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56)호 기억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다

2017.03.21 22:46

오영 조회 수:265

[특집] #1 세월호를 기억하다

기억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다





     


              글 :  오영

   









 

과거를 이미지의 형태 아래 떠올리기 위해서는

현재적 행동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어야 하고,

무용한 것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하고, 꿈꾸려고 해야 한다

아마도 인간만이 이런 종류의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구분은 너무나 자명하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결코 균질적이지 않다. 사적 시간은 불규칙한 속도로 흐르며 공적인 시간과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3년이라는 공식적인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기억하는 시간의 밀도는 달력에 표시된 것과 같지 않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3년은 억겁의 시간과도 같은 깊이와 무게를 가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둔 지금, 아직 다가서지 못한 진실 앞에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린 아직 아이들을 떠나보낼 수 없다.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9명의 희생자가 남아 있고 선체는 그날의 고통을 품은 채 아직도 바다 속에 있다. 물리적 깊이만으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바다 속에 세월호의 진실이 여전히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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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베르그손은 의식이 곧 기억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기억이 의식의 한 요소라고 보았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데카르트는 사유는 현재적 의식이고 기억은 과거에 속하므로 명증한 의식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그러나 베르그손은 이를 반박한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베르그손은 과거는 끊임없이 증식하고 무한히 보존되면서 전체로서 매순간 우리를 따라온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은 바로 기억이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남겼다. 나 역시 온통 납득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깊은 혼란과 분노에 빠져들었다. 분명 같은 사건을 겪고 있는데 나와 전혀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지인과 대립하기도 했다. 희생된 아이들과 가족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매일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접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한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이 고통의 원인인 세상으로부터 나를 분리해내며 나의 무고함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 높여 분노하고 비판함으로써 나의 무능력과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기억 속에 세월호는 2014416일에 머물러 있지 않다. 처음 문탁 친구들과 함께 동막천변을 행진하던 날 이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만큼 두텁게 쌓였다. 세월호 100, 죽전공원에서 아직 서먹함을 떨치지 못한 사람들 틈에 앉아 가죽 팔찌를 만들던 기억이 난다. 그날 처음 세월호 종이배 주변을 수많은 촛불로 밝히고 우린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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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현재성와 유용성


베르그손은 기억을 정신 뿐 아니라 신체의 작용으로 보았다. 우리가 운동이나 춤과 같은 신체적 동작을 익힐 때를 생각해보자. 각 동작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신체의 지성이 작동하는 데 이를 습관기억이라고 부른다. 자전거를 탈 때 마다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신체에 새겨진 기억을 되살리는 것처럼 이 습관기억은 신체의 행동방식과 관련되며 현재성이 그 특징이다. 반면에 이미지기억은 정신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습관기억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억이다. 무엇보다 이미지기억은 자신들이 생겨난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사진을 찍는 것처럼 단번에 포착된다. 베르그손은 이미지 기억을, “절대적으로 자족적이고, 그것이 생겨난 모습 그대로 존속하며, 그것이 동반하는 모든 지각들과 함께 내 역사의 환원할 수 없는 순간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물질과 기억, p. 141>

이 같은 이미지 기억은 습관기억과는 달리 현재의 유용성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우리가 포착한 모든 것은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현재는 삶에 대한 나의 이해와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유용성과 거리가 먼 기억들은 현재의 의식으로부터 계속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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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삶의 대한 주의


우리는 수많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를 늘 기억하며 살지는 못한다. 베르그손은 기억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삶에 대한 주의가 약해지면 기억들은 자리 잡을 곳을 찾지 못해 정신 속에서 부유하다 과거 속으로 증발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기억을 떠올리려고 주의를 기울이면 의식은 과거로 단번에 넘어가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흩어졌던 기억들이 구름처럼 나타나 차츰 물방울로 응축되면서 과거의 기억은 다시 우리의 지각을 통해 현실로 구체화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의 의식으로부터 밀려나 있던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의식으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건너오는 차원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 어떤 것을 기억할 때 마다 우리의 기억은 다차원적인 변화를 겪으며 더욱 풍부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회상과는 전혀 다르다. 회상은 추억 속에 잠긴다는 뜻으로 과거 속에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기억은 이제 나를 더 이상 죄책감과 연민, 체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슴 서늘한 통증과 함께 눈물이 왈칵 솟구치곤 하지만 세상은 아무리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와 무기력은 사라졌다. 친구들과 세월호를 기억해 온 시간만큼 내게 남겨진 깊고 풍부한 기억 때문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문제, 극복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는 이제 나에게 용기와 실천, 공동체와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문탁친구들은 세월호를 기억하며 함께 조각보를 꿰매고 304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수로 새기고 108배를 했다. 올해는 방석을 만들고 아이들의 약전을 읽고 쓴다. 약전을 읽고 쓰며 방석을 함께 만드는 과정은 과거로 밀려난 기억을 끊임없이 현재로 불러와 몸에 새로 새기는 작업이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세월호를 다시 희망으로 기억하고 싶다. 고통과 절망의 기나긴 질곡을 넘어 온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걸어가야 할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깊이 새기고 싶다.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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