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30호)마법에 걸린 산장지기 - 함백산장지기 박옥현

2016.03.10 05:48

느티나무 조회 수:540

[Inter+view] 14

마법에 걸린 산장지기

- 함백산장지기옥현





정리 : 느티나무










지난 1월 가장 추운 날이었던 22일에서 24일까지 중등고전학교 친구들이 <열하처럼, 강원도 일기>라는 캠프를 함백산장으로 갔었습니다. 아래의 글을 그 때 캠프를 갔던 친구들이 함백 산장지기인 박옥현님을 인터뷰 한 내용을 담당 교사였던 느티나무 샘이 정리한 것입니다. (웹진팀)


밖을 나오면 금방 코끝이 빨개지고 콧물이 매달리는 매운 추위에 나는 용감무쌍하게도 강원도 함백으로 길을 나섰다. 그것도 주렁주렁 쇠(소)귀를 달고 있는 중딩들을 데리고 말이다. 예미역에 도착하니 기차에서 내리는 이는 달랑 우리 일행 뿐이다. 달려드는 추위에 정신을 차리고 발을 동동거리며 역을 나서자 서글서글한 눈매에 매일 보는 문탁의 그녀들처럼 낯익은 모습이 손을 흔들며 서 있다. 그녀의 인맥으로 동원된 3대의 차와 함께...첫인상부터 그녀의 포스는 산장지기로만 있기엔 예사롭지 않았다. 


 “함백산장은 고미숙선생님의 부모님께서 사시던 집이다. 고미숙선생님은 1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평소 운영하시던 함백슈퍼를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처럼 매일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슈퍼와 집을 리모델링하여 지금의 함백산장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도와 달라는 학교동창의 부탁으로 산장을 오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친구의 누나, 고미숙선생님이 찾아왔다.” 


박옥현.jpg


그 다음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문탁에서 몇 년 뒹굴다 보면 누구든 알 수 있게 되는 마법의 주문에 걸리는 시간이었으리라. 우리에게 미리 계획된 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얼마나 되었던가. 늘 느닷없는 찾아오는 사건의 연속일 뿐. 그녀에게 찾아온 산장지기의 삶 또한 그러했다. 마법에 걸리 듯. 산장지기가 되면서 주변의 반응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이전 함백에서 30여년 나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만화방에서 시작해서 분식점에 유흥주점과 티켓다방 그리고 피시방을 거쳐 마지막 13년 동안 해온 식당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사를 섭렵한 ‘장사의 신’이었다. 그러던 내가 산장지기와 함께 팔자에 없던-학창시절에도 하지 않던-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생뚱맞기 그지없다. 처음엔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일로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책과 씨름을 하고 글을 쓰고 낭송을 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도 처음엔 호기심에서 혹은 모여서 수다를 즐기러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혼자 하는 낭송이 영 쑥쓰러워 같이하자고 권했더니 하나 둘 발걸음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겼다. 요즘 주변을 살펴가며 책을 슬그머니 감추기도 한다.”


옥현언니.jpg


그녀는 함께 인터뷰를 하는 중딩들에게 자신의 ‘공부론’을 펼쳐 놓았다. 쇠귀에 경 읽기가 아닐까 했는데 그 중 한 녀석의 귀에는 쏙 박혔나보다. 후기로 쓴 에세이에서 그녀의 늦깎이 공부가 지금 자신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게 했노라 써놓았다.  하지만 공부한답시고 타지역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걸 그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곳은 탄광이 있을 때 여느 도시 못지않게 북적대던 곳이었다. 그러다 탄광이 폐쇄되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죽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마땅히 농사지을 땅도 없는 산촌에서 탄광만 바라보고 문을 연 가게들만 남아있다. 찾아 올 손님도 없는데...그런데 함백 슈퍼가 함백 산장으로 바뀌고 나서 서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이곳에 온다. 그들의 행동은 참으로 수상하다. 우르르 와서는 밥 먹을 때를 빼고는 공부를 한다. 글을 읽고 밥 먹고 또 공부하고 밥 먹고 바깥에 나와서 우르르 산책을 하고 또 공부를 한다. 밥할 시간도 아까워 식당에서 사먹는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하다. 공부가 저렇게 재미있나 싶다. 나는 공부하는 흉내만 내고 있어도 힘든데 말이다. 그래도 한적하고 조용하기만한 마을이 한 번씩 북적대는 것이 좋다. 말 앞에 늘상 육두문자를 달고 살았던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게 영 어색하지만 그래도 해보련다. 죽자고 공부를 하는 저들을 보면 공부 속에 뭔가 있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아들 부부로부터 손주를 맡아 돌보면서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는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기운이 팍팍 전해져 온다. 함백산장과 그녀를 통해 근대화의 잔해가 되어버린 이 작은 마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그 틈에서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2박 3일 일정을 보내는 동안 그녀는 어디선가 불쑥불쑥 나타나 인사를 하고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떠나게 됐다. 예미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에 섰는데 인사를 못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랬는데 어디선가 불쑥 그녀가 나타나 인사를 한다. 손주 녀석 따라 나올까 몰래 나왔노라 하신다. 끝내 나는 그녀가 어느 집에서 나오는지 보지 못했다. 꽁꽁 언 그곳을 떠나면서 봄에 다시 오겠노라 약속했다. 이제 공부의 마법에 빠져버린 그녀와 그녀의 마을에 찾아 온 봄이 어떤 싹을 틔울지 기대가 된다.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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