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25호)우리에게는 못갚을 권리가 있다

2015.12.18 05:20

봄날 조회 수:602

[Inter+view] 13

우리에게는 못갚을 권리가 있다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글 : 봄날









은행대출 한 번 안받아본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그리고 오랫동안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 허덕거렸던 경험이 없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채공화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은행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신념에 차서 오늘도 열심히 대출이자를 벌기 위해 고된 일터로 향한다. 그런데 그 신념이야말로 ‘채권자 마인드’라고 일침을 가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약탈적인 금융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한국판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그녀는 이야기하는 내내 정글을 질주하는 표범처럼 거침없었다.


지금 주빌리은행 웹사이트(http://www.jubileebank.kr)에 들어가면 세 종류의 숫자가 나온다. 3,848과 110,909,973,894와 81,300,000. 이것은 81,300,000원의 성금을 모았으며 현재 1천억이 넘는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했으며 이를 통해 3,848명의 빚을 탕감해줬다는 의미이다. 오랫동안 빚독촉을 받아왔던 채무자들은 이제 2차 대부업체로부터 받았던 인격모독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손실로 처리해 버리거나 대부업체에 헐값으로 팔아버린다. 이것을 사들인 대부업체는 채무자에게 원금을 물론이고 연체이자와 법정비용까지 청구한다. 회수에 실패한 채권은 다시 다른 대부업체에 팔리고 채권가격은 점점 떨어진다. 말하자면 빚이 ‘땡처리’되는데 이 과정에서 연체기간에 따라 백만원짜리 채권이 3만원에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갚아야 할 돈은 땡처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연체이자가 불어나면서 갚아야 할 돈의 규모는 커진다. 연체자들은 야반도주하지 않는 이상 끝없는 빚독촉과 위협에 시달리다 자살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내몰린다. 최근 인터넷에는 새로운 재테크 방법으로 이처럼 부실채권을 싼 값에 사고 채무자에게는 악랄하게 받아내는 부실채권(NPL, Non-performing Loan)투자가 각광받고 있다. 주빌리은행은 말하자면 이같은 대부업체 대신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그것을 태워버림으로써 채무자를 빚으로부터 놓여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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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주빌리 프로젝트(Rolling Jubilee Project)(www.rollingjubilee.org)는 미국의 시민단체인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OWS)’가 시민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장기부실채권을 사들이 뒤 무상소각하는 운동으로, 2012년 11월 시작한 이래 70만 1317달러(약 7억원)를 모금해 3198만2456달러(약 300억원)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했다. 그리고 채무자에게는 이같은 편지가 전달된다. “당신의 채권을 우리가 샀는데 갚지 않아도 된다.” 제윤경 대표는 ‘못갚을 권리’를 주장한다. 요컨대 금융회사가 당초에 신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줬다면 그것을 받으려는 노력은 당연히 금융회사가 해야 하고 못받았을 때의 책임 역시 은행이 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냐고 되묻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는 학습된 채권자 마인드예요. 은행이 제 할 일을 못했다고 비난해야 하는데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거예요. 양쪽이 싸우는데 한 쪽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공평하지 못해요. 금융상품을 판다는 건 냉장고를 파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냉장고를 샀는데 뭔가 이상하면 냉장고를 판 업체에 따지잖아요? 금융상품에 문제가 있다면 은행에 따지는게 당연합니다. 대출자격을 엄격하게 주었다면 부실채권이 될 가능성이 훨씬 들어드는 거 아닌가요?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약탈이예요.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냥 줘야 해요. 복지정책은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복지투쟁하고 대출자격을 낮춰달라고 분노하는 건 잘못된 운동방향이죠.”


대부업체를 찾아다니면서 부실채권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일이며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주빌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권하는 일, 부실채권 매입에 들어가는 돈을 모금하는 일이 제윤경대표의 일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한데 그녀는 누구랑 함께 이 일을 하느냐는 질문도 불만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시작하면 됩니다. 상황이나 사람은 그렇게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거죠.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다 보면 뭔가 진행되고 그러는 사이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러면 성과를 내는 겁니다.” 


서울시와 성남시가 주빌리 프로젝트에 적극적이고 점차 지자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지자체가 나서면 대부업체를 설득하는 일도 모금하는 일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제윤경 대표는 일정한 사무공간이 없다. 사실 그녀를 만나러 성북구 종암동 골목의 ‘성북구 마을-사회적 경제센터’로 가기로 했을 때 우리는 ‘탐방’기사로 다룰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는 작은 사무실 한 칸에서 직원들만 일하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에듀머니 말고도 작은 사회적 기업이 여러 군데 입주해 있었다. 재활용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플러스 스튜디오’라는 기업이나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라는 패션 관련 사회적 기업도 자리잡고 있었다. 


“당장 내일의 일정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늘 사람을 만나고 싸우고 교육하는 일이니까요. 지자체들과의 일 때문에 돌아다녀야 하는 거리가 더 늘어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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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대표로 있는 에듀머니는 주빌리 프로젝트 외에도 다문화가정이나 출소자 가족, 성매매 여성들, 새터민 등, 사회적 약자계층을 중심으로 한 경제교육 사업과 재정상담 수수료 수입을 주요 수입원으로 운영된다. 뾰족하게 잘되는 사업이 아니라는 감이 즉시 온다. 내년엔 안 망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10년 넘게 버틴 기업이다. 여러 명의 재무 컨설턴트들이, 자신의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으로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의뢰인들의 의지가 되고 있고, 많은 공동체들과의 연계로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부를 가지고 반자본의 삶을 꿈꾸는 우리들과 방향은 같을지언정 그 실천의 방식은 꽤나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 공부를 하는 곳이라면 저는 쉬운 금융관련 텍스트를 함께 읽으셨으면 해요. 아무리 개개인의 실천의 문제를 고민한다고는 해도 여전히 추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어렵지 않고, 재미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생각한 것보다 금융사회는 훨씬 파괴적입니다.” 


졸지에 생각없이 책이나 읽는 사람들도 치부되는 것같아 묘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공부에 매몰되어 그야말로 래디컬한 측면이 약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얼마 전 요요님이 작업장의 활동에 대해 더 급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무엇보다 부채탕감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이유는 ‘빚’을 진 사람이야말로 통치하기 가장 좋은 사람이고, 그것이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에게도 올가미가 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제는 노동운동을 하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어요.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니까, 파업에 참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운동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긴 싸움 끝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것도 알고 보면 ‘빚’이 많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예요. ‘빚’에 대한 본질적인 사고의 전환이 아니고서는 금융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요. 국민 대다수가 빚을 지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빚에 허덕이고 있다면 그야말로 ‘국민 모라토리엄’이라도 선언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대출문턱을 낮추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또 빚의 늪에 빠지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나 ‘적게 벌고 적게 쓰기’같은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윤경 대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채무자 운동이 일단락되면 그녀도 소비저항 운동(다운 쉬프트 운동)에 나서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자신은 이미 10년 전에 신용카드를 잘라 버리고 현금이나 충전식 교통카드를 쓰고 있다고 한다. 신용카드를 쓰면 늘 ‘쫒기는 마음’이 들더라고 하면서 피치못할 경우가 아니면 카드는 아예 쓰지 않는 걸로 스스로 약속하고 이것을 지켜나가는 중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금융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을 시작으로 우리가 <반자본/반금융 세미나>를 시작해보는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역시 우리는 ‘신용카드 잘라버리기’같은 급진적 퍼포먼스 보다는 덜 구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윤경 대표가 지적하는 것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각자 진지하게 실천적 고민을 미루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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