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인문학교


 2018년 1월 7일 
 중등인문학교 겨울시즌 세 번째 시간 후기



 오늘은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이하 다이어리)를 읽고서 퀴즈를 통해 이야기를 푸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다이어리>는 아주 평범한 여행기입니다. 1년만 있으면 의대를 마치고 의사가 될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에르네스토 게바라’, 이 혈기 넘치고 감성적인 아르헨티나 대학생들이 남미 대륙을 여행하는 이야기지요. 그 시작부터가 아주 충동적인데요. 두 사람은 어느 날 마당에서 마테차를 마시며 공상에 빠져 있다가, 그야말로 느닷없이 남미 여행을 결정합니다. ‘가볼까? 가보자!’ 이게 전부입니다. 오직 그 결정만으로 두 사람은 오토바이 ‘포데로사2’와 함께 기나긴 여정에 오릅니다.

 이런 두 사람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썩 곱지 못합니다. 1년만 있으면 의사가 되는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나려 하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여행을 쓸데없는 객기 정도로 치부합니다. 덕분에 체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알베르토는 친구의 아내에게 괜히 남편을 부추기지 말라며 냉대를 받습니다. 물론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두 사람이 여행길에 오르는 걸 막지는 못했지만요.
 
 두 사람은 왜 여행을 떠나려 했을까요? 일전에 여러분에게 꼭 해보고 싶은 일을 물었을 때, 대부분이 여행을 꼽았습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호주, 가고 싶은 곳들도 저마다 다양했고요. 사실, 여행이란 것이 원래 다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명확한 이유를 따로 세워놓지 않아도 언제고 한 번은 떠나고 싶다 생각하고, 한번쯤 ‘가볼까?’하고 말해보기도 하는 것이지요. 숙제와 시험이 목을 조일 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 부모님의 잔소리나 친구와의 다툼에 괴로울 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해질 때. 그런 때면, 체와 알베르토가 마당에 앉아 여행길을 상상했던 것처럼 우리도 때때로 멀리 떠나는 공상에 빠집니다. 단지 그 ‘가볼까?’를 ‘가보자!’로 잇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이 두 사람과 우리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요.

 자, 아무튼 두 사람은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헌데 그 여행길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포데로사2는 ‘힘 좋은 놈’이라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툭 하면 고장이 나고, 여비는 금방 동이 나고, 하루하루 먹을 밥과 잘 곳도 마땅치가 않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여행은 곧 ‘뻔뻔함 그 자체’가 됩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잘 곳 좀 빌려 달라 사정하고, 넉살좋게 밥 좀 얻어먹을 수 있겠느냐 부탁합니다. 그러다가 집주인의 애완견을 퓨마로 착각해서 죽여 버리거나, 술에 취해 남의 아내와 춤추려다 쫓겨나거나, 와인을 몰래 삥땅치려다 걸리기도 하지요. 두 사람은 기가 막힐 정도로 뻔뻔하고, 또 그런 두 사람에게 넙죽넙죽 집이며 밥을 내주는 남미 사람들도 기가 막힙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저들처럼 여행할 수 있을까, 또 저런 여행자들에게 잘 곳이며 밥을 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두 사람도, 또 그런 두 사람을 대하는 남미의 사람들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그 물음을 우리의 머릿속에 담아둔 채 두 사람의 민폐덩어리 여행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제 ‘의대생’이라는 자신들의 신분을 살짝 뻥튀기해 ‘여행 중인 저명한 의학 연구자들’로 지역 신문에까지 난 두 사람은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으로 여행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스터 섬에 가면 음식이며 술,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넘쳐난다는 소문에 희희낙락 함박웃음을 짓고서요.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침내, 식당 ‘라 지오콘다’에 이릅니다.

 라 지오콘다. 이 식당의 주인장은 얼핏 보면 구두쇠 같지만 대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밥을 대접해주는 정 많은 사람입니다. ‘오늘은 당신차례지만 내일은 내 차례’라는 그의 좌우명은 그가 자신이 베푸는 도움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임을 의심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 식당에서 체와 알베르토는 거나하게 밥을 얻어먹은 후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여자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녀는 천식환자로 이미 병이 심장까지 전이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체는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한 뒤, 처참한 집 안을 묘사하면서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가에 대한 까닭을 묻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삶에 대한 의지도 없이 죽어가야 하는 가난한 이들. 그런 이들을 내버려두는 부유한 이들과, 그들의 손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

 두 사람은 뒤이어 추키카마타 광산에 이르러 국유화를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과 민영화를 주장하는 자본가들, 그리고 그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광산 노동자들을 봅니다. 또 파차마마의 메스티소 선생에게는 백인, 인디오, 흑인, 그리고 그 혼혈들 사이에 퍼져 있는 뿌리 깊은 증오와 다툼,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는 조금씩 당시의 남미 대륙이 어떤 곳이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 대륙과 마주하게 됩니다. 산업의 국유화와 민영화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 저 대항해시대, 피사로 이래 이 대륙에 심어진 인종 간의 증오. 넘쳐나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 비참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렇기에 살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고, 또 손님을 환대하는 그 사람들. 체와 알베르토가 여행길에서 만난 남미는, 그들이 살고 있었던 땅의 모습은 바로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무언가 아주 드라마틱하고 극적으로 두 사람을 바꾸어놓지는 않습니다. ‘라 지오콘다’로부터 불과 몇 페이지 앞에서 이스터 섬에서의 향락을 꿈꾸던 체와 알베르토는, 추키마타와 파차마마 그리고 수많은 나환자들을 만난 뒤로도 여전히 뻔뻔하고, 격정적이고, 음식과 술과 사랑에 환장합니다. 다만 아주 이따금씩, 조금씩 자신들이 보고 있는 남미에 대하여 – 그리고 이 대륙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사람들에 대하여 읊조릴 뿐입니다. 세상을 보는 자신들의 시선을 가다듬어갈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여행이 끝난 다음 체 게바라는 평범하고 부유한 의사로서의 길을 버립니다. 대신 그는 자신이 목도한 세상의 부조리를 바꿀 혁명가의 길을 택합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라는 동지를 만나, 82명이서 배를 타고 쿠바로 떠났고, 해안에서 70명의 동지를 잃었으며, 남은 10여명의 동지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정해진 길을 버렸고, 하고자 했던 것을 하고자 했고, 바꾸고 싶은 것을 바꾸기 위해 인생을 던졌으며,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어냈습니다. 

 두 사람의 여행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실천으로 옮기는 두 사람의 힘, 사람을 만남에 있어 빚을 주고 빚을 지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방식, 마치 자신의 일처럼 타인의 일을 대하는 공감의 힘, 세상을 바라보는 명확하고 확고한 시선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것들 모두를 갖추기도 힘들 것이고, 갖춘다고 해서 체 게바라가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르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언젠가. 언젠가, 체가 남미의 맨얼굴을 맞닥뜨린 것처럼, 여러분도 세상의 부조리한 일면을 맞닥뜨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날에 여러분이 이 여행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볼까?’와 ‘가보자!’를 이어주는 조각을, 체와 알베르토의 여행에서 줍기를 기원합니다.       

  
분류 :
독서백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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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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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도연희

2018.01.09
14:46:02
(*.221.190.174)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사회의 부조리를 보게 된 메스티소 선생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이때부터 사회의 부조리를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혁명가의 길을 생각해보게한 계기가 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그런 여행을 왜해? 준비도 안하고, 돈도 안 챙기고, 가서 민폐만 끼치게 되는 여행을 왜 가지?'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고생은 좀 하겠지만 저렇게 현지인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세계를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을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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