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문탁네트워크에서는 신고리 공론화과정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신고리공론화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공론화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정책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 숙의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탈원전은 가능할까? 등)에 대해 회원연속칼럼을 게재합니다. (<문탁뉴미디어> 편집자)



[신고리5,6호기공론화-연속칼럼➀]

신경질 부려서 미안해요~


히말라야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를 해보자고 녹색다방과 추장단이 함께 모인 첫 회의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신경질을 부렸다각자 관계 맺고 있는 외부 모임을 찾아가 이 사안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꺼내려면설명 자료나 영상이 필요하니 그걸 나한테 만들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녹색다방에서 오래 많은 활동을 해 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은 내가 그 일을 해주기 바라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그런데 내 마음에서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의문들이 일어났다이미 많은 활동을 해 왔는데이번에도 또 내가공론화라는 것은 단순 지식전달이나그동안 해왔던 캠페인과는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이런 내 의문의 배경에는 요즘 읽었던 스피노자가 있다그는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진리를 탐구하는 참된 방법은 관념의 획득 후에 진리의 표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진리 자체를 적당한 질서를 가지고 추구하는 바로 그 길이다.”

 

 진리탐구란 하나의 명확한 관념으로부터 다음의 명확한 관념이 따라 나오도록 적합한 사유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과정 그 자체다그것이 인식이며 지성이다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처음부터 그에 관해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모르는 것을 알기위해 처음부터 알아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지만가만히 생각해 보면 맞는 이야기다어떻게 모르는 것으로부터 아는 것이 따라 나올 수 있겠는가.

 돌아보면 나는 순전히 좀 더 좋은 아이들 먹거리에 대한 욕망 때문에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을 살피면서 원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런 관심은 필연적으로 밀양의 목소리를 전하는 친구들과의 접촉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또 밀양은 이전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방사능과 원전과 연결되었고 어느 순간 동네에서 탈핵릴레이를 하는 지경까지 왔다그렇지만 내가 원전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그저 언론과 몇 권의 책에서 본 것이 전부다. <핵마피아영화 속 정범진 핵공학 교수에 의하면 나는 핵공학적 지식도 없는 채 그저 소문으로 귀신을 믿는 것처럼 원전이 위험하다고 믿는” 우매한 민중이다그는 나 같은 이들이 국가중요사안인 원전 건설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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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나는 내 지식수준이 그와 같지 않다고 해서원전에 대해 내가 뭔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스피노자도 말했듯이인식 혹은 지성이라는 것은 사물에 대해 많은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원자력발전을 둘러싸고 무수한 말들과 생각들이 오고간다이런 혼란이 있을 경우에 스피노자는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유들을 가장 단순하게 나누어 보라고그러면 혼란이 사라진다고 한다그렇게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생각은 절대로 허위일 수 없으니 거기서부터 탐구의 과정을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다나는 정범진 교수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진 않지만내 행동의 원칙이 되며 세상에서 떠도는 말과 생각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몇 가지만큼은 아주 확실히 알고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을 아이들이/사람들이 먹는 것이 좋은가?/옳은가?’

누군가 편리한 전기를 얻기 위해다른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것이 좋은가?/옳은가?’


 이런 명제들은 단순하다그러나 그것은 아이들도밀양의 할머니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공통된 속성에 비추어 본 것이며 그래서 나 자신에게 거짓일 수 없는 진실한 것이기에 단단하다스피노자가 말하는 진리탐구의 시작 지점에 놓인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관념은 어쩌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녀야 하는 윤리적 신념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 역시 나처럼 공론화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을 뿐일 텐데, 회의자리에서 신경질을 낸 것이 참으로 머쓱하다. (다음날 나는 누군가에게 그날 내가 생리통이 심했었다고 변명 했다.) 그 뒤 내가 청송으로 또 휴가지로 돌아다니다 온 사이그 영상의 제작은 결국 나보다 인품과 기술력이 높은 청량리샘이 만들어 주기로 했다고 한다미안하고 감사하다그렇지만 영상이 없더라도그동안 아무런 생각이나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이제부터는 신고리원전 5,6호기에 대하여 혹은 원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세상에 대하여 모두 다 한마디씩 해야만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그 한마디의 발화가 그 다음으로 이어질 무수한 관념과 행위의 연결고리들을 만들어 내는 인식의 시작이기 때문에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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