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강독

녹색 자본론 — 이슬람을 위해서


  1. 일신교를 둘러싼 인지론적 수업

  

  일신교는 자기증식을 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역사를 통해 자기증식의 능력을 가진 것에 대한 불안한 시선과 의심이나 적의는 대체로 일관된다. 이것은 특히 유대교와 이슬람에서 두드러진다. 그들은 말이든 이미지든 화폐에 관한 것이든, 거기서 자기 증식의 능력이 발휘되는 현상이 일어날 때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의 연구에 의하면 유대교 형성 초기에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발달하는 동안, 그들의 사회가 농경민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던 것이, 자기 증식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길렀다고 여겨진다. 이집트로 이주한 요셉의 자손들은 나일강 하류의 고센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수를 늘리고, 양과 같은 작은 가축을 키우면서 이집트인과 마찬가지로 농업에 종사했다. 유대인들은 선조로부터 전래된 ‘아브라함의 종교’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식물과 동물의 증식을 관장하는, 인간과 동물이 합체한 모습을 한 신들에게 제사 지내고 신심을 갖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가나안 지방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농경민의 신들은 풍요로운 수확을 관장하는 것을 첫 번째 기능으로 삼았다. 홍수로 윤택해진 대지에 파종한 밀 종자가 수확할 때는 몇 천배로 그 수가 증가되는 것처럼, 사육하는 가축들이 잇따라 번식하여 수를 늘리는 것처럼, 농업은 자연의 생명력을 불러내는 촉매와 같은 노동을 대지에 베푸는 것에 의해, 양을 증대시키고 수를 증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증식의 소망과 결합한 신들은 당연히 풍요로운 증식을 실현하는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

  바알이나 마르도크 등의 이름으로 불린 이러한 풍작의 신들은 당시 중근동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대제국에서 성대하게 모셔지고 거대한 존재로 성장하였다. 그 신들은 공통적으로 인간과 동식물이 합체한 하이브리드적인 모습으로 상상되었고, 그 모습은 크고 작은 상으로 그려져, 그 상의 주위에는 오감을 충분히 자극하는 호화로운 제사가 행해졌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풍요로운 분위기에 둘러싸인 이들 풍작의 신들은 우선 상상계의 존재로, 모체와의 일체감에 근거한 상상계의 존재답게 실제로 육감적인 감촉을 갖추고, 사물을 증식시키는 힘을 사람들의 상상계에 발휘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농경민의 신들은 ‘마술성’을 첫 번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마술은 현대의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연달아 비둘기를 꺼내 보이듯이, 무에서 유를 발생시키고 생명이 없는 금속 같은 물질로 잇따라 아이를 낳게 하고 증식시키는 기술이다. 일신교가 성립하는 무렵까지 이 마술은 이미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 이미 이 마술적 사고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여자 성기를 연상케 하는 동굴 벽면에 말코손바닥사슴과 순록과 말 등 동물의 모습을 그린 사람들은 그 행위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도 사슴과 순록과 말이 새끼를 많이 낳아 이 세계가 동물로 가득 차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원시적인 증식 의례를 행한 것 같다. 앙드레 브르통이 『마술적 예술』에서 말했듯이, 인류 최초의 예술이 마술로 성립했다고 한다면 예술은 우선 상상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증식의 관념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발달해왔다는 말이 된다. 이집트나 바빌론의 도시에서 노예였던 유대인들이 우러러보던 웅장하고 화려한 풍작의 신들은 마술이자 예술이자 그리고 (나중에 이에 대해 상세하게 논하게 될) 자본인 신들로서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현대의 인지론적 고고학의 사고를 채용해보면, 일신교 성립 전야의 중근동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지구 상에 있는 우리와 같은 인류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가 생겨난 것은 3만 수천 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순록이나 메머드  무리를 좇아 북방으로 진출한 그들은 대빙하 군을 앞에 두고 생존하기 위해서 자기 대뇌의 뉴런조직에 혁명적인 변화를 실현하였다. 대뇌를 작게 하고 뉴런 조직에 상위 회로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성능 좋은 범용 컴퓨터와 같은 조직으로 바꾸는 데에 성공했다 (스티븐미슨의 『마음의 고고학』1 ). 

  그때까지의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의 대뇌는 무척 거대했다. 이는 그들의 대뇌가 특화된 기능을 분담하는 여러 컴퓨터를 늘어놓은 커다란 방으로 설계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컴퓨터, 친족이나 사회관계를 담당하는 컴퓨터, 자연의 동식물을 분류해서 그것이 유용한지 위험한지를 식별하는 박물학적인 지식을 담당하는 컴퓨터 등이 대뇌의 큰 방으로 나란히 놓여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 복수의 컴퓨터들 상호 간에는 아직 연결 회로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어 분야사회 분야박물학 분야 등의 사이에서 연상이나 비유나 대응을 이용한 횡단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현생인류의 대뇌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에 의해 다른 기능 영역의 사이를 연결하는 뉴런 조직과, 거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유동적 지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에 의해 인류의 사고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우선 다른 영역의 사이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질적인 영역이나 다른 것들 사이에서 동일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에 의해 은유와 환유의 조합으로 되어 있는 우리들의 언어가 완성되게 되었을(오늘날 알려진 모든 언어는 이러한 ‘유()’의 조직체 이외의 것이 아니다)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의 근간이 되는 동정(同定)의 능력이나 다른 것들 사이에 무언가의 ‘등가성’을 발견해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고도 이 변화를 통해서 발달을 이루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때, 현생인류의 대뇌에 출현한 유동적 지성으로부터 합리적 사고와 마술적 사고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질적 영역을 묶는 유동성을 획득한 지성은 은유 기능과 환유 기능을 조합한 언어의 구조를 산출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주변에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동정(同定)2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는 동일성을 발견하는 지성의 작용으로 세계가 합리적으로 조직화되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마술적 사고도 발생시킨다. 사고에 동일성을 만들어 내는 유동적 지성은 동시에 그 동일성으로부터 넘쳐흐르는 과잉 부분을 산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성능 범용 컴퓨터의 기능을 획득한 인류의 대뇌는 주변 세계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분류하여 그것을 복잡하게 조합해 자신들의 세계를 합리적으로 완성시켜 가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하지만 기술에 관해서는 현생인류는 그 정도의 독자성은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식의 특화 컴퓨터군 같은 대뇌를 가진 네안데르탈인이 석기제작의 영역에서는 훨씬 우수한 달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른 영역의 지식과 유동적으로 연결시키는 유()적 지성의 능력에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대에도 똑같이 말해진다). 그 똑같은 대뇌의 구조가 현실의 세계의 합리적인 틀을 넘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인식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유동하는 것, 자신의 능력으로 동일성의 틀을 넘어 증식을 달성하는 것, 스스로 생성 변화를 일으키는 것, 그것은 문자 그대로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힘이지만, 그 ‘것’에는 하우, 오렌다, 타마 등의 이름이 부여되어 마치 실재하는 힘 인양 다뤄지고, 또 그것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까지 등장하게 된다.

  유동적 지성이 가진 이 이중성을 대규모로 조직화한 것이 신석기 혁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만 년 정도 전에 개시된 이 운동 중에서, 농업과 동물의 가축화가 실현되고, 그것을 근간으로 ‘국가’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게다가 생기고서 얼마 되지 않아, 이 국가는 많은 지대에서 엄청난 권력을 가진 ‘대제국’으로 성장을 이룬다. 이러한 국가는 어디든지 마술적인 사고를 대규모로 이용하고 있다. 국가라는 것이 생기기 전은 자연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숲의 왕’과 ‘동물의 왕’(북방의 많은 지대에서 그것은 곰이나 늑대, 황금 순록의 형상으로 드러나 있다)이 행하는 마술적 기술이었다. 그런데 국가는 애초에 자연의 깊숙한 곳에 감춰진, 이 풍작을 일으키는 능력을 ‘인간 왕’의 권력이 소유하는 것으로, 사회의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했기 때문에 기묘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인간 왕’이 자연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것이 왕의 권력의 원천이라고 여겨졌다)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왕인 존재는 이제부터 자기 자신이 ‘동물의 왕’과 동격인 자가 되어야만 한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동물이나 식물의 신과 밀접한 연결을 가지고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여기에서 동물과 인간이 합체한 하이브리드한 모습을 한 이집트의 신들이나, 동물의 등에 올라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바빌로니아의 거대 신 등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상이 일신교 성립 전야까지 주로 중근동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의 대강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현생인류의 대뇌 뉴런 조직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로부터 신석기 혁명을 거쳐 거대 국가의 출현까지 이만 년 정도의 기간 동안 진행된 모든 사태는 하나의 연결인 것이다. 다양한 기능으로 특화된 여러 영역을 횡단적으로 접속하는 새로운 뉴런네트워크가 형성됨으로써, 우리 현생인류는 생겨났다. 그 결과 그때까지는 특화된 기능을 담당하는 방별로 갇혀있던 지성이 칸막이 벽을 넘어 유동하기 시작하고, 여기서 유동적 지성의 작동이 드러나게 되었다. 일신교 성립 이전에는 유동적 지성에 갖춰진 ‘유동성’이라는 것에 매우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었다. 이 유동성이 활발하게 작동한 덕분에 언어라는 것이 지금과 같은 구조로 진화를 이루는 것이 가능했고, 고정된 의미 영역의 칸막이 벽을 넘어서는 유동적 지성의 강도에 주목하는 곳에서부터 상징 사고와 그 표현인 다신교의 신들이 생겨 나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횡단성을 갖춘 유동적 지성은 일상생활에서 큰 역할을 하는 여러 영역에서, 특화된 지성보다도 훨씬 높은 강도를 갖추고 있다. 그 때문에 그 횡단적 운동을 이미지화한, 동물과 식물의 영역을 향한 변형을 이룬 신들은, 인간이 가진 힘을 훨씬 능가한 ‘초월성’을 갖추게 된다. 대제국의 왕들은, 이러한 신들을 숭배하고,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에 의해서, 국가의 권력에 갖춰진 ‘초월성’을 과시하려고 했다. 일신교를 산출하게 된 백성들은, 이러한 상상계에서 작동하는 ‘초월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율법서(토라)』의 전승에 의하면, 밝게 그러나 조용하게 타오르는 떨기나무로 모세 앞에 출현한 신은, “나는 있다, 나는 있음이라고 하는 자다(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말했다. 또 자신은 ‘야훼’라는 이름이라고도 알렸다. 생성하고, 변화하고, 증식을 일으키고, 변형하는 신이 아니라, 단지 ‘있다’라고만 말하는 신, 일체의 이미지를 거절하고, 단지 이름만을 가진 새로운 신의 출현. 여기서 인류의 ‘제1차 형이상학 혁명’ (미쉘·우엘벡 『소립자』)이 개시된다. 이때 일어났던 사건을 인지론적으로 표현하면 이러하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대뇌 안에서 발생한 유동적 지성의 작동 속에서 변형을 행하는 횡단적인 강도(이 강도의 본질을 ‘많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를 발견해 온 인류가, 그 유동적 지성의 깊은 곳에서 어느 것에도 한정되지 않는, 어디에도 영역화되지 않는, 어떤 특정한 성질에도 물들지 않는, 완전히 평온하고 두려운 힘을 넘치게 한 실제 무한을 발견하고, 그것을 ‘일(하나)’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실현된 대뇌 뉴런 조직의 혁명적 변화의 성과는 그대로이다. 즉 일신교가 생겨났다고 해서, 인류는 조금도 생물적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원래 대로다. 그러나 거기에 미세한 초점의 이동이 일어나고, 거기부터 ‘영적’ 비약이 실현되었다. 자신들의 존재를 특징짓는 유동적 지성의 작동 내부 또는 안에, 변화하지 않는 것, 생성하지 않는 것, 증가하지 않는 것, 줄어들지 않는 것, 조건 붙여지지 않는 것, 한계 지어지지 않는 것을 찾고, 거기서 횡단성과 변용성과 증식성보다 훨씬 근원적인 ‘초월’의 존재방식을 발견하고, 이것을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유동적 지성의 내부에서 더욱더 깊게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인지론적인 레벨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비약을 종교적·신학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일신교’의 성립이라는 것이다. 유동적 지성으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보다 깊게 자각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간은 ‘영적’으로 비약을 이루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 것이다. 

     *

  그렇다면 역사에 일신교의 출현에 의해 실제로는 무엇이 변했을까. 가장 큰 문제는, 마술적 사고에 실로 만만치 않은 적대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상상계를 채우고 있는 이미지의 풍요로움을, 조금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상상계의 풍요로운 힘과 일체가 되어 증식하거나 변형하는 것의 매력을 매정하게 부정하고, 상징계라는 유일신의 내적 구조와 현실이 완전히 일체인듯한 상태야말로, 유동적 지성을 본질로 하는 인류라는 생물이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할 목적지에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고가 나타나게 되었다. 일신교의 출현에 의해, 이 이후의 세계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남김없이 그려내는 것이 『율법서(토라)』 중의 한 장 ‘출애굽기’의 다음과 같은 기사이다.

  마술과 상형문자의 대제국 이집트로부터, 수 세대 동안 노예였던 유대 민족을 탈출시키는 것에 성공한 모세 일행은, 사막을 횡단하는 혹독한 여행의 도중 시나이산 기슭에서 숙영 할 막사를 설치했다. 신이 모세에게 혼자서 시나이산으로 올라오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신은 그때, 제임스·조이스의 표현으로 ‘무법자의 말로 적은’ 율법을 새긴 석판을 모세에게 주었다(조이스가 이때 신이 모세에게 준 율법을 ‘무법자의 말’로 쓰였다고 말한 것은, 오늘날의 성서학에 비추어봐도 올바른 견해이다. 유대민족을 표현하는 ‘헤브루’나 ‘헤브라이’의 어원은, 도망 노예나 불량배를 나타내는 ‘하베루’라는 말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백성이라는 것은, 국가로부터 도망한 하베루들이 형성한,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닌 율법에 의한 새로운 공동체였던 것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명령으로 시작하는 10개의 율법이 새겨져 있다.


  나는 너를 이집트의 땅, 노예의 집으로부터 이끌어낸 너의 신 야훼다. 나의 면전에서 너는 다른 신들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는 하늘에 있는 것, 아래로는 땅에 있는 것, 또 땅 아래의 물속에 있는 것의 조상(彫像), 어떤 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빌면 안 되고, 이를 섬겨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너의 신인 나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고, 나를 질투하는 아버지들의 허물을 그 자식들에게 벌주어 3, 4대에 미치게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명령을 지키는 자를 위해서는 은혜를 베풀어 천대에 미치게 한다. 너의 신, 야훼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야훼는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석1. 국내에는 『마음의 역사』로 출간.

 주석2. 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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