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생극장


[사기, 인생극장 / 1회] 


주지육림(酒池肉林)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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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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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읽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믿음으로 한 편, 한 편 상영하는 인간극장!

막이 올랐다.

 





나는 위대(胃大)한 편이다. 그 위가 포만감을 느끼자니 먹는 것도 좋아하고 잘 먹는다. 잘 먹으면 살이 찐다. 그래서 다이어트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작심삼일로 실패하기가 습관이 되었다. 실패할 때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될 대로 되라고 마구 먹기 일쑤였다. 요즘 들어 나 말고도 마구 먹는 이들을 보았다.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먹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먹으면서 죄책감이 들기 일쑤였는데 저들은 너무 즐겁게 먹는 것이었다. 이건 뭐지?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술과 음악과 여자를 좋아했다. 그래서 왕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렸다. 어느 날은 그 모든 것을 한 자리에 모아서 보기로 작정을 했다. 정원의 연못에 술을 채우고 나뭇가지에는 고기를 걸어 놓았다. 누대 위에서는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했다. 자신은 애첩 달기와 함께 누대 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지육림, 최초의 먹방?  

누대 위에는 산지에서 진상한 온갖 진미들이 올라온 상이 차려져 있었다. 상 앞에는 왕의 명령으로 참석한 후궁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음악이 멎자 주왕과 달기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다시 음악이 연주되었다. 달기가 유난히 탐스런 포도에 눈길이 멎었다. 주왕은 포도 알을 따서 대령했다.

     -전하, 이깟 포도 한 알로 제 마음을 얻으려하십니까?

     -웬걸.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보여주리라. 여봐라. 준비되었느냐?

주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벌거벗은 남녀들이 정원 안으로 달려 나갔다. 어떤 이는 연못의 술을 들이 키고 어떤 이는 나뭇가지의 고기 조각을 걷어 뜯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원은 아수라장의 되어갔다. 달기는 그 형국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후궁은 고개를 떨궜다. 그것을 본 달기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늘 아래 전하가 하는 일을 거역하는 자가 있습니까?

주왕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후궁을 노려보았다.

     -후궁은 고개를 들라!

후궁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주왕의 분노가 점점 달아올랐다.

     -여봐라 구후를 잡아오라. 제 아비의 목숨이 날아가는데도 저 모양일지 두고 볼 것이다.

구후가 병사들에게 잡혀 끌려왔지만 그녀는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주왕은 후궁을 죽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젓갈을 담그라 명했다. 그런 주왕의 처사를 비판한 악후까지 죽여 버렸다. 구후와 악후는 천자를 보좌하는 최고의 관직인 삼공(三公) 가운데 두 사람으로 주왕 자신이 직접 임명한 신하들이었다. 이로써 주왕은 군신간의 의를 져버렸고 이후 다른 제후들은 점점 은 왕조에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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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주왕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거둔 돈과 곡식으로 자신의 창고를 가득 채웠다. 자신을 배반하는 신하들을 잡아다 포격형에 처했다. 포격형은 기름칠을 한 구리기둥 위를 걸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다 건너가면 풀어주는 조건이었다. 건너다 미끄러진 죄인은 기둥 밑에 지펴둔 불 속으로 떨어졌다.

이제 주왕을 받드는 신하는 아첨을 일삼는 간신들뿐이었다. 주왕에게 등을 돌린 제후들은 삼공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 서백에게 몰려갔다. 서백의 덕에 이끌린 제후들이 팔백 여명에 이르렀다. 서백이 죽은 후에도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 무왕에게 주왕을 정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왕의 군대가 제후들을 거느리고 정벌에 나서서 주왕의 궁궐로 진격했다. 주왕은 주지육림의 광경을 지켜보았던 녹대에 올라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역사는 주왕의 폭정 때문에 은 왕조가 망했다고 기록했다. 주지육림도 폭정의 내용에 포함되었다. 나라가 망하려면 벼슬아치들이 먹고 마시는 향락에 빠진다는 공식도 생겼다. 그런데 주왕이 녹대 위에 앉아서 술과 고기를 먹어치우는 사람들을 보는 모습이 어딘지 익숙하다. 최초의 먹방이 아닌가. 주왕은 왕의 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면, 지금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접속 가능한 것일 뿐.

    

 

먹는 낙()에 빠지다  

주왕의 먹방에는 술과 고기가 전부였다면 지금의 먹방은 전 세계의 산해진미가 망라되었다. 출연자들은 저마다의 식탐을 뽐내며 음식을 먹으며 그 맛을 표현한다. 그러다보니 먹방에 나온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열기도 대단하다. 아이돌 가수가 곱창 구이를 맛있게 먹는 방송이 나간 후, 그 음식점은 대박이 났다고 한다. 한 개그우먼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을 맛깔나게 소개한 이후 그것을 먹기 위해 휴게소를 찾아가는 이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방영을 시작했다. 대부분 세 끼를 먹는 것은 같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프로그램 내내 일부 재료는 직접 채취하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현란한 자막과 함께 내보내고 다 만든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것이 전부이다. 이 프로그램은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때우던 세 끼가 아니라 직접 채취하고 만들면서 몸을 쓰는 과정이 새로운 실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고 먹기만 하는 프로그램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자 점점 먹방이 티비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보프로그램에서도 절반이 넘는 양을 먹방에 할애한다. 생활 속에서 다양한 삶의 기술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을 만나는 프로에서도 음식을 만드는 달인은 빠지지 않는다. 맛집의 음식을 직접 먹어본 패널들이 스튜디오에 둘러 앉아 맛을 비교하는가 하면, 아예 음식점에 둘러앉아 양껏 먹기만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세계 도시의 맛집을 찾아가서는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 경쟁하는 먹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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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욕구이다. 맛있다는 정보는 그 욕구를 더욱 부채질한다. 그 정보의 진위를 직접 판단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도 다른 소비에 비하면 감당할 만하다. 죽어라 일해도 가질 수 없는 집이나 차에 비하면 얼마나 가성비 높은 만족인가. 그렇게 삶에서 겪게 되는 다른 불만족을 상쇄시키느라 먹는 낙()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왕이 아닌 우리에게 주지육림의 방탕함을 처벌하겠다는 반란군은 없겠다. 그래서 극적인 몰락은 없지만 다른 낙()도 찾지 않는 단조로운 안락에 빠진 형국이다. 이것 또한 또 다른 주지육림은 아닌지.

    

 

단식의 추억  

위대(胃大)한 체질로 나날이 뚱뚱해지는데도 식욕을 조절할 수 없었다. 그러던 때 마침 단식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나도 합류했다. 우리의 단식은 전혀 안 먹는 단식이 아니라 해독을 위해 청국장 가루와 감잎차를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식하는 내내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함께 모여서 먹었다.

첫 모임에서는 다들 생각보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신기한 경험을 공유했다. 한 끼 두 끼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야기 했다. 점점 힘이 빠져 목소리까지 차분해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새벽 일찍 잠을 깬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먹는 양이 현격히 주는데도 일상에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를 서로 서로 반성하며 숙연한 시간을 보냈다.

해독을 주로 하는 단식이 끝나고 첫 보식을 하던 날,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묽게 끓인 미음의 맛이 우리의 오감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먹고 싶다는 욕구에 치여 발견하지 못했던 맛이었다. 보식을 하는 내내 단순하게 조리한 음식은 각각의 고유한 맛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단식을 하기 전에는 손도 안 댔던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다. 예전에 알고 있다고 여겼던 맛과는 전혀 다른 풍미가 느껴졌다. 그 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알게 된 맛. 재료의 제 맛을 경험하는 즐거움, 제대로 먹는 낙()을 느낀 시간이었다.

단식은 끝났다. 위대한 체질이라고 그 위를 다 채우지 않아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흔한 환경에서는 진짜 배고픔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었다. 결국은 강제 단식을 통해 배가 고프다는 감각을 몸으로 직접 느껴보았다. 배가 고프면 다 맛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의 맛은 삶의 불만족을 상쇄하는 자극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그러다보니 모든 음식이 풍기는 제 맛을 느끼며 사는 좋은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나는 위대한 체질이지만 단식 후 먹는 음식양은 많이 줄였다. 그래서 폭식을 하면서 느꼈던 죄책감도 많이 사라졌다. 또 단식과 함께 탄천을 걷기 시작했다. 단식은 끝났지만 걷기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걸으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체득하는 경험은 늘 새로웠다. 그러면서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그 낙()도 나름 쏠쏠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