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보다

웹진의 추억 ⑤ : 인디언식 이름을 지어 볼까요

2017.07.02 18:09

뉴미디어 조회 수:48

웹진 2.0에서 가장 많은 댓글을 가지고 있는 글입니다. 과연 몇 개의 댓글이 달려 있을까요?


[세미나투어 06]

인디언식 이름을 지어 볼까요





글 : 광 합 성 _2030도시부족





지난 3월 블랙커피 & 자누리 님이 2030도시부족의 ‘엔데의 유언’ 세미나를 다녀가신지 4개월이나 지났다. 릴레이 투어인데 면구스럽게도 도시부족에서 오랫동안 멈춰있었다. 봄날 샘의 제안으로 지난 주, 마녀의 방 세미나 투어를 다녀왔다. 마녀의 방에서는 문탁의 필독코스인 선물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마침 도시부족도 막 선물세미나를 시작한 터였다. 『곰에서 왕으로』 를 한 주 간격으로 도시부족과 마녀의 방, 두 가지 버전으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왜 제로니모는 왕이 될 수 없었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유명한 아파치 전사 제로니모였다. 아파치족의 젊은 전사 제로니모는 멕시코군의 습격으로 자신의 부인과 세 아이들을 포함하여 부족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을 잃은 후 몰살에 대한 복수전에서 군사지휘자로 활약하여 대승리를 거둔다. 이후 그는 멕시코군에 대한 지속적인 전쟁을 주장하며 자신에게 군지휘권을 요구하지만, 아파치족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칭성 사회를 유지하며 ‘왕’이 생기는 것으로 경계해왔던 아파치족이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즉 제로니모의 주장을 받아들여 부족 차원을 뛰어넘는 군사지휘권을 가진 수장 ‘왕’을 탄생시켰다면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의 우리는 어떤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런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하지만, 1만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칭성을 유지하며, 즉 자발적으로 국가라는 것을 만들지 않고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전쟁이라는 야만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선택’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엄청난 희생이 예상됨에도 그 동안 치열하게 지녀온 대칭성 사고를 지켜가는 엄중한 지혜, 그 ‘문화’.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영역일지도 모른다.


1. 제로니모.jpg


불교의 ‘공(空)’, 장자의 ‘화(化)’ 그리고 스피노자의 ‘신’


신이치는 잃어버린 ‘야생의 사고’로서 불교의 사상을 소개한다. 불.법.승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야말로 권력을 무력화시켜 자연 속으로 돌려보내는 그럼으로써 권력의 야만을 소멸시키는 철학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늬바람님, 낭만고양이님 등 불교공부를 했던 분들이 계셨던 터라, 불교의 ‘공’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이 나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느티나무 님은 장자의 ‘화’를 ‘공’과 연결지으셨다. 다양한 공부의 만남^^

태초부터 ‘자연’은 항상 ‘문화’를 무력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었는데, 이 ‘자연’의 힘을 불교로 하면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인도 사상가들은 세계에는 실체가 없지만, 그 세계가 파악하고 있는 자신(아트만)은 마지막 남은 실체로서 ‘존재한다’ 고 주장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줌’ 이랑 일맥상통하겠죠?) 하지만 부처의 ‘공’은 사고하는 자신마저도 부정한다. ‘공’은 그야말로 철학적 사고에서 가공할 ’식인‘인 셈.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다‘ 라는 여기에,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넘쳐난다.


‘공’이란 고립되어 있는 것들 사이에 관계(커뮤니케이션)를 만들거나, 살아있는 것들을 감싸서 전체성의 감각을 회복시키거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무상으로 증여해주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즉 ‘공’은 대칭성 사회의 수장처럼 주기를 아까워하는 법이 없습니다. (『곰에서 왕으로』)


즉 공에는 모든 걸 삼켜버리는 ‘식인’과 자비심많은 ‘증여자’로서의 측면이 공존하는데, ‘곰’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을 대표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반인반곰(?)으로인간의 친구로서 풍부한 먹을거리와 따뜻한 털 등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신이치는 ‘곰’의 개념 속에는 ‘공’의 개념과 완전히 구조적으로 똑같은 양면성이 숨어 있다고 한다. (불교의 ‘공’이 궁금하면 김영진의 『공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라는 하늬바람님의 조언이 있었다^^)

장자를 공부하는 느티나무 선생님은 장자의 ‘화’로도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다. 학교 다닐 때 제물론이나 호접몽 같은 단어들을 외웠던 기억은 있었는데 가물가물.. 장자는 호접몽을 통해 인간이 나비라는 자연물로 되는, 즉 ‘화(化)’하는 경험을 말한다. 장자는 ‘만물 (萬物)은 하나의 이치’로 나비라는 곤충과 인간이 동일한 가치의 등가물로 서로 호환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경지, 그렇지만 동시에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은 곰이 되고, 곰은 인간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곰을 죽이기도 하고 곰도 인간을 죽인다.


느티나무.jpg


스피노자를 읽으신 봄날님은 스피노자를 통해 목적론적 인식의 오류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으로, 자연에는 필연성만 있을 뿐 그 어떤 목적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무한히 생산해내고, 인간은 신에 속하는 하나의 양태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들 중심으로 목적론적으로 하고 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벌을 주기 ‘위해’ 천둥이 내리친다라던지 ‘인간이 먹을 수 있도록 열매가 열린다’ 등의 인간중심적 사고.
인간은 신의 양태이긴 하지만 신과 달리 유한한 존재이고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연한 만남에 의해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변용). H2와 O가 각각 다르게 존재하다가 우연한 만남에 의해 물(수증기)가 되거나 혹은 수소(H2O2)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인간과 자연과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순수증여를 하는 자비로운 자연일 수도 있지만, 후쿠시마에서처럼 무시무시한 재앙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문탁의 필독코스 선물세미나, 왜?

책의 대부분이 신화에 대한 것이어서 흥미진진하게 읽고 세미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칭성인류학과 곰에서 왕으로는 왜 선물세미나에 포함될까? 그리고 왜 선물세미나는 문탁의 필수 코스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다.

위의 신이치 이야기처럼 우리는 자연을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오랫동안 지켜오던 대칭성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들끼리도 대칭적인 관계, 같이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네가 내가 되는 ‘공’의 사고, 잃어버린 ‘대칭성’을 찾는 일은 문탁같은 공동체가 잘 살아가는데 필수 조건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또 권하는 것이 아닐까.

도시부족에서는 한 번의 세미나로 『곰에서 왕으로』를 다 읽어버려서 ‘공’에 대한 이야기 ‘제로니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었는데, 마녀의방 세미나를 통해서 도시부족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녀의방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해 도시부족과 마녀의 방 사이에 ‘하우’가 서로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세미나투어02.jpg

잃어버린 대칭성을 회복하기

대칭성 사회에서는 ‘문화’와 ‘자연’은 이질적인 원리로 간주되어 가능한 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문화’와 ‘자연’의 이종교배로 왕이 탄생하고 이종교배에 의한 구성체에 부여된 이름이 바로 ‘문명’입니다. 야만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왕과 같은 존재를 허용한 순간 인간의 마치 힘의 비밀을 ‘자연’으로부터 빼앗기라도 한 듯이, 자연을 인간의 필요를 위한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자연은 이제 개발과 연구와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곰에서 왕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만들기 전에 인간은 오랫동안 신화, 겨울 제의 등을 통해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칭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신이치는 신화에 나타나는 대칭성 사고의 회복을 통해, 일자적 사고 즉 일신교와 과학이 가져온 엄청난 인간과 자연의 엄청난 비대칭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이상학 혁명을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5권 대칭성인류학에도 이어진다.

인디언 이름을 지어보자

’웅크린 돼지의 행진‘ ’용감한 황소는 맨날 잠잔다‘,.’지혜로운 말의 환생‘. ’용감한 태양은 그림자 속에‘... 2년쯤 전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티베트 인들은 어떤 동물이 되어보는 명상을 한다고 한다. 요가에서도 동물을 모방한 자세를 취하며 명상을 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코브라자세 : 뱀은 말하지 않는다. 나는 온종일 쉬지 않고 떠든다. 내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침묵 뒤에 무엇이 있는지 살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신교와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대칭적 사고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먼저, 재미삼아 가볍게 인디언식 이름짓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틈|

인디언이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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