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아카이브

문탁아카이브에는 인문학축제자료집, 문탁회원들의 외부기고문 및 발표문들 보존가치가 있는 원고자료들이 담깁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제가 용인문화에 보내는 원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용인 지역의 새로운 공동체를 소개하는 꼭지라고 하는군요.

쓰다보니 제게는 지난 1년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공간 문탁네트워크

김혜영(문탁네트워크 회원)

 

선물(gift)경제를 꿈꾸는 사람들

문탁(問琢)네트워크가 동천동 언저리에 둥지를 마련한지 이제 10여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문탁 주방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은 대략 3,000여명. 10여개월 동안 문탁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쌀을 사지 않았다. 그럼 매월 300여명이 먹은 밥은 어디서 왔을까? 그 답은 선물(gift)경제에 있다. 문탁 사람들은 문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밥과 세미나와 강좌, 텃밭 등등-이 서로에게 선물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물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 되기를 꿈꾸고,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회원들이 정성껏 마련한 밥을 먹은 사람이 기쁘게 김치를 들고 오고 장아찌를 가져오는 선물의 순환. 비록 그 밥이 공짜는 아니지만 같이 밥을 먹으며 우리는 식구가 될 뿐만 아니라 선물의 고리를 키워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선물의 경제가 아니라 시장의 논리이다. 시장의 논리 속에서 선물의 경제를 꿈꾸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망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선물의 경제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시장 안에는 소비와 교환 뿐이지만 시장 밖에는 싱싱하게 펄떡이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과 아파트 이름으로 구획된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을을 꿈꾸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혼자서 잘살면 무슨 재미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작은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문탁네트워크라는 작은 공간을 일군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탁네트워크는 작년 가을, 대안학교 학부모로 몇 년 이상 서로를 알고 지내온 수지 동천동 근처의 이웃사람들의 작은 공부모임으로 출발하였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공부하며 길을 찾아보자는 한 친구의 제안에 마치 서로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의기투합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주1회의 정기적인 세미나가 만들어졌다. 거실을 동네 친구들과의 공부방으로 여는 것으로부터 선물의 네트워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카페 활동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과도 접속하게 되면서 관계가 확장되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미나에 대한 요구도 생겨났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만나고 공부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의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같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을 꿈꾸며 문탁네트워크는 집 바깥으로, 마을을 향해 열린 공간으로 터전을 옮겼다.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이라는 생소한 조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부를 통해 우리의 삶을 더 의미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길을 찾는 공간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문학은 우리의 삶의 근거와 방향을 묻는 공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을’이란 무엇일까? 00시 00구 00동과 같은 지리적, 행정적인 구획이 마을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공동체적 관계가 살아 있었던 시절에 동네는 행정구역 같은 것이 아니었다. 동네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의미에서의 마을이 있는 것일까? 00동, 00구 주민으로서 도로교통이나 아파트 가격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한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 마을에서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이합집산은 있겠지만 사람 냄새 나는 관계는 텅 비어있을 것이다. 그런 텅 빈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관계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그 관계야말로 마을이라고 불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서로의 삶을 통해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 새로운 삶의 비전을 찾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이라는 명명으로 표현되었다.

문탁네트워크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아주 가까이는 동천동이나 신봉동, 성복동, 좀 더 멀리는 기흥구나 성남과 수원, 더 멀리는 과천이나 안양, 의왕에서 오는 분들도 있다. 공부하러 와서 같이 밥먹고, 일하고, 축제도 만들고, 김장도 같이 하면 모두 마을 사람들이 된다. 마을을 만들고 싶은 사람,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 같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의 마을 사람이 될 수 있다. 같이 밥먹는 회수가 늘어나는 만큼, 세미나를 같이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홈페이지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많은 활동을 같이 하면 할수록 문탁은 더 풍성해지고 더 깊어지는 마을이다.

 

문탁네트워크가 하는 활동

문탁네트워크의 중심 활동은 세미나이다. 지금(2010년 11월 현재) 진행 중인 세미나는 환대, 종교인류학, 논어강독, 마을과 경제, 건축, 가족, 여성학 세미나가 있다. 문탁에서 공부하는 회원이면 누구나 새로운 세미나를 제안할 수 있으며 의견조율을 거쳐 세미나 개설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일정액의 월회비를 내면 누구나, 어떤 세미나에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단, 텍스트를 꼼꼼이 읽어 오고, 발제하고, 세미나에 성실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켜야 한다. 좀 더 세게 공부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안내자인 튜터가 있는 기획세미나가 있다. 현재 ‘앎과 삶 시즌2’와 10대와 20대 청년들의 ‘청태학’이 기획세미나로 진행 중이다. 약간 다른 형태로는 ‘마을에서 국경넘기’를 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주2회의 일본어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기초적인 일본어 문법과 회화 공부를 마친 후에는 강독과 번역활동으로 질적 수준을 높일 계획이다.

강좌는 대체적으로 6~8회로 구성되며 비정기적으로 개설된다. 지금까지 논어 강좌, 의역학 강좌, 스피노자 에티카 강좌, 시경 강좌, 과학 강좌 등이 열렸고, 현재는 시강좌가 진행 중에 있다. 2011년 초에는 맹자 강좌와 과학(종의 기원) 강좌가 열릴 예정이다. 예술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예술하며 살아가는 분들을 강사로 모시는 청년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강좌에 참여한 분들은 자연스럽게 문탁네트워크의 활동과 운영을 알게 되면서 강좌와 연계된 세미나에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10월에는 ‘가족을 넘어 마을로’를 주제로 특강, 영화상영, 세미나와 골든벨, 책을 나누는 아나바다, 작은 공연을 내용으로 하는 인문학 축제를 열었다. 강사섭외, 음식, 프로그램 진행 등 모든 활동을 세미나 회원들이 함께 기획하고 준비함으로써 주인과 손님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인문학 축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기간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선물이 오갔다. 음식, 책, 진지한 대화, 웃음이 오가는 선물의 향연이 펼쳐졌다.

봄부터 동네에서 텃밭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초보 농사꾼들인지라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텃밭농사를 통해 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한 해였다. 자연의 생산력에 감사하면서 봄과 여름 내내 식단에 상추, 오이, 고추, 감자, 아욱 등의 신선한 야채를 올릴 수 있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식탁을 풍성하게 했고, 주방의 식비지출을 줄이는 현실적인 효과도 매우 컸다. 참외와 고구마를 키워 간식으로 먹고, 배추농사를 지어 그 소출로 공동체의 겨우살이를 위한 김장을 하는 성과도 있었다. 텃밭은 소박하지만, 삶이 공부가 되고 공부가 삶이 되는 활동의 현장이었다.

또 하나의 공부현장! 악어떼 서당이 있다. 지역의 시설 청소년 십사오명이 참가하는 악어떼 서당은 격주 토요일로 열리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논어의 한 구절을 암송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해 왔다. 지금은 5주 프로젝트로 작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악어떼 서당은 문탁이 마을과 만나는 또 다른 길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부와 활동을 통해 서로 배우는 현장을 만들어 가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작고 단단한 공동체

문탁네트워크는 비영리 시민단체(NGO)도 아니고, 사회적 기업도 아니다. 여기에는 정관도 규약도 없고 공식적인 대표도 없고 직함도 없다. 그저 마음 맞고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고 활동을 만들어 가는 작은 공동체일 뿐이다. 대부분의 활동들은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 하고 의논하는 중에 할 사람이 정해지면서 만들어진다. 무엇을 공부할지, 어떤 강좌를 개설할지, 텃밭에 무엇을 심을지, 김장은 언제할지 그야말로 같이 하는 사람들의 역동에 의해 생산된 것들이다.

재정에 대한 원칙도 소박하다. 운영 회원들은 정한 범위 내에서 낼 수 있는 만큼 회비를 내어 운영비에 대한 자립도를 높이고, 세미나와 강좌를 통해 수입이 생기면 적립하기 보다는 활동을 만들어 활동에 쓰고자 한다. 선물이 돌고 돌며 관계가 확장되어 가는 것처럼 돈도 돌고 돌아야 한다. 한 곳에 쌓여 있으면 적체가 발생한다. 그러니 혹시 돈이 좀 모이면 그 돈으로 어떤 활동을 할까를 생각한다. 하지만 활동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렇게 쉽고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업이 있는 사람도 있고, 아직 어린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모두가 다 똑같이 활동에 전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와서 같이 공부하고 밥도 하고 활동도 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고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바라고 있다.

공부가 교양쌓기를 목적으로 하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적 활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우리의 화두이다. 그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공간이면서도 공동체적 삶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터전을 마련하면서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한 순간부터 어쩌면 이것은 문탁네트워크의 운명 같은 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우리가 그 명명에 걸맞는 무엇이 되어 간다면 그것은 당연히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일 것이다. 자신이 공부한대로, 말한대로 살려면 흔들릴 때 잡아주는 친구가 있어야 하고, 내공을 단단히 쌓아나가지 않으면 어려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농부가 되는 곳,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로운 곳, 민주주의와 삶이 있는 그런 마을을 꿈꾸어 본다. 꿈꾸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혼자서 마을을 만들 수는 없다.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헤매는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함께 공부하고 함께 활동할 친구들을 이 냉정하고 쿨한 도시 속에서 계속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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