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인학당

5월 이달의 논어 1강 후기

2019.05.03 00:20

청량리 조회 수:47

공자님을 뵈온지 3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우리 학당에도 새 학인이 들어왔다.


나은영이 아니고, 나는영 님이다.


나 = 영(young) 이란 뜻도 있고,


나는 영(靈), 즉 flying soul 이란 뜻도 있고,


나 = 영(zero) 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문탁의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오는데는 많은 결단이 필요하다.


지속의 문제는 그 다음이겠지만, 첫 문탁 접속이 리인학당이라는 점에서


너무 감사하고, 또 뿌듯하다~




이번 달에는 공부(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1강은 시험없는 공부 편이다.


이 중에서 자장이 공자에게 벼슬을 구하는 장면에서부터 논란은 시작되었다.


왜냐면, 자장은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공자는 엉뚱하게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벼슬과 공부를 구별하고 있을까?



당시 기원전 4세기의 공부란 지금 문탁에서, 우리가 하는 공부와 조금 다르다.


벼슬이란 공부를 펼치는 장이고, 공부는 벼슬을 통해 도(道)에 이른다.


때문에 벼슬이란 지금의 공무원과는 다르다.


어쩌면 당시의 벼슬이라는 의미는 지금의 정치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자장의 에피소드를 들으면 그에게 벼슬은 녹봉을 얻기 위한 관직의 느낌이 크다.


왜냐하면 공자가 생각했을 때, 벼슬이란 구한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장은 벼슬 구하는 법을 공자에게 물었으니 공자님이 적잖이 실망하셨을 것이다.



공자는 벼슬로 녹봉을 받는 것은 늘 부끄러운 일이었다. (방유도, 곡 : 방무도, 곡, 치야~)


벼슬은 공부가 도로 나아가는 과정이지 녹봉을 받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공자는 농사가 공부와 같다고 이야기 하신다.

(경야, 뇌재기중의 : 학야, 녹재기중의)


공부가 이르는 곳은 도이지만, 그 과정에 벼슬을 불가피하다. 하지만 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농사가 이르는 곳도 도이지만, 그 과정에서 굶주림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여기서 사(思)는 실천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생각(思)이 곧 밭(田)일(心) 즉 농사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하는 일은 이룰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은 방향을 갖고 나아갈 뿐이다.


그래서 성기사(成其事) 하지만, 치기도(致其道)하다.


농사도 혼자서 이룰 수가 없다. 이웃도 필요하고, 물, 바람, 햇빛 등등도 함께 해야 가능하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동체에서 공부만 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려는 이유에는


아마도 조금의 공자님 말씀이 들어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