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의 밀양통신

[남어진 밀양통신 - 4회] 활동가가 아닌 삶

2018.05.01 07:01

밀양통신 조회 수:376

활동가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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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터가 바뀌었다.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 상근 활동가일이 끝났다. 세상 돌아가는 소음과는 멀어졌고 기계소음이 가득한 곳과는 가까워졌다. 백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돈벌이가 필요해 공사 현장을 나가고 있다. 항상 마음이 시끄럽고 아팠는데, 이제는 귀가 시끄럽다. 망치로 손을 때리고, 부러진 칼날을 뽑아내다 베이기도 하며 일을 배운다. 요령이 없는 초보는 몸이 고생이다. 그날 공정에 따라서 아픈 부위는 달라진다. 짐통에 시멘트를 져 나르는 날에는 어깨가 아프고, 석고보드를 하루 종일 붙이는 날에는 팔뚝이 아프다. 한 순간만 방심하면 크게 무언가 잘못되는 것 말고는 대책위 일과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는 곳이다. 실수하면 큰소리가 날아오고, 긴장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 10만원이 생기고, 누군가 살 집을 짓는 매력 있는 일이니 즐겁다.

   대책위를 그만두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를 무엇이라고 소개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밀양 대책위 활동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노가다 하러 다닙니다.” 라고 소개를 마쳤다. 돌아오는 질문들에 내가 밀양싸움의 주체인 것처럼 대답하는 것이 대책위에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 판에서는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굳이 과거나 인적 사항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진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에 간 현장에서는 일주일쯤 지난 뒤에야 서로 나이를 알고, 26살 형이 타던 커피를 내가 타게 되었다. 망치질만 잘 하면 되는 곳에서 굳이 한 때 데모를 좀 빡시게 했었습니다.” 라고 떠들 필요가 없게 된다. 아직은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지만, 불편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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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에 찌든 모습이다.



일하는 것

   노가다를 한다고 이야기 하면 돌아오는 눈빛 속에 다양한 감정이 읽힌다. 일을 마치고 온 몸이 더러워진 채로 (털긴 하지만, 잘 안 털린다) 편의점에 군것질거리를 사러 가거나, 식당에 들어가면 혐오당하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거나, 대책위 조끼를 입고 있으면서 느꼈던 한없이 두려웠던 눈빛들이다. 그러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멋있다고 치켜세워 주면 어깨가 우쭐한다. 사실은 아직 창고 하나 만들 줄 모르는 시다바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눈빛들도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지, 실제로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보내는 홀로 살아남기에 대한 응원이거나 걱정일 가능성이 더 높다.

   대책위 일을 그만두고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좀 놀고, 쉬고, 봄을 준비 하듯이 에게 거름을 덮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대로 될 턱이 없다. 6시에 일어나 일을 나갔다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고 바로 잠드는 일상이 찾아왔다. 책가방을 좀 무겁게 들었으면 책가방보다 10배는 무거운 짐통을 안 들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시간이 부족하니 내가 맺고 있던 관계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거의 매일 보던 계삼쌤을 일주일에 한두 번 마주친다. 대책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뒷전이 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

   지키며 살고자 했던 것들을 포기하고 납득하는 일은 많아진다. 훨씬 많이 비겁해진 것은 아닐까. 나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까. 밀양 대책위 활동가가 아닌 채로 밀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른 삶과 함께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 중 가장 먼저 닥친 고민은 먹고, 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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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손. 안 하던 노가다를 하다보니 자꾸 손이 튼다.


먹는 일

  지난 몇 년 동안은 식당 밥을 주구장창 먹었다. 밀양에 있는 모든 맛집을 섭렵했을 정도니 말이다. 아침은 굶고 점심, 저녁은 항상 식당에서 사먹었다. 멀리 가거나, 사람을 만난다는 이유였다. 돈만 내면 맛있는 것이 나오는데 굳이 집에서 해먹을 필요가 없었다.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뛰어들면서 얼떨결에 독립하게 되었지만 밥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돈이 해결해주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 밥을 사줄 사람도, 밥 먹으러 갈 자리도 없어졌다.

   밀양 할매들의 음식솜씨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 밥은 밀양을 한 번 더 찾게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농성장으로 매일 수십 명의 사람이 찾아와도 손수 밥을 해 먹여 보낸 것은 할매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다. 할매들은 요즘도 멀리 가기만 하면 항상 음식을 직접 준비하신다. 버스 한 대가 움직이는데 사먹으면 돈도 많이 들고, 서울 음식은 다 맛이 별로라는 이유에서다. 동래할머니가 국을 끓이시면, 평밭마을에서 반찬을, 용회와 동화전에서 간식을 챙기는 식이다. 나는 항상 이 일을 번거롭게 생각했다. 각 마을에서 전 날 장을 보고, 밤새 음식준비를 해오는 것은 참 죄송한 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밥을 차려 먹는 행위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전날 수저와 식기를 챙겨야하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밥을 차려 먹는 행위가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다. “밀양 할매의 밥이 짱입니다!” 라고 말하며 다녔지만 같이 음식을 해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학교에는 된장찌개 끓이는 교육이 없었고, 가장 좋은 음식 선생님들의 곁에 수년간 붙어있었지만 배우려 들지 않았다. 지금은 후회 중이다. 내손으로 밥상을 차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의 첫 번째 목표는 된장찌개를 끓이는 것이다.

    


자는 곳

  얼마 전, 밀양에서 살 집이 없어졌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밀양 안에서 대책위 활동가에게는 많은 권한과 혜택이 있었고, 주변에서 이러한 고민들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2년마다 한 번씩 다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던 걱정을 이제 시작하게 되었다.

3월부터 여기저기 방을 보러 다녔다. 방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괜찮다 싶어서 등기부등본을 때보면 빚이 80% 라거나, 신축이라고 해서 갔는데 볕이 안 들어오는 방이었다. 월세 30만원 방은 좁았고, 20만원 방은 곰팡이 냄새가 너무 났다. ‘내가 이 돈을 주고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어 청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원룸에는 살기 싫다고 불평을 하면, 땅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꼭 하는 소리가 있다.

내가 니 나이 때는 더 안 좋은 반지하 방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빈 땅에 컨테이너 놓고 살면 되겠네.~”

   젊은 사람들이 원룸에 사는 것이 언제까지 당연히 여겨질까. 그 시절에는 반지하 방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하면 좋은 집이 생겼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투룸 전세금 6000만원을 모으려고 해도 매달 50만원씩 10년은 모아야 하는데, 달에 150만원을 겨우 벌어 월세 30만원씩 주고 살면서 50만원씩 저축하는 것이 가능할까. 결국에는 전세금 대출을 받아서 사는데,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은 대출도 안 된다. 하지만 당장 살 곳이 없거나 급하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열악한 방을 얻어 살아야 한다. 독립을 꿈꿀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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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일하고 있는 현장. 5년 안에 내 집을 짓는 것이 목표다.


홀로서기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잘 살지생각했는데, 이제는 먹고 사는것을 걱정하고 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까. 살아남기 위해 버둥댈까. 살아가기 위해 힘쓸까. 이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쩌면 밀양에 처음 왔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힘이 될까. 괜찮은 목수가 되고 싶은데, 그 전에 밀양에서 젊은 사람으로 홀로 설 수 있을까.

다 쓰고 보니 이번 글은 참 어지럽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강아지의 발자국 같다. 활동가가 아닌 남어진의 삶은 이렇게 어지럽게 시작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밀양에 눌러앉았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미친 것은 때론 나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용기가 될 때가 있다. 밀양으로 내려왔던 첫날 밤,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 말 한마디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에 미쳐서 아수라장에 남게 되었을까. 또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책위를 나오고 처음 생긴 목표는 5년 안에 내 집을 짓는 것이다. 다시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