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공부의 기본은 읽고 쓰기입니다. 인문프로그램은 치밀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는 공부의 기본기를 익힙니다. 또한 글을 읽는 것은 삶을 읽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은 삶을 쓰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파지스쿨 인문수업 <철학하기 시즌 2 : 세상과 마주하기>가 끝났습니다. 수아, 새은, 초희, 단하 모두 수고했습니다! (진달래 선생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재현, 지영, 대로도 마지막까지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다들 연이란 게 있는 것이니까요.

 

  이번 시즌의 주제는 세상과 마주하기, 보다 정확히는 다양한 타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나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은 사람들. 나와는 다른 문화를 향유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그는 백과사전이나 교과서적인 정보를 통해 그들을 접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내가 본디 갖고 있던 가치관과 신념을 밀어붙이는 것과도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체르노빌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페미니즘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이슬람 문화의 기본 요소들은 무엇인가.

  그 다음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이어갑니다. 체르노빌에서 죽어간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그 광경을 지켜봤던 군인들과 과학자들……가부장제 질서 속에 고통 받았던 어머니와 딸들, 쌍방의 위험에 노출된 성노동자들……무슬림이자 프랑스인인 작가와, 제주에 머무르는 예멘 난민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들과 우리가 놓인 세상을 인식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듣기로 어떤 친구들은 이 수업이 매우 쉬웠다고 했고, 어떤 친구들은 매우 어려웠다고 했다 합니다.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애초에 수업 자체를 구상했을 때부터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첫 번째 단계는 단순히 정보를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쉽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어렵지만, 일단 그들과 나 사이에 어떠한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좀 더 쉬워집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마지막입니다. 오직 나의 가치관과 믿음에 입각해 당위를 주장하는 것, 그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제로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순 없습니다.

 

  저는 이 수업에서 여러분이 일부러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체르노빌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각자의 삶에서 전기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물었고, 페미니즘에서는 여성들의 문제에 집중하려는 페미니스트들과 다양한 소수성을 포괄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에 동의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수업에서는 편견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난민들과 함께 가장 극단적이고 보수적인 율법을 고수하는 근본주의자들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그 때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옳다 말하려다가도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어지고, 때로는 도저히 모르겠다면서 손을 놓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떤 정답을 제시해주진 않았습니다. 그 까닭을 말하자면, 우선 저에게도 정답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이 현실 속에 타자들의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업에서 제가 가장 많이 한 말은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이들에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이 명쾌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드물며 문제는 항상 수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뒤엉킨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그것을 대단히 간단하고 명쾌한 것으로 설명하면서 당위를 주장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어려움 앞에 무력감을 느끼며 포기해야 하는가.

 

  예.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그러기도 합니다. 신념을 가지고 세상의 문제에 뛰어들었다가 자신이 알지 못한 일면을 보고서 회의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그런 부분을 싹 외면하고 스스로의 신념에 경도되거나, 아예 완전히 입장을 뒤집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그와 같이 되길 바라진 않았습니다. 이 수업에서 제가 여러분이 찾길 바란 것,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타자들을 이해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문제를 이렇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그들과 (나에게 동의하는 이들과 동의하지 않는 이들 모두) 대화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갖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는 어떤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의 막바지에 제가 하워드 진의 에세이를 여러분과 함께 읽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왜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타인을 마주해야 하는가를 가장 알기 쉬운 언어로 말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저의 역량과 수업을 준비하는 태도에 부족했던 점이 많았기 때문에 제가 말하려 했던 바가 얼마나 여러분에게 전해졌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인지라 이 수업이 얼마나 오랫동안 여러분의 기억에 남을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나 우리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지식들을 얻었는가는 잊을지라도,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우리가 어떤 질문들에 대하여 답해야 하는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찾아야 한다는 그 사실만은 기억해준다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며, 다음 시즌 인문 수업도 이번 시즌처럼 성과 열을 다해 해나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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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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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새은

2018.10.01
00:24:05
(*.238.37.229)

수고많았으요~!msn03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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