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방

내공프로젝트 <고전공방>은 근대의 외부를 탐사하기 위해 동아시아 사유의 정수를 공부하는 장입니다.

<曰可曰否 논어> 9회- '갑질'하는 엄마

2018.04.29 22:40

세콰이어 조회 수:116

●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 입니다.



옹야(雍也)편-2절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애공이 물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호학합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안회가 호학하였습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거듭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 명이 짧아 죽고 난 다음에는 없습니다.

호학하는 자에 관해 듣지 못했습니다.


  매년 새 학기에는 담임선생님 상담 주간이 있다. 학기 초에는 대부분 선생님이 아이들 특성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시간 내어서 상담해봐야 피상적인 얘기만 오간다. 올해 중3인 둘째의 담임선생님은 직설적인 편이었다


 어머니 OO이는 공부에 별 흥미가 없어 보여요.”   머리끝이 쭈뼛 섰다

 “..맞아요 선생님. 내년에 고등학교에 가야하는데 걱정이에요.” 나는 굽실 모드로 태세 전환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공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나를 달랬다.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늘 환하게 웃고 명랑한 아이라는 인사를 덧붙였다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공부가 재미없냐고 물었다.

                                

 ". 난 수학만 재밌어.” 마음이 심란해 진다저녁 먹고 인터넷 서핑하고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는  아이의 태평한 모습을 보니 문득 울화가 치민다 “이제 그만 좀 빈둥대고 책 좀 보지!” 커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나는

 일단 공부해. 공부 하다보면 뭔가 길이 보일거야.”라고 궁색한 답을 내 놓았다.


공부.jpg


논어를 읽으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해야 한다고 수십 번

외우면서 현실의 나는 시험을 위해 아이를 채근한다아이가 중3이 되니 마음만 앞서서 일주일에 2,3번은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는다한바탕 잡도리를 끝내고 책상에 앉아 논어를 펼쳤다.


안회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습니다.”


문탁에서 공부하며 호학자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매일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지향했던 나는 지난 8년간

무엇을 했던 것일까불과 10분 전에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본다. 나는 아이를 훈계한 것일까, 나의 노여움을 옮긴 것일까.

불천노.jpg


공자는 안회가 호학자인 이유로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 못을 거듭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안회가 남에게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다는 흔히 속담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지 않는다.’로 해석한다.

종로에서 뺨을 맞아 화가 난 감정이 한강에 갈 때까지 풀리지 않아 애먼 사람에게 분풀이하기도 한다. 이는 분명히 잘못이다.


그런데 A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감정을 B에게 옮기지 않기 이전에 감정이 발생한 원인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공자는 오직 인자(仁者)만이 사람을 제대로 좋아할 수 있고, 또 옳게 미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을 제대로 좋아하고,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은 기뻐할 일에 기뻐하고 슬퍼할 일에 슬퍼하는 것이다.

내 감정이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드러난 상태가 인자(仁者)의 덕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들의 빈둥거림을 보고 화가 났던 것은 올바른 감정일까?


빈둥.jpg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여느 날처럼 빈둥댔다.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던 것은 선생님과의 상담으로 실망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불안한 미래, 놀기만 좋아하는 아들에 대한 실망이 켜켜이 쌓여 내 감정을 스스로 심란하게 만들고

그대로 아들에게 퍼부었다. 내 노여움의 대상은 아들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걱정과 불안이 만든 것이다.


내 감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갑이고, 아들이 을이기 때문이다.

갑질의 다른 말은 천노(遷怒, 노여움을 옮김)이다. 최근 뉴스에 대한항공 모녀의 갑질 동영상이 보도되었다.

화면 속의 그들은 악악대는 소리로 자신의 화를 남에게 격렬하게 배설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갑질하는 오너의 모습 위로 아들에게 화를 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화를 옮겼는가내가 옮긴 화를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순간 솟구친 화를 아이에게 고스란히 옮긴 것 뿐이다.


갑질.jpg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는 사춘기 아이이다. 아이는 뭘 해도 심드렁한 중년의 나와 달리 (공부 빼고) 뭘해도 재밌을 나이이다. 사춘기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마음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주자가 말하는 격물(格物)’이다.

아이의 이치를 깨닫고 내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나는 화를 옮기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생물과 같아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다양한 감정이 마음에서 일어날 때 적절한 것인지 스스로 묻는 과정이 공부이다.

공자가 안회를 호학자라고 칭했던 것은 안회가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회는 끊임 없는 자기반성을 했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을 수(不貳過) 있었다.



※ 다음 주 (5월 7일)는 휴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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