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뉴미디어는 이전의 웹진보다  우리의 공부를 좀 더 충실히 표현해 내고자 합니다. 2017년 봄 그리스를 다녀온 
다섯명의 친구들이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사진과 함께 '조르바 여행단, 그리스에 가다'로 보여드립니다. 


[조르바 여행단, 그리스에 가다] ④
그리스 여행, 낭독하기 참 좋아요





글 : 뿔옹














여행이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남이라고 할 때, 요즘은 여행이 쉽지 않다. 저 멀리 남미로 여행을 갔다고 해도 매일 통화를 하고, 안부는 물론 사진까지 쉽게 전달할 수 있다보니 지금의 여행은 여행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여행 첫날부터 진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함께 사용할 수 있다던 와이파이 장치가 여행 시작부터 작동하지 않았다. 이걸 어쩐다? 개별적으로 해외 인터넷 신청을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첫 여행지였던 아테네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볼 것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았기에 인터넷을 사용할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유적지의 탐사부터가 문제였다.  
고대 그리스 하면 보통 아테네를 떠올리지만 우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불씨를 제공했던 코린토를 보고 싶었고, 에피다우로스의 원형 극장 한 가운데에 서서 노래도 불러보고 싶었다. 또한 철학적으로 아테네보다 더 큰 영향력으로 남아 있는 스파르타의 현재를 경험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여행의 반 정도가 펠로폰네소스 반도 탐사에 할애되어 있었다. 문제는 방문하고자 하는 유적지들이 꽤 많이 떨어져 있다는 점.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우리나라 남한보다 작다고 하더라도 대충 대전과 전라도를 거쳐 부산과 강원도를 돌아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의 고속도로를 생각한 다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도로의 대부분이 편도 1차선이고, 구불구불한 산길의 연속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하루에 보통 100~200km 정도를 이동해야 했고, 하루에 3, 4시간 이상을 차 속에서 보내야 했다. 무료한 차 속에 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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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낭독하기. 15일의 여행을 마치기 이틀 전쯤 우리는 460페이지의 <그리스인 조 르바> 낭독을 끝냈다. 와~우! 요즘엔 한 권의 짧은 문학책 읽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더군다나 낭독으로, 목소리를 내어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우리가 해냈지 뭔가!  ^^ 



낭독, 어디까지 가봤니? 


근대인들은 묵독으로 책을 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묵독으로 밖에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디서나 학구적 의지 를 보여주는 친구가 있었고, 책을 듣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환경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작은 해치백 승용차 한 대에 5명의 친구들이 3~4시간 동안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차를 탈 때마다 책을 읽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책을 읽다보니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여러가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차에서 책을 읽으면 어지럽다는 달팽이를 조금 더 알게 되었고, 두목과 조르바, 부불리나와 과부의 목소리를 연기하려고 노력하지만 거의 비슷하게 씩씩한 톤으로 책을 읽어주던 게으르니의 목소리는 모두를 유쾌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한 사람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각자의 톤과 호흡으로 ‘조르바’와 ‘두목’을 표현하는 것이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책 읽는 소리를 듣다보면 간혹 잠이 들기도 하지만 옆 친구에게 지나간 이야기를 묻는 것도 재미 중에 하나였다. 마치 인터넷이 없던 시절 보지 못한 미니시리즈의 지나간 이야기를 묻고 듣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라고 해야할까. 단 14일동안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듣는 것만으로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구술문학과 낭독, 낭송에 대해서 공부하고 실험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14일 간의 낭독 경험 그 자체로 소리를 내어서 책을 읽고 듣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조르바 이야기에 우리 5명은 꽁꽁 묶여져 있었다. 장난 삼아 이름 지었던 ‘조르바 여행단’은 딱 맞는 이름이 되었다. 조르바의 신나는 춤과 사랑이야기, 두목의 이야기와 고민, 그리고 부불리나의 사랑 스러운 행동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는 함께 희희낙락했다. 여행의 막바지에 들어서 산토리니에 들러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날 저녁은 맛있는 해물을 사와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친구들 몇몇이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조르바를 읽기 시작했다. (바로 이 사건이 지금 내가 조르바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라고 할까) 우리가 내기를 걸면서까지 궁금해했던 두목과 과부의 하룻밤이 성사되었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부불리나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되었다. 아, 이 사실을 빨리 알려줘야겠구나! 숙소에 있던 나는 시장에 가 있는 친구들에게 부불리나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 뒤 우리는 그 하룻밤에 기뻐했고, 부불리나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을 읽는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건한 의식 같았다. 5명 모두가 산토리니의 숙소에 둘러 앉아서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한 사람씩 책을 읽어내려갈 때 그 호흡 하나까지 집중하면서 예민하게 조르바와 두목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언제나 행동과 열정으로 움직였던 조르바와 생각만 많아서 ‘계산기’라고 놀림을 받았던 두목, 이 두 사람은 고국의 해방을 위해서 몸 바치고자 하는 열정과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크레타 출신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신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두목은 조르바가 되어갔고 조르바는 두목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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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를 사랑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가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여행을 떠난 이후에야 알았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열정적으로 호메로스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책에서는 호메로스의 냄새가 난다. 두목과 조르바의 인생에서 오뒷세우스적인 모험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조르바의 행동과 사고 방식은 행위와 정신에 틈이 전혀 없는 호메로스적 인간의 부활처럼 느껴진다. 뭔가를 생각하기 싫어하고, 생각을 저울질 하는 두목을 보면서 답답해 하던 조르바.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몸으로,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다. 내용만이 아니다. 함께 읽었던 모두가 느꼈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는 분명 구술 문학적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어 번역본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 한 문장 그 문체 자체가 읽기 에 알맞은 문장으로 만들어졌다. 카잔차키스 역시 자신의 작품이 읽히는 것이 아니라 호메로스의 시처럼 노래불려지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그저 여행하는 동안 책 한권을 읽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르바는 우리 마음 속에 크게 자리 잡았다.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보고 크레타에 도차할 때 쯤에 우리는 그리스인과 고대 유적들 속에서 조르바를, 조르바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 고전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크레타에 있는 그의 무덤에 도착해서 읽게 된 간결한 그의 묘비명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감격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자유라는 말은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고귀함을 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쟁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도 그의 책을 소리 내어 읽었고, 따뜻한 햇살에 누워 한동안 꿀같은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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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르바를 읽지 않았다면 크레타의 중심지에서 떨어져 있는 그의 박물관을 찾아가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르바의 숨결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고 그에게 조금 더 가까 이 가고 싶었다. 물론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에 놓여 있다던 한국어 책의 모습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크레타에서도 차를 빌려서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그래서 우리가 갔을 때 다른 어떤 관광객도 없던 박물관으로 찾아갔다. 
그리스의 다른 유적지 박물관처럼 이곳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1층에는 주로 그의 생애와 관련된 내용과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손으로 썼던 원고들이 있었고, 2층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번역본들이 있었다. 특별히 눈에 들어왔던 것은 카잔차키스가 썼다는 <오뒷세이아> 수고였다. 12년동안 7 번이나 고치면서 출간되었다는 <오뒷세이아>는 그 자신이 새로운 호메로스 시인이 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오뒷세이아>의 다른 버전이 아니라 <오뒷세이아>가 끝나는 시점을 시작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카잔차키스가 쓴 ‘오뒷세이아’는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까? 그리고 그의 <오뒷세이아>가 그리스인들에게 지금도 불려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박물관을 거의 다 살펴보고 우리는 한국어판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 그리스인 조르바> 한국어판이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움은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그곳에 우리가 읽었던 한국어판 <그리스인 조르바>를 기증했다. 책 한 권의 선물은 다시 한번 이곳에 오게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그리스에 가신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박물관에 들려서 한국어판 <그리스인 조르바>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알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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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신화와 현실이 만나는 곳 


그리스 신화를 생각한다면 크레타는 그리스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크레타에 가면 꼭 가 봐야 할 곳이 두 군데 있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시작하여 로마시대까지 이어지는 보물이 가득한 이라클리오의 고고학 박물관과 미노타우로스 신화로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이다. 
우리는 크레타의 중심가인 이라클리오에 있는 엘 그레코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고고학 박물관은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난 오—래된 보물들은 우리 눈을 정화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한적하게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몰라볼 만큼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단순함과 소박함을 특징으로 하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고, 지금 당장 사용한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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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노소스 궁전은 숙소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박물관을 가려고 차를 빌린 상태여서 박물관을 거쳐서 여유롭게 크노소스 궁전을 살펴보았다. 크노소스 궁전 유적은 뼈대만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그리스 본토의 유적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주 작은 방들처럼 보이는 구조들이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었고, 넓은 홀이나 아고라와 같은 광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왕궁이라기 보다는 크노소스 궁전 자체가 다이달로스가 설계했다던 미로처럼 보였다. 크레타인들은 어떤 이유로 이런 궁전을 쌓았을까? 푸른 바다색의 돌고래와 황소를 뛰어넘는 모습의 젊음이 를 보여주는 프레스코화만이 크노소스 시대의 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은 신화를 품고 있는 현실의 장소였다. 미로를 완성하고 하늘을 날아 성을 탈출하고자 했던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었던 미로에서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반인 반수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성을 탈출할 수 있었던 테세우스, 또한 그와 함께 돌아가다 낙 소스에 남게된 아리아드네의 이야기까지.  
신화란 이름 없는 이야기이고, 진실은 상상력의 딸이라고 했던가. (폴벤느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조르바’를 낭독하면서 도착한  크레타는 호메로스의 신화들이 넘쳐나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조르바’는 이름 없는 시처럼 우리의 상 상력을 자극했다. 신화는 단순히 신화로 끝나지 않고 현실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더 넓혀진 상상력의 궁전 안에서 가능할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다시 현실을 재구성하고 싶다면 그리스 여행을, 그것도 ‘조르바’를 낭독하면서 크레타를 여행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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