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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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 십년을 보낸 기분이다. 뭘 하느라 이리도 세월 가는 줄 몰랐을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밤새도록 어려운 책 붙잡고 씨름하던 일과 써지지 않는 에세이 때문에 꿈에서도 글을 쓰던 기억들이다. 사서 고생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문틈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작은 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공부를 계기로 문탁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원래 나는 경제엔 관심도 없었고 그저 물리 법칙처럼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겠거니 했다. 수요공급 곡선이나 복잡한 수식, 그런 것들에 의해 인플레도 되고 디플레도 된다고 여겼다. 1997IMF 사태로 생활에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운이 없는 탓으로 돌렸다. 하필 그 직전에 집을 샀고, 갑자기 금리가 치솟아 대출이자 때문에 돼지 저금통까지 털어야 했고, 남편은 야심차게 이직한 직장의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실직하고. 이 모든 것은 그저 우리 가족에게 우연히 닥친 불운이라 받아들였다. 하지만 언제 닥칠지 모를 불운에 대비하고 살아야 하기에, 일상에는 늘 위기의식과 불안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다르게 다가왔다.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으로 촉발된 위기는 온 세계로 파급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집, 저축을 잃고 다시는 중산층의 대열에 끼지 못하는 타격을 입었다. 얼마 뒤 <인사이드 잡>(2010)이라는 다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로 접한 사태의 내막은 기가 막혔다. 더 높은 수익을 위해 고위험 파생상품을 만들어 사고판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사건이지만 놀라운 것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비롯 소위 세계 최고의 경제브레인들이 위기를 예측도 못했다는 점이다. 사태 수습과정 또한 경악스러웠는데, 철저히 가진 자들의 손해를 막기 위한 방향으로 대책이 세워졌다. 경제엘리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씁쓸했다.

경제 전문가들의 전문 지식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것을 당연시했던 믿음이 사라졌다. 내 생활도 그들의 탐욕을 위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 왔던 것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집을 사면 집값이 폭락하고 금리가 치솟더니 집을 팔아버리자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거기에 덩달아 전세값도 따라 올라버렸던 일도 떠올랐다. 도대체 왜 이리 운이 없나 싶을 정도로 내 삶을 흔들기만 했던 경제라는 괴물. 그 배후에 뭔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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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없는 화폐가 있다고?  

2010년 초 동네에 지역화폐 워크숍이 열린다 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서 대안적인 화폐제도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미국 소도시 이타카의 이타카아워, 대전 한밭레츠의 두루. 이것들은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화폐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화폐로 품앗이를 하고 물건을 사고판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출이자니 예금이자니 하는 개념은 아예 없다. 이자가 붙지 않는 화폐인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화폐의 핵심용법은 이자를 통해 부를 쌓게 해주는 것라고 생각해왔는데 뭔가 확 깨지는 느낌이었다. 이자를 없애고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수단으로서의 편리함만 남겨둔 화폐로서 상부상조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갑자기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곤란해지는 극한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도 지역화폐가 도입되면 훈훈한 일이 많겠거니 기대했으나 안타깝게도 모임은 중단됐다. 대신 모임에서 만난 몇몇 사람이 문탁에서 공부모임을 꾸린다는 소식에 아쉬운대로 거기라도 가보자 싶었다. 그리하여 꽃피는 사월, <마을과 경제>라는 생소한 이름의 공부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문탁의 홈페이지에는 <마을과 경제> 세미나 모집글이 이렇게 올라와 있었다.

 

마을과 경제 세미나'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경쟁하는 것을 부추기는 세상의 논리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살림살이를 고민하는 세미나입니다.

 '마을과 경제 세미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관계와 삶의 터전인 마을이

더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지역화폐의 도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지역화폐에 관심있는 분, 조금 일하고도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을 고민하시는 분,

더불어 함께 신나는 세상을 꿈꾸는 분, 뭔가 새롭게 사는 방법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10.4.16. 문탁홈페이지의 <마을과 경제> 안내글)

 

살림, 선물, 화폐, 마을, 경제 ......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쏭달쏭한 단어들이 조합된 수수께끼 같은 글이었다. 세미나는 격주로 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격주마다 모여 공부가 되긴 할까 싶지만 당시로서는 그나마 2주에 한번 한다니 마음을 낼 수 있었다. 얼렁뚱땅 시작을 하고 나니 모든 참여자가 돌아가며 발제도 하고 후기도 써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서서히 문탁 공부에 익숙해져 갔다.

세미나에는 의료생협을 추진 중인 사람, 작은도서관 운동을 하는 사람, 지역신문 일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자기 활동으로도 바쁜 그 분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빠지는 일이 잦았지만 꼬박꼬박 출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요산요수, 달팽이, 노라 그리고 지금이 그들의 별명이었다. 조금은 게으른 세미나가 결성된 행운 덕분일까? 공부를 통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경제 성장, 해야 된다?  

세미나에서 처음 읽은 책은 녹색평론에서 나온 작은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2002)였다.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것들이 원래부터 상식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파헤치는 전개는 반전있는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했다.

발전이라는 단어의 용법이 고쳐 만들어진 사례는 드라마틱했다. 발전을 의미하는 단어 develop은 본래 자동사였다. 꽃망울이 꽃이 된다든가,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든가 하듯이 주로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 발전이었다. 하지만 1949120일 새로 미국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취임연설에서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공표한다. 발전을 타동사로 쓴 것이다. 스스로 발전한다고 할 때는 각자의 잠재력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다. 꽃망울이 터지는 시기도 저마다 다를 것이며, 나뭇가지가 어디를 향해 뻗을지도 제각각의 사정대로다. 하지만 타인이 시켜주는 성장이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아마존 원주민 아이도 숲속의 베리를 구별할 줄 아는 것 대신 시계를 볼 줄 아는 게 성장이 된다. 수렵채집의 삶을 버리고 노동자가 되어 임금을 벌고 나이키운동화를 신게 되는 게 발전이 된다.

그동안 나는 성장이란 건전한 생활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해왔다.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정당하게 자산을 늘리며 사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양식이었다. 월가 고위층들이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부를 독식하려는 것이 문제였지, 경제 성장 그 자체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나 자신도 경제성장을 하기위해 노력해 왔을 뿐더러, 3세계 어린이의 학교교육을 지원하는 유니세프 기금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좋은 일로 믿어왔던 성장과 발전이 알고 보니 자율을 막고 획일적 경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구를 위해 성장을 추구해온 걸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한계는 없었다. 노후대비에 필요하다는 돈의 액수도, 이만큼은 갖춰야 한다는 잣대도 자고 일어나면 저만큼 앞질러 가 있었다. 그야말로 시지프스의 노동. 이게 바로 성장의 숨겨진 본 모습이었다.

사실 그 즈음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지쳐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모이는 돈은 쥐꼬리만 해서, 아파트니 땅이니 부동산을 사고팔아 큰 돈 굴리는 친구들에겐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친구들을 부러워 한 건 아니었다. 친구들이 소위 말하는 투자라는 게 사실은 집값 올려 없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드는 투기라고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였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자 어느새 나는 복부인 친구들에게 충고를 들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윤리적으로 살려고 하는 내가 왜, 도리어 그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것인지 우울했다. 복잡미묘한 감정들에 지친 일상을 보내던 바로 그 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인연으로 <마을과 경제> 세미나에 발을 들여 놓았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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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성장이라는 개념이 다르게 이해되자 성장의 그늘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경제성장을 위해 동원되어야 하는 수많은 자원들은 실은 자연의 다른 이름이었다. 인류의 모습은 빙하를 향해 돌진하면서도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고 있는 타이타닉호와 다를 바 없다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표현은 딱 맞았다. 성장논리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현실을 비판하는 일에 너도 나도 맞장구쳤다. 하지만 누군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냈다. 그래도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 덕분에 우물가에서 빨래 안하고 편히 살게 된 건 사실 아닐까. 성장을 멈추고 그런 편리를 포기하고 살 수 있을까. 또 성장을 안 하겠다고 하면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는 어째야 되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오버랩되니 책에서 얻은 새로운 앎은 또 다른 무게가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 무게는 갭투자니 뭐니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세상물정 모르는 애 취급받던 때 의 갑갑함과는 다른 종류였다. 우리는 세상 물정은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이 바뀔까. 세상이 좋게 바뀌려면 내가 뭘 하면 될까. 그게 가능하긴 할까. 점점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세미나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새 책을 펼 때마다 이번 책은 답을 줄 거라는 기대를 걸었으나 끝까지 읽어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정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책 속에서 여러 스승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앙드레 고르는 노동을 덜 하고, 소비를 덜 하면서 보다 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이렇게 욕구의 영역을 의지적으로, 집단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그럼으로써만 이 자율의 영역을, 즉 자유를 확장할 수 있어야만 한다(에콜로지카, 생각의 나무, 2008, 106)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탁장, 빨래건조장, 놀이공간, 문화공간들을 만들어 에너지를 덜 쓰고 차를 덜 타는 생태적 공동생활을 제안한다. 그렇게 함께 산다면 덜 성장하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체구와 달리 우렁찬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던 달팽이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딘지 모를 틈새로부터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수수하고 소박한 이 친구들과 함께 뭔가 저지르고 싶어졌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