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방

내공프로젝트 <고전공방>은 근대의 외부를 탐사하기 위해 동아시아 사유의 정수를 공부하는 장입니다.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수천수괘> 오늘은 먹구름, 내일은 소나기 뒤에 무지개


수천수괘.jpg



 

소나기구름.jpg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고아직 비는 내리지 않을 때가 있다한 차례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리면 좋으련만공연히 발길은 어수선하고 뭔가 하다 만 기분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수천수괘는 이렇게 하늘에 물이 머물러 있으면서 아직 비가 되지 않고 비의 기운이 잠겨있는 형상을 가진 괘이다괘상으로 보자면 하늘을 뜻하는 건(위에 물을 뜻하는 감()이 있으니 구름이 하늘에 머무르는 형국이다비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괘한 바탕 시원한 빗줄기가 내린 뒤높은 산위에 무지개가 걸리는 괘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진수를 보여주는 수천수괘이다.


有孚光亨貞吉利涉大川

()가 믿음이 있으면 밝게 형통하고 곧으면 길하여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初九需于郊利用恒无咎

초구는 교외에서 기다린다일정함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九二需于沙小有言終吉

구이는 모래사장에서 기다림이다약간 말이 있으나마침내 길할 것이다.

九三需于泥致寇至

구삼은 진흙에서 기다리니도적이 옴을 초래할 것이다.

六四需于血出自穴

육사는 피에서 기다리나 구덩이로부터 나올 것이다.

九五需于酒食貞吉

구오는 술과 음식으로 기다리니 바르면 길할 것이다.

上六入于穴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終吉

상육은 구덩이에 들어가는데불청객 세 사람이 오니공경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수괘의 주인공은 단연코 군주의 자리인 구오이다수천수괘의 괘사 전체가 구오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상괘의 가운데 자리인 만큼 힘도 있고성실함의 덕이 높아머지않아 구이를 비롯해서 뜻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그를 찾아올 것이다다만 아직 험한 여정을 견뎌야 하는 과제가 군주에게 놓여있다군주가 자리한 괘가 감괘이고감괘의 성질은 물살을 헤쳐 나가는 험난함이기 때문이다하괘인 건괘는 위(하늘)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어 일단 위로 올라가 구름으로 자리잡았다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번복할 수 없는 일이고 군주는 음양이 화하여 스스로 비가 되기를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에서 주자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군주에게 힘주어 말한다
마땅히 기다려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작위(作爲)하는 바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구름이 비가 되는 것은 기운이 돌아야 하는 일인데 억지로 일이 되게 하려고 도모하지 말라는 것이다예컨대 송나라 사람이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벼모종을 잡아빼서 말려 죽이는 일 따위는 절대 하면 안된다기다림은 시간만 지나면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믿음을 닦거나 몸을 바르게 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그런데 그 노력을 억지로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고 주자가 말하고 있으니 어쩌라는 건지...
 

고수(高手)만이 기다릴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영 납득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살아가면서 기다려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 성급히 일에 뛰어들어 낭패를 본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무슨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더구나 힘과 능력즉 실천력도 있고 주변에 머지 않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면지금 눈앞의 장해물을 그냥 보고 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거의 십 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해온 운동을 빗대어 봤을 때도 기다리는 것은 운동의 아주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스포츠에 대해 상상해 보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식으로 전광석화 같은 민첩성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함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물론 스피드는 어떤 운동에 있어서든지 중요하다그런데 스피드와 날렵함을 키우는 데는 기다림의 공력이 필요하다여러 가지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하는 말 중에 많이 하는 말이 기다려와 멈춰일 것이다몸을 움직이는 운동의 경우 눈과 귀손끝의 감각에 따라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하기 십상이다그런데 그런 즉시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은 대개 성급해서 헛손질을 하기 일쑤이다공이 내 쪽으로 날아올 때 감각적으로 그것을 잡는다고 느낀 순간공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기운껏 뻗은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다.



신유빈.jpg


하지만 오랜 수련의 시간이 없이는아무리 기다리라고 해도기다려야 할 순간에 기다려지지 않는다어느 정도 시간과 공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기다릴 수 있게 된다짧지만 기다리는 0.5, 1초의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판단이 서게 된다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그저 시간만 보낸 것이 아니라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속에서 나를 보고상대를 보고공을 볼 수 있는지 오래도록 연습해 왔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진 것이다.

 

기다리는 힘은 항상성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수천수괘의 기다림은 일촉즉발의 위태로움긴장 속의 것은 아니다나를 도와줄 사람을 못찾아 전전긍긍하거나 큰 일을 도모하면서 다리 한 번 편하게 뻗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오효는술과 음식에서 기다림이니 정하면 길하다고 되어 있다군주의 자리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니 얻지 못할 것이 없다군주가 편안히 술과 밥을 먹으며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소동파는 군주가 기다리는 것은 하괘의 건()이라 했다건은 양을 세 개나 장착한힘이 아주 센 존재이므로 힘으로는 당할 수 없다큰 일을 하려면 건괘 같은 힘 있는 동지가 필요한데그들이 아직 나의 편이 아니라면그들의 마음을 얻기를 기다려야 한다건은 강건하기 때문에 얕은 술수로 그들을 꾀어낼 수도 없다그래서 초구는 아득히 먼 곳에서(需于郊), 구이는 모래밭에서(需于沙), 구삼은 진흙탕에서(需于泥기다려야 하고건괘와 근접한 육사의 자리에서는 강한 적들을 맞아 험난함에 처하지만(需于血이것도 맞장을 떠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다툼의 소지를 적절하게 피하면서 그들과 화합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운동의 유혹은 강력하다운동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나 힘을 더 그쪽에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처음엔 한 시간이면 흠뻑 땀에 젖는데 두 시간세 시간을 해도 만만하게 느껴지면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된다.대부분 운동하면서 다치거나 건강을 해치는 것은 이처럼 강렬한 욕구를 적절히 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나이에 비해 일찍 퇴행성 관절염이 찾아온 내 몸을 아랑곳 않고 틈만 나면 탁구장을 찾아나서다 보니 무릎이 붓고 물이 찼다.(감괘의 험난함은 물의 성질로 인한 것이기는 하다.^^) 골절이나 근육파열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무시하거나 가볍게 보아 넘긴 결과이다내가 수괘의 구오였다면 버선발로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느긋하게 스포츠 경기를 보는 즐거움도 느끼면서 무릎이 회복되기를 기다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문제는 멈추고 기다리는 때를 판단하는 현명함과 굳건한 의지()가 나에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군주에게 있어아래에서 한걸음씩 다가오는 건괘의 믿음직한 신하(그것도 세 명이 세트로)의 유혹은 운동보다 훨씬 클 것이다함께 하고 싶은 큰 일이 있는데 그들이 아직 멀리 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림.jpg 


그렇다면 기다릴 줄 아는 군주의 현명함과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초구의 효사에서 언급한 일정함(), 즉 상()이 그 요체일 것이다. ‘항상됨’ ‘떳떳함으로 표현되는 이 덕목은  그것이 건의 항상됨이기 때문에 비록 아래에 있지만 나아갈 것을 잊지 않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은 위(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이 본질이므로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본래 있어야 할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 한다안주하지 않는 항상됨. 일상을 일상대로 단단히 유지하면서언젠가는 자신이 우뚝 설 날을 기다리는 스탠바이(stand-by)의 자세설령 그 날이 결국 오지 않을지라도 구오의 군주에게 일상의 변화는 없다그는 매일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자신이 도모하는 일을 준비하는 일련의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오늘은 먹구름이지만내일은 소나기 뒤에 무지개가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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