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방

내공프로젝트 <고전공방>은 근대의 외부를 탐사하기 위해 동아시아 사유의 정수를 공부하는 장입니다.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불통의 작은 씨앗

 

 

  오랜만에 어린이 낭송서당의 훈장을 다시 맡게 되었다. 늘상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나의 문탁 동기 진겸서. 그 사이 초등 3학년이 된 겸서는 동네 개구쟁이가 되었고 첫날부터 나는 내리 겸서의 이름을 불러대야 했다. 거기다 나를 더욱 당황시킨 것은 쓰기 시간이었다. 문장 해석을 쓰라는데 겸서는 알 수 없는 말들을 가득 채워 놓고 의기양양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피카추 말이라고 했다. 에고 불통의 난세를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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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비(天地否)

 


고집불통의 시대 군자가 사는 방법

  ‘천지비(天地否)’, 천지가 소통하지 않으니 난세의 괘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니 이치에 맞아 안정적이다. 그럼에도 어찌 불통한가? 천지비 바로 앞의 괘는 지천태이다. 여기서는 하늘과 땅이 서로 자리가 바뀌어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거꾸로 된 형상이다. 그러나 오히려 소통의 시대를 만들었다. 서로 자리를 바꾼 역지사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천지비의 불통은 하늘과 땅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 있되 그 자리만을 견고히 지키며 고집하는데서 비롯된다. 그야말로 고집불통이다. 천지의 기운이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생성하지 못하고 인간의 도리마저 막히게 되니 무엇을 한들 제대로 이루기 힘들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시대에는 군자가 살아가기에 더 힘든 때라고 말하다. 그러나 군자는 이러한 시대도 살아내야 한다. 그들이 불통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겸양이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검덕(儉德)’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을 덜어내고 낮추어 공을 자랑하지 말고 지위를 앞세우지 않는 겸양의 자세로 살아감을 말한다. 그리하여 군자는 천지비의 불통의 시대를 환난을 피하고 나아가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수련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변화는 자연의 이치이니 반드시 이 시대 또한 지나가고 다름의 시대가 도래 한다. 그러나 경거망동 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을 묶어 두고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주역이 제시한 불통의 시대를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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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알(PR) 시대의 불통

  불통! 이 말은 지난 박근혜 정부를 일컫는 대명사였다. 당시 그녀의 불통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흔히들 고집불통인 사람을 향해 도대체 남의 말을 듣지 않는군.”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불통의 원인이 대부분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막상 소통을 하고자 할 때는 듣기 보다는 말하기에 집중을 한다. 말로써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것이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금의 시대는 수용보다는 나섬이 더 인정받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자신의 피알(public relations)에 골몰해 있다겸손보다는 자기를 내세워 인정을 받는 것이 미덕이고 또한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역지사지는 이제 사전에서나 있는 말일 뿐더러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양보를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배려는 손해가 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욱 자신에게 몰두하고 스스로를 강고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남의 말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자기 말만 하는 것,  이는 하늘과 땅이 자신의 자리만을 고집하여 불통의 시대를 만드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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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추 말 

  문탁 동기에서 서당의 훈장과 학동으로 만난 겸서와 나는 늘 자기 말만했다. 나는 겸서에게 '피카추 말'은 잘못된 것이니 그렇게 쓰지말고 바르게 써보라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친절한 선생의 말만 했다그리고 겸서의 '피카추 말' 또한 선생의 말따위 상관없다는 듯 계속 되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문탁 2층은 "겸서야"를 부르는 내 목소리로 가득 찼다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며 서당수업을 진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여전히 피카추 말을 하고 나는 또 여전히 선생의 말을 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겸서을 붙잡고 물었다.

겸서는 왜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걸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

“... ... ... ...”

 나는 무릎을 꿇어 눈을 맞추고 귀를 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인양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장난도 치지 않고 바른 자세를 유지한 채 말이다. 그리고 '피카추 말'이 아니라 겸서의 말을 썼다. 이렇게 멋지게 썼다. "놀고 싶을 때 용기를 내서 자신감을 가지고 같이 놀자고 말한다. 그것이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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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만이 가득 담겨서 빈자리가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 올 수 있겠는가. 나는 겸서 앞에서 두 귀를 꽉 막고 있는 잘 해보겠다는 욕망만 가득 찬 어리석은 선생이고자 한 내 모습을 들키고 만 것이다. 이 후 겸서의 피카추 말은 가끔씩만 등장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천지비'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지 않는 세상의 불통과 또 그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군자의 이야기 비해 겸서와 나의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이런 일상 속에서 작은 불통의 씨앗들을 간과함으로 꽉 막힌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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