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뉴미디어는 이전의 웹진보다  우리의 공부를 좀 더 충실히 표현해 내고자 합니다. 2017년 봄 그리스를 다녀온 

다섯명의 친구들이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사진과 함께 '조르바 여행단, 그리스에 가다'로 보여드립니다. 




[조르바 여행단, 그리스에 가다] ②

여행, 일상일탈사이에서 헤매다

 




글 : 게으르니










그리스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굳이 여행을 갈 필요가 있니? 일상을 여행처럼 살면 되는데' 라고 반응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반박할 수 있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껏 여행에 대해 심드렁했던 나의 기조가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을 빙자하여 서유럽의 남단 그리스로 일명 조르바 여행단에 속해 14일 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같이 가자는 친구의 꼬드김도 솔깃했고, 어쩌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엇이 있을지도 모를 여행을 경험하고 싶다는 의지도 작용했다. 이 글은 여행 기간 동안 떠나지 않았던 질문 여행이 뭐지를 둘러싸고 고심했던 흔적이다.

 

 

1. 55 여행의 일상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은 모두 문탁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현재 처한 조건도 모두 다르다. 게다가 관심 있는 공부도 달랐다. 그런 우리가 함께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걱정을 했다. 너희들 함께 가서 맨날 싸우다 오는 거 아니니?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4시간을 꼬박 함께 보내는  2주일은 우리 모두 처음 경험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각자 할 일을 챙겼다.

여행 일정 전반을 짜고 추진한 가이드 건달바. 그녀는 숙박과 교통수단, 여행 포인트까지 모든 일정을 처리했다. 여행지마다 숙소를 예약하고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그리스 여행이 두 번째라는 그녀는 심드렁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더 열심이었다. 어느 날은 자신에게만 맡기고 신경을 안 쓴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국 일정이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끝까지 묵묵히 했다.

새털은 가는 곳마다 해설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기분까지 세심하게 보살폈다. 유적지에서 혼자 어슬렁댄 적이 많은 나와 달리 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에는 우리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사다 줄 선물만 챙겼던 우리에 비해 받을 선물까지 챙긴 그녀, 내가 아는 버럭만 하는 새털이 아니었다.

달팽이는 여행 내내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뭔가 만들었다. 아침 누룽지, 나프폴리오에서 먹은 고추장찌개, 산토리니의 냉동 생선을 끓인 매운탕. 그중에서도 압권은 뽕나무 잎을 따와서 쪄준 것이었다. 신나게 쌈을 싸먹으면서 더 따고 싶었지만 행여 주인한테 들킬까 조마조마 했다는 달팽이의 무용담은 덤이었다. 그 때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녀의 미덕이 새삼 빛을 발했다.

일행 중 청일점이었던 뿔옹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고 운전을 도맡았다. 크레타에서 단체 쇼핑을 하자고 우르르 옷가게로 몰려 들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 어울리는 옷에 대한 평을 성실하게 해 주던 그는 나름 패션 감각이 살아있는 친구였다.

나는 여행 내내 그리스 아침 산책을 나갔다. 아테네에서 첫 날은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 때문에 머뭇거렸지만 다음 날부터 아침 산책을 거의 거르지 않았다. 낯선 도시의 적당한 긴장도 좋았고 그리스 아침 공기도 제법 신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과일 노점상이나 까페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먹을 것을 사오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족은 아니지만 때때로 가족보다 더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그러나 함께 공통감각을 맞추기에는 여전히 미숙한 적이 많은 일상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익숙해졌고 때로 낯선 면을 발견하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익숙함에 편안하고 낯설음에 즐거워했던 여행의 일상, 우리는 서로에게 한 뼘 더 능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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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낯설음에 질문하다 여행의 사이

 

이번 여행의 첫 여정은 아테네 도심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이었다. 숙소가 있었던 빅토리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모나스트라키역에서 내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남서쪽을 펼쳐진 아고라부터 들렀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신전들이 신들을 받드는 곳이라면 아고라는 시장이 있는 세속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시장을 보러 나온 그리스인들이 세상의 여론을 접하는 곳이기도 했다. 동양 경전 중심의 공부만 해온 나로서는 그 공간의 의미가 너무나 생경했다. 이게 뭐지? 이런 광장이 있었기에 직접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치가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런 광장이 필요했던 것일까? 공자에게는 고대 성왕들의 말씀이 있었다면 소크라테스에게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말이 있었던 것일까?

아고라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언덕을 올려다보니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우뚝 선 신전이 청명한 지중해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두 개의 신전이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 신전이었다. 막상 정상에 올라서서 보니 시야에 잡히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그 위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라 곳곳에 철골구조물이 버티고 있었다. 신전이 있는 언덕에서 아래쪽으로는 원형 극장이 보였다. 2500여 년 전의 화려한 명성은 다 스러지고 무너진 돌의 형상만 고스란히 남아 그 영화를 가늠케 할 뿐이었다.

광장에 모여서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에 연관된 문제를 성토하고, 극장에 둘러 앉아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운명의 비극을 체감하고, 그 운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신탁을 듣기 위해 제물을 지고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때가 되면 폴리스들 사이의 전쟁에 나가 삶과 죽음만 존재하는 그 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한 사람들. 그리스 유적지를 돌면서 떠올린 고대 그리스인의 형상이었다. 우리는 같은 인간일까? 다른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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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현지에 관해 알고 있는 얕은 지식으로 매순간 마주치는 낯선 공간을 경험하려니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정답은 모르더라도 그럴듯한 해답 정도라도 건졌으면 했으나 역량 밖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상이나 공부에서 질문을 벼리지 못하는 것은 익숙함에 머물러 있기 때문 아닐까. 어떤 식으로든 낯설음과 마주칠 때 질문을 벼릴 수 있다면 여행은 질문 없는 편안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문을 향해 떠나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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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안함 너머 - 여행의 일탈

 

그리스에서의 아침 산택은 점점 일상이 되어 갔다. 친구는 이런 나에게 단체 여행을 와서도 혼자 배낭여행족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라 치켜세웠다. 여행의 중반 크레타에 도착한 첫 날 노천 까페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낯선 여행지의 경계심도 많이 사라지고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속에 앉아 있으니 평소와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면 될 걸 굳이 여행을 갈 필요가 있니? 일상을 벗어나보고 싶었다.

여행 내내 현지인들과의 접촉은 다른 사람 몫이라고 여기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곤 했다.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 일찍 문을 연 까페에 들어갔다. 직원에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서 두 잔을 의미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고 투 라고 말도 했다. 주문을 받던 그리스 아가씨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에스프레소 투샷 한 잔을 받아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바디 랭귀지가 안 되면 그냥 나오는 대로 한국말로 했다. 신기하게도 알아들었다. 현지인이나 나나 모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받아들이니 그들을 보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크레타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조르바가 흰머리로 늙은이 취급을 당하는 것에 분개해 염색을 감행하는 부분에서 이거다 싶었다. 염색하면 달라 보일 거라고 권한 친구들도 있었다. 계속 망설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 중에 찍은 사진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점점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당장 염색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은 더 신나하면서 슈퍼에서 염색약을 골라 주었다. 침대가 놓인 호텔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염색을 했다. 천식이 있는 친구가 독한 약 냄새를 견디며 열심히 머리에 염색약을 빗질해 주었다.

여행지에서는 물건을 산 적이 거의 없다. 여행 상품점에서도 대부분 주마간산 식으로 지나간다. 그런데 옆에서 다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쇼핑이라 부추겼다. 옷 가게를 지나거나 혹은 들어가서는 이 옷이 괜찮아 저 옷이 낫네 품평하면서 서로에게 옷을 권했다. 평소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옷을 두 벌이나 샀다.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었던 산토리니의 첫날은 저녁을 다 차리고 마주 앉으니 해가 지는 어스름 무렵이었다. 산토리니 숙소는 현지에서 생산된 와인에 럼주, 그리스 토속주 우조까지 갖춰져 있었는데 주인은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했다. 지나온 여행지의 감흥, 함께 읽고 있던 <그리스인 조르바> 주인공들의 운명에 대한 애도,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는 애로사항에 이르기까지. 대화의 주제가 두고 온 일상과 여행 사이를 횡단하는 동안 술병은 점점 비고 때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산토리니 하늘에서는 폭죽까지 터졌다. 옆 집 아줌마의 정보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빵집 주인 아들이 장가가는 날, 축하 피로연 폭죽이라고 했다. 여행이 주는 일탈을 만끽하는 어떤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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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서로 마음을 챙기는 친구들과의 일상은 여행을 즐겁게 하는 동력이었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의 능력이 합쳐지니 편안하고 풍족한 여정이었다. 이것이 일상인지 여행인지 헷갈릴 즈음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을 저지르는 소소한 일탈도 있었다.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의 숲에서 질문 없는 일상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감을 잡기도 했다.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아테네의 수니온곶에서 선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여행자 필이 좀 나는 걸.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행이 뭐냐고? 시작은 두렵고 끝은 아쉬운 것. 여행은 끝났다. 다시 일상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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