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의 밀양통신

[남어진 밀양통신 - 8회] 갑작스러운 인사

2018.10.18 10:54

밀양통신 조회 수:179

갑작스러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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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진입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저번 달 원고 약속을 깬 것은 죄송합니다. 망가진 몸과 마음 때문인지, 마주쳐 본 적 없는 벽에 막힌 듯한 느낌 때문인지 말이 나오지 않아 쉬어버리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약속을 마저 지키지 못 할 것 같아서요. 스스로를 가다듬고, 남은 3개월 간 밀양 소식을 전하려던 찰나에 또 다른 일이 닥쳤습니다. 917, 소집 영장이 예고 없이 날아왔습니다.

 

어쩌면 운 좋게 빗겨갈 수도 있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 난 이는 신체검사를 받은지 4년이 지나면 장기대기자라는 명목으로 면제가 된다는 것을 올 초 병무청과 통화한 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엄청나게 재수 좋은 일이 나에게는 생길 것이라는 희망(착각)으로 숨죽여 남은 날을 새었습니다. 8월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그 희망이 현실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목수 일을 제대로 해보려 트럭도 사고, 드릴도 두개나 사는 바보 같은 짓을 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징집 시스템이었다면 군은 유지되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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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을 받는 순간 지난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들었습니다. ‘두려움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한 겨울 깊은 산 속 농성장에서 혼자 밤을 날 때도, 수천 명의 경찰이 나를 조롱하며 지나갈 때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4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고, 남은 111개월 동안 9시 출근, 6시 퇴근하며 주말과 공휴일은 놀면 되는, 돈이 조금 부족한 것 말고는 지금의 삶보다 오히려 편할 것만 같은 미래가 왜 이렇게 두려운 것일까, 집 떠난 4주가 1년보다 길까봐 그런 것일까. 이제 막 익숙해진 망치를 손에서 놓아야 하는 것이 억울해서 그러는 것일까. 갑자기 닥친 이 두려움에 혼란스럽습니다.

 

혼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도 두렵고 괴로운가. 스스로를 세상에 맞서는 자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잘못된 것에 맞서기보다 조금 덜 고통스러운 것이 편한 비굴한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 참는 것이라 스스로를 속이지만 실은 맞설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일하던 현장에서 우연찮게 송전탑 데모 전력이 알려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한 노인은 계속해서 데모하는 바람에 국가에 찍혀, 현역 못 가고 공익 간다.” 라는 이야기를 웃으며 했습니다. 나중에는 우리 동네 앞에 쓰레기 폐기장이 생기는데 제대하고 나면 와서 데모 반장 쫌 해라.” 라고 하더군요.

 

저는 속이 쓰리면서도, 그 순간을 조금 편하게 넘기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죽도록 싸웠던 내 생을 그렇게 의 삶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이 분하고, 죽도록 싸웠던 상대에게 잡혀가는 것이 분하지만, 그 노인에게도, 국가에게도 한 마디도 못 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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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징집을 당해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 반발이 심합니다. 스스로 판단한 옳고 그름에 충실한 것이 양심이라면 군을 다녀온 사람들이 비양심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친동생은 3월에 입대했습니다. 난생 처음 가본 일산에서 7개월 째 군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은 시간이 안 가 죽겠다고 푸념합니다. 방공포를 맡아 산 속에 있는데 도시의 야경이 예쁘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는 군 생활이 긴 악몽 같겠지만, 아마도 양심의 가책은 덜한 듯 합니다.

 

정말 비양심적인 사람은 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끔직한 지 보았으면서 총칼을 들고, 평화를 이야기 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총 게임을 하고, 국가가 얼마나 우리를 못 살게 굴었는지 알면서 당신들을 위해서 복무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저 다시 도망갈 뿐입니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두려움은 이렇게 한 두 걸음씩 도망치다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릴까 하는 걱정에서 시작되었나봅니다. 뒷걸음질 치다 어느 순간에는 나는 앞으로 걷고 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할까봐 겁이 납니다. 비겁한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 두서없는 글을 끄적였습니다.

 

지금도 길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친구들에게(나를 부끄럽고 두렵게 하는), 도망치듯 벗어난 밀양에게, 총칼로 만드는 평화를 거부하며 감옥에 있는 (다녀온)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갑작스러운 인사를 마칩니다.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NM

 

 

 

- 문탁네트워크 연재를 마치며 -

 

()이 무언가를 포장하기 좋은 수단이라는 것은 달이 지날 때마다 선명히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경계하며 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생각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이기도 하고,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낼 수 있어서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말하지 않는 순간이 오랜 시간동안 이어지면 무언가를 정리하지 못하고 잃어버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채 1년을 채우지 못한, 글쓰기는 저에게 긴장과, 위로를 동시에 준 고통의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