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이달 초 설날을 사흘 앞두고 이사를 했다. 멀리 움직인 건 아니고 그냥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가까운 이사. 버스 정류장에서 제일 가까운 아파트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귀가가 편해지리라는 기대는 번번이 무너지고 있다. 단지 내 깊숙한 옛날 집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평소 말의 목을 잘랐던 김유신의 소행을 비웃었던 터인지라 굳이 애꿎은 내 발목을 자를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습관이 덜 들었고 빠른 귀가에 대한 폭력적 수준의 절실함이 아직은 없기 때문일 뿐.

 

습관이 기억을 만들고 기억이 운명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흔히 운명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살면서 보면 습관의 힘이 훨씬 강해 보인다. 후기를 쓰는 비결은 후기를 쓰는 것이고 연애를 하는 비결은 연애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을 원할 때 굳이 다른 방법으로 돌아가려 들지 말고 바로 도전하라. 낯설고 어려워 보이더라도 습관을 바꾸어 가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깨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스스로를 깨고 나아가는 네 모습, 그것이 바로 원래의 네 모습이니라. 흰 수염 휘날리는 선사가 할 법한 말씀을 매끈한 인상의 들뢰즈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말로 반복한다. 너의 행위가 자아의 일관성을 배제하는 어떤 비밀스런 일관성을 네가 원래 지니고 있느니라.

 

행위하고 부서질 것인가 행위를 포기하고 자신을 지킬 것인가. 부서지는 자아 앞에 흩어진 사지 앞에 새롭게 솟아오르는 초인이 된 자아. 들뢰즈 2강을 재미있게 듣고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십년을 괴롭힌 트라우마를 딛고 힘든 행동을 결심한 친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차이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고 한다. 나와 너와 우리 주위의 무수한 입자들이 운동 속에 잠재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 운동은 이전의 거의 모든 잠재적, 강도적, 현실적 사건들에 영향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적 차이가 이런저런 힘, 강도적 차이를 형성한다. 수많은 밀고 당기는 부대낌 속에서 우리 사이의 밀고 당기는 온갖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차이고, 차이고, 또 차이고... 차이고 또 차이는 그 반복 속에서 차이는 무엇인가?

 

차이고 차이는 데서 무슨 차이? 하하... 후기를 쓰더라도 역시 술 마시고 쓸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글을 쓰지만 이윽고 글이 글을 쓰고 결국은 술이 글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일이 반복되더라도 그 속에 차이는 또한 생겨나겠지.

 

들뢰즈는 술을 좋아할까? 들뢰즈랑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인터넷을 이용해 들뢰즈가 음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술을 마실 때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제일 마지막 잔에 도달하는 것이야. 음주란 말 그대로 마지막 잔에 도달하기 위해 뭐든 하는 것이고 술꾼은 그만 마셔야지를 끝없이 되뇌이는 인간일 뿐이니까. 하지만 술꾼이 실제로 원하는 건 끝에서 두 번째 잔이지. 왜냐하면 내일 첫 잔이 기다리고 있잖아!

 

, 밥 맛 없는 똘똘한 인간 같으니... 그냥 소주나 한 잔 하자.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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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9.02.11
01:54:46 (*.103.6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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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새털

2019.02.11
07:19:00
(*.212.195.119)

들뢰즈 술 좋아했대요^^

담배도^^ 폐가 안좋아서 금연했다지만

강의실에서도 담배를 폈다고 하네요


들뢰즈빠히말

2019.02.11
10:47:11
(*.98.51.224)

"그는 나중에 양 허파를 잃게 될 정도로 병들어 있었다. 폐활량이 보통의 1/8이라고 말해질 정도였음에도 헤비 스모커여서 강의 중에도 담배를 피웠다. 알콜에도 상당히 빠져들어서 <<의미의 논리>>를 쓰고 있을 때에는 아침 일찍 집필한 후 하루 종일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계열 22 <자기와 화산>이라는 장은 알콜 중독에 관한 감동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다행히 폐 쪽이 알콜을 견디지 못하여, 중독의 끝까지 가지는 않고 살았다. 그는 병든 몸 때문인지 여행은 거의 하지 못했다." -<<들뢰즈 유동의 철학>> <프롤로그> 중에서-


처음 문탁에 와서 했던 세미나가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이었네요. 그 때 무담님도 세미나에 함께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무담샘과 언젠가 저 <계열22>를 함께 읽을 날이 오기를 살짝... 몽롱하게... 기원해봅니다~ 


들뢰즈스러운(??) 후기 잘 읽었습니다~ ^^*

지원

2019.02.12
17:00:04
(*.62.215.27)

무담샘 '술'직한 후기 감사합니다^^..계열22 게릴라 세미나라도 개설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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