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보다

'겸서야 놀자'를 잠시 쉬고 지난 2월 유럽을 다녀온 청량리의 여행담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

 

청량리의 유럽여행기

오해(誤解)와 이해(理解) 사이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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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개요>

여행경로 : 일본(나리타) - 덴마크(코펜하겐) - 스페인(7개 도시) - 포르투갈(4개 도시) - 프

랑스(파리) - 그리스(아테네) (총 6개국 15개 도시)

여행기간 : 1월 23일 - 2월 19일 (28일간)

 


아쉬운 성지(聖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는 이에게 이곳은 성지(聖地)다. 하지만 내겐 이래저래 아쉽기만 한 도시다. 우선 숙소가 압구

정의 한 가운데 있는 오피스텔 같았다. 주변의 화려한 부티크와 음식점들은 전혀 성스럽지 않았다. 산티아고 대성당 주위

도심을 제외하곤 가파르게 개발되고 있었다. 게다가 순례길을 따라 걷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산티아고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직접 본 산티아고 대성당은 규모의 거대함과 장식의 화려함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오후에는 알바로 시자의 작품인 산티아고 현대 미술관에 갔다. 이 미술관은 이번 여행에서 찾아본 그의 작품들 중 마지막

건물이다. 그의 인상적인 대표작 중 하나.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드는 생각은 알바로 시자를 찾는 이번 (건축)여행이 오히려

무모했다는 것이다. 가보지 못한 곳에, 심지어 들렀던 도시에서 조차 못 보고 지나친 그의 건물들은 너무도 많았다. 

대표작 몇 개만 보면 (그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어리석었다. 더군다나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면서 알바로

시자만을 보려 했던 것은 더욱 큰 잘못이었다. 이곳의 거리 곳곳에서는 훌륭한 느낌의 지역건축가들이 너무도 많았다.

‘무엇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걸까?’ 하지만 내일도 여행은 계속된다. 산티아고를 끝으로 ‘알바로 시자 순례(?)’를 마치고

이제는 ‘가우디’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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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팔아요! 단돈 62유로

 

여기까지 왔으니 가우디 이야기는 한 마디 하고 가야겠다.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부터 왠지 가우디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했다. 가우디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건물 한 곳의 입장료가 알람브라

궁전 전체 입장료보다 비쌌다. 그런데도 건물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렸다. 건물 주변은 이미 쇼핑센터나

의상부티크가 차지하고 있었다. 명동의 한 복판에서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는 듯 했다. 그나마 ‘성 가족성당’에 와서 규모와

디테일에 다소 위안이 된다. ‘100년 넘게 아직도 공사중’임을 오히려 강조하는 건물이다. 공사를 위해 세워진 타워크레인조차

건물의 일부처럼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요즘 만든 부분들의 디테일은 엉성하다. 조각에도 정성이 없어 보인다. 이 상태로

갔다간 완공되어도 욕만 얻어먹을 것 같다.

 사실 가우디의 작품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꼭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다. 렌터카 반납과 자전거 팔기. 차야 사고

없이 돌려 주면 되니 걱정할 건 없고, 문제는 자전거를 파는 거다. 몇 번 타보지도 않은 새 거라 다행이었지만 ‘왜 갖고 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숙소 직원에게 ‘자전거를 팔고 싶다’고 말하니 자기가 아는 자전거포를 소개해 준다. 역시 일이 되려고

하니까 이런 행운도 온다. “얼마 받을까? 80유로? 조금 깎아줄까? 75유로?”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자전거포에 갔다.

젊은 친구 둘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다. 이리 저리 살피는 듯 하더니 “지금은 겨울이라 흥미가 없다. 게다가 우린 이미 자전

거가 많다”라며 안 사겠단다. 뭣이라?? 우린 가격도 흥정해 보질 못 했다. ‘이거 열 번도 안 탄 거다, 한국에서 직접 가져

온 거다, 색깔 봐라. 멋있지 않냐?’ 등등 한참을 떠들어도 반응은 시큰둥하다...-_-;; 난감했다. 가게 앞을 나서며 못 팔지도 모

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옆에서 Y는 ‘대책 없이 자전거 판다고 나섰다’며 핀잔을 준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돌아다니며 팔아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서 스페인말로 문구를 써 달라고 했다. 뭐 대충 내용은 이랬다. ‘자가 자전거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 1년만 타면 본전은 뽑는다! 더 이상 임대용자전거에 미련을 갖지 말자!’ 하지만 또 옆에서 Y는 ‘그거 다 읽어보는 사람

이 어디 있겠냐?’며 짧고 굵게 쓰란다. ‘sale my bike 62유로!!!’ -_-;; 안장 뒤에 붙이고 길을 나섰다. 일단 ‘성 가족성당’까지

가보기로 했다. 골목길이나 전철 안에서, 계단에서 자전거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후훗...^^;; 하지만

다들 ‘눈팅’만 하고 정작 물으러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시 불안해진다. “안 되면 렌터카 반납하면서 거기 사람에게

20유로에라도 팔아야지, 뭐” 낙담을 하는 사이, Y가 내기를 건다. “이거 60유로 이상에 팔면 내가 만원 줄께!” ‘성 가족성당’에

도착했지만 자전거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박수라도 치면서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하나? 그 순간, 누가

말을 건다. “이거 파는 거냐?” 오호, 현지인 젊은 부부다. “그렇다.” “한 번 타 봐도 되나?” 공원을 한 바퀴 돌더니 어떻게 접

히는 지, 어디서 샀는지, 얼마 정도 탔는지를 물어본다. 뭔가 일이 될 거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티 안내려고 팔짱을

낀다. “90유로 이상 주고 산 건데 싸게 파는 거다.” 사겠단다. 정말요? 흑흑...은행에 갔다 올 동안 잠깐 기다리란다. 그 잠깐이

왜 이리 길게만 느껴지는지. 현금을 받고 자전거를 넘기고 얼른 그 자리를 떴다. 혹시나 맘이 바뀌더라도 우릴 못 찾게...-_-;;

자전거 판돈을 만지니 아직도 흥분된다. 그리고 홀가분하다. 지금도 그 오렌지색 자전거는 스페인을 잘 누비고 있을까?

 

 

난 조언을 구하는 게 아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와인과 저녁거리를 샀다. 보양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냄비 바닥까지 박박 긁어 먹고 와인 한 잔을

하니, 우리의 고민들이 다시 대화에 오른다. 답답해하는 녀석에게 뭐라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읽었던 책과 정토회

이야기를 꺼내본다. 듣던 Y는 답답해한다. 내가 이상하게 변했단다. “대학교 때는 안 그랬는데, 뭔가 말하면 넌 꼭 조언

해주려고 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어. 지금 내가 너한테 조언을 해 달랬냐? 근데도 뭔가 거창한 걸 말해주려고 하더라.

왜 그래?” 아내와의 일이 생각이 났다. 언젠가 논리적인 답을 구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나는 그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늘이 되어 상대방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설령 내가 옳은 것을 말하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지금도 Y는 옆에서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는데 나는 녀석의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넌 왜

네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말해 주려고 하는데? 고민은 나한테만 있는 것 같네...쳇”

가까운 사이일수록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때도 그랬다. 녀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결국 하지 않았다. 사람

마다 관계 맺는 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베리아 반도 여행이 다 끝난 오늘 저녁, 이제야 Y와 관계 맺는 법을 조금씩 알 게

되는 것 같았다. 내일은 드디어 파리에 입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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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사람도 길거리도 우울한 파리

 

파리에 도착한 늦은 밤, 내일은 각자 루트를 잡고 여행하기로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미술작품에 관심 있는 Y. 반면 나는 파리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음 날, Y는 아침도 안 먹고 새벽같이 떠났다. 혼자서 아침 먹으면서 점심때 발라

먹을 잼 몇 개를 몰래 챙기는데 아줌마가 자꾸 눈치를 준다. 파리는 지금까지 먹은 숙소아침 중에 최악이다. 에펠탑과 개선문,

쁘띠 팔레와 시립미술관 등등을 돌아다니다 느지막이 ‘퐁피두 센터’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퐁피두 센터 앞에 있으니 신기

하다. 사실 파리는 별로 매력이 없었다. 길거리는 사람똥과 개똥이 뒤섞여 더러웠고, 사람들은 대부분 부랑자들같이 눈빛이

우울했다. 잠시라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불안함이 이 도시엔 있었다. 파리지엔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비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은 순박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에펠탑과 개선문 등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다만 여기가 파리

임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인식장치에 불과한 것 같았다. 퐁피두 센터를 한참을 둘러보다가 세일하는 책도 몇 권 샀다.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사실 이곳에 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1박을 더 해야 하는 데, 근처 숙소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웬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손짓으로 들어오란다. 잉? 나를 아는 건가? 얼떨결에 들어가 만나서 이야기해 들어보니 파리에서 무료안내관광을 하는 분이다.

한국에도 두어 번 온 적이 있단다. 이번 휴가엔 부산에 가보고 싶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

 

하지만 ‘이왕 도서관에 들어온 거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후다닥 검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부슬비가

제법 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지하철 출구를 잘못 찾아서 숙소로 오는 길을 헤맸다. 겨우 숙소에 도착하니 Y가 밖에 나와 있다.

오호, 나를 기다려 준건가? “많이 기다렸어? 저녁은 먹었냐?” 헌데 그게 아니었다. “야, 대강 좀 해라, 어!!” 잔뜩 화가 난 Y는

그렇게 한 마디 쏘아 붙이고 방으로 휙 올라가 버린다. 우리는 저녁에 만나기로 했을 뿐 돌아오는 시간은 정하지 않았었다.

9시가 조금 넘긴 했지만 마냥 놀다 온 것도 아닌데...“야! 뭐야, 지금!!” 다시 Y를 소리쳐 불렀다. 왜 늦었는지를 나름 설명하려

고 애썼다. 하지만 Y는 대꾸를 안 했다. 이제는 나도 화가 났다. “됐다! 그렇게 말없이 뚱하게 있으려면 그냥 올라가든가,

네 맘대로 해!!” 뭔가 풀어야 하는데, 잔뜩 화가 난 Y는 그렇게 먼저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의 침묵은 적막했다. 나의 부정확한 시간관념에 불만인 Y와 녀석의 조급함이 못 마땅한 내가 파리에서 드디어

폭발한 거다. 이렇게 되면 남은 그리스는 더 이상 같이 못 다닐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조금씩 녀석을 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녀석과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일어났냐?

아침 먹을거지?” Y가 먼저 말을 건낸다. 밥 먹자는 말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다행이다. 괜히 지금 눈을 뜬 것처럼

“어? 으…응” 부스스 일어났다. 둘은 마주보고 앉아서 한동안 말없이 빵에 잼만 바르고 있었다. “어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네가 그렇게 올라가버리는 바람에 말 못했다. 미안하다.” 먼저 사과를 했다. “너랑 시간 약속을 안 한 게 잘못이지.

그렇다고 그 시간에 들어오냐? 참 너란 인간은 알 수가 없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 그러면서 Y가 덧붙여 말했다.

“그것도 일이지만, 사실 어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알고 보니 녀석이 디카를 잃어버린 것이다. 기념품가게에서 둘러보고

나오는 데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아뿔싸. Y는 급하게 경찰서를 찾아갔다. 헌데 경찰서 3곳에서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서로

뺑뺑이만 돌린다. 결국 화가 나서 한 마디 했더니 그제야 사건 경유서 양식을 꺼낸다. 다 끝내고 허탈하게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그때부터 나를 기다린 것이다. 헌데 8시가 넘도록 오지도 않고 ‘전화를 할까?’ 공중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카메라 잃어버리고 나는 늦게까지 오지도 않고. Y는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들 중 절반 이상을 잃어버렸다. 어제 녀석의 마음이 어땠을까?  우리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다시 파리로 나섰다.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삶은 계란을 나눠 먹었고, 라 데팡스 계단 아래에서는 샌드위치를 같이 먹었다. 에펠탑이 노을에 물들 때까지

쉬었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와인 한 병도 샀다. 오늘 느꼈다. 녀석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서로 다르지만

의지할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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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울려 퍼진 우리 이름

 

떠나기 전 같은 방을 썼던 일본인 친구에게 작은 고추장 튜브를 줬다. 9개월째 자전거로 배낭여행을 하는 친구인데 앞으로

도 6개월 정도 더 남았단다. 우리보다 더 ‘헝그리’해 보였다. 별다른 소스 없이 파스타를 해 먹는 거 보고 안쓰러웠다. 매운

걸 좋아한다고 해서 줬더니 엄청 좋아한다...^^;; 마트에서 저녁거리 살 때 만난 한국인에게는 지도 하나를 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예정이란다. 헌데 계획하고 떠나는 순례길이 아니어서 그 친구에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우린 이미 산티아고

를 떠나왔기 때문에 스페인 관광청에서 받은 산티아고 지도가 필요 없었다. 어젯밤은 초조와 불안, 억울함과 미안함에

잠 못 들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평온하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부리나케 노틀담 성당을 훑어보고 공항으로 향했다. 헌데 시간이 좀 늦어 캐리어를 수화물로 부칠 수가 없었다.

설득 끝에 기내에 갖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우리는 탑승장소로 뛰었다. 헌데 그게 문제였다. 수화물로 부쳤으면 특별한

일이 없었을 텐데 검사원들이 캐리어와 배낭을 모조리 열어서 뒤진다.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 사이 방송이 나온다. “승객 중에

Y와 청량리, 속히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원을 쳐다보며 ‘우리 이제 가야 한다’고 했는데도 뭘 찾아야 한다며 기다리

란다. 가스 활명수를 검사원이 약물이라며 버리려고 하자 Y는 얼른 마셔버린다. 다시 방송이 나온다. “승객 중에 Y와 청량리,

얼른 탑승 바란다!!” Y는 흐르는 진땀을 닦는다. 녀석의 검사가 끝났고 먼저 비행기에 탔다. 내 검사원은 캐리어에서 자꾸만

뭔가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방송이 또 나온다. “청량리!! 빨리 타라!!” 결국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달려온다. “네가 청량리지?

얼른 가자!!” 검사원은 개의치 않고 계속 캐리어와 배낭을 뒤진다. 그러더니 짠! 하고 꺼내 든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팔았던

자전거에 딸린 작은 쇠뭉치(조립할 때 쓰는 거). 엑스레이 통과기는 폼인가? 형태를 말해주면 금방 찾을 것을. 서로 농담 주고

받으며 설렁설렁 검사하는 모습이 영 맘에 안 들었다. 다 끝나고 ‘미안하다, 이제 가도 좋다’ 뭐 이런 말도 없다...-_-;; 우리들

때문에 비행기는 출발이 지연됐고 난 제일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헌데 바퀴가 땅에서 떨어졌을 때, Y가 갑자기 ‘크으~’

신음소리를 낸다. 검사 끝나고 급하게 비행기에 타느라 잠바를 안 입고 온 것이다. 카메라에 잠바 까지. “이젠 뭘 더 잃어버

려야 하지?” 녀석이 한숨을 쉰다. 시작부터 나갈 때까지 파리는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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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을 잘 만나야지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당황했다. 전철, 버스, 기차 모두가 파업이라 운행을 안 한다는 것이다. 유일한

운송수단이 택시였다. 시내까지 32유로 균일요금. 너무 비쌌다. 우리는 합승할 만한 사람을 물색 하기로 했다. 혼자인 사람,

가방이 별로 없는 사람, 우리와 방향이 같은 사람 등등. 몇 번의 실패 후에 출장 온 독일인 회사원을 만났다. 이야기가 잘 된다.

시내로 들어와 그 아저씨가 먼저 내릴 호텔 앞에서 영수증을 요구했고 영어를 못 하는 택시기사와 실갱이가 벌어진다. 답답한

아저씨는 전체 요금을 지불하고 “괜찮다. 회사돈이니 청구하면 된다”면서 택시기사에게 우리 숙소까지 가달라고 부탁까지

해준다. 이런 행운이!! 숙소까지 공짜로 택시를 얻어 타고 온 셈이다. 헌데 택시기사는 숙소 앞에서 10유로를 더 내야 한단다.

“그 아저씨가 요금 다 낸 거 안다. 게다가 우린 돈도 없다”고 하자, 그는 뭐라고 궁시렁 거리면서 가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_-;;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전날 고대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봤고 오늘은 반대편 언덕에 올랐다. 다시 한 번 파르테논을 보면서 ‘잘 있어라. 언제

널 또 보겠냐’ 인사를 했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경찰관 한 명이 갑자기 우리 앞에 선다. “당신들 여권 좀 보여달라” 순간 뜨끔

했다. 여권 사본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왜 당신들은 사본을 들고 다니지?” 우린 지갑과 디카 잃어버린 경험을 이

야기하면서 이유를 댔다. 하지만 손목에는 알 수 없는 비닐봉지가 감겨있었고, 헐렁한 츄리닝 바지에, 둘 다 새까만 동양인이

었다. 게다가 갖고 있는 여권도 복사본. 그 경찰관 눈에는 불량한 밀입국자로 보였을까? 잠시 후 다른 경찰관 두 명이 더

와서는 “무슨 일이야?” 우리를 위아래 훑어보더니 몇 마디 주고받고 결국 보내준다. 휴우...돌아서면서 “뭐야, 저 자식!” 이라고

내뱉었지만 아직도 가슴은 두근거렸다.

 

 

마지막 만찬과 헤어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만찬을 위해 수산시장에 들렀다. 어제 저녁을 먹은 가게에서 생선을 가져오면 5유로에 구워준

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제대로 된 해산물을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생선을 본 가게 아저씨는 깜짝

놀란다. ‘비늘도 안 벗기고 내장 손질도 안 된 걸 어떻게 먹냐’는 것이다. 몰랐다. 그저 ‘fresh fish’면 된다고 해서 수산시장에서

사 온 것일 뿐이다...-_-;; 칼도 없어서 아저씨께 식사용 나이프를 빌렸다. 숙소 직원 몰래 방으로 가져와 화장실에서 손질을 했다.

비린내가 방 전체에 진동을 한다. Y는 향수를 마구 뿌린다. 칙칙- 다시 몰래 가게로 와서 30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손에 들린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산 생선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발코니에서 먹으니 더 즐거웠다. 와인 두 병을 금세

비운다. 마침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들어온다. 같이 합석을 했다. 알고 보니 그리스에 여자친구가 있는 프랑스 대학생이었다.

그 친구 술이 들어가니 조심스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문제다, 23일에 그리스 노동

총파업이 있을 거다, 프랑스에는 인종과 언어문제가 심각하다’ 등등. 술기운에 조금 오버했다. 마지막 만찬 자리인데 그 친구의

이야기에 혼자 열을 내고 있었다. 그리곤 Y와 비틀거리면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아쉬웠다. ‘굳이 내가 저 프랑스

친구 이야기에 오버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여행의 마지막 만찬인데 Y와 그렇게 보내다니...쩝. 그때는 새벽까지

이야기 했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별 기억도 안 나는 친구다. 소중한 것은 주변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됐었다’ 싶은 생각이 든다. 거의 매일 밤 와인 한 잔에 고민과 토론이 한 접시였다. 그래서 녀석과 같이 그저 웃고

즐기며 생선구이를 재밌게 먹을 수 있었던 시간이라 좋았다.

 그리스를 출발, 코펜하겐과 북경을 거쳐 다시 한국에 도착했다. 주변에서 한국말이 들리니 오히려 낯설다. 말과 행동이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 여행 중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걸 Y와 둘이서 해결해야만 했다. 난 Y를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남이

생각하는 나를 자주 볼 수 있었다. Y를 알아가는 시간이 결국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그래서일까? 매일매일 낯선 아침을

마주했던 공간에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편한 만큼 무디기도 하다.

그 무뎌짐이, 익숙함이 두렵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녀석과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고마워.

일상에 돌아가서도 잘 살아야 돼!’ Y에게도 나에게도, 토닥토닥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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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아이는 한 달 만에 나를 보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서럽게 운다. ‘그동안 어디 갔었어!’ 라고 항의하는 것 같다. 그걸 보니 나도 울컥한다. 차 안에서

아내는 그 동안 둘이서 고생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준다.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고마운 만큼 무거운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으려 한다. 안 그러면

고마움이 쉽게 사라질 테니까.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틈|

 


원문과 댓글은 http://www.moontaknet.com/5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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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155호)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 피었구나 file 달래냉이씀바귀 2017.03.07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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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153호) 변화의 주체는 우리들 자신 [1] file 꿈틀이 2017.02.07 127
83 (152호) 2017년 우리는 지금 어디 있을까? [4] file 진달래 2017.01.24 172
82 (151호)아듀~ 2016! 아(냅)듀~ 2016! [1] file 노라 2016.12.27 137
81 (150호)또 하나의 축제, 향연 [1] file 히말라야 2016.12.13 156
80 (149호)이것은 축제가 아니다 file 씀바귀 2016.11.29 162
79 (148호)일상의 수행! 수행의 일상! [1] file 봄날 2016.11.16 145
78 (147호)마을에서 배우다 [1] file 진달래 2016.11.01 165
77 (146호) 나는 쓸모없기를 바란다 [3] file 청량리 2016.10.18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