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영화는 서사가 아닙니다. 영화는 재현도 아닙니다. 영화는 운동과 시간의 관계를 이미지로 보여주며 우리의 습관적인 인식체계를 흔들어놓는 사유기계입니다. 들뢰즈의 영화론은 “영화에 관한 사색인 이상으로 세계로서의 영화에 관한 것이며, 영화에 개입해서 어떤 면에서는 영화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 세계에 관한 사색”(우노 구니이치)입니다. 지금 우리는 헐리웃과 cgv에 완벽하게 포획되어 있습니다. 그들, 거대 미디어 산업은 우리가 봐야 할 영화를 지정하고, 우리가 느껴야 할 감성을 명령합니다. 하여, 이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나보고자 합니다. 영화를 사유한다는 것, 익숙한 사유와 습속을 뒤흔드는 시간 이미지를 통해 삶의 원점에서 다시 질문한다는 것! 가능할까요? 여기 변방, 동네의 작은 배급사 [필름이다 Film Ida]에서 그 실험을 시작합니다.

동네영화 배급사 [필름이다] 6월 기획전 '영화, 독립의 조건' 두 번째 영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버지 없는 삶'  후기




글 : 청량리


 

1. 아버지의 아버지를 찾아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결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곰돌이와 같이 일본 오사카에 간 적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일본에 있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의 아버지를 만나고 오라는 것이었다. 대구에서 사과농사를 하셨던 증조할아버지는 장사 수완이 좋아서 그 지역에서 소위 잘 나가는 유지였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아들인 나의 할아버지는 어찌어찌해서 일본에 가게 되었고, 해방이 되어서도 돌아오질 못 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나의 아버지는 88올림픽 때 잠깐 건너온 당신의 아버지를 그 뒤로 보질 못 했다. 나도 사진으로만 할아버지를 본 게 전부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만나고 오라는, 그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오하라 겐지죠, 나의 할아버지의 일본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받은, 할아버지의 일본 거주지로 추측되는 주소 한 장과 할아버지의 사진만 들고 나와 곰돌이는 오사카로 떠났다. 김포에서 오사카로, 다시 기차를 타고 물어물어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찾아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 쯤 되는 곳에 찾아가서 오하라 겐지죠가 살고 있는 주소에 그가 실제로 거주하는지 여부를 물었다.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증명하는 족보(?)를 보여주고 어설픈 일본어와 손짓으로 담당 공무원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할아버지의 신상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라 말해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헌데 그건 그가 거기에 살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아니었다. 다소 허무하게 동사무소를 나왔지만, 얼마 동안 동사무소를 떠나지 못 했다. 이 동네 근처에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에, 분위기라도 눈에 담아서 아버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02.JPG

<영화 속 하나의 길인 요코의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원제:대나무 숲 저 멀리서)' 표지>  



2. 아버지를 찾아서

     이 영화에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요코와 마사코, 그리고 감독인 김응수의 길이다. 그 중에서 마사코만 화면에 등장한다. 참 독특한 영화다. 영상으로 쓴 에세이 한 편, 그러나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했던, 그래서 영상을 보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에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는 필히 두 번 이상은 보게 만든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아버지와 결별하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베테랑 이방인으로 살아가는마사코의 유년 시절 사진이다. 일본인이 담았다고 하는 사진 속의 어린 마사코는 너무나 밝은 웃음을 짓고 있다. 마사코가 살았던 고토(五島)에는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바람과 지루함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년시절 사진 속의 그녀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베테랑이 된 마사코가 잃어버린 것은, 체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03.JPG

<마사코와 남편, 냉장고에 붙은 사진이 마사코의 아버지. 퀴즈....남편의 성을 기억하시나요?>


     요코와 마사코가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영화다.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나레이션만으로도 감독의 존재는 충분히 드러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감독이 자신의 나레이션을 자세히 들려줄 의도가 없는 듯이 다소 빠르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영상은 마치 요코의, 마사코의 심리를 표현하듯 화면 속의 움직임을 천천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를 자세히 감상하기 위해 정지와 재생버튼을 오가는 것은 감독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어떤 것은 천천히 가야 빨리 닿을 수 있고”, 어떤 것은 안개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나 감독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아버지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가 상징하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는 분명한 듯하다


04.JPG

<마사코의 고향 고토섬....> 



3. 아버지가 없는 삶

     영화 속 아버지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요코의 아버지는 일본 군부의 생체실험의 주도자인 혐의가 짙고, 김응수 감독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박정희를 떠올린다. 마사코의 아버지는 결혼을 앞둔 딸에 대해 마음을 십 수년 전 이미 닫아버렸다. 나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일제 해방 후 아버지는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아왔었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제대로 물어본 적이 아직은 없다. 그의 아버지의 부재는 나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언제서부터 아버지와 집에서 TV조선만 보게 되는 상황에서 그는 영화 속의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더 이상 아버지가 도전이나 반항의 대상이 아니게 되어버린 지금, 이제는 나의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없는 삶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나의 아버지가 아닌 당신의 아버지가 없는 삶 역시 그러하진 않았는지. 그러나 나는 이것을 섣불리 국가문제로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보다는 유년시절 마사코의 잃어버린 웃음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다.


06.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필름이다] 2018_02월 상영작 - 로마서 8:37 [2] 필름이다 2018.02.09 157
공지 <10월기획전>여자, 영혜 & 럭키루저 [5] 관리자 2017.11.07 213
공지 <10월기획전>B급이란 무엇인가?-에드우드 [2] 필름이다 2017.10.30 218
공지 <10월기획전> 요선을 소개합니다 [4] 필름이다 2017.10.23 201
공지 [다큐제작-문탁인물열전] 10월의 인물_진달래 [1] 청량리 2017.10.16 151
공지 10월 기획전 - 청년예술 3인3색 [5] 청량리 2017.10.14 285
공지 [다큐제작-문탁인물열전] 10월의 인물_진달래 청량리 2017.08.27 165
공지 8월기획전 - StarWars 데이!! [5] 관리자 2017.07.12 378
공지 특강- 영화, 독립의 조건 [1] 필름이다 2017.06.19 288
공지 [다큐제작-문탁인물열전] 6월의 인물_오~영(Oh~young!!) [6] 청량리 2017.06.10 329
공지 6월기획전 - 영화, 독립의 조건! [2] 관리자 2017.06.02 444
공지 [다큐제작-문탁인물열전] 4월의 인물_뚜버기 [5] 청량리 2017.03.25 510
공지 <2017 4월 기획전> - 神 [7] 청량리 2017.03.14 802
공지 <2017 오프닝 특별전> 문탁 X 문탁 관리자 2017.01.22 559
공지 <연말 기획전> - LOVE 2+3 [3] 관리자 2016.12.08 489
공지 <10월 기획전> - 동물권을 둘러싼 뜨거운 질문 [2] 필름이다 2016.10.09 655
공지 [동물권 영화제]전야 세미나~가 있어요!! [6] 히말라야 2016.09.30 422
공지 [게릴라상영] - 갱스 오브 뉴욕 [5] 필름이다 2016.09.01 564
공지 <8월 기획전> - 히치콕 데이 - CDP냐? CGV냐? [5] 관리자 2016.08.12 550
공지 <6월 기획전> - 화어권영화특집 <혁명과 시간> [7] 필름이다 2016.05.14 700
공지 [특별전] 어린이날 특별애니메이션 - 내 이름은 아닌아 [6] 관리자 2016.04.26 824
공지 [게릴라상영] 싸장이 쏜다 - 아비정전 게릴라 상영 [3] 이다 2016.04.01 538
공지 필름이다(film ida) 설립 안내 및 직원모집 공고 [2] 관리자 2016.03.27 621
공지 <시네마 드 파지>개관 특별전 -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묻다 [2] 필름이다 2016.03.18 780
87 2017, 1987 그리고 2018 [4] file 사장 2018.01.02 174
86 [필름이다] 싸장이 쏜다 -러빙빈센트 [4] file 사장 2017.11.29 162
85 <럭키 루저> 후기 [5] file 청량리 2017.11.12 86
84 <에드 우드> 후기 [7] file 청량리 2017.11.07 98
83 <프란시스 하> 후기 [1] file 동은 2017.11.01 96
82 [필름이다] 스타워즈 데이 후기 [4] file 뚜버기 2017.08.13 179
81 6월 기획전 '영화, 독립의 조건' 후기 [1] file 청량리 2017.06.25 145
» 6월 기획전 두번째 영화 <아버지 없는 삶> 후기 [3] file 청량리 2017.06.21 137
79 <올 리브 올리브>, 몰입하기 힘든 영화 [5] 새털 2017.06.11 229
78 수정공지 -6월 기획전 시작시간 7시입니다 관리자 2017.06.08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