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의 밀양통신

[남어진 밀양통신 - 7회] 강정 마을 사람, 딸기에게

2018.07.31 06:57

밀양통신 조회 수:1699


강정 마을 사람, 딸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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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살면서 처음 해 보는 일이네요. (그것도 공개적으로) 우리는 서로 현장의 활동가로 만나, 매번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눈짓 한 번, 짧은 말 한 마디 한 번씩만 나누며 몇 년을 알고 지내며 함께 차 한 잔 해볼 수도 없었네요. 밀양 주민과 함께 제주에 가거나, 서울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때 말고는 얼굴 보기도 참 힘들었어요. 강정에서 살며 겪는 일의 자세한 사정도, 당신의 속내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관함식때문이에요. 정확히는 강정마을에 사는 평화활동가들의 마음이 끊임없는 무너짐의 연속일까 걱정되어, 어떻게 하면 조금의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속상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당신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만 할까봐 글을 시작하는 지금도 조금 망설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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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다 막 올라온 주민투표 결과를 보았어요. 뉴스에는 숫자로만 보여질 저 결과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짐작이 되지 않아요. 결국 이번에도 청와대는 다른 이들의 손을 빌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군요. 이미 관함식 개최 반대로 정해진 주민들의 뜻을 알면서도, ‘대통령의 사과마을공동체 회복사업을 미끼로 주민총회를 다시 하게 만들고, 주민투표까지 하게 만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관함식의 명분을 얻었내는군요. 문뜩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발표날이 떠올랐어요. 밀양 사람들이 큰 좌절과 상실감을 느꼈던 날이었어요. 우리는 그 날 이후로 힘이 많이 빠져서 아직까지도 힘들어 하고 있어요. 밀양 주민들은 공론장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들어가 보았고, 결국 결과가 발표되는 날, 정부종합청사 앞에 눌러앉아서 울기만 했었어요. 59.5%의 공사 재개 의견이라는 숫자만 세상에 널리널리 퍼졌고,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는, 핵 없는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외침은 먼지가 되어버렸죠. 그 날을 생각하며 지금 강정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봐요. 그 때 우리처럼 가슴이 무너져내리고 있지 않을까. 더욱 막막해진 앞으로의 나날이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숫자로 재단되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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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마을공동체의 회복을 바랬다면, 관함식을 제주에서 할 생각도 말았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강정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다면 관함식을 당장 취소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딸기의 말처럼, ‘미안한 마음은 시일을 따져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과에 명분을 찾고 시일을 따지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일이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은 해군기지에는 한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로 강정마을을 찾아야 해요. 그가 사과할 것은 하나가 더 늘었네요. 관함식을 정부의 입맛대로 강행하려 한 일에 대해서, 그래서 다시 마을이 갈라진 것에 대해서 꼭 사과해야 해요. 지금이라도 제주 관함식을 취소하고 그 날 일정을 비워 강정마을 사람들의 말을 들으러 오는 날로 꼭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맥주 한 잔 하며 경제이야기는 들을 수 있으면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해군기지 때문에 고통받아온 사람들의 평화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정부가 말하는 마을공동체회복사업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지한가요.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걸까요. 사람들은 흔히 마을공동체 파괴를 찬성주민 반대주민으로 나뉘어 심각하게 싸우는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나 또한 다른 이에게 밀양을 설명할 때, <첨예한 대립 속에 핍박 받는 소수의 반대 주민들> 이라는 틀을 기조로 이야기 하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밀양 마을 어른들에게 들었던 마을 이야기를 찬찬히 떠올려보면 한전,정부와 결탁해 마을을 팔아먹는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도 많지만, 제일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슬픔이 항상 있었어요. 한 마을이 파괴된다는 것은 수 십년 동안 쌓여온, 수 백 수 천개의 관계들이 일그러지는 것 이었어요. 부모 자식 사이, 친구 사이, 동지 사이 어느 하나 모두 너무 소중한 관계였어요. 그리고 이미 딸기도, 평화활동가들도 이 관계 속으로 들어간 강정마을 사람이잖아요. 함께 살고, 웃고, 싸웠음에도 외부자라는 꼬리표가 돌아오는 나날이, ‘송곳처럼 돌아오는 눈빛이 얼마나 괴로울까. ‘평화운동가들이 받는 억겹의 상처는 누가 알아줄까요. 마을의 회복이 돈으로 하는 사업같은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강정마을 주민 딸기의 고통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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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현재의 시대는, 인간이 살면서 잃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너무나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주주의는 소수의견을 한 번 들어주는 척만 하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하는 형식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강자들이 마음대로 평화와 안전의 상한선을 그어버릴 수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끊임없이 모순적이에요. 탈핵 하겠다고 이야기 하면서 핵발전소는 증설하고,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면서, 평화의 섬이라고 말하면서, 제주가 100년 세월 동안 겪은 풍파를 고스란히 알고 있으면서, 강정이 13년이라는 시간동안 겪은 고통을 알면서 국가원수 등이 자기 나라의 함대와 장병을 검열하는 의식을 제주에서 하려고 하는 상황을 저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네요.

 

오늘은 강정에서 성산까지,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시작되는 날이네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득중지부장님의 페북 라이브에 언뜻 친구들의 얼굴이 보여요. 강동균 회장님은 모든 율동을 다 외우셨네요. “정부 해군의 협작질에 우리끼리 싸우지 맙시다.” 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투표장 앞에 서 있는 강동균 전 마을회장님의 사진을 보았어요. 관함식 수용을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심정일 것 같은데, 우리 싸우지 말자고 피켓을 들고 계시더군요. 당신들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군요. 나는 내가 너무 거대한 말들을 하고 있거나, 거대한 일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문정현 신부님의 말을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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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무엇이냐

- 조약골 노래, 문정현 글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새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평화는 군함과 무기가 만드는 것이 아닐꺼에요. 동네에서 나누는 서로의 인사, 한여름 손잡고 걷는 걸음, 늙은 할아버지의 멜로디언 연주와 같은 것들이 평화임을 믿어요. 나는 구럼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그 곳에서 나는 용천수를 마셔볼 수도 없었고, 따뜻하고 푹신한 바위 위에 누워볼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껏 버티며 강정에서 살아온 당신들의 삶 속에 여전히 구럼비가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이제 그만 부서지고, 아프고, 슬펐으면 좋겠어요. 딸기 당신이 평화임을, 당신들의 고통이 아픈 사람이 있음을 전하며 편지를 마칩니다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