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방

내공프로젝트 <고전공방>은 근대의 외부를 탐사하기 위해 동아시아 사유의 정수를 공부하는 장입니다.

<어리바리주역> 8회 비괘(比卦)_친함의 조건

2018.07.11 23:16

세콰이어 조회 수: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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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단점, 정리 강박

8번째 괘인 비()괘는 사() 다음 괘이다. ()괘가 모인 사람을 규율()에 맞게 다스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 반면 비()괘는 사람 사이의 친밀함()을 강조한다. 나는 질서와 규칙을 좋아한다. 주변은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어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물건만 잘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정리를 잘 하는 편이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 싫은 사람을 미련 없이 잘라낸다. 문탁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뾰족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지만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모양이다. 8년간 나를 지켜봐온 게으르니와 곡부여행을 준비하다 세콰이어는 문탁에 친한 사람 없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 곁을 잘 내주는 편이 아님에도 막상 다른 사람에게 친한 사람 없다라는 말을 듣는 기분은 복잡했다. 공동체인 문탁에서 다른 사람과 금을 긋고 지낸다면 나는 왜 문탁에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 친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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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친함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문탁에는 많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들은 다른 관계에서 형성된 친구와 좀 다르다.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들은 비밀을 공유하거나 고민을 털어 놓으며 가까워졌다. 그러나 문탁의 친구들과 사적인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문탁의 활동과 공부가 바빠서 사적인 얘기를 꺼낼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친구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함께 할 공부가 있고,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는 두 사람이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생떽쥐베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마주 보며 서로 달래주는 관계였다. 그러나 문탁의 친구들은 건조하다. 애들 뒤치다꺼리가 힘들다고 징징대면 그냥 집을 나와. 애들 뒤치다꺼리를 왜 해?”라며 직격탄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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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탁 친구들과 함께 한 중국 태산에 올랐다. 우리는 출발 전부터 일정을 공유했고 보이지 않는 깃발을 흔들며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간혹 함께 가던 일행이 보이지 않으면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친함은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와 느끼는 연대감이다. 그렇다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은 모두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비괘는 사괘(師卦)처럼 양효 1, 음효 5개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사괘에서는 구이(九二)에 양효가 있는 반면 비괘는 구오(九五)에 양효가 1개 있다. 비괘의 양효는 군주를 상징하는 5의 자리에 딱 하나 있기 때문에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이치로 설명한다. 괘상은 물이 땅 위에 있는 모습으로 지극히 가까워 간격이 없음을 나타내니 더할 수 없는 친밀함을 표현하고 있다. 친밀함이란 무엇일까?


내면의 고민을 털어놓고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를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문탁의 친구들은 듣기 좋은 말로 귀를 달콤하게 하지 않는다. 때로는 직설적인 말로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늘 익숙한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려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샘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고 살아야지.”라고 무심하게 툭 뱉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이후 하기 싫은 일을 직면할 때 마다 인디언샘의 말이 생각났다. 단전(彖傳)에서는 ()는 돕는 것()이니, 아래가 순히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디언샘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고 따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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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리 속에서는 반드시 친함을 구해야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비는 근원하여 점치되 원, , 정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비괘의 괘사이다. 성백효선생님의 해석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알 수 있는 것은 비괘가 길()한 괘라는 것일 뿐. 다만, 길하기 위해서는 원(), (),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 조건을 잘 살피는 것이 원서(原筮)’이다. 여기서 말하는 ()’는 시초점과 거북점과 같은 점이 아니라 꼼꼼하게 따지고 헤아린다는 의미이다. ()은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논어에서 공자가 강조하는 인()과 같은 덕목이며 영()은 항상하고 오래한다는 의미이며 정()은 정도(正道)를 얻었음을 뜻한다. 즉 군주가 백성을 친밀하게 대하고자 할 때 이 세 가지에 근거해야 하며, 백성도 군주를 따를 때 살펴야 할 체크리스트 항목이다. 이러한 항목은 군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리와 함께 잘 지내기 위해서도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不寧 方來 後 夫 凶

편안하지 못하여야 바야흐로 올 것이니, 뒤늦으면 강한 남자라도 흉하리라.

 

외롭거나 불안하면 누구나 곁에 둘 사람을 찾게 마련이다. 수다도 상대가 있어야 떨지 않겠는가. 필요에 의해서 급하게 사람을 찾다 보면 위에서 말한 원(), (), ()의 기준은 멀리 한 채 친하게 지낼 사람을 성급하게 구하게 되어 결국 흉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혼자서 살 수 없으며 사람의 무리 속에는 친함을 구하는 것이 살아가는 정도(正道)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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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도 무리지어 잘 사는 군....


4.친밀함의 바탕은 믿음이다

 

初六 有孚比之 无咎

초육은 성신(誠信)을 두어 친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해석은 믿음을 바탕으로 친해야 허물이 없다고 하니 어찌 된 일인가? 정이천은 마음 속에 믿음이 있는 것(信之在中)으로 해석했다. 초육(初六)은 비괘의 가장 처음 효사로 서로 친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바탕이 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앞서 같은 방향을 함께 가는 것이 친밀함이라고 했다. 특히 오랫동안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본이다.

2018년, 나는 무척 분주한 한해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가만히 세어보니 16역을 하고 있더라. 개 발에 땀나듯 뛰어다니며 헉헉 거리며 바삐 지내다 보니 책상에 앉기가 힘들다. 마음 같아선 문탁의 세미나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싶다. 정리 강박이 있는 나이지만 세미나 정리는 잘 안 된다.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한 친구들의 친함과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내 공부가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두면 다른 친구도 영향을 받는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 문탁에 친한 사람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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