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ter+view] 09

세월호의 시간, 나의 시간

-이우지역연대위원회 연인선님




정리 : 콩세알








그녀는 조용하다. 사석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목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이우학부모가 되어 용인과 인연을 맺은 지 6년 만에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녀는 용인지역 세월호 시민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매일 아침 많은 이들이 그녀의 SNS메세지를 받으며 세월호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잠시 활동이 소원해지면 그녀의 메세지는 죽비처럼 무기력해진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녀에게 ‘세월호’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1. 연인선님에게 ‘세월호참사’는 어떤 사건인가?

>>>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점으로 삶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유가족분들이 가장 그러하고, 일반 시민들 중에 일 년 내내 멈추지 않고 세월호의 문제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이 땅의 어른들 모두에게 있다는 생각이 변화의 시발점이었다고 본다. 잘못된 가치를 우선시하며 따라가는 사회가 초래하는 참상을 봄으로써, 내가 주인이 아니었던 삶, 방향 없이 부회하던 삶,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삶, 개인주의에 경도된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삶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통렬한 반성과 절실함을 경험했다. 결국 세월호가 던진 삶의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 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에게 엄중하게 던지고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작년 416이후 ‘이우학교비상대책위원회’에서부터 현재 ‘이우지역연대위원회’로 전환한 1여 년 동안 정말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했다.

>>> 4.16 참사 이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는 모든 게 바뀌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원인이 현존하는 모든 틀 안에 뿌리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 자라온 뿌리들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고 새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 안에, 우리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고정관념과 틀에 부딪쳐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들이 가장 힘들었다. 구조의 황금시간을 놓친 것처럼, 변화의 황금시간을 놓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결국은 권력과 기득권층, 언론과 투철한 고정관념이 제시하는 틀에 다시 빠져들어 일 년을 허우적거렸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을 때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저 또한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아 옆의 분들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민주주의를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것 같다. 지난 일 년 동안 배운 것 한 가지는 민주주의는 어떤 이념이나 체제, 방식이 아니라 열린 마음, 열린 사고, 유연성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을 남이 고쳐줄 수 있고, 나의 부족함을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일해 가며 배웠다. 솔직히 이우학교의 비상대책위원회를 ‘이우지역연대위원회’라는 이름의 상시조직으로 만들어 학부모회 안에 두게 되기까지에도 조직 구성 논의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불평등과 불의가 만연한 이 사회를 바꾸어 가는데 지역 단위에서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가 있었고,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를 실천해갈 하나의 조직이 마치 새로운 세포처럼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희망을 잉태한 조직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기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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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사람 목숨으로 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은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고 생각한다.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다양한 모임들을 보여준다. 세월호 연대활동하면서 가장 힘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 사람들은 모여 산다. 서로 힘이 되어서이다. 그 힘을 우린 너무 오랫동안 간과해오지 않았나 싶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힘의 한계를 안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않은 힘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며, 서로 힘을 모으면 새로운 힘이, 없던 힘이 생겨나는 것을 안다. 그건 단순히 더해지는 힘이 아니라, 존재의 상승이자 근원적 기쁨, 아름다움이 된다.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도 큰 비극이고, 절망이었지만, 그 이후 지역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모여 사는 의미와 그 본질을 깨우쳐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용인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용인시민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고 1년이 지났다. 몰랐던 이웃을 만나고, 몰랐던 이웃이 가족처럼 친근하고 따뜻해지기 시작한 지, 함께 우리 스스로를 구하고, 새 변화를 만들어 내자고 힘을 모아온 지 말이다.

물론 여러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절망과 희망 사이를 걸었다. 그러나 함께 하는 활동 속에서 매순간 ‘사람의 힘’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혼자를 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여러 손이 모이고, 여러 생각들이 모여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기대 이상의 속도와 기대 이상의 완성도로 완성되는 순간, 사람의 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함께하는 활동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우리의 힘, 그런 경험은 서로에 대한 지지와 신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나의 방식보다는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를 우선시하고, 다른 방식의 필요성 또한 인정할 때 연대의 힘이 커짐을 보았다. 연대의 힘은 상상을 넘어선다. 그리고 이제 그 힘의 경험은 또 다른 힘의 원천이 됨을 느낀다. 함께 힘을 나누었기에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4. 여러 자리에서 세월호진실규명을 위한 행동뿐 아니라 ‘안전사회’를 위한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활동이나 방향은 어떤 것인가?

>>> ‘안전사회’이슈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키워드였긴 했지만 세월호의 진실규명이 ‘안전사회’라는 하나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월호의 총체적 문제 중 ‘안전’은 그중의 한 가지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삶과 사회 전반에 큰 질문을 던졌다. 올바른 것이 과연 무엇인가? 나는 삶의 가치 문제와 그 가치를 지켜가고 살려갈 수 있는 실천의 의지와 힘이 중요하다고 본다. 잘못을 알면서도 묵인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가는 삶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진단과 철저한 성찰 없이는 그 실천력을 가지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의 힘을 모으는 작은 단위에서부터의 협력과 연대가 절실하다. 사회도, 지식도, 정보도 너무 광범위하고 세분화되고, 조직화되어 한 개인이 그 어떤 문제도 감당해낼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에서 함께 대안적 삶을 모색해가는 공부와 활동, 시도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삶의 단위를 만들어가는,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활동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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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16이후 ‘이우지역연대위’는 파지사유에서 자주 회의한다. 문탁에 대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 문탁의 단단한 힘과 지원, 파지사유 공간은 지역 연대를 꾸려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문탁을 멀리서만 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문탁은 제게 문턱이 높은 곳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아직도 그 문턱이 확 낮아졌다는 느낌은 없다. 그래서 문탁이 추구하는 질과 내용을 지켜가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문 두드리고, 찾기 편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연대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문탁과 파지사유를 접하고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호감 속에서 앞으로도 지역 연대활동에 적극적인 견인차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틈|



<연인선님의 SNS>

2015년 4월 16일, 416 참사 366일째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단, 아이들은 생명을 빼앗겼고 우리는 그들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빼앗은 생명을 새 생명으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만 있습니다. 살려내라 외치지 않고 살려내겠다고 외침으로써, 뻔뻔히 살아있지 않고 떳떳이 살아냄으로써, 짓밟히는 생명의 가치를 보란 듯이 키워 펼쳐감으로써, 죽음을 강요받는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으로 답할 것이다.


416 참사 300일째

죄없는 이들의 호소는 맑다. 그 호소를 들어줌으로써 우리도 맑아진다.


416 참사 200일째

하늘이 슬퍼할 일을 사람이 슬퍼하지 않는다며 하늘이 그에게 그 슬픔을 알게 하지 않을까.

권력을 향한 부르짖음은 이제 접는다. 그들의 잘못을 되돌릴 길은 이제 없다. 그 책임과 댓가를 언제가 치를 것이다. 양심을 향한 부르짖음은 계속된다. 양심은 살아 꿈틀거린다. 양심이 권력의 죽음위에 서는 날이 온다. 양심의 합창이 별이 된 아이들의 평화를 노래할 날이 온다.


416 참사 100일째

칠흑 하늘같은 어미 아비 가슴에 떠있는 별들, 사랑으로 태어나 거친 슬픔이 되었다가 진실과 정의의 명령으로 또렷이 살아난 별들. 수백의 별들이 100일을 분화하여 수백만 조각으로 우리 삶에 박혔으니 오늘은 우리가 별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