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54호) 동네에서 변태하기

2017.02.20 23:46

작은물방울 조회 수:295

[특집] 후쿠시마 '동네탈핵릴레이' 로 돌아보기

동네에서 변태하기

 



글 : 작은물방울










1. 새끼가 되다

일사병이 노약자뿐 아니라 젊은이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 밖에 나가기만 해도 숨이 턱! 하고 차오르던 그 무렵에 녹색다방은 수지구청역 근처 올리브 영 앞에서 첫 동네 시위를 시작했다.

첫 스타트를 끊은 히말라야는 광화문의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앞보다 동네가 정겹다며 우리 동네 사랑을 외쳤지만 나는 아니었다. 원안위 앞 목요 집회는 숟가락만 얻으면 되는 편안한 일이다. 그 뿐만 아니다. 나는 서울 구경 가는 것을 몹시 즐겼는데 그 즐거움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자란 곳은 인천의 한 대학가 주변이었다. 인천도 광역시지만 머리가 굵은 뒤에는 서울을 동경했다. 그 마음은 계속되어 스무 살 때는 약 2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여 노량진에서 재수생활을 했고, 심지어 30대의 꿈은 서울 남자와의 결혼이었다. 서울은 세련된 이미지의 총체였고 종종 그곳에 나들이를 나가 코에 바람을 넣고 오면 도시여자가 된 양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분을 자주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히말라야는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안위 탈핵집회가 품고 있던 새끼를 낳았다며 설레는 맘을 드러냈다. 그녀는 모기장 현수막 만들기, 평화의 새 날리기, 파지스쿨러와 공연 등을 구상하며 도전과 단단한 힘을 모아 어미가 되는 상상으로 흥분했지만 내 마음은 그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 새끼가 뭐가 될지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다.

    

 

2. 어미가 되기 위해

한풀 꺾이는 더위와 동시에 설레는 마음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지루해지는 일상이 되어갔다. 원래 동네는 금세 익숙하고 지루해지는 곳 아니던가. 하지만 새끼어미가 되는 일에 고된 시련이 뒤따른다고 예견했던 히말라야는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그녀는 탈핵 책을 가져와라” “피켓과 리플릿을 새로 만들어라라며 부탁 같은 강요를 했다. 많은 사람이 눈길과 손길에 동원되었고 우리가 잘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결국 빗나갔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모아놓은 책 근처엔 오지 않았고 오히려 멀리 돌아가기까지 했다. 아쉬운 마음에 마치 책 파는 사람인 양 책 좀 보고 가세요~”라는 멘트를 날려 버리기도 했다. 행인들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두터운 막이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우리가 다가서려 하면 그들은 멀리 도망갔다.

또 다른 역경도 있었다. 탈핵릴레이를 하는 장소 바로 앞 가게와의 마찰이다. 가게 앞에는 계단이 있어서 플래카드를 걸거나 전시물을 놓기가 우리 입장에서는 좋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돈 들여 설치한 광고보다 눈에 띠는 다른 것들이 있는 게 싫은 것이었다. 자신의 재산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몇 차례 우리에게 화를 냈고 결국 민원을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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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놀고 있다

히말라야가 영업사원 같은 멘트를 날리고 흥행실패가 가장 큰 흥행인 것처럼 광고를 했던 그날. 새털은 첫 번째 댓글에 생고생이 잘하는 것이라는 글을 적었다. 그리고 꼰대의 상징과 같은 그 말이 주문처럼 효력을 발휘했다.

생고생이라도 같이 해보자며 많은 사람들이 2차 탈핵 도서전에 힘을 보탰고 무언가 큰소리로 외치기보다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은 어떠냐는 아이디어도 보탰다. 여름님은 2차 탈핵 도서전이 행인들의 관심을 가지는 데 나름 성공했다고 후기를 적었다. 그리고 평소 소박하고 조용한 시위를 선호하시던 스마일리님은 생각이 다르지만 함께 해보자며 같은 날 호모사케르 가면을 썼다.

우리는 세콰이어의 첫 경험을 같이하러 동네집회에 갔고 허기진 배를 채워줄 떡볶이 사준다기에 친구를 따라 놀러가듯 집회에 갔다. 그러다 보니 큰 손 장갑을 끼고 손짓하면 놀고, 호모사케르를 쓰고 춤을 추며 놀고, 다 같이 노래 부르며 놀고, 높은 자들을 패러디 하며 놀고 있었다.

물론 매번 반향을 일으킨 저항은 아니었다. 매서운 겨울의 시린 바람은 우리를 친구보다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고, 국정농단 사태를 맞이해서는 지금 이런 것을 외칠 때냐!’라는 비난도 들었다. 여전히 조용히 좀 살자고 화를 내시는 분도 계시고, 여기서 시위하지 말라며 우리를 쫓아내는 건물 수위 아저씨들도 계신다.

어디를 가든 친구를 만들고 싶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번 친구가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던 과일가게 아저씨는 어느 날 탈핵신문을 받아들었고, 축제 기간에 더치커피 1병과 대보름날 레몬청 2병을 선물 받은 올리브 영 직원은 뭔가 께름칙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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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변태는 가능할까?

결국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던 남자와 결혼을 한 나는 문만 열면 들리는 차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우리나라의 특별한 시와 멀어졌다. 그리고 동경했던 세련된 대도시의 삶이란 소비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삶을 짓밟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종종 커피를 마시며 회색빛 빌딩 숲속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가 서울 나들이에서 얻는 즐거움이란 것은 아마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새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움은 회피라는 말과 닮았다. 잊으면 안 되는 이름을 지우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원전 사고는 일어났고, 핵폐기물을 10만년이나 품어야 하지만 새로운 지구는 가능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 무언가 계속 소비하고 먹어 치우는 애벌레다. 동네 탈핵 집회 첫 날 히말라야가 후기에 썼던 광화문 원안위 집회가 낳은 새끼는 나일지 모르겠다. 새끼가 정말 많은 것을 먹어치우던 걸 멈추고 꽃을 피게 하는 나비로 변태할 수 있을까? |틈|

 

 

p.s 본의 아니게 새끼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히말라야 후기에 명시된 단어로써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고 쓰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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