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인문학축제


진선의 결혼을 앞두고. 우리의 인연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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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12년으로 거슬러 간다.

 

나는 서울 필동에 있는 남산강학원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대중지성이라는 인문학 강학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는 성남 분당, 사는 곳은 용인 수지. 수요일엔 퇴근 후 1시간 반씩 걸려 서울로 올라갔고, 자정 넘어 집에 들어왔고 토요일에도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필동에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던 나는, 신분이 유부녀였다 뿐이지 생활에 거리낌이 없었다. ‘신혼인데 그렇게 혼자 공부하러 돌아다니면 (남편은) 어쩌냐?’는 주변인들의 안타까움 섞인 오지랖에도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사람들은 늘 남편을 걱정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부부였고 나는 남편에게도 주말 하루는 공부를 하든 취미생활을 하든 친구를 만나든 알아서 하라고 했으나 그가 집밖을 나가지 않는 집돌이인 것이 왜 그를 걱정해야하는 부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애가 없던 그때나 애가 있는 지금이나 사람들은 나보다 남편을 더 걱정해준다. 남편이란 사람들은 아내가 없으면 안 되나?


잠시 딴 길로 샜는데, 하여간에 인문학 공부와 직장 일에 양다리를 걸치던 무렵, 어떻게 하면 회사 일에 내 영혼을 헌신하지 않고 퇴근 후 뇌의 전원을 꺼버릴 수 있을까, 월급쟁이의 삶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며 허구헌 날 그만둘 궁리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중지성 수업을 듣던 학인이 나에게 말했다.




매실 샘 회사에도 강학원 다니는 사람이 있대. 한번 만나봐.”




내가 다니던 회사는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업체. **. 머릿속을 암만 요리조리 굴려보아도 나처럼 이중생활을 할 만한 사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일과 자신을 합체시키며 살거나, ‘소확행’(작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 50만원 넘는 헤드셋이나 작고 좁은 외제차를 사거나, 새벽 수영이나 일본어 학원에 다니는 자기계발의 화신들이 우글대는 이 곳에 하등 쓰잘 데 없어 보이는인문 고전을, 무려 강독’( 책을 세 네 번은 밑줄 치며 읽고 요약하고 발제 글을 쓰는 행위)까지 해가며 공부할만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이름을 다시 물어 알아냈고 인트라넷에서 검색했다. (어쩌면 그쪽에서도 나를 이렇게 찾았는지도)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모를 정도로 운명의 텔레파시가 통한 어느 날, 메신저로 아는 척 했고, 3층의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조우했다. 얼굴을 몰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진선.


우리는 방금 만났지만 소식 끊겨 다시 만난 친구처럼 편하고 긴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공통분모를 찾아가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다른 점을 발견하며 재미있어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대부분은 회사 욕이었겠지만 다들 못 들어와 난리이던 이 멋지고 화려한 건물에서의 안락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고 안심할 수 있는 동지를 발견한 기쁨에 그 날 오후 참 마음이 따듯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던 대중지성 세미나를 열렬히 전파했으며 다음 학기엔 같이 하자고 꼬득 였다. 평일 퇴근 후, 서울까지 1시간 반 거리를 간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인내와 열정으로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같이 다니면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줄 수 있지 않겠냐며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다. 



역시나 직장일과 공부의 병행은 쉽지 않았고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는 반년이 흘렀고 겨울을 지나며 우린 멀리 서울까지 갈 필요 없이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공부를 해보자며 마음을 모았다. 사내 책 모임을 만들었고 협동조합 공부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나처럼 조직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의외로 있었고 일과 삶의 밸런스에 대한 고민 (‘요즘 말로 워라밸‘),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꿈과 희망, 갈증으로 가득 찬 동료들을 모아 책을 읽었다.


이런 모임을 진작 했더라면 회사 생활이 그토록 힘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는 이미 나와 진선 둘 다, ‘퇴사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고 있었다. 누가 더 먼저 퇴사 할 것인가, 언제 조직장에게 말하느냐, 아슬아슬한 눈치 작전이 오고가던 차, 진선이 먼저 퇴사를 했다. 퇴사할까말까 고민하던 사람에게 바람 팍팍 넣은 건 나였는데 먼저 나가버리다니! 나도 꺼낸 말에 책임을 져야겠단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뭔지 모를 경쟁심이 쓰잘 데 없는 곳에서 발휘했었는지,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서였는지, 한 달 후에 퇴사를 했다.



 

육아를 잘하기 위해 일을 포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닥칠 출산과 육아는 딱히 퇴사할 구실을 찾지 못한 나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를 했다. 아무에게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겐 너무도 확실한 이유였고 명분이고 방패였다.

조직생활에 대한 회의, 일에 대한 비전, 공부를 하면서 생긴 의문, 장차 육아와 일을 어떻게 병행할지에 대한 고민, 모든 것이 겹치며 회사를 그만둘 이유에 도달했다.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 “


( '퇴사라는 환상‘ - <엄마 되기의 민낯> / 신나리 지음, 246p)

 



퇴사 한 후 나는 매일 문탁에 갔고 그곳으로 또 진선을 끌여 들였다. (내 기억엔 진선이 적극적으로 문탁을 찾은 거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탁 선생님들은 참으로 귀했던 30, 게다가 애도 없고 결혼도 안 한 처자들이 들어오자 반색하며 니들끼리 뭐라도 해보라며 등을 떠밀어줬다.그래서 우리가 기획한 것이 도시부족 세미나였다. 이때 했던 고민은 진선의 책 <적당히 벌고 잘 살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문탁은 나에게 마을이라기보다 그냥 공부하러 다니는 곳이었다. 그런데 매실(신나리)은 이곳 작업장에서 재봉틀도 배우고 디자인 강좌도 열고, 반찬도 사다 먹으며 문탁 생활에 쉽게 적응했다. 우리는 둘 다 신참 백수로서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도 잘 살 수 있을지 궁리하는 데 쿵짝이 잘 맞았다. 매실은 앞으로 돈을 벌고,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지를 모색하는 공부와 활동을 문탁에서 해보고자 했다. 우리는 2030이라고 세대를 한정 짓고 새로운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 <적당히 벌고 잘 살기> / 김진선 지음, p221>

 



, 경제, 자립, 주거, 부동산 등 청년들에게 핫한주제를 가지고 책을 읽고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를 활동으로 연결 짓자면서 강좌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텃밭도 일구었다. 그러나 공부의 열기와 달리 활동은 미적지근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활동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식적으로는 백수였지만 나도 선배들과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며 동시에 매주 세미나 하기에도 벅찼다. 그러다보니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거나 다음에 하겠다라는 변명이 반복되고 점점 빠지는 사람이 늘었다. ... 즐거워야할 활동이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쪽에선 미안한 마음이 쌓였다....그러는 사이, 나와 같이 2030 도시부족 모임을 기획했던 신나리는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 


( <적당히 벌고 잘 살기> / 김진선 지음, p222>

 


나는 계획보다 빠르게 임신을 했고 출산이 임박했다. 출산 직전까지 세미나에 참석했기 때문에 출산 후에도 바로 돌아올 것처럼,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으러 떠났다.’


그러나 아기 낳고 애 데리고라도 세미나에 가겠다는 포부는 처절한 독박육아로 좌절되었다. 좁은 집에서 아이와 단 둘이 부대끼는 24시간 나홀로 육아는 엄마의 운신 뿐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 상당 부분을 잡아먹고 사람을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힘이 있었고,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가보려 해도 아이가 똥이라도 싸버리면 시간 맞춰 가기가 어려워지고, 맘 잡고 나가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나고, 그렇게 여러 번 엎질러지다보니 점차 의욕이 떨어져갔다.


 

늦어도 출산 1년 후엔 나의 일과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짐작하겠지만 계획한 어떤 것도 3년 동안 하지 못했다...... 일에서도 공부에서도 동료들에게 계속 거절하며 빚지는 기분이었다. 질질 끌고 있는 내가 한심했고 답답했지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랐다. ....열정으로 타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 홀로 육아로 체력도 의욕도 소진했고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정신 차려 보니 너무 멀리 떠밀려 왔다. 나 여기 있다고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모두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 ( ‘단절의 시작’ -<엄마 되기의 민낯> / 신나리 지음,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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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비슷한 경로를 거쳐 온 우리의 삶은 출산과 육아로 갈리게 되었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출산과 육아가 여성이 잠시거치는 인생의 중간 과정 쯤으로 생각했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삶의 기반을 완전히 엎을 줄 예상 못했다. ‘잡채란 이름으로 문탁 샘들의 호의적 시선을 한껏 받았던 내 남편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육아와 가사를 자연스럽게 외면했고 심지어 아이로 퇴행하는 행동까지 했으며 (왜 반찬을 못 꺼내 먹을까?) 어쩌다 한번 아이 안아주고 설거지 해주면서 대한민국 1% 남편이라는 생색을 냈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나보고는 견뎌라, 버텨라, 원래 그렇다.’고 말해주던 이들이 남편만 보면 세상 저런 남편 없다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 말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내가 바닥에 늘러 붙은 밥풀을 떼어내고 똥을 치우고 남편과 여기가 지옥인가 싶을 만큼 처절하게 싸우는 동안, 진선은 문탁에 남아 2030세미나를 (어쩌면 힘겹게) 이끌고 있었다. 당시 진선의 자세한 속사정과 내막은 모르겠으나 어쨌건 그럼에도 문탁생활에 적응해가며 문탁에서 밥도 하고 요가도 가르치면서 자신의 활동 터전으로 삼는 거 같았다. 그리고 회사 바깥의 경험과 대안적인 공동체들을 인터뷰해서 <적당히 잘 먹고 잘 살기>라는 책을 냈고 우동사라는 주거 공동체에 들어갔고 거기서 남자도 만났다고 한다.

 

나는 아이 낳고 애 키우는 동안 문탁에도 진선에게도 부채감 같은 게 있었다. 진선에게 문탁을 소개한 건 나였는데 애 키운다고 발길을 끊어버린 것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진선은 문탁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차곡차곡 해나갔던 거 같고 우동사에 둥지를 틀고서도 문탁과의 네트워킹을 유지한 것이 나는 든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동반자까지 만났다고 하니, 내가 가졌던 조금은 미안했던 마음을 거두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 인문학 공부를 계속하진 못했지만, 독박육아를 하며 차곡차곡 한을 쌓아온 덕에 글로 분출할 원동력이 생겼고(?) 출간까지 하게 되었다. <엄마 되기의 민낯>. 부제는 <독박육아 구원 프로젝트> .유식한 티 철철 흐르는 인문학 서평집을 내고 싶다던 오랜 소망과 달리 좋은 부모/가정/교육카테고리에 속하는, 육아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읽은 이들이 평하길 결혼할 마음이 싹 사라지는 책이라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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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4년부터 각자의 길을 간 우리. 지금은 2018. 진선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이미 가족처럼 살고 있는 사람과 의례를 치룬다는 것이 꼭 필요할까, 그게 뭐 대단한 의미겠느냐, 그래도 해주신다니 편한 마음으로 참여하겠다, 하는 담백한 진선의 글을 읽으며 결혼 8년 차에다가 엄마 경력 5년 차, 남편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휴전 중이며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나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스몰웨딩이니 특색 있는 결혼식이니 하는 컨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이후의 삶이었다. 신기하게도 서로가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는 절차를 치루며 공식적으로 보장받는 부부가 되고 나면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지고 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이 달라짐을 나도 겪었고 주변에서도 숱하게 보았다. 결혼 제도와 가부장제의 중력은 참으로 강해서 그 안에 통속적으로 포섭되지 않을 거라 자신했던 나란 사람도 집안에 끌어 앉혀졌고 애를 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육아의 무게가 여자에게 확 쏠리면서 그걸 바로 잡으려고 버둥거리기도 전에 정신 못 차리게 휩쓸리게 되는데, 만약 아이가 없다면 정말 동등한위치의 동반자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회오리처럼 주변을 싹쓸이 해버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해체하고 다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면, ‘결혼이라는 것도 일종의 서로를 법적인 보호자로 지정하는 공식적 파트너 쉽의 관계이자 제도 정도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진선이 아이를 낳는다면 꼭 육아/가사는 체력이 훨씬 좋은 남자인, 남편이 99% 다 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라, 남자는 출산과 모유수유 빼고 다 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야겠다, 는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혹시 나는 진선의 결혼과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걸까?^^ 내가 다시 결혼한다면 여자와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ㅋ)  

 

어쨌건 복잡한 생각은 잠시 거두기로 하고 (이건 축문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문탁에서 벌일 혼인 잔치를 기대해 본다. 진선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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