*.238.37.229)

와우! 짝짝짝~~ 정리를 아주 공들여서 했네요. 정리에 도움이 크게 되겠어요^^

아리에스가 근대에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승리했다는 결론에 대해 생각거리가 많네요.


근대의 가족주의는 어찌보면 그리스의 가족/시민의 분리와 유사해보이는데 동양문명의 가족주의와는 차이가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 모든 가족주의가 동일하지는 않을 것같고..

이 차이를 안다는 것은 근대의 가족주의, 또는 가족주의와 공동체의 관계를 더 세밀하게 인식한다는 것이겠지요.


연령에 따른 질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의문이 드는데 농촌공동체들의 경우 시간의 질서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잖아요.

이것과 근대의 연령에 따른 분화가 어떻게 다른지도 더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것은 문탁 공동체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때문이지요.

근대 학교에서 연령으로 학년을 구분한 것은 공동체가 아닌 곳에서 억지로 위계질서를 만들면서

그 방식은 손쉬운=자연스러운 방식을 도입한 거라고 생각되요.


그런데 문탁은 공동체라고 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연령에 따른 질서도 일정부분 필요할 것 같아요.

물론 지성의 평등에 따라 만들어지는 질서가 더 중심이 될 수도 있을테지요.

그러니 가족주의를 넘자면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구성해야할텐데 그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네요...


질문만 한가득 생겼네요

아렘

2017.11.09
22:14:45
(*.34.172.2)

문제의 그 가족으로 인해 함께 배울 기회를 놓친 1인입니다만 이렇게 잘 정리된 후기로 위안을 삼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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