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플라톤이 돌아왔다 2회]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서점 리스본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새털 프로필02.jpg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홍대에서 발견한 동굴의 비유

뉴스타파 김진혁피디가 2015년에 만든 미니다큐 <꼰대와 선배>에서는 엔하위키 미러를 인용해 꼰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보통 자기 세대의 가치관으로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태클을 걸면 꼰대질한다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다큐를 찾아보게 된 것은 같이 일하는 젊은이에게 선생님 꼰대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다. “그래 나 꼰대야. 그래도 이렇게 불성실하게 일 안하고 변명하는 건 네 잘못이야!” 라고 윽박질렀지만, 내심 놀라기는 했다. 나는 꼰대인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꼰대질인가? 지적을 세련되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인가? 문제는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않음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있다. 나는 시대변화에 둔감해서 젊은 세대의 행동을 제대로 독해할 줄 모르는 꼰대인가?

내 주변에는 꼰대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딸들이 아무렇지 않게 머리색을 바꾸고 들어오면, “안 돼!” 남편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말하지 못하면서도, 노랑머리는 안 되지만 갈색머리는 괜찮다는 근거 없는 기준을 들이대 더욱 딸들의 빈축을 샀다. 남편과 딸들의 전선에서 타협은 불가능했다. 염색은 물론 타투도 안 되고, 피어싱도 안 되고, 비혼(非婚)도 안 된다는 남편의 강경한 쇄국정책에 대해 딸들은 입씨름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취향을 존중하겠으니 본인들의 취향도 존중해달라는 매너 있는 무시였다. ‘갓띵작’ ‘치맥각등등 딸들과 눈높이를 맞춘 대화를 위해 급식체(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감성이나 말투)를 연습하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유행어를 학습으로 익혀야 하는 순간이 왔다면, 그건 그냥 아재개그급식체가 아니다.

그러나 우연히 들른 홍대에서 나는 나도 꼰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을 찾아가던 중, 나는 홍대 뒷골목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되었다. 그곳의 지리는 낯설었고, 그곳을 오고가는 젊은이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공기도 달랐다. 도로엔 거대한 편집샵들이 포진해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젊은이들이 사먹는 길거리표 간식조차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지갑에 카드 한 장 달랑 들어 있던 나는 버블티나 크레페 같은 것을 사먹지 못했다. 현금인출기를 찾으려면 옷, 화장품, 액세서리, 타로점 가게로 꽉 찬 골목길을 빠져나와야 했고, 내가 미로와 같은 그 길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출입금지의 표시들이었고, 그것은 젊은이들과 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옛날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나만의 동굴에 콕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체감했다.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지식이 사실은 무지에 가까운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실에서 종종 동굴에 갇힌 자신과 만난다. 명품지갑이 멋져 보이는 이유가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브랜드로고 때문이고, 내 친구의 씨바와 팟캐스터 김어준의 씨바는 다른 뉘앙스라는 느낌이 들지만 그건 그냥 김어준의 있어 보이는 말빨때문이다.

    

 2회 03.jpg



2. 플라톤행 열차는 동굴의 비유역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연극의 무대와 같은 세트를 보여준다. 동굴이 있고 동굴의 입구엔 횃불과 물건들이 놓여있는 단상이 있다. 사람들은 동굴의 입구를 등지고 벽을 바라보며 결박되어 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평생 이러한 조건 속에 살고 있다면, 이들에게 그림자(가상/환상)’의 세계는 완벽한 현실세계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세계의 진위(眞僞)를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꼰대일 리 없다는 콩깍지가 씌었던 나처럼, 그림자의 세계를 현실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가상이나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동굴의 비유를 좀 더 살펴보자.

누군가 우연히 결박이 풀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벽으로부터 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을 더듬어 동굴의 입구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면, 자신이 봐오던 것이 동굴 입구의 횃불과 물건들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동굴 밖에 이르게 된다면 횃불이 아니라 태양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쉽지 않고 짧은 시간에 끝나지도 않는다. 동굴 속 어둠에 익숙한 자에게 동굴 밖의 밝음은 시력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가 실명하지 않고 태양의 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갑자기 눈을 떠서는 안 되고 천천히 태양의 밝기에 눈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 과정을 천천히 익힌다면 태양의 빛을 똑바로 볼 수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올바른 인식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을 다시 동굴 안으로 들여보낸다. 올바른 인식의 기쁨을 느낀 자가 있다면, 그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자신의 동료들과 그 기쁨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윤리의식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스토리가 동굴의 우화 속에 겹쳐진다. 모든 스토리에 반전과 갈등이 빠질 수 없듯이, 동굴로 돌아온 자에게도 위기와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 평생 동굴의 벽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동료의 말을 쉽게 믿기는 어렵다.

 

위쪽으로 올라가더니 눈이 상해서 돌아왔군.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 쇠사슬을 풀어주며 위쪽으로 데려가려는 자는 잡아 죽일 수 있으면 모조리 죽여야 해.”(<국가> 7517a)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갔다 되돌아온 자는 현실 속의 소크라테스를 떠오르게 한다. 대중들은 과연 철학자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철학자는 과연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철학과 정치와 윤리가 분리될 수 없는 난제(難題)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굴의 비유는 <국가>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올바른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해법, 그리고 현실과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철학자의 운명과 윤리적 태도까지 동굴의 비유에는 플라톤이 해결하고자 하는 철학적 난제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플라톤이 10여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대화편을 쓰게 된 배경에는 동굴 속의 아테네가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 시민들이 철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 ‘정의로운/건강한아테네의 공동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었다. 이상국가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지의 동굴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동굴의 비유는 <국가> 7권에 수록되어 있지만, <국가>와 플라톤의 철학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 말할 수 있다.

    

 

3. 소송의 시대와 철학의 선언

그리스의 수많은 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던 아테네는 기원전 480년 동방의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통강호스파르타를 제치고 그리스의 맹주로 자리 잡게 된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학교라는 수식어는 이런 아테네인들의 자긍심을 잘 보여준다. 아테네의 전성기, 그리스 전역의 지식인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탈레스 등 이오니아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이전의 철학자들은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현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테네의 전성기, 새롭게 형성된 아테네의 지식세계는 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새로운 유형의 철학자들은 고객을 두고서 서로 경쟁했고, 철학적인 현자들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유형의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지적 순수함보다는 현실적 감각을, 영원한 진리보다는 당장의 효용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새로운 유형의 철학자들을 사람들은 소피스트(sophistês)’라 불렀다. 이들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언어, 문법, 변론술, 웅변술, 글쓰기 등 요즘으로 말해 인문교양을 가르쳤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질 때 그에 따라서 증대되는 것들 중에 법, 소송, 재판이 포함된다. 가난이 보편적인 사회에서는 소송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의 위계가 뚜렷하고 평등한 관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소송이 잘 일어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소송이란 최소한의 평등 관계가 존재하는 곳에서 성립한다. 특히 사회의 부가 축적되면 이제 싸울 일이 많아진다. 바로 이 때문에, 아테네의 전성기는 소송의 전성기였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피스트로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지식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거부한다. 객관성의 추구란 동일성을 함축한다. 그런데 인식 주체에 의해 사물의 본질과 가치가 달라진다면, 결국 객관성과 보편성의 근거가 사라진다. 이제 남은 것은 변화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대적인 진리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따라 진리가 변화한다는 소피스트들의 논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었고, 이건 당대 아테네 시민들이 원했던 대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문제는 나의 진리와 너의 진리가 충돌할 수 있고, 아테네의 입장과 다른 폴리스의 입장이 대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준의 상실은 분쟁과 혼란을 예고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의 전형으로 경쟁에 유능한 인간이 아니라 덕이 있는 인간을 제시한다. 이때의 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도덕적 선함이 아니라 탁월함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재판과 논쟁에서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능력이 아니라 지성의 힘에 의해 발휘되는 탁월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탁월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탁월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탁월함의 올바른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잘못을 하는 까닭은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에게 좋고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의 결핍 때문이라고 보았다. 스스로가 쾌락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탁월함의 올바른 기준을 알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생활 속에서 단련시키는 과정인 파이데이아(paideia), 곧 교육이다.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의 안과 밖의 대비만큼 중요한 것이 동굴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 있다. 동굴에 결박된 자들에게 주어질 자유는 족쇄의 풀려남이 아니라 어둠에 익숙한 눈을 빛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노력에 달려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때그때의 임시방편적 지식으로 대중들을 허약한 철학적 지반 위에 올려놓는 소피스트들의 반대편에 섰다. 소피스트들의 일대일 맞춤식 과외수업에 자기주도 학습으로 맞짱을 떠보겠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의 선언이다.

 

4. <윤식당><효리네 민박>이 아니라 서점 리스본

인기리에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윤식당><효리네 민박>은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스페인의 작은 섬 가라치코에서 한국식당을 차린 연예인들은 그림엽서같은 풍경 속에서 알콩달콩 식당을 운영한다.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한식메뉴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조리법 연구까지 <윤식당>의 사장님과 직원 일동은 정신을 쏙 빼먹고 식당일에 매달려있다. 그러나 그들의 전력투구에는 짠내나는 간절함이 빠져있다. 장사가 이윤을 내지 못하면,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고, 신용불량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 제약들이 방송에는 빠져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윤식당>을 즐겨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실의 중력이 제거된 무중력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기 싫은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볼 수 있다는 대리만족이 잠시라도 현실의 피로감을 잊게 해준다.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작은 식당을 차려보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야!” 라는 꿈을 꾸어보지만, 방송이 끝나면 우리는 신속히 꿈에서 현실로 복귀한다.

제주도 소길리에 자리잡은 <효리네 민박>에 놀려온 사람들은 줄곧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잔다. 끊임없이 먹고 자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먹고 자는일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뭐 하느라 우리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 못하며 바쁜 일상을 쫓기듯 살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주말에도 주중처럼 연장근무를 반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보상은 제주도여행 같은 휴가이다. 제주도든 동남아시아든 유럽의 고성이든,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오로지 먹고 자는 즐거움을 위해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그리고 또 다시 먹고 자는 일을 잊고 과로하다 힐링 여행을 떠난다. 12일 또는 23일의 힐링은 혹사당하는 일상의 피로회복제가 아니라 마취제가 아닐런지.

우리가 과로하지 않는 일상과 소소한 행복을 표방하는 예능프로그램들을 불온하게 독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들이 치유에 대한 판타지사이비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한다는 점에 있다. 뽀로로 반창고가 칼에 베인 상처를 낫게 해주는 것은 뽀로로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아니라 반창고의 소독약과 방수기능 때문이다.


2회 00.jpg


홍대 입구에서 연남동 쪽으로 걷다보면 주택과 식당들 사이 작은 공방과 서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옛날사람임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홍대투어에 나섰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서점 리스본이다. 단독주택의 일층을 개조한 서점 리스본은 가게 앞에 뜰이 딸려 있는 그림엽서같은 책방이다. 서점 리스본은 서점의 규모로 봤을 때, 시중에 나오는 책들을 신간 위주로 진열한다 해도 공간이 부족한 작은 서점이다. 서점 리스본의 사장님은 우리가 독서실과 도서관에서 입시와 취업의 압박에 시달리며 들었던 보석 같은라디오 음악방송의 전직 작가이다. 사장님은 디제이의 오프닝멘트를 비롯해 전파를 타고 휘발되는 무수한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생활을 그만두고 싶어 서점을 차렸다고 한다. 서점 한 구석에는 책이 담긴 서류봉투들이 쌓여 있다. 택배 부칠 책들인가 했는데,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솔루션부스라고 한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포장된 채로 한 권의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처럼 혹은 선물처럼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경험을 서점 리스본은 추천하고 있다.

작은 서점 곳곳에 보물찾기 쪽지처럼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숨겨놓고 있는 서점 리스본의 사장님은 서점 운영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사장님은 임대료와 관리비 그리고 책값을 어떻게 충당하고 있을까? 비축해둔 은행 잔고가 넉넉한 것일까?

 

플라톤 : 책 팔아서 서점 운영 못하잖아요? 어떻게 서점을 유지하세요?

리스본 : 제가 글쓰기 클럽을 운영하고 있어요. 온라인으로 한 달 회원을 받고 매일 글쓰기를 하도록 해요. 글이 올라오면 간단하게 코멘트를 해주는 방식이에요. 글을 쓰는 습관을 갖도록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준다고 할까요. 글쓰기 수업료로 월세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책을 팔아서 나는 수익으로는 새로운 책을 사고 있어요. 차차 책을 늘여가고 있어요. 이제는 거의 책장이 다 찼고 서점 통장의 잔고는 서서히 늘어가고 있어요. 제 생활비 전부를 감당할 만큼은 안 되지만 밥값 정도는 벌어주는 것 같고요.

플라톤 : 작가니까 서점 리스본의 이야기를 서점 리스본에서 써보면 될 것 같은데요?

리스본 : 서점 리스본에 대한 책은 이미 계약되었어요. 진작부터 서점에 대한 책은 제의 받고 있었지만 아직 책 한 권이 되기에는 부족했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하려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마침 서점 리스본을 아끼는 편집자가 기획서를 써왔더라고요.

 

서점 리스본에 가면, 서가 다음으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장님의 책상이다. 아니 작가의 책상이다. 서점 리스본은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의 지적인 사랑을 담은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의 저자이기도 한 작가의 작업실이고, 저자의 사인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서점이기도 하다. 제빵사의 이름을 내건 수제빵집처럼, 서점 리스본에는 책을 작가에게서 직접 구입하는 소소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방금 나온 빵이에요가 아니라 방금 쓴 글이에요. 잘 읽어주세요.” 라는 작가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서점 리스본에서 금지되고 있는 것은 사진 촬영이다. 골목길을 걷다 서점이 예쁘다며 들어온 행인들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어본다면, 사장님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책은 읽는 것이지 사진을 찍는 소품이 아니라는 사장님의 철학이 철칙으로 준수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서점 리스본의 사진을 몇 장 갖고 있다. 수잔 손탁의 인터뷰집과 김애란의 새로운 소설집을 골라 놓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사진도 몇 장 찍게 되었다. 그러니까 서점 리스본은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이다.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점 리스본이 문을 닫을까봐 사장님만큼 재정 상태를 걱정한다.

주택을 개조한 서점 리스본의 사진은 그림엽서처럼 예쁘다. 가라치코섬의 <윤식당>과 소길리의 <효리네 민박>처럼 사랑스럽다. 서점 리스본도 하나의 판타지일까? 힙스터들의 유행이 예쁜 카페에서 예쁜 서점으로 옮겨갔다는데, 서점 리스본도 트렌드를 앞서간 셀럽의 기획상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공간이 작가나 그의 지인들에게 힐링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글쓰기 작업-책 판매-커뮤니티가 결합된 서점 리스본은 힐링을 위한 소품이 아니라 일상생활이 꾸려지는 살림의 장소이다. 서점 리스본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서점 리스본 식구들이다. 홍대에 가면 과로-휴식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살림살이가 어떻게 꾸려지는지 리얼 다큐로 보여주는 동굴 밖서점이 있다. 서점 리스본은 창작 능력 있는 서점 주인의 재충전의 시간을 위해 월화는 문을 열지 않는다. 우리는 곧 서점 리스본에서 판매되는 텍스트 서점 리스본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

서점에 가실 분들은 월화를 피해서 찾아주시길......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