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공부의 기본은 읽고 쓰기입니다. 인문프로그램은 치밀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는 공부의 기본기를 익힙니다. 또한 글을 읽는 것은 삶을 읽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은 삶을 쓰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알아보는 시간이었지요? 수업 내용 위주로 정리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일 수 있으니 한 번 더 들 읽어보기 바랍니다.




 1, 선지자 마호메트와 그의 후계자들

 선지자 마호메트(무하마드)는 본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여 유복한 상인으로 살고 있었으나 마흔 살 즈음 메카 북쪽의 바위굴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신(알라)는 기독교의 유일신과 같은 존재로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예언자로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이며 삼위일체로서 신과 동일한 존재로 여기는데 반해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신의 예언자인건 분명하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박습니다. 
 
 어쨌건 마호메트는 예수를 잇는 최후의 예언자로서 종교지도자이자 군사지도자로서 이슬람을 전도하고 세력을 일으켜 중동의 도시 메카를 점령합니다. 이후 그는 검소한 삶을 살며 조용히 생을 마감하였고 이슬람 세력은 그의 사후 급격히 팽창해 이후 중동 지역 전반을 장악합니다. 마호메트의 후계자들은 최고위의 종교지도자이자 세속 군주로서 군림하면서 ‘칼리프’(칼리파)라 불리게 됩니다. 
 
 이들 칼리프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대까지 이어졌는데, 오스만 시대에는 세속군주 ‘술탄’이 칼리프를 겸하는 형태로 유지되다가 오스만 멸망 이후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일부 극단주의 세력들만이 자신들의 칼리프를 주장하며, 이슬람 세계 전부가 인정하는 칼리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코란과 하디스, 그리고 샤리아

  한편, 마호메트 사후 그의 제자들은 마호메트가 가르친 이슬람의 계율을 정리하여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만들게 됩니다. 즉 코란은 기독교의 성경과 비슷한 위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코란과는 별개로 마호메트의 행적과 일화 등을 기록한 책인 ‘하디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문답집으로 코란의 해석을 돕는 참고자료로 쓰이는데, 워낙에 판본이 많은 탓에 위작의 논란도 많습니다. 또 이슬람 군주들이 무슬림들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종교법인 ‘샤리아’가 있습니다. 

  샤리아는 코란과 하디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단순히 종교적인 예식이나 의례 뿐 아니라 결혼, 형벌, 상속, 신분제 등 이슬람 사회와 생활 전반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엄청나게 방대하기에 해석도 천차만별이며 교파, 국가, 지역에 따라 샤리아를 어디까지 적용하는가도 제각기 다릅니다. 터키, 튀니지, 레바논 등은 샤리아를 국가 법률에 반영하지 않고 있지만 이란, 이라크, 사우디, 카타르 등은 샤리아가 사실상 국법의 지위를 갖습니다. 

  오늘날 ‘이슬람의 구시대적 폐습’의 대표처럼 여겨지는 가혹한 형벌 및 각종 남녀차별적 조항 등은 대개 코란이 아닌 샤리아에서 나옵니다. 이 때문에 이슬람 내부에서도 샤리아를 현대 인권 개념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개혁파와 그럴 수 없는 반대파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또 적잖은 이슬람 국가들이 샤리아를 국법처럼 적용하더라도 그 해석을 보다 현대에 맞게 하려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가운데 보수적인 샤리아를 유지하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심지어 유럽의 이슬람 난민 중에서도 특히 극단주의적인 이들은 유럽 국가들의 법률에 샤리아의 내용을 반영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일종의 ‘샤리아 경찰’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문화와 서구 문화가 일으키는 충돌들 대부분은 이 샤리아에 기인하는 것들입니다.





  3. 수니파-시아파, 그리고 아랍-중동-이슬람의 구분

   이제 본격적으로 이슬람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구분, 그리고 ‘아랍’, ‘중동’, ‘이슬람’의 구분입니다. 
 
  ‘수니파’는 전체 무슬림의 80%에서 90%를 차지하는 절대 다수의 교파입니다. 이들은 마호메트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이슬람 공동체가 선출한 지도자라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모든 교리를 하디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시리아, 이집트 등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수니파이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도 대부분 수니파입니다.
  
  한편 ‘시아파’는 오직 마호메트의 후손만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소수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칼리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대신 자신들의 지도자를 ‘이맘’이라 부릅니다. 이란을 필두로 한 레바논, 바레인 등 이란 주변의 극히 일부 극가들이 시아파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 중 수니파가 많고, 그 필두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극히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데 반해 시아파의 필두인 이란은 사우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서방국가들로부터 ‘적어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는 평가를 받기에 수니파가 시아파보다 극단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들 세력은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순히 그리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아랍, 중동, 이슬람의 구분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민족’, 즉 민족 개념입니다. 중동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지리적인 개념입니다. 이슬람은 이슬람교를 말하니 당연히 종교적인 개념입니다. 이슬람을 믿지만 아랍 민족이 아닌 국가가 존재하며(이란은 페르시아 민족을 자칭하며 아랍 민족과 견원지간입니다), 중동에 있지만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국가가 있고(이스라엘), 이슬람교를 믿지만 아랍 민족도 아니고 중동 지역도 아닌 이들도 당연히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인도의 무슬림들, 브루나이 등 동남아의 무슬림들)이 세 가지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4. 이슬람 제국과 근대의 이슬람 국가들 - 이란, 터키, 그 외 아랍국가들의 ‘연맹’

   - 이슬람 제국
   
  이제 이슬람의 역사와 주요한 이슬람 국가들, 그리고 중요 인물들을 알아봅시다. 이슬람 세력이 중동 지역을 장악한 이래 이들은 분열되어 있을 때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이슬람 제국은 왕조가 바뀌면서도 계속해서 존속하면서 힘을 떨쳤으며 특히 유럽에 있어 가장 강대한 적이었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에서도 유렵은 결국 예루살렘을 빼앗지 못했고, 샤를마뉴 대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의 북진을 저지한 위업으로 오늘날까지 유럽 전체의 대영웅으로 남았습니다. (샤를마뉴 대제가 아니었다면 유럽은 진작 이슬람 문화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다 유럽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또한 결국 이슬람 제국의 손에 떨어지지요. 또한 이슬람 제국은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인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중간자리에 위치하면서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여 단순히 군사력 뿐 아니라 철학, 수학, 과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중세 유럽을 훨씬 웃도는 성과를 이룩해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 이슬람 제국의 마지막 계보를 차지하는 대제국이었습니다. 15세기 즈음의 전성기에는 인류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유럽을 위협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럽이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오스만투르크 제국 특유의 관료제 시스템은 낡고 부패하여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듭니다. 이에 더해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불러일으킨 민족주의의 바람이 중동에 퍼져나가며 오스만 제국 치하의 여러 민족들이 제각기 반란의 움직임을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세계 1차대전에서 독일 등의 편을 들었다가 패배함으로써 나락으로 빠져듭니다. 이집트가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에서 빠져나왔고, 이어 그리스가 독립전쟁을 일으킵니다. 특히 그리스 독립군은 오스만 제국을 그야말로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는데, 이때 오스만의 영웅 ‘케말 파샤(케말 아타튀르크)’가 간신히 그리스군을 물리치고 아나톨리아 반도의 일부 영토를 지켜내니, 이 나라가 바로 터키입니다. 

  - 터키와 케말 파샤
 
  케말 파샤는 이후 터키의 지도자로서 서구식 근대화와 민족주의를 터키에 도입합니다. 그의 영향으로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되 종교를 철저하게 종교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드문 국가가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터키는 ‘세속주의 이슬람국가’라는, 가장 서구적인 사회 체제를 가진 매우 특이한 이슬람 국가로 자리 잡습니다. 한편 이런 일들을 해낸 케말 파샤는 터키라는 나라의 아버지로써 과거부터 지금까지 터키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습니다. 
 
  허나 케말 파샤에게도 과오는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터키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터키 내 소수민족들의 학살을 방관하였다는 혐의입니다. 또 하나는 그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터키 군부가 이슬람을 철저하게 정치에서 떼어놓으려 하다가 한국의 군사 독재 시절에 맞먹는 매우 폭압적이고 강제적인 일들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 반동으로 오늘날 터키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집권하게 되어, 이슬람 국가들 중 유일하게 세속주의 국가라는 평을 듣던 터키의 정체성도 위험에 처한 상태입니다.

 - 이란과 호메이니
 
  한편 이란은 고대의 대제국인 페르시아의 후손들로, 스스로를 아랍 민족과 별개인 페르시아 민족으로 여기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 1차 대전의 혼란을 틈타 레자 칸이라 불리는 인물이 팔라비 왕조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이란의 근대사가 시작됩니다. 레자 칸, 즉 팔라비 1세는 대대적인 서구식 근대화를 통해 개혁을 꾀했고 특히 여성 인권을 눈부시게 향상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 2차 대전 도중 열강들의 대립 사이에 끼어 망명했고, 대신 모사데크 총리가 실권을 쥐었습니다. 모사데크는 석유의 국유화 및 소련과의 연계를 꾀했는데 이것이 미국에게 위험으로 받아들여져 미국의 공작에 의해 축출되고, 대신 친미적인 성향을 지닌 팔라비 2세가 집권해 미국의 지원 하에 개발 독재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친미적인 정책과 독재 정치 때문에 이란인들은 결국 혁명을 일으켜 팔라비 2세를 몰아내니, 그 혁명의 필두에 있던 것이 아야톨라 호메이니였습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로서 가장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이슬람 교리에 입각해 이란 전체를 뜯어고치기 시작합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던 이란의 여성인권은 바닥까지 추락했고 이미 근대화 질서에 익숙해진 수많은 이란인들이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서구적 자유와 개방된 문화를 누리던 이란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호메이니 사후 이란은 다시 조금씩 문화적 개방을 꾀하고 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한 젊은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우리가 본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입니다!)
  
 - 아랍과 나세르
 
  압델 나세르는 이집트의 군인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1952년 쿠데타로 왕조를 몰아내고 이집트 대통령에 오른 이후 아랍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아랍 세계의 통합과 산업화를 주장했으니 이것이 바로 ‘나세르주의’입니다. 그는 수구 세력을 숙청하되 잔혹하게 하지 않았고, 신분 개혁을 통해 귀족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재산 일부를 압류해 국민들에게 분배했으며, 그 외에도 토지 개혁 등 이집트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또 아랍의 여러 국가들과 발칸 반도의 국가들, 그 외 동유럽 국가들, 인도 등 이른바 제 3세계 국가들과 활발하게 연계하면서 대표적인 제 3세계 지도자로 부상하였고 아랍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랍의 여러 국가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벌인 ‘중동 전쟁’에서 몇 차례나 패배하면서 나세르는 그 책임을 져야만 했고 이집트의 경제사정도 점차 악화되어 그도 점차 지지를 잃고 말았습니다. 
 
  나세르의 실패는 단지 그 개인의 실패, 혹은 이집트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나세르가 앞세운 나세르주의, 즉 아랍 민족의 단결과 근대화의 기치가 패배한 것이었습니다. 나세르주의 아래 아랍 민족은 근대화와 자주적인 발전의 꿈을 꾸었지만, 나세르가 이끈 아랍 5개국 연합이 이스라엘 한 나라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아랍 민족 전체에게 거대한 좌절로 다가왔습니다. 더하여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아랍의 증오도 깊어졌습니다. 아랍 세계는 미국과 서방세계가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자신들을 농락하는 한 자신들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평화와 발전을 이룩할 수 없으리라 믿게 되었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을 모델로 삼아 이슬람 극단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행동 노선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5.  오리엔탈리즘, 문명의 충돌, 그리고 9.11

 이후 서구세계, 특히 미국은 지속적으로 중동 이슬람 세계를 자신들의 통제 하에 넣으려 했습니다. 당연히 그 문제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문제 혹은 석유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온갖 공작을 펼쳐 자기들 멋대로 독재자를 세우거나 폐위시키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중동 이슬람 세계는 점점 더 이슬람 극단주의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오리엔탈리즘>과 <문명의 충돌>은 서구세계가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권의 책입니다. 먼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세계가 중동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신비하고, 비이성적이고, 전근대적이며, 종교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를요. 그리고 동시에 자신들, 서구 세계는 그런 중동 세계는 이미지의 정반대의 이미지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근대적이며, 합리적인 서구 세계. 특정한 ‘타자’의 이미지를 상상한 뒤 그 정반대의 이미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이 메커니즘이 바로 그 유명한 ‘오리엔탈리즘’입니다.  한편 <문명의 충돌>은 이제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 세계가 멸망했으니, 미국을 필두로 한 기독교-자본주의 세계의 적수로 이슬람 문명이 부상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반신반의로 받아들여졌으나, 2001년 저 유명한 911 테러 이후로는 급격히 주목을 받게 되지요.
 
  그리하여 오늘날, 서구세계는 ‘이슬람’이라는 위협적인 타자를 마주합니다. 위에 몇 번이나 설명했듯 중동, 이슬람, 아랍은 서로 다른 개념이며, 이슬람 국가들이라고 통칭되는 국가들 사이에도 민족 구성, 종파, 샤리아의 수용 여부, 샤리아의 해석 방향 등에서 일일이 말하기 힘든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세계는 그 모든 것을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타자로 묶고, 가장 비이성적이면서 시대착오적이고 야만적인 적의 이미지로 그들을 상상합니다. 또 이슬람 세계는 이슬람 세계대로, 혼란한 근대사 속에서 여러 좌절을 거듭한 뒤 남은 답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다수의 무슬림들이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지만 극단주의의 기치로 넘어가는 이들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문명의 충돌은 점점 더 현실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비록 동아시아에 위치하지만, 이미 오래 전 근대화를 끝마쳤고 서구적 질서와 세계관을 우리 안에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슬람은 어떤 타자로 비춰지고 있나요? 이제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잘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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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2
22:30:37 (*.77.2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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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초희

2018.08.03
00:05:33
(*.136.232.184)

우와

수아

2018.08.04
17:11:07
(*.168.48.172)

우와 밖에 말할 수 없어..


우와

새은

2018.08.07
00:10:06
(*.238.37.229)

거의 뭐 사람 나무위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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