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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어떻게 사랑할래? : 루쉰의 사랑에서 너희들의 사랑을 묻다 글 : 문탁 ​ 루쉰의 스캔들 1906년 6월, 루쉰은 어머니가 정해준 정혼상대와 결혼한다. 루쉰은 스물여섯이었고 일본유학생이었고 센다이의전을 때려치우고 문예운동을 하겠다며 도쿄에서 암중모색 중이었다. 상대는 전족을 했고 읽고 쓸 줄 몰랐던 구식 여성, 스물아홉의 주안(朱安)이라는 인물이었다. 1925년 3월, 루쉰은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답장과 답장이 이어지면서 둘 사이에는 연애감정이 생긴다. 루쉰은 마흔 다섯이었고 대학교수였으며 이미 몇 편의 소설을 히트시킨 바 있는 명망가였다. 상대는 전족을 하지 않은 채로 베이징으로 유학 와있던 신여성, 스물여덟의 쉬광핑(許廣平)이라는 인물이었다. 1927년 10월, 마흔일곱의 루쉰과 서른의 쉬광핑은 함께 상하이에 도착하고,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공개적인 동거를 시작한다. 2년 후 1929년 9월, 둘 사이에서는 아들이 태어난다. 이후 루쉰은 1936년 쉰여섯으로 사망할 때까지 쉬광핑과 산다. 본부인은? 베이징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1947년 독거사 한다. 일흔이었다. 쉬광핑은 루쉰이 죽은 후에도 마우저뚱의 완벽한 후원 하에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 숨진다. 일흔 하나였다. 자, 여기까지가 전기적 팩트이다. 루쉰은 본부인이 있는 상태로 무려 열일곱 살이나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살았고 아이까지 낳았다. 어떤가? 뻔하디뻔한 유부남의 불륜스토리인가? 아니면 시대의 통념과 맞장 뜬 위대한 러브스토리인가? 주안(朱安) 루쉰과 쉬광핑, 아들 하이잉 사태는 간단치 않다. 루쉰의 소년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루쉰은 명문가의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철이 들자마자 거대한 가문의 몰락이라는 현실과 부딪힌다. 할아버지는 과거시험 감독관을 매수하다가 뇌물수수죄로 옥에 갇혔고, 부친으로 인해 출세의 모든 길이 박탈당한 아버지는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쓰러졌다. 가장들의 옥바라지와 병 수발은 결국 집안의 맏며느리와 장손의 몫으로 떨어졌다. 루쉰의 어머니는 전답이든 물품이든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팔아야 했고, 루쉰은 꼬박 4년 동안 거의 매일 전당포와 약방을 출입하였다. 그러니 이웃, 친척들의 냉대와 모욕 속에서 몰락의 고통을 함께 나눈 이 모자(母子) 사이에 특별한 동지적 연대감이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짝짓기를 한 귀뚜라미 한 쌍’, 낡아빠진 오랜 북 가죽으로 만든 ‘패고피환’ 따위의, 루쉰으로는 ‘듣보잡’ 약들을 의사에 지시에 따라 구해다 드렸지만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루쉰은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루쉰에게 고향 사오싱은 친척과 이웃들이 점차 “불량배, 건달, 아편쟁이, 주정뱅이, 기생오라비, 도둑, 거지가 되어”, “서로 억압하고 모욕”하는 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머니! 맏아들만이 유일한 마음의 거처였던 어머니, 그러나 신학문을 배우는 것을 서양귀신에게 영혼을 파는 것쯤으로 이해하고 있던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붙잡지 않았고, 집을 떠나는 열여덟 루쉰에게 말없이 돈 8원을 건넸다고 한다. 애틋한 이별이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일본유학중인 루쉰을 불러들인다. 루쉰이 고향에 도착했을 때 혼례와 관련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루쉰은, 이 혼사를 받아들인다. 루쉰은 가짜변발을 쓰고 바닥이 높은 장화를 신은 채 묵묵히 이 혼사의 모든 절차를 수행했다. 나는 몰락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루쉰은 자신의 결혼과 관련하여 단 한 점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기록의 사나이 루쉰이 자신의 결혼과 관련하여 어떤 기록도 남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까? 때로는 침묵자체가 발화의 기호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결혼에 대한 루쉰의 심경을 루쉰의 작품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 소설 「고독자」. 주인공은 웨이롄수. 그는 고향 S시에서는 외국사람 취급을 받는 해외유학파이다. 어느 날 그를 키워준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문중사람과 할머니의 친정식구들이 모여 장례준비를 하는데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상주인 이 ‘맏손자’가 모든 장례의식을 신식으로 바꾸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롄수가 오면 반드시 흰 상복을 입히고, 무릎을 꿇려서 절을 하게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마침내 롄수가 도착했고 큰 야단법석이 날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동네사람도 모여들었다. 그러나 전의를 다지던 문중사람들에게 롄수의 반응은 뜻밖의 것이었다. 그는 “다 좋습니다”면서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할머니에게 수의를 입히고, 절을 하고, 곡을 하고, 입관을 한다. 사람들은 김이 빠졌다. 그러다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롄수. 사람들이 말렸지만 소용없었고, 말리다 지친 사람들은 그냥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또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친 롄수. 그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깊은 잠을 잔 후, 다음 날 일가친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가재도구를 불살라 할머니 영전에 바치고, 나머지는 할머니 임종을 지킨 하녀에게 나눠주고 고향을 떠난다. 나는 소설 속 롄수를 루쉰으로 바꿔 읽는다 “마치 상처 입은 이리가 깊은 밤 광야에서 울부짖는 것 같았고, 그 슬픔 속에는 분노와 비애가 뒤섞여 있는 듯 했다”(「고독자」, 1925.10.17., 『방황』)는 롄수의 대성통곡 속에서, 혼인날 밤의 루쉰의 통곡소리를 듣는다. 루쉰도 롄수처럼 모든 혼인절차를 관례대로 치른 후, 사흘 째 신방에서 나와 버렸고, 나흘 째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일본유학시절의 루쉰 그렇다면 루쉰같이 민감한 사람이, 그리고 1906년이면 루쉰 생애에서는 드물게 목격되는 ‘파이팅’의 시기인데, 왜 “사랑 없는 비애”, “사랑할 것이 없는 비애”(「수감록 40」, 『열풍』)인 그 결혼을 묵묵히 받아들였을까? 절친 쉬서우창(許壽裳)의 회고에 따르면 언젠가 루쉰은 이 결혼에 대해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어서 잘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단다.(쉬서우창, 「망우 루쉰 인상기 亡友魯迅印象記」, 쑨위, 『루쉰과 저우쭈어린』, 215쪽에서 재인용) 차마 물리칠 수 없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 루쉰이 이 결혼을 받아들인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처럼 시대의 희생자인 또 한명의 여성, 정혼자 주안이 받을 타격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 파혼당한 여성은 주변의 멸시 속에서 살아갈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루쉰의 또 다른 소설 「죽음을 슬퍼하며」에서도 그랬다. 주인공 쥐안성이 쯔쥔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진실을 말했을 때, 쯔쥔은 슬퍼하며 떠나갔고 결국 죽었다. 쥐안성은 후회한다. 쯔쥔이 자신을 떠나면 결국 “아버지-자녀의 채권자-의 추상같은 위엄과 얼음보다 차가운 이웃의 멸시 뿐”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자신의 진실이 그녀를 그곳으로 몰아냈다고. “허위의 무거운 짐을 질 용기가 없었던 나는 무거운 진실의 짐을 그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고. 주인공 쥐안성은 자신이 비겁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슬퍼하며」, 1925.10.21. ,『방황』) 롄수이자 쥐안성이기도 한 루쉰, 눈을 떠보니 “창문이라고는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만든 방”(「자서」, 1922.12.3., 『외침』)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루쉰. 그에게 과연 어떤 선택이 가능했을까? 상대에게 “멸시의 공허”를 씌울 것인지, 자신이 “허위의 공허”를 안고 살아갈 것인지, 어쩌면 이 양자택일 밖에 없지 않았을까? 루쉰은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죽는 쪽을 택한다. 어머니와의 의리, 정혼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청년 루쉰은 그 때 죽었다. 대신 루쉰은 동생 저우쭤런을 구한다. 저우쭤런은 루쉰의 소울메이트, 루쉰의 다른 자아, 루쉰의 청춘. 그 동생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저우쭤런은 하숙집 처녀, 하부토 노부코(羽太信子)와 연애결혼을 한다. 몇 년 후 루쉰은 아래와 같은 글을 쓴다. “노인들은 소년들이 걸어가도록 길을 열어 주고 재촉하고 장려해야 한다. 그들이 가는 도중이 심연이 있으면 자신들의 주검으로 메워야 한다. 소년들은 심연을 메워 준 그들에게 감사하며 스스로 걸어 나가야 한다. 노인들도 자신들이 메운 심연 위를 걸어 멀어져, 멀어져 가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수감록 49」, 1919.2.15, 『열풍』 我可以愛. 나는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오! 1932년 루쉰과 쉬광핑은 자신들 사이에 오고 간 편지 160통 중에 135통을 묶어 출판한다. 루쉰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던 ‘연애편지 한 묶음’이 공식적으로 『먼 곳에서 온 편지(兩地書)』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루쉰이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는 죽느니, 사느니 하는 열정도 없고 꽃이니, 달이니 하는 멋진 구절도 없다” 대부분 “학교의 소요, 자신의 상황, 음식의 좋고 나쁨, 날씨의 흐리고 맑음, 하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실제 읽어봐도 루쉰의 말마따나 이 편지들은 연애편지치곤 너무 “평범하다” 그런데 루쉰은 바로 이 평범함이야말로 자신들의 연애/편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서언」, 1932.12.16., 『먼 곳에서 온 편지』) 그런데 이 말은 반만 맞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이 편지들에는 사랑한다, 보고 싶다, 따위의 노골적 감정표현은 없다. 심지어 베이징 시절의 초기 편지들은 거의 ‘통신 강의’ 수준이다. 쉬광핑이 질문하면, 시차를 두고 루쉰이 대답하는 식의. 혹은 루쉰이 강의를 하면 시차를 두고 쉬광핑이 질문을 하는 식으로. 그런데 편지가 오간 빈도나 행간에서 드러나는 무심하지만 세심한 배려 등을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내밀한 감정이 수시로 오가는 연애편지가 틀림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루쉰이 “내 작품은 너무 어둡습니다.”고 하면서 자신은 늘 ‘어둠과 허무’만이 ‘실재한다’고 느낀다고 쓰면(25.3.18), 쉬광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비관을 비관하지 않음으로 삼고, 전도 없음을 전도 있음으로 삼아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스승(25.3.20)이라고 위로한다. 쉬광핑이 바쁜 선생님의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송구스러울 뿐”이라고 말하면 (25.3.20), 루쉰은 시간은 문제되지 않는다며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당일에 다시 답을 한다.(25.3.20) 루쉰이 베이징의 인쇄물 상황을 쉬광핑에게 알려주면서 『맹진』이라는 잡지가 “아주 용감”하고 거기엔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논한 글”이 많다고 평해주면(25.3.31), 쉬광핑은 자기는 이런 간행물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놀라고(25.4.6), 그러면 루쉰은 “어제 『맹진』 5기를 부쳤으니 벌써 받았으리라 생각하고, 앞으로 부치는 걸 금지하지 않으면 나한테 여러 부가 있으니 내가 보내주겠습니다”라고 즉각 답을 한다. (25. 4.8) 루쉰과 쉬광핑 사랑이었다. 대담하고 당돌한 쉬광핑의 질문과 도발은 마비와 망각으로 자신을 죽이며 「죽은 불」(1925.4.23., 『들풀』)로 살아온 루쉰의 삶을 다시 들쑤신 불꽃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무엇인가? 나도 모른다. 중국인 남녀..누가 사랑을 아는지 모르겠다”(「수감록 40」, 『열풍』)던 루쉰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경이로운 감정이었다. 베이징시절의 마지막 편지는 루쉰의 이런 당부로 마무리된다. “늘 비가 오니, 꽃무늬 블라우스는 괜찮은가요? 날이 개이면 화창한 볕에 잘 말려 두시길....” (25.7.29) 두 사람이 각각 샤먼과 광저우로 남하하여 생활하면서 서로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이 둘의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를 쓰고 수시로 우편소를 드나들면서 상대의 편지가 도착했는지를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린다. 내용도 훨씬 더 개인적이 된다. 낯선 남쪽 땅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루쉰에게 쉬광핑은 음식이 싱거우면 후추가 아니라 소금을 넣으라는 둥, 돈을 아끼지 말고 통조림이나 소시지를 먹어보라는 둥, 루쉰을 살뜰하게 챙긴다. 바나나와 유자가 아주 맛있고 입에 맞는다고 좋아하는 루쉰에게 바나나와 유자는 소화가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추위를 타는 루쉰을 위해 직접 뜨개질한 옷을 보내기도 한다. 누가 봐도 연인의 감정이었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쉽지 않은 사랑이었다. 이미 추문이 번지고 있었다. 쉬광핑은 루쉰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루쉰은 계속 망설인다. 결국 루쉰은 결심한다. 추문이, 추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비열함이 오히려 루쉰으로 하여금 결심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나는 우연히 사랑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항상 금방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소. 따라서 감히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소. 하지만 그들의 언행과 사상의 내막을 똑똑히 본 뒤로는 나는 내가 결코 그렇게까지 폄하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소. 나는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오!” (1927.1.11.) 소설 「죽음을 슬퍼하며」에서 쥐안성은 처음에는 연인이었던 쯔쥔과 “언제나 열 걸음쯤 떨어져서 걸었다.” 주변의 “호기심과 비웃음과 상스러움과 경멸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쯔쥔이 독립선언을 하고 쥐안성이 쯔쥔의 용기에 감명을 받은 이후 그들은 “비로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걸었다” 어떻게 보면 고작 열 걸음이었다. 부모의 자식들에서 개성 있는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고작 열 걸음을 떼면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열 걸음을 나가기 위해 루쉰은 20년의 세월을 대가로 치렀다. 그것도 모자라 “나는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오!”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또 백 수십 통의 편지를 쓰고 받았다. 그렇게 느리고 더디게 만들어진 사랑, 루쉰의 사랑이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사랑할래? 이제 잠시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80년대에 청년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루쉰과 쉬광핑의 후예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전 존재를 걸고 바꾸어 낸 사랑의 새로운 형식-자유연애-의 상속자였고 향유자였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성별 역할분담이라는 숙제 역시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우리는 더 이상 입센(Henrik Ibsen)의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페미니즘의 자녀로는 살아가야 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섹슈얼리티라는 욕망을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라는 인식 속에서 새롭게 배치해야 했던, 어쩌면 첫 세대였다. 하여, 나는 노동운동을 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남친과 단지 그 이유 때문에 헤어졌고, 계급의 모순이 젠더의 모순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는 남친과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결혼하지 못할 뻔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놈의 PC(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이성애에도 반대해야 했고, 혼전순결에도 저항해야 했으므로, 의식적으로 레즈비언이 되기도 하고, 사적영역인 섹스를 공적영역으로 끄집어내어 발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가를 치렀다. 우리는 수시로 구설수에 올랐고, 툭하면 봉변을 당했고, 일상적인 모욕과 조롱을 견뎌야했다. 서명숙은 언젠가 『흡연여성잔혹사』라는 책을 써낸 적이 있는데, 그것을 조금만 비틀어 말한다면 80년대는 ‘연애여성잔혹사’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나름 꿋꿋이 버텼고 맞벌이, 가사노동 분담, 공동육아 등의 새로운 관계의 형식을 만들어갔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이성애 가족에 또다시 포획되었지만..ㅠㅠ) 우리 시대는 사랑의 주체, 섹스의 주체가 되기 위해 부모세대의 규범이나 사회적 습속과 박 터지게 싸웠다. 그것에 비추어 본다면 요즘 세대들의 사랑과 섹스에는 거의 금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만났다 헤어지는 것을 밥 먹듯이 해도, 심지어 앱으로 ‘파트너’를 만나 원 나잇을 즐겨도 이제 그것은 자유의 영역이고 노터치의 영역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성과 남성성의 전형적인 이분법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귀여운 여성만큼이나 쎈언니들도 어필하고, 누나들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연하남의 존재도 이제는 흔하다. 그런데 이렇게 도래한 자유연애, 프리섹스의 시대에 왜 내 주변의 젊은이들은 더 에로틱해지고, 더 야성적이 되고, 더 감성이 풍부해지지 않고 있을까? 정말 의문이다. 나아가 나의 의문을 모종의 의심으로 만드는 것은, “애타게”, “정말”, “죽도록”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주변의 청년들이,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얼마 못가서 헤어진다는 사실이다. 지난 몇 년 간 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감각적인 위로와 스포츠 같은 섹스의 시기가 지나 서로가 서로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이들은 쉽게 피곤해지고, 서로에게 지치는 나머지, 그냥, 헤어져버린다는 것이다. 서로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서로를 감당하기 싫어하거나. 각종 소개팅 어플 한병철에 따르면 지난 세기는 면역학적 시대였던 데 반해 이제 우리는 면역학적 시대의 특징인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 으로 하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한다. 즉 그동안 우리는 바이러스나 테러리스트처럼 우리를 공격하는 이질성과 타자성에 맞서 우리의 삶을 구성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부정적 타자들은 사라졌고, 그 대신 그 자리에 동일한 것에 불과한 작은 차이들 (리스본 버스킹과 부다페스트 버스킹의 차이, 혹은 A브랜드의 커피와 B브랜드의 커피의 차이)이 끝없이 증식하고 있으며 자아는 그 차이의 증식 속에서 구축된다. 문제는 부정성만큼이나 긍정성도 폭력적이라는 점에 있다. 부정성의 폭력이 바이러스나 테러리스트와 같은 외부의 공격이라면 긍정성의 폭력은 시스템 내적인 것이어서 피곤과 탈진으로 나타난다는 게 다를 뿐. 하여, 한병철은 후기근대, 포스트 면역학의 시대를 '피로사회'라고 부른다. 과도한 생산, 과도한 활동,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생겨나는 ‘피로사회’는 이미 ‘깊은 심심함’을 잃은 사회이고,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를 더 이상 “짜지도, 잣지도” 않는 사회이다.(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32쪽) ​ 나는 모든 금기(부정성)가 사라진 작금의 연애지상주의 사회(긍정성)를 피로사회의 한 증후군으로 읽는다. 모태솔로. 어장관리, 썸남썸녀, 철벽남녀, 연애고자, 편식남, asky ​등으로 끝도 한도 없이 분열증식되는 연애언표/연애담론 속에서, 연애를 하든 안하든 못하든 모든 사람을 과잉연애의 상태로 만들어 연애활동(작업) 속에서 탈진시키는. “실상 활동과잉은 다름 아닌 정신적 탈진의 증상일 뿐이다....활동성이 첨예화되어 활동과잉으로 치달으면 이는 도리어 아무 저항 없이 모든 자극과 충동에 순종하는 과잉수동성으로 전도되고 만다는 것이 바로 활동성의 변증법이다. 그것은 자유 대신 새로운 구속을 낳는다. 더 활동적일수록 더 자유로워질 거라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병철, 『피로사회』, 48쪽 너무 멀리 돌아왔다. 청년들에게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굳이 루쉰의 사랑과 나의 연애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내가 꼰대여서도 아니고 레트로 취향 때문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시대나 사랑은 능동성의 증가와 관련된 것이고, 그것을 위한 형식을 창안하는 일이라는 것. 루쉰의 시대에 그것은 대로에서 “나란히 걷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수백통의 편지를 썼으며, 우리 시대에 그것은 “평등하게 섹스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세미나를 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주변의 남성들이 우리들을 많이 비웃었다. "쟤네하고 연애하면 매일 세미나하자고 하는 거 아닐까? 섹스하고 난 뒤에 토론하자고 할 것 같아") 그렇다면 자유가 너무 많고 자유의 주기가 너무 빨라서 어떤 형식도 만들기 힘든 이 시대에 청년들은 어떻게 사랑의 주체가 되고 삶의 능동성을 키울 수 있을까? 난 그것이 정말 궁금하고 걱정된다. 지원아, 고은아, 정우야, 너희들은 어떻게 너희들만의 사랑의 형식을 만들어 갈래? 모든 형식은 느리고, 우회적일수 밖에 없다면, 너희는 LTE급으로 주어지는 이 자유를 만끽하는 게 아니라, 이 자유의 가속도에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하는 것은 아니겠니?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자유와 대결하지 못하면 너네, 혹시 망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마지막 말은 농담이다.​

[공유지의 사상가 - 맹자] # 1회 지금, 맹자를 읽는다는 것은? 우연히 동양고전에 접속해서 지난 10년간 정말 빡세게 읽었다. 많이 배웠고,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나름 바뀌었다. 어쨌든 갈무리가 필요하다는 생각, 혹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 공자님에게? 하하. 그럴지도. 하지만 우선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에게 그동안 떠들어댔던 말들을 공들여 주워 담아 전달해보려 한다. 친구들이여, 잘 읽어주길! 글 : 문탁 새털이 말한 것처럼 난 문탁에서 ‘쪼는’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힘에 부친다. ‘원로원’을 만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농담이 아니다. 청년들을 핑계로 서울에도 거처를 마련하고, 문탁연수원을 핑계로 지방에도 거처를 마련하여 국내에서라도 유목하며 사는 게 꿈이다. 1. 어느 게 진짜 맹자일까? 작년에 『맹자』를 두 번째 읽었다. 사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맹자』 완독에 1년이나 걸린다는 게 가장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책들을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러나 더 문제는 그렇게 다시 읽는다고 해서 맹자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할 것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처음 『맹자』를 읽을 때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논어』에는 누가 뭐래도 원조의 아우라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공자의 함축적 문장들 – 예를 들어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혹은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같은 문장 –은 맥락을 짐작하기도 어렵고, 쉽게 해석하기도 힘들지만, 그래서 오히려 우리를 긴장시킨다. 『노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단 여섯 글자만으로도 관계자 모두를 논쟁의 장으로 끌어낸다. 그만큼 다층적이고 심오한 텍스트이다. 『장자』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진중한 내용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낸,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다. 『사기』는 일찍이 루쉰이 “사가(史家)의 절창(絶唱)이며, 운율 없는 <이소(離騷)>”(루쉰, 『한문학사강요』)라고 말한 바 있는 것처럼, 수천 년의 시공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장대한 인간사를 드라마틱하게 펼쳐내고 있는 ‘절대필법’의 텍스트이다. 그런데 맹자는? 일단 말이 많다. 제후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대답하고, 제자가 한 가지를 물으면 백가지로 대답하는 식이다. 공자는 ‘말’을 상당히 경계했고, 유창하게 말하기(巧言)보다 차라리 어눌하게 말하는(訥言)편이 더 낫다고 했는데, 막상 공자의 제자를 자처하는 맹자는 끝도 한도 없이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당대의 평가대로 그는 정말!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好辯)’이었다. 촌철살인의 미덕이 없는 맹자, 그것만으로도 매력반감이다. 게다가 인내심을 갖고 그 말을 끝까지 좇아보아도 대개는 ‘지당하신 말씀’ 수준이다. 심지어 가끔씩은 맹자가 뭔가를 우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사마천은 맹자를 초청했었던 어느 제후의 입을 빌어 그가 현실에 맞지 않는 공허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迂遠而闊於事情”, 『사기』,「맹자순경열전」)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말은 많은데(好辯) 그 말이 대부분 원론적인 이야기(迂闊)라면?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맹자의 첫 인상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맹자』는 좀 달랐다. 그는 힘의 정치가 아니라 덕의 정치를 주장했지만, 덕의 정치를 실현시킬 인물로 선택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 있는 군주였다. 뿐만 아니라 그런 군주의 눈에 들기 위해, 혹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그를 거스르지 않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런 정치-외교적 수사는 자신이 곡학아세의 태도라고 비난해마지 않았던 당대의 다른 정치인들, 예를 들어 후대에 ‘종횡가’ 혹은 ‘유세가’라고 불리는 소진(蘇秦), 장의(張儀)들의 전매특허였다. 반대로 맹자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작은 나라에서 맹자는 역으로 ‘왕도정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세(勢)가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결코 ‘우활(迂闊)’한- 공허하거나 이상주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다. 공자와 맹자는 흔히 ‘공맹(孔孟)’이라고 불리며 세트로 취급당하지만 이 둘은 핵심적인 논점에서 의견을 달리한다. 공자가 춘추시대의 패자(霸者)였던 제 환공을 높이 평가한 반면 맹자는 펄쩍 뛰다시피 하면서 그를 폄하한다. 공자는 제환공을 힘의 균형을 통해 국제평화를 구축한 정치적 능력자로 본 반면 맹자는 그를 패권주의 정치의 시조로 본 탓이다. 공자를 사숙(私淑)했다면서 스스로 공자의 적통임을 주장한 맹자의 포지션을 놓고 생각해보면 이런 맹자의 입장은 좀 이상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공-맹을 하나의 유가로 엮고, 맹자와 동시대 다른 지식인들은 법가, 병가, 유세가, 도가 등으로 분별하는 것은 오히려 후대의 패러다임 아닐까? 다시 읽은 맹자에게서 난 그보다 180년쯤 앞선 공자와의 공통점만큼이나 당대의 유세가들, 심지어 동시대 인물이지만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장자와의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스캔들. 그는 어머니 –바로 그 유명한 맹모삼천지교의 그 맹자 엄마^^- 의 장례를 호화롭게 지냈다는 비난에 줄곧 시달렸고, 자신이 의롭지 못하다고 평가했던 군주들에게 받은 화려한 선물 때문에 여러 번 문제제기를 받았다. 이에 대해 맹자는 자신은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거나, 정신노동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기방어를 한다. 때로는 그것이 정적에 의한 네거티브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뒤에 따르는 수레 수십대와 뒤에 따르는 수행원 수백명(後車數十乘,從者數百人, 「등문공 하」 4장)”이라는 맹자의 재력과 위세가 정말 ‘도리’에 적합한 것일까? 일단 그 평가는 유보하자. 어쨌든 맹자는 ‘상갓집 개’ 취급을 받았던 공자와는 그 처지가 사뭇 달라 보인다. 그는 당대 지식인 스카웃 시장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FA(자유계약선수) 대어’였던 것이다. 다시 읽은 맹자는 더 이상 장황하고, 원론적이고, 지당하신 말씀만 하는 아재나 꼰대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때로는 종잡을 수 없고 때로는 애매한, 그런 역동적 인물로 다가왔다. 2. 존맹(尊孟)과 비맹(非孟) 사이 – 논쟁적 텍스트 『맹자』 『맹자』가 상당히 논쟁적 텍스트라는 것은 『맹자』 의 역사적 수용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우선 『맹자』는 오랫동안 경(經)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제자서(諸子書) 가운데 하나였다. 반고의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맹자』는 「제자략諸子略」에 속한 189가(家), 4000편의 책 중 한 권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순자는 맹자가 자질도 좋고 뜻도 크고 견문도 넓지만 성인의 뜻을 자기마음대로 전유하여 매우 치우치는 주장을 했다고 비판한다. 심오하지만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단정적이지만 충분히 해명되지 못한 게 바로 ‘속유(俗儒)’ 맹자의 학설이라는 것이다.(『순자』, 「非十二子」) 후한(後漢)의 왕충도 맹자를 비판하는데 주장의 논거가 부족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왕충, 『논형(論衡)』, 「자맹(刺孟)」) 물론 사마천 같은 경우는 힘의 논리를 부정하는 맹자를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맹자』의 부침을 잘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주희(朱熹)의 논술문제이다. 주희는 백록동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맹자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그를 비판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견주며, 또 어떤 사람은 칭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겼다. 또 누구는 그의 공로가 우임금 아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 귀취(歸趣)가 같지 않음이 이와 같았는데... 이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그대들은 그것을 자세히 이야기해보라”는 질문을 했다.(황준걸, 『이천년 맹자를 읽다』, 45쪽) 그러나! (알다시피) 송대(宋代)에 이르러 『맹자』는 그 모든 논란을 뒤로 하고 불후의 텍스트로 등극한다. 한유(韓愈)가 시작하고 이정(二程)이 부흥시켰으며 주자(朱子)가 사서시스템의 완성을 통해 마침표를 찍은 맹자 리바이벌 프로젝트! 이후 ‘심성(心性)의 철학서’, 『맹자』는 성리학이라는 동아시아 근세의 에피스테메 속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지위를 갖게 된다. 그러나 중국 현대 사상계의 거목인 리쩌허우(李澤厚)는 송명유학이 심성-도덕이론으로 유학을 개괄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심성도덕의 추상이론을 유학의 근본으로 삼는 것은 공자와 맹자의 원전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란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순자나 동중서의 유학을 배제하고, 외왕(外王)(=정치)의 독자적 범주에 대한 사유를 유학내부에서 차단한 것도 매우 큰 오류라고 말한다.(리쩌허우, 『학설』, 10~11쪽) 리쩌허우는 이것 때문에 중국(=동아시아)이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맹자의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이 아니라 맹자의 정치철학에 방점을 찍어 독해하는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가 도올이다. 그는 『맹자』에서 ‘민본과 혁명’을 읽어낸다. 도올은 『맹자』가 『논어』와는 좀 성격이 다르다고 하면서 “공자가 ‘상향’의 발돋움을 한 사람이라면...맹자는 철저한 ‘하향’의 사명감이 있다. 맹자에게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민중의 고초에 대한 열렬한 공감이다.”(도올, 『맹자 사람의 길 上』, 103~104쪽)라고 주장한다. (도올의 책을 읽으면 신기한 게, 글자 속에서 도올의 표정이 읽힌다^^) 그런데 『맹자』의 왕도정치를 민본주의로 읽은 사람은 도올 만이 아니다. 도올 이전에 캉유웨이(康有爲)가 있었다. 특히 그는 서양근대정치학의 개념으로 『맹자』를 읽어나가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맹자』 ‘고국장(故國章)’의 국인(國人)을 거의 그리스 폴리스의 시민(市民) 비슷하게 이해하면서 그 장의 의미를 맹자가 민권을 받아 의원을 개설하는 제도를 밝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나아가 『맹자』의 그 유명한 ‘민위귀장(民爲貴章)’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군주는 그 다음이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진심 하」, 1장)- 은 서양의 사회계약론을 이미 선취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도올은 MB정부하에서, 캉유웨이는 반식민지로 전락해가던 청말의 정세 하에서 『맹자』의 민본주의적 성격에 주목하고 또 그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맹자가 민주의 제도를 수립한 태평시대의 법이다. 대개 나라가 되는 것은 백성을 모아 이루어지는 것이다...이른바 임금은 많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함께 공생하며 안락한 일을 맡은 자이다. 여러 백성이 함께 추대한 것으로 곧 여러 백성이 공용으로 하는 바가 된다. 마치 백성은 점방의 자본주이고, 군주는 초빙된 경영인일 뿐이다. 백성이 주인이고 임금은 손님이다. 백성이 주인이고, 군주는 노복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귀하고 군주는 천하니 쉽고 분명하다. 여러 백성들이 귀의하여 이에 추대하는 것이 민주이고, 미국과 프랑스의 총통이 그들이다...지금 미국과 프랑스, 스페인 및 남미의 각국들이 모두 시행하고 있다...맹자가 진작에 발명한 것이다” (캉유웨이, 『孟子微』, 황준걸 위의 책, 519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반대로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처럼 말할 수도 있다. 그는 “원래 백성이 곧 정치의 근본이라고 하는 ‘민본주의’의 테제는 본래는 군주 쪽에 정치의 기점을 둔 것”으로, “그런 정치를 펴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군주이고 백성은 정치의 대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미조구치 유조 등,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218쪽) 맹자 역시 “마음을 쓰는 자(勞心者)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자(治人)이고, 힘을 쓰는 자(勞力者)는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治於人)”라고 말하면서 사서(士庶)의 구분을 분명히 하고 있다.(「등문공 上」 5장) 그런데 이런 시각을 극단화하면 우리는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 나아가 그것에 기반한 비트포겔(Karl Wittfogel)의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개념에 닿게 된다. 농업생산을 위한 대규모 관개사업을 위해서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적 정치체제의 중앙집중적인 통제가 필수적이었다고 요약되는 ‘동양적 전제주의’는 ‘노심자(勞心者)-노력자(勞力者)’ 이론의 유럽버전 끝판왕이다. 동아시아 고대를, 한쪽에서는 서양민주주의의 선취사회로, 또 한쪽에서는 정체적인 전제사회로 보는 것이다. 3. 맹자를 어떻게 읽을까? 누군가는 맹자에게서 우활(迂闊)하나 강직한 성품을 발견했고, 누군가는 맹자에게서 독선과 아집을 발견했다. 어느 시대에서는 『맹자』가 형이상학적 텍스트로 해석되었고, 또 어느 시대에서는 『맹자』가 정치학의 교본으로 떠받들어졌다. 『맹자』는 민주주의 사상의 선취자로도 전제주의 사상의 증거로도 거론된다. 사마천, 조기, 순자, 왕충, 사마광, 한유, 왕안석, 주희, 왕양명, 황종희, 대진, 정약용, 퇴계, 율곡 같은 기라성 같은 학자들 모두가 『맹자』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맹자』를 읽고 각자의 맥락에 따라 모두 다른 『맹자』를 출력시켰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맹자』는 어떤 것일까? 아카데미 밖에서 비전공자로서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난 우리의 고전독해가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나는 ‘평이하고 친근한’ 동양 고전에서 일상의 교훈을 얻거나 마음의 위로를 찾는 경향, 또 하나는 12세기 주자가 구축한 ‘사서집주’라는 완결된 해석체계를 충실히 익히고 재생산하는 경향. 내가 생각하기에 이 두 경향은 아카데미 안이든 밖이든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문주의가 “역사 속 언어의 산물들과 다른 언어와 다른 역사를 이해하고 재해석하고 또 고심하기 위해 한 사람의 능력을 언어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여, 인문주의가 “이미 알고 느끼고 있는 것을 다시 공고히 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전을 포함하여 이미 만들어진 확실한 코드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들에 소란을 일으키고 재정식화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에드워드 사이드, 『저항의 인문학』, 51쪽), 힐링적 독서든 주자적 독해든, 그것들은 인문주의적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맹자』는 정전(正典, canon) 이전에 텍스트(text)이다. 그리고 모든 “텍스트들은 사건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만큼 세속적이며, 설혹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경우조차도 사회적 세계와 인간생활의 일부이고, 또한 당연하게도 텍스트들이 그 속에서 자리 잡고 해석되는 역사적 계기들의 일부”이다.(에드워드 사이드, 『세계, 텍스트, 그리고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읽기』, 107쪽에서 재인용) 따라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 역시 세속적 지평 속에서 행해지는 사건이다.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가 구축하고 있는 지배적 힘들에 저항하면서, 전체화하는 개념들과 도그마적인 해석에서 탈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드가 말하는 인문주의의 핵심으로서의 ‘세속적 비평’이다. 사이드는 비평가를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물론 이 때의 아마추어는 ‘알쓸신잡’이나 ‘지대넓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들은 사이드가 ‘사제계급 이론가’라거나 ‘교조적인 형이상학자’라고 부르는 전문가에 맞서, 세상과 뒤얽혀있는 채로 인칭적이고 활동적인 독해를 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독해자들! 『맹자』에 대한 모든 권위와 전제를 괄호에 넣기! 나에게 그 첫 번째 스텝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우활하다는 맹자의 전통적 이미지 너머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투하면서 종종 모순에 빠지는 맹자가 보인다. 두 번째 스텝은 공자의 충실한 계승자라는 맹자의 지위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는 공자 별자리의 두 번째 밝은 별이 아니라 공자와 다른 별자리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보인다. 세 번째 스텝은 주자의 해석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명말(明末)의 지식인들은 이미 어느 누구도 주자의 주석을 읽지 않았다는데 우리가 그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대신 난 꼬뮨주의자로서 『맹자』를 읽는다. 선거를 앞두고 투표를 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맹자』를 읽는다. 문탁네트워크가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인지, “민주주의와 삶이 살아있는 곳”인지를 고민하면서 『맹자』를 읽는다. 그렇게 다시 발견해나가는 맹자의 삶과 사유! 그게 앞으로 내가 써나갈 나의 『맹자』이다. 일단 그 제목을 <공유지의 사상가, 맹자> 라고 부친다. NM

[플라톤이 돌아왔다 2회]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와 서점 리스본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글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 뉴스타파 김진혁피디가 2015년에 만든 미니다큐 <꼰대와 선배>에서는 엔하위키 미러를 인용해 ‘꼰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보통 자기 세대의 가치관으로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태클을 걸면 ‘꼰대질’한다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다큐를 찾아보게 된 것은 같이 일하는 젊은이에게 “선생님 꼰대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다. “그래 나 꼰대야. 그래도 이렇게 불성실하게 일 안하고 변명하는 건 네 잘못이야!” 라고 윽박질렀지만, 내심 놀라기는 했다. 나는 꼰대인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꼰대질인가? 지적을 세련되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인가? 문제는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않음’과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있다. 나는 시대변화에 둔감해서 젊은 세대의 행동을 제대로 독해할 줄 모르는 ‘꼰대’인가? 내 주변에는 꼰대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딸들이 아무렇지 않게 머리색을 바꾸고 들어오면, “안 돼!” 남편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말하지 못하면서도, 노랑머리는 안 되지만 갈색머리는 괜찮다는 근거 없는 기준을 들이대 더욱 딸들의 빈축을 샀다. 남편과 딸들의 전선에서 타협은 불가능했다. 염색은 물론 타투도 안 되고, 피어싱도 안 되고, 비혼(非婚)도 안 된다는 남편의 강경한 쇄국정책에 대해 딸들은 입씨름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취향을 존중하겠으니 본인들의 취향도 존중해달라는 매너 있는 ‘무시’였다. ‘갓띵작’ ‘치맥각’ 등등 딸들과 눈높이를 맞춘 대화를 위해 ‘급식체’(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감성이나 말투)를 연습하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유행어를 학습으로 익혀야 하는 순간이 왔다면, 그건 그냥 ‘아재개그’지 ‘급식체’가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 들른 홍대에서 나는 ‘나도 꼰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을 찾아가던 중, 나는 홍대 뒷골목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되었다. 그곳의 지리는 낯설었고, 그곳을 오고가는 젊은이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공기’도 달랐다. 도로엔 거대한 편집샵들이 포진해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젊은이들이 사먹는 길거리표 간식조차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지갑에 카드 한 장 달랑 들어 있던 나는 버블티나 크레페 같은 것을 사먹지 못했다. 현금인출기를 찾으려면 옷, 화장품, 액세서리, 타로점 가게로 꽉 찬 골목길을 빠져나와야 했고, 내가 미로와 같은 그 길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출입금지’의 표시들이었고, 그것은 젊은이들과 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옛날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나만의 동굴에 콕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체감했다.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지식이 사실은 무지에 가까운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종종 동굴에 갇힌 자신과 만난다. 명품지갑이 멋져 보이는 이유가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브랜드로고 때문이고, 내 친구의 ‘씨바’와 팟캐스터 김어준의 ‘씨바’는 다른 뉘앙스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건 그냥 김어준의 ‘있어 보이는 말빨’ 때문이다. 2. 플라톤행 열차는 ‘동굴의 비유역’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연극의 무대와 같은 세트를 보여준다. 동굴이 있고 동굴의 입구엔 횃불과 물건들이 놓여있는 단상이 있다. 사람들은 동굴의 입구를 등지고 벽을 바라보며 결박되어 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평생 이러한 조건 속에 살고 있다면, 이들에게 ‘그림자(가상/환상)’의 세계는 완벽한 현실세계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의 진위(眞僞)를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꼰대일 리 없다는 콩깍지가 씌었던 나처럼, 그림자의 세계를 현실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가상이나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동굴의 비유’를 좀 더 살펴보자. 누군가 우연히 결박이 풀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벽으로부터 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을 더듬어 동굴의 입구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면, 자신이 봐오던 것이 동굴 입구의 횃불과 물건들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동굴 밖에 이르게 된다면 횃불이 아니라 태양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쉽지 않고 짧은 시간에 끝나지도 않는다. 동굴 속 어둠에 익숙한 자에게 동굴 밖의 밝음은 시력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가 실명하지 않고 태양의 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갑자기 눈을 떠서는 안 되고 천천히 태양의 밝기에 눈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 과정을 천천히 익힌다면 태양의 빛을 똑바로 볼 수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올바른 인식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을 다시 동굴 안으로 들여보낸다. 올바른 인식의 기쁨을 느낀 자가 있다면, 그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자신의 동료들과 그 기쁨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윤리의식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스토리가 동굴의 우화 속에 겹쳐진다. 모든 스토리에 반전과 갈등이 빠질 수 없듯이, 동굴로 돌아온 자에게도 위기와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 평생 동굴의 벽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동료의 말을 쉽게 믿기는 어렵다. “위쪽으로 올라가더니 눈이 상해서 돌아왔군.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 쇠사슬을 풀어주며 위쪽으로 데려가려는 자는 잡아 죽일 수 있으면 모조리 죽여야 해.”(<국가> 7권 517a)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갔다 되돌아온 자는 현실 속의 소크라테스를 떠오르게 한다. 대중들은 과연 철학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철학자는 과연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철학과 정치와 윤리가 분리될 수 없는 난제(難題)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굴의 비유는 <국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른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해법, 그리고 현실과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철학자의 운명과 윤리적 태도까지 동굴의 비유에는 플라톤이 해결하고자 하는 철학적 난제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플라톤이 10여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대화편을 쓰게 된 배경에는 ‘동굴 속의 아테네’가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 시민들이 철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정의로운/건강한’ 아테네의 공동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었다. 이상국가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지의 동굴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동굴의 비유는 <국가> 7권에 수록되어 있지만, <국가>와 플라톤의 철학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 말할 수 있다. 3. 소송의 시대와 철학의 선언 그리스의 수많은 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던 아테네는 기원전 480년 동방의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통강호’ 스파르타를 제치고 ‘그리스의 맹주’로 자리 잡게 된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학교’라는 수식어는 이런 아테네인들의 자긍심을 잘 보여준다. 아테네의 전성기, 그리스 전역의 지식인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탈레스 등 이오니아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이전의 철학자들은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현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테네의 전성기, 새롭게 형성된 아테네의 지식세계는 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새로운 유형의 철학자들은 고객을 두고서 서로 경쟁했고, 철학적인 현자들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유형의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지적 순수함보다는 현실적 감각을, 영원한 진리보다는 당장의 효용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새로운 유형의 철학자들을 사람들은 ‘소피스트(sophistês)’라 불렀다. 이들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언어, 문법, 변론술, 웅변술, 글쓰기 등 요즘으로 말해 인문교양을 가르쳤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질 때 그에 따라서 증대되는 것들 중에 법, 소송, 재판이 포함된다. 가난이 보편적인 사회에서는 소송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의 위계가 뚜렷하고 평등한 관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소송이 잘 일어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소송이란 최소한의 평등 관계가 존재하는 곳에서 성립한다. 특히 사회의 부가 축적되면 이제 싸울 일이 많아진다. 바로 이 때문에, 아테네의 전성기는 소송의 전성기였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피스트로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지식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거부한다. 객관성의 추구란 동일성을 함축한다. 그런데 인식 주체에 의해 사물의 본질과 가치가 달라진다면, 결국 객관성과 보편성의 근거가 사라진다. 이제 남은 것은 변화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대적인 진리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따라 진리가 변화한다는 소피스트들의 논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었고, 이건 당대 아테네 시민들이 원했던 대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문제는 나의 진리와 너의 진리가 충돌할 수 있고, 아테네의 입장과 다른 폴리스의 입장이 대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의 상실은 분쟁과 혼란을 예고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의 전형으로 경쟁에 유능한 인간이 아니라 덕이 있는 인간을 제시한다. 이때의 ‘덕’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도덕적 선함’이 아니라 ‘탁월함’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재판과 논쟁에서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능력이 아니라 지성의 힘에 의해 발휘되는 탁월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탁월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탁월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탁월함의 올바른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잘못을 하는 까닭은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에게 좋고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의 결핍 때문이라고 보았다. 스스로가 쾌락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탁월함의 올바른 기준을 알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생활 속에서 단련시키는 과정인 파이데이아(paideia), 곧 교육이다.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의 안과 밖의 대비만큼 중요한 것이 동굴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 있다. 동굴에 결박된 자들에게 주어질 자유는 족쇄의 풀려남이 아니라 어둠에 익숙한 눈을 빛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노력에 달려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때그때의 임시방편적 지식으로 대중들을 허약한 철학적 지반 위에 올려놓는 소피스트들의 반대편에 섰다. 소피스트들의 일대일 맞춤식 과외수업에 자기주도 학습으로 ‘맞짱’을 떠보겠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의 선언이다. 4. <윤식당>과 <효리네 민박>이 아니라 ‘서점 리스본’ 인기리에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윤식당>과 <효리네 민박>은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스페인의 작은 섬 가라치코에서 한국식당을 차린 연예인들은 ‘그림엽서’ 같은 풍경 속에서 알콩달콩 식당을 운영한다.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한식메뉴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조리법 연구까지 <윤식당>의 사장님과 직원 일동은 정신을 쏙 빼먹고 식당일에 매달려있다. 그러나 그들의 전력투구에는 ‘짠내’ 나는 간절함이 빠져있다. 장사가 이윤을 내지 못하면,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고, 신용불량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 제약들이 방송에는 빠져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윤식당>을 즐겨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실의 중력이 제거된 무중력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기 싫은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볼 수 있다는 대리만족이 잠시라도 현실의 피로감을 잊게 해준다.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작은 식당을 차려보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야!” 라는 꿈을 꾸어보지만, 방송이 끝나면 우리는 신속히 꿈에서 현실로 복귀한다. 제주도 소길리에 자리잡은 <효리네 민박>에 놀려온 사람들은 줄곧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잔다. 끊임없이 먹고 자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먹고 자는’ 일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뭐 하느라 우리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 못하며 바쁜 일상을 쫓기듯 살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주말에도 주중처럼 연장근무를 반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보상은 제주도여행 같은 휴가이다. 제주도든 동남아시아든 유럽의 고성이든,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오로지 먹고 자는 즐거움을 위해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그리고 또 다시 먹고 자는 일을 잊고 과로하다 ‘힐링 여행’을 떠난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의 ‘힐링’은 혹사당하는 일상의 피로회복제가 아니라 마취제가 아닐런지. 우리가 과로하지 않는 일상과 소소한 행복을 표방하는 예능프로그램들을 불온하게 독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들이 치유에 대한 ‘판타지’와 ‘사이비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한다는 점에 있다. 뽀로로 반창고가 칼에 베인 상처를 낫게 해주는 것은 뽀로로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아니라 반창고의 소독약과 방수기능 때문이다. 홍대 입구에서 연남동 쪽으로 걷다보면 주택과 식당들 사이 작은 공방과 서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옛날사람’임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홍대투어에 나섰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서점 리스본’이다. 단독주택의 일층을 개조한 서점 리스본은 가게 앞에 뜰이 딸려 있는 ‘그림엽서’ 같은 책방이다. 서점 리스본은 서점의 규모로 봤을 때, 시중에 나오는 책들을 신간 위주로 진열한다 해도 공간이 부족한 작은 서점이다. 서점 리스본의 사장님은 우리가 독서실과 도서관에서 입시와 취업의 압박에 시달리며 들었던 ‘보석 같은’ 라디오 음악방송의 전직 작가이다. 사장님은 디제이의 오프닝멘트를 비롯해 전파를 타고 휘발되는 무수한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생활을 그만두고 싶어 서점을 차렸다고 한다. 서점 한 구석에는 책이 담긴 서류봉투들이 쌓여 있다. 택배 부칠 책들인가 했는데,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솔루션부스’라고 한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포장된 채로 한 권의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처럼 혹은 선물처럼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경험을 서점 리스본은 추천하고 있다. 작은 서점 곳곳에 보물찾기 쪽지처럼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숨겨놓고 있는 서점 리스본의 사장님은 서점 운영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사장님은 임대료와 관리비 그리고 책값을 어떻게 충당하고 있을까? 비축해둔 은행 잔고가 넉넉한 것일까? 플라톤 : 책 팔아서 서점 운영 못하잖아요? 어떻게 서점을 유지하세요? 리스본 : 제가 글쓰기 클럽을 운영하고 있어요. 온라인으로 한 달 회원을 받고 매일 글쓰기를 하도록 해요. 글이 올라오면 간단하게 코멘트를 해주는 방식이에요. 글을 쓰는 습관을 갖도록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준다고 할까요. 글쓰기 수업료로 월세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책을 팔아서 나는 수익으로는 새로운 책을 사고 있어요. 차차 책을 늘여가고 있어요. 이제는 거의 책장이 다 찼고 서점 통장의 잔고는 서서히 늘어가고 있어요. 제 생활비 전부를 감당할 만큼은 안 되지만 밥값 정도는 벌어주는 것 같고요. 플라톤 : 작가니까 서점 리스본의 이야기를 서점 리스본에서 써보면 될 것 같은데요? 리스본 : 서점 리스본에 대한 책은 이미 계약되었어요. 진작부터 서점에 대한 책은 제의 받고 있었지만 아직 책 한 권이 되기에는 부족했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하려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마침 서점 리스본을 아끼는 편집자가 기획서를 써왔더라고요. 서점 리스본에 가면, 서가 다음으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장님의 책상이다. 아니 작가의 책상이다. 서점 리스본은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의 ‘지적인 사랑’을 담은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의 저자이기도 한 작가의 작업실이고, 저자의 사인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서점이기도 하다. 제빵사의 이름을 내건 수제빵집처럼, 서점 리스본에는 책을 작가에게서 직접 구입하는 소소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 “방금 나온 빵이에요”가 아니라 “방금 쓴 글이에요. 잘 읽어주세요.” 라는 작가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서점 리스본에서 금지되고 있는 것은 사진 촬영이다. 골목길을 걷다 서점이 예쁘다며 들어온 행인들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어본다면, 사장님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책은 읽는 것이지 사진을 찍는 소품이 아니라는 사장님의 철학이 철칙으로 준수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서점 리스본의 사진을 몇 장 갖고 있다. 수잔 손탁의 인터뷰집과 김애란의 새로운 소설집을 골라 놓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사진도 몇 장 찍게 되었다. 그러니까 서점 리스본은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이다.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점 리스본이 문을 닫을까봐 사장님만큼 재정 상태를 걱정한다. 주택을 개조한 서점 리스본의 사진은 그림엽서처럼 예쁘다. 가라치코섬의 <윤식당>과 소길리의 <효리네 민박>처럼 사랑스럽다. 서점 리스본도 하나의 판타지일까? 힙스터들의 유행이 예쁜 카페에서 예쁜 서점으로 옮겨갔다는데, 서점 리스본도 트렌드를 앞서간 셀럽의 기획상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공간이 작가나 그의 지인들에게 ‘힐링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글쓰기 작업-책 판매-커뮤니티’가 결합된 서점 리스본은 힐링을 위한 소품이 아니라 일상생활이 꾸려지는 살림의 장소이다. 서점 리스본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서점 리스본 식구들이다. 홍대에 가면 ‘과로-휴식’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살림살이가 어떻게 꾸려지는지 리얼 다큐로 보여주는 ‘동굴 밖’ 서점이 있다. 서점 리스본은 창작 능력 있는 서점 주인의 ‘재충전’의 시간을 위해 월화는 문을 열지 않는다. 우리는 곧 서점 리스본에서 판매되는 텍스트 ‘서점 리스본’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 서점에 가실 분들은 월화를 피해서 찾아주시길......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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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은 최신 인류학텍스트인 <식인의 형이상학>을 강의합니다. 인문학축제를 두번째 주에 하므로 세번째 주부터 3주간에 걸쳐서 합니다. 더불어 새로운 텍스트인 만큼 세미나 형식--강사 발제와 토론 --으로 진행합니다. 상상력의 부족함을 한탄하는 그대에게 권합니다. 재규어도 맥주를 마시고 우리도 맥주를 마신다. 재규어가 우리를 볼 때 우리는 인간을 잡아먹는 동물로 보인다. 무슨 알쏭달쏭한 이야기일까? 이것은 아마존 원주민들이 존재를 파악하는 방식인 ‘관점주의’에 따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유럽의 존재론과 아마존 관점주의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도 영혼을 가졌는지 의심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와 원주민의 신체가 다를 것으로 의심하지 않는다. 반면 원주민은 유럽인의 신체가 자신의 신체와 같은 지 의심한다. 그들은 영혼의 차이를 상상하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신체의 유일성과 정신의 다양성을 전제했다면 원주민들은 정신의 단일성과 신체의 다양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의 존재자란 하나의 관점이며 신체의 차이가 관점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그들은 이해한다. 따라서 모든 존재자는 자신을 인간으로 보며 다른 존재자를 비인간으로 본다, 재규어가 인간이고 우리가 동물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하지만 재규어와 우리는 같은 종류의 영혼을 가지므로 맥주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맥주가 똑같은 자연적 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규어에게 맥주인 것이 우리에게 피이고 재규어에게 인간인 것이 우리에게 재규어다. 『식인의 형이상학:탈구조적 인류학의 흐름들』은 올 여름 번역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브라질 인류학자인 저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는 아마존의 우주론과 들뢰즈‧과타리의 철학을 횡단하는 본 저작을 통해 인류학자들 뿐만 아니라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인류학은 문탁네트워크의 공부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르셸 모스의 <<증여론>>, 마샬 살린스의 <<석기시대 경제학>> 등의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태곳적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인류의 사회를 관통하는 원류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또한 “새로운 체계는 태고적 사회 형태의 고차원적 형태로의 재탄생”이라는 맑스의 말처럼, 인류학은 우리가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 찾게 되는 지적인 원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인류학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탄생한 인류학은 오랫동안 비유럽을 타자로 구분하고 그들을 유럽적 사고체계로 분석하는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타자의 가면 아래에서 자신들을 응시하는 그들에게서 나르시스의 모습이 그대로 겹칩니다. 저자는, 들뢰즈‧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하는 <안티 나르시스>를 주창하며 유럽중심주의 더 나아가 인간주의에 맞선다고 합니다. '연구집단의 사유를 자신들의 담론으로 일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사유 스타일과 관점에서 볼 것, 주름지우고 오밀조밀하게 하여 무지갯빛으로 반짝이게 만들고 회절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거지요. 우리는 『식인의 형이상학』을 통해 새로운 인류학이 어떤 새로운 개념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새로운 인류학의 지적 기획을 통해 미래에 대한 다른 전망을 상상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 * 기간 : 12월 15일~12월 29일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12시 30분 * 강사 : 박혜성 (문탁네트워크 회원; 뚜버기) * 텍스트 : <식인의 형이상학>,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 후마니타스 제1강 안티 나르시스 (<식인의 형이상학> 1부) 제2강 포식의 형이상학 (<식인의 형이상학> 2, 3부) 제3강 식인의 코기토 ((<식인의 형이상학> 4부) 신청방법 1.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신청사연과 연락처도 남겨주세요. 전화번호 비공개를 원하면 비밀글로 써주세요 2. 12월 회비는 5만원입니다. 입금을 해야 신청이 완료됩니다. (단 복회원인 경우, 복사용을 원하시면 신청할 때 함께 적어주세요.) 문의 : 공일공-9118-하나 둘 팔 삼 (오영) 입금계좌: 우리은행 1002 9335 17477 ( 김시연) *문탁네트워크는 영리를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회비는 강의가 시작되면 반납되지 않습니다.

2018 길드다 청년 페어 YOU ONLY LIVE in COMMON Y O L C 올해 1월부터 준비하여 3월에 문을 열고, 마침내 12월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간 이 1년 동안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일들을 벌였고,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더 많은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느낀 것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였습니다. YOLO는 인생은 한 번 뿐이며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을 말하지만, 거기에는 사실 ‘어떻게’라는 질문이 빠져있습니다.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길드다는 그것에 대해 함께, ‘공통의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 합니다. ‘공통의 무언가’, 즉 Common은 함께하는 것이되 똑같아질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올 한해 길드다와 함께했던 여러분들이 그러했듯 저마다 천차만별인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다름을 드러내면서 함께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길드다는 이 1년이 그 힘을 향한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 길드다 청년페어 YOLC는 길드다와 여러분이 만든 이 1년, 그 Common의 경험을 돌아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1년 길드다의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셨던 여러분, 또 참여하지는 못했어도 지켜봐주셨던 여러분, Common이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으신 여러분, 그러한 여러분 모두를, 이 자리에 초대합니다! ㅡ 일시 : 2018년 12월 6일 목요일 단 하루, 오후 1시 시작 (제품 전시판매 및 기획전시는 8일 토요일까지 3일간!) ㅡ 장소 :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 875-2 문탁네트워크 ㅡ 대상 : 참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별도의 신청이나 참가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ㅡ 주최 : 길드다 ㅡ 후원 : 경기문화재단, 경기도 * 프로그램 및 당일 스케줄 안내 1. 길드다 제품생산 프로젝트 쇼케이스 <공산품共産品> 11:00부터 상시 전시 및 판매, 쇼케이스는 13:30 - 14:30 공장에서 만드는 공工산품이 아니라, 공동으로 생산해서 공共산품이다. 제과제빵, 목공, 작곡, 스케치와 일러스트까지 다섯 명의 청년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아 생산한 다양한 제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일부 품목은 수량이 제한되어있으므로 서두를 것! 2. 길 위의 인문학 기획전 <광주, 기억의 미로> 11:00부터 상시 전시, 저녁식사 시간에 간략한 디너쇼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길 위의 인문학팀이 이번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찾아 광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직접 맞닥뜨린 광주는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는데……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선, 세 달에 걸친 특별한 공부와 여행을 사진과 글로 전시한다. 3. 당대 세미나 포럼 <근대인은 풀 수 없는 세 가지 문제> 15:30 -18:00 브뤼노 라투르, 아이리스 영, 그리고 한병철. 세 명의 철학자를 통해 우리 삶을 향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학과 정치, 정의와 페미니즘, SNS와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 들여왔던 세상을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뒤집어보자. 저녁식사 18:00 - 19:00 4. 길드다 워크숍 <길드다 일년과 2019> 19:00 - 21:00 꽃피는 3월에 문을 연 길드다. 그런데 달력은 어느새 11월을 넘어 12월을 가리킨다. 2018년 한 해 동안 길드다의 활동들을 되돌아보고, 2019년 새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난상토론.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일침과 해봤으면 하는 일에 대한 제안을 환영합니다! 5. 뒷풀이 파티 21:00 ~ * 그 외 자세한 사항은 010-7147-0410(차명식) 혹은 길드 다 홈페이지 guild.tistory.com을 참조해주세요! * 길드다 연혁 2018.3.24 오프닝 파티 2018.7.26-28 청년인문캠프 <돈, 몸, 사람> 2018.7.29-11.25 인문학 세미나 <당대를 읽는다> 2018.9.1-11.4 길 위의 인문학 <광주, 기억의 미로> 2018.9.16./10.21/11.18 <4인4색 유튜브 미니강의> 2018.12.6. 2018 길드다 청년페어 <YO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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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네트워크에서는 신고리 공론화과정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신고리공론화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공론화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정책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 숙의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탈원전은 가능할까? 등)에 대해 회원연속칼럼을 게재합니다. (<문탁뉴미디어> 편집자) [신고리5,6호기공론화-연속칼럼⑩ ] 공론화는 끝났다. 우리의 고민은 어디로 가야할까?  글 : 진달래 신고리 원자력 발전 5,6호기의 건설 혹은 건설 중단에 관한 공론화 위원회 시민참여단의 2박3일 종합 토론회가15일에 마무리 되고 이제 20일 공론화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몇 시간 남지 않았다) 민주주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단순히 찬반 투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충분한 숙의를 통해서 결정하는 방식의 공론화는 새로운 방식의 의사결정 절차이다. 종합 토론회에 참여했던 시민 참여단은 공론화 결과에 상관없이 공론화 과정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토론 과정을 보면 단순히 건설 중단, 혹은 건설 재개에 따른 비용 문제 혹은 전기 요금 상승 등의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앞으로 원전의 안전성 문제, 신재생 에너지의 전력 수요 충당 가능성, 원전 폐기물 안전관리, 지역 주민의 건강관리, 원전수출로 인한 경제성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리고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참여단은 다양한 연령, 지역의 사람들로 이들이 함께 모여서 토론하는 것 자체가 이번 공론화 과정을 ‘세대를 넘나든 토론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낳게 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토론회에서 "원전을 짓지 않을 경우 결국 석탄발전소나 가스발전소를 지어야 하게 될 것"이라며 원전 토대 위에 신재생에너지 성장 가능성을 제시하는 건설 재개 측과 "안전을 고려해 원자력 발전을 줄이는 추세"로 신재생에너지가 장기적으로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는 반대 측이 대립했다고 한다. 결국 양쪽 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당장 전기 수급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갈리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전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히 도시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갈수록 전기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만약 전기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으면 깜깜한 밤만을 생각하지만 실제는 모든 것이 스톱된다고 보아야 한다. 전기는 좀 더 편리한 삶, 좀 더 쾌적한 삶에 대한 욕망으로 우리 삶의 전반에 빠른 속도로 퍼졌다.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과 같은 가전제품은 마치 의, 식, 주와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품과 같이 되었다.  얼마 전 친구가 전기레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써 보니 화기도 나오지 않고, 미세먼지 걱정도 없어서 훨씬 편리하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집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못지않게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전기레인지를 쓰려면 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저 내 주방에서 먼지가 안 생긴다는 차이 밖에 없다. 더욱이 가스레인지는 쓰지 않을 때 끄면 되지만 화력발전소와 같은 대형 발전소는 한 번 가동하게 되면 끄고 켜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렇게 발전된 전기는 계속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발전소는 도시에 있지 않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발전된 전기는 전선을 타고 멀리 도시까지 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에서 고압 송전탑이 만들어내는 삶의 파괴 현장을 목격했다. 밀양의 할머니들은 당장 공론화가 발표되는 20일 전, 4일간 광화문과 청계과정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계시다. 실제 원자력 발전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를 논의하기 전, 우리는 내가 쓰는 전기가 어떻게 나에게 오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2천 년 전 맹자는 정치의 시작을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즉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하는 맹자의 정치는 매우 간단하다. 처자를 돌보는데 부족함이 없고, 돌아가신 조상님이 제사를 받들 수 있을 정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나와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이 같이 누려야 하는 것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 5,6호기 건설에 따른 공론화 역시, 맹자가 말한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공론화는 끝났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 5,6호기의 건설 중단, 혹은 원자력 발전소 폐기 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에너지, 즉 전기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NM

문탁네트워크에서는 신고리 공론화과정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신고리공론화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공론화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정책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 숙의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탈원전은 가능할까? 등)에 대해 회원연속칼럼을 게재합니다. (<문탁뉴미디어> 편집자) [신고리5,6호기공론화-연속칼럼 ⑨] 이로움(利)이 아닌 의로움(義)은 어떨까? 글 : 봄날 공론화(公論化)는 사회적 맥락을 떠나 이야기할 수 없다.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아도 ‘그 사회의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는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니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도 되는 일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입 가진 존재들이라면 누구라도 떠들어대는 가운데 그 말들이 수렴되어 그 사회의 정책으로, 또는 실천방향으로 형성되는 것이 공론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론화도 계속해서 함께 살기 위한 방향으로 정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공론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함께’(公)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 ‘함께 한다는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것(私)’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개인의 사사로운 것은 아무래도 개인의 이해관계에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그것이 모여(集) 어떤 큰 흐름을 이룬다 해도 그 흐름을 좆는 것은 그 흐름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함께 할 때뿐이다. 즉, 공적인 것은 사사로운 것의 합(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공론화를, 다양한 개인들의 생각을 모으고 반영해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끄집어내어 쓰는 어떤 잣대 때문이다. 바로 이해타산적인 태도,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자신 혹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공리주의가 그것이다. 인간이라면 처음부터 공리주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이로움’에 부합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떤 논리가 만들어 질 때, 다양한 척도, 다양한 측면이 반영되어야 할텐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공리주의에 빠져서 그것이야 말로 유일한 합리적 사고이고 진리이며,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다’거나 ‘옳지 않다’고 비난의 소리를 높인다. 나는 신고리 5, 6호기 원전 건설 중단을 둘러싼 공론화도 이 ‘이익’ 프레임 속에서 맴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원전 건설에 이미 많은 비용이 투입됐으니 지금 중단하면 손해가 아니냐고 말한다. 또 원전이 아닌 다른 전기생산 방식으로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니 이 또한 손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지 따져보면 답이 나오지 않느냐고 따진다. 그러면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왕 투입된 건설비용은 새발의 피요, 앞으로 더 많은 건설비용이 국민들의 혈세로 들어갈 터이니 손해라고 말한다.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계산해서 국민 각자에 그렇게 큰 손해가 가지 않는다고 되받는다. 물론 건설 중단을 주장하는 그룹은 원자력발전의 공포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이 비록 비용 면이나 발전능력 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더라도(이미 대체 에너지 생산기술은 원전기술에 맞먹거나 뛰어난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인간사회, 나아가 지구를 위해 원전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롭지 않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이익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한, 원전 건설을 밀어붙여야 한다, 중단해야 한다는 양쪽의 주장에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이미 3천 년 전에 맹자는 이로움(利)이 아닌 다른 것으로 세상을 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자신의 나라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데 이로운 방법을 묻는 왕에게 “왕께서는 왜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인의가 사람의 마음에 고유한 것인데, 이것이야 말로 공(公)적인 것이며, 이익을 따지는 마음은 나와 남이 서로 나타나면서 생겼으니 사사로운 것이다. 그러니 천리를 따르면 이롭지 않으려 해도 이롭게 될 것이니 먼저 이로움을 앞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두 강대국의 싸움을 말리려는 선비에게 맹자가 어떻게 싸움을 말릴 것인지 물었다. 선비가 그 싸움이 장차 이롭지 않음을 말하려 한다고 하자, 맹자는 ‘이로움’으로 설득하지 말라고 한다. 현자의 눈에는 이로움이 있으면 이롭지 않음이 있고, 죽을 때까지 이로움만을 누릴 수 없으며, 결국 이롭지 않음의 파괴적 결말을 맞게 되는 인간사회의 미래상이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맹자의 왕도정치, 인의의 정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바로 오랫동안 젖어있던 공리 프레임을 걷어낼 때 참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프레임이 있을까? 나는 파지사유를 만들어낼 때 우리가 공론화 과정을 거쳤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충분히 논의했고, 개인의 생각들이 충돌하고, 설득하고 설득당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개인의 사사로운 것, 더구나 이로움 같은 것은 자리잡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데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좆아서 공론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로움이 아니라, 이런 의로움. 이 사회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마땅히 해야 할 일, 의로운 일은 무엇인지, 원자력 발전이 이로운가 이롭지 않은가가 아니라, 그것이 의로운가 의롭지 않은가를 따져 물어보면 우리는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