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보다

   [여든 여섯번째]

  "나는 아주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싶었어요"


   

  글 : 히말라야









유령에는 여러 시간이 있다. 유령의 고유성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것이 되돌아옴으로써 살아 있는 과거를 증언할 것인지 아니면 살아 있는 미래를 증언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중에서

 


봄볕이 잘 드는 파지사유 창가에 앉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1반이었던, 한고운의 약전을 읽었습니다한고운은 키가 컸고, 겁이 없었고,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어린아이였을 적에도 한고운은 이웃집에서 덥석 숟가락을 들고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거나,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를 따라 길 건너 아랫동네에까지 가 있곤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빠가 소중히 여기던 카메라를 물려받은 한고운, 앵글을 달리하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고운은 난생 처음으로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았습니다. 방송국 카메라맨이 되고 싶었던 한고운은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신기하고 재미난 것을 많이 찍어서, 자기 엄마 아빠처럼 일 때문에 여행을 자주 못가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곳인지 꼭 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제가 이 글을 읽을 때 파지사유 한 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의 낭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누군가 이어가게에서 득템한 옷을 뿌듯하게 자랑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저녁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단원고등학교 2학년 1반이었던 한고운을 만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숟가락과 길고양이와 카메라, 도서관과 여행, 아이들의 낭송소리와 이어가게, 저녁 짓는 소리와 냄새...를 다시 대할 때마다 한고운을 떠올리겠지요한고운은 저에게 단지 과거가 아닙니다. 내가 만나본 적 없는 한고운을 기억한다는 것은한고운의 과거를 통해서,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들과 내가 만들어 갈 세상에 대한 나침반과 지도를 품는 일입니다.

 

마지막 호를 앞 둔 웹진 156호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월든에서 틈틈이 단원고 아이들을 위한 방석을 만들고 약전을 읽은 달팽이님이 <몸의 기억과 손의 기억>에 관한 글을 한 편 써 주셨습니다. 베르그손을 공부했던 오영님과 ‘더북에서 약전 릴레이 읽기를 친구들과 함께 기획한 꿈틀이님도 세월호와 기억에 관한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한 편씩 써 주셨습니다. 요즘 스피노자 공부와 예술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새털님은 그 두가지가 잘 조합된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시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모스 포토에는 곰곰님의 예쁜 따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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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싶었어요.”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에서 여자주인공이 한 말입니다. 나 한 명이 아니라 세상 전부가 그것을 기억할 때,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변화시키는 사건이 될 때, 놀라운 기억력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기억에 대한 작업들이 그러한 것이 되기를|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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