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57호) 곁에서 함께하기

2017.04.11 22:09

광합성 조회 수:464

[특집] 세월호 이후의 삶

*에서 함께하기

 




글 : 광합성 










들으러 와줘서 고맙다

 

이 구술 작업은 증언을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데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사건의 진실을 청취하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증언을 통해 드러나는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증언의 말그 자체다. - 중략 - 이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첫째 사건에 휩쓸렸던 주민들이 당시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 을 청취하여 기록하는 것이요, 둘째 그 을 통해 드러나는 고통과 분노, 슬픔과 상실의 감정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의 에 집중하고 그 을 청취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까닭은 그 고통에 대한 감각적, 정서적 기억과 재현이야말로 실체적이며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김영희,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실태 보고서중에서  

 

 지난 323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조사 보고서(이하 보고서) 발간 및 주민 증언대회가 있었다. 보고서는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받은 피해와 고통을 담은 것으로, 연세대 국어국문과 김영희 교수와 제자들(석사 2학기 김시연, 이선혜)은 작년 중순부터 밀양에 다니면서 주민들의 구술을 기록·분석했다. 특히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한전이 얼마나 교활하게 돈으로 마을 주민들을 갈라놓았는지 그래서 사이좋게 지내던 주민들이 서로를 탓하고 욕하는 사이가 되고 관계가 회복불가능한 정도로 이르게 되었음을 아프게 고발했다. 이어진 증언대회에서는 밀양, 청도, 횡성, 군산, 당진에서 오신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그 간의 과정에 대해 발언하셨다. 보고서 작업을 위해 만난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그에게 전한 말은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서 고맙다였다고 한다. 그것은 문탁에서 밀양에 갈 때마다 주민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것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일이었는지 다시금 느껴졌다. 더 자주 내려가서 이야기 나누지 않았음을, 또 주변 친구들과 더 많이 밀양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을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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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누면서 알아간다

 ‘우동사에서는 거의 모든 모임의 시작을 나누기로 한다. ‘나누기는 정토회 수행에서 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최근의 자신의 근황이나 생각, 마음의 상태들을 공유하는 일이다. ‘나누기로 모임을 열면 생각과 말들이 자연스럽게 워밍업되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일상적으로 나누기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 첫 번째는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혹은 어떻게 듣고 있나 알게 된다. 또 그것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잘 알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알아간다고 말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거나 들으면, 내가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가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것은 대화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머릿속생각으로 정리되고 또 말로 표현된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뭔가 조금씩 뒤틀린다. 다른 사람을 듣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류가 일어난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나 스스로 내가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말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이런 일상 나누기를 중심에 두는 것이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천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이런 걸 중심에 두고 사는 것이 좀 쪼잔해 보일까봐 문탁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이것은 아마도 나의 오해^^) 하지만 나누기를 매개로 하는 소통은 단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류를 깨닫고 그럼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혹은 다른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의 시작점이 된다. 이렇게 귀가 확장되고 주파수를 맞춰가며 지내면서부터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것도 대화의 장에서 공통적인 것이 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엄신기호는 그의 책 단속사회에서 지금 사회를 소통능력 부재로 진단한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상담소에 가서 사적인 경험을 고백하고 그것에 대한 해석을 듣고 온다. 일상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 일상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면 좋을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이 전승되지 않는다. 대화가 아닌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따로따로인 상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에서의 소통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그럴 때 각자의 경험이 공적 경험으로 재생산되기 쉽지 않다. 공적 공간이란 사적인 문제들이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고, 사적인 곤란들에 대하여 공공의 해결책이 모색되고 조정되며 합의되는 공간이다. 이럴 때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구분되지 않고 겹쳐있거나 혹은 상태가 다른 하나일 것이다.

 밀양의 문제처럼 소위 사회적인 것의 문제 역시 그 안에서는 우리가 겪는 일상의 문제와 별도의 일이 아니다. 돈 때문에 다툼이 발생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이들이 없고, 자식과 부모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알면 알수록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든 것들은 들추고 꺼내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공통적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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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곁*이 되고 싶다

 밀양에서 한전과 합의하지 않고 남은 주민들은, 다른 주민들로부터 마을의 발전을 막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마을 행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이하 대책위)의 김영자 총무님은 우리는 밀양에서 음.. 한마디로 말하면 왕따지요 뭐라고 하시며 합의 안하신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가지 못하게 돼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가 함께 해 온 동화전 마을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 그간 대책위 활동을 주도했던 위원장님이 새로운 생업을 찾아 나선 것으로 인한 갈등이 계속 되고 있고, 그 사이 이웃 간에 한전과의 합의여부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 주민합의에 대한 마무리를 하고자 한전에서는 전방위적으로 총력을 다해 아직 합의 하지 않은 주민들을 돈으로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대책위도 지금이 가장 힘들 때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슬펐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어서, 그 자리에 함께 있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탁의 친구들과 일 년에 서너 번 밀양에 다니며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부족하게 느껴진다. 갈 때마다 매번 듣는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받기도 송구스럽다. 그래도 계속 만나고 더 가까이서, 사적이지만 전혀 사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주파수를 맞추며, 즐거운 일을 같이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처음에는 이제 밀양에 송전탑 몇 대가 들어섰고, 어디까지 들어섰고, 몇 명이 합의했고, 몇 명이 합의하지 않고 남았는가... 이런 것들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곳에 계신 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송전탑 때문에 겪었던 고통과 분노, 슬픔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우정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혹은 시답지 않은 연예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다.


 잘 듣고 싶다. 말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 반가움, 편안함 혹은 갈등이나 원망의 마음 등 그런 것들까지도 에서 함께 하고 싶다. 올해는 밀양에서 더 많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이 만들어 질 것 같다. 밀양 인문학이 될지, 밀양 문탁 청년모임이 될지, 농활단이 될지 모르겠지만, 더 자주 가고 가서 같이 놀고, 그러면 좋겠다. 알지 못하기에 잘 듣고 싶고 듣고 나면 더 알고 싶어지는 지점, 끝이 없는, 언제나 시작인 그곳에 지금도 서 있다.|틈|

 


사회학자 엄신기호는 단속사회지금의 사회를 은 있지만 은 없는 사회라고 하며,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샘의 글을 곁의 언어를 만드는 일, ‘곁을 만드는 글이라고 표현했다. 이 글에서 엄신기호의 개념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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