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플라톤이 돌아왔다 5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국가』 3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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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철학은 디테일의 차이다

가장 정의로워 심지어 불의한자처럼 보이는 자와 가장 불의한 자라 심지어 정의로워보이는 자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정의란 무엇인가 파악해보자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제안을 소크라테스는 다시 리모델링한다.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 먼 거리에 있는 작은 글씨를 읽도록 지시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혹시 다른 곳에 같은 글씨가 더 큰 글씨로 적혀있다는 것을 기억해서 그것을 먼저 읽게 된다면, 먼 거리에 적힌 작은 글씨는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개인의 정의를 살펴보기 전에 보다 큰 국가의 정의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개인의 정의를 정리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추론이 가능하려면 개인과 국가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에서 누구 한 사람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가 단지 크기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이들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가? 일단 우리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긴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을 납부하고 복지 및 행정 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나와 국가를 동일시하거나 내 문제와 국가의 경영이 직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과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 정도. 그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도록 세금은 덜 냈으면 좋겠고 공무원들이 나름공정하게 행정처리 해주기를 바라는 정도의 정의를 기대한다. 그리고 세금과 행정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선 부분에서는 각자의 재량이나 판단이 국가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 구분이 근대적개인의 표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시대와 혹은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개인과 국가의 감각이 다르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2500년 전의 사람들과 우리의 감각이 같다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와 2500년 전 사람들은 어떤 감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디테일한 차이에 대한 확인은 다음으로 미룬다. 이 디테일의 차이가 바로 우리가 2500년 전의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답지를 확인하는 보람찬 일은 잠시 아껴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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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가지 나라돼지들의 나라, 부은 나라, 그리고 이상국가

국가의 정의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국가란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필요의 산물로 본다. 인간은 자족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는 함께 살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모여 살게 된 것이 국가의 기원이다. 여기서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국가의 궁극적인 원칙이 제시되는데 각자 자기 일을 잘하는사회적 분업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집을 잘 짓는 사람과 빵을 잘 굽는 사람, 그리고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모두 똑같이 집을 짓고 빵도 굽고 농사를 짓는 것보다 각자 잘하는 일을 전담해서 하는 편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 국가의 규모가 만들어진다. 농부가 10명이면 제빵사는 20명 건축가는 3명 정도의 비율로 각 직업군이 구성되어야 국가의 자족성이 유지될 수 있다. 물론 국가의 자족성을 위해서는 제화공, 목수, 대장장이, 중개상인, 소매상 등 보다 더 많은 직업군이 필요하다. 이렇게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즉 꼭 필요한 필수재로만 구성된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돼지들의 나라라고 실망한다. “소크라스테스 선생님, 국가는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군요. 그런데 필요한 욕구만 충족될 수 있는 나라는 사는 재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돼지들의 나라네요. 그보다 좀 풍요로운 나라는 없을까요?”

살맛나는 나라가 되려면 우선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 고급 식재료와 향신료가 필요하고, 그것을 구해오기 위해서는 국가 간 교역도 일어나야 하며, 멋진 요리를 담을 은식기와 도자기들도 필요하다. 만찬에서 여흥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수와 악사가 필요하고, 무대의상을 만들어줄 제단사와 분장사도 필요하다. 가수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순회공연을 다녀야 하는데, 나라의 규모가 크지 않으면 가수 한 명 먹여 살리기 힘들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사치스런 나라라고 명명하는데, 사치스런 나라는 결국 나라 간 전쟁을 불러온다. 한 나라의 규모만으로는 사치재의 수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넓은 땅을 얻기 위한 정복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국가의 기원은 철저히 논리적 순서에 따른 것이지 역사적 순서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역사 속에 플라톤이 제시한 나라는 없다. 플라톤은 국가의 기원을 통해 전쟁의 필연성을 도출하고 있는데, 전쟁은 그것을 전담할 수호자라는 직업군을 필요로 한다. 전쟁은 국가의 자립과 자족의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수호자의 책임이 막중해진다. 그렇다면 누가 수호자가 되어야 할까? 플라톤의 정의로운 국가의 원칙은 각자 자기 일을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농부나 제빵사가 수호자를 겸업할 수는 없다. 플라톤은 수호자에 맞는 적임자를 찾고 그에게 적합한 교육과 실전의 기회를 준다면 정의로운 국가는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박한 원리가 그 유명한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다. 물론 여기에도 아름다운 디테일들이 조각되어야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빛이 난다. 이 디테일에 대한 확인도 잠시 미루어두자. 이 부분이야말로 국가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수호자를 잘 뽑고 잘 교육시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치스런 나라는 필연적으로 부은 나라로 귀결된다. 플라톤의 시대에 현실 속의 아테네는 염증이 만연한 부은 나라로 의사의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무절제와 질병이 이 나라에 넘칠 때, 많은 법정과 의원이 문을 열 것이고, 또한 이와 관련해서 자유민들조차 많이들 그리고 몹시 열을 올릴 때에는, ‘법정 웅변술과 의술이 엄숙하고 진지한 체하겠지?” (3405a)

목수는 자신이 병이 나면 의사한테서 약을 받아 복용함으로써 그 병을 토해내거나, 설사를 하게 만들거나 소작 또는 절제 수술을 이용해서 병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기대하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의 머리를 펠트 모자로 감싸주며 이에 따른 조처를 하고서는, 그에게 장기간의 섭생’(식이요법)을 지시한다면, 그는 자신이 병에 신경을 쓰느라 자기 앞에 있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병을 앓을 여유도 없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 유익하지도 않다고 대뜸 말할 걸세. 그런 다음, 그는 그런 의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익숙한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건강을 회복하여 자신의 일을 하며 살게 될 걸세. 하나, 만일에 자신의 몸이 능히 감당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마침내 죽게 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네.”

(3406d~e)

 

아마, 위 인용문을 들으며 뜨끔한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혹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유흥으로 몸이 거덜나기 직전에 있거나, ‘멘탈붕괴직전에 있는 사람이라면, 플라톤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유사성에 소름이 돋았을지도 모른다. 플라톤이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던 아테네의 혼란스런 상황2500년 후인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스트레스성 질병 하나쯤은 악세사리로 붙어다니고, 종합병원의 대기실은 환자들로 만원이다. 병원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만큼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니는 분쟁과 소송의 당사자들도 징글징글하게많다. 의사와 변호사는 부은 나라의 엘리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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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플라톤의 계급론

수호자는 전쟁시 적군에 맞서 싸우는 전사를 비롯해, 전쟁의 결정과 지휘 등 국가 존립의 최고결정권자인 통치자를 포함하고 있다. 각자의 소질에 맞게 직업을 배분한다면, 손재주가 있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인,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교사를 맡으면 된다. 그런데 수호자의 소질을 갖춘 사람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수호자는 용감하고 결단력 있으며 통솔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장인이나 교사의 소질처럼 눈에 띄게 변별되기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수호자라는 직업을 선망하며 자신이 수호자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혹은 수호자의 소질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자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직업의 선택에서 누구나 결정이 쉽지 않은,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좀 정해주면 좋겠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은 이런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이용해 직업 선택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칙한 상상을 보여준다. 태어날 때부터 직업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한다면…….

 

신은 여러분을 만들면서, 여러분 중에서도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이들에겐 탄생시에 황금을 섞었는데, 이들이 가장 존경받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조자들에겐 은을 섞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이나 다른 장인들에게는 쇠와 청동을 섞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모두가 동족이기에, 대개는 여러분 자신들을 닮은 자손들을 낳지만, 때로는 황금의 자손에서 은의 자손이, 그리고 은의 자손에서는 황금의 자손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자손이 이처럼 서로의 자손에서 탄생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들에게 신은 무엇보다도 첫째로 지시하기를, 통치자들은 그들의 자손들의 혼에 그것들 중의 무슨 성분이 혼합되어 있는지부터 지켜보는 것에 있어서 훌륭한 수호자가 될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이를 예의 주시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3415a)

 

이 부분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가장 악명 높은비난을 받는 부분이다. 직업을 타고난다는 운명론과 그것을 //으로 위계적으로 표현하는 계급론은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는 근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발붙일 데가 없는 봉건주의적 망령이다. 플라톤이 아무리 이상국가를 지향한다고 해도, ‘사람 위에 사람 있다는 계급론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모욕감을 준다. 플라톤도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3권에서 계급에 대한 신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상당히 망설이고 머뭇거린다. 우리는 플라톤이 쩔쩔매고 망설이는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신화-거짓말까지 가져와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하는 까닭은, 그만큼 중요한 논리가 이후 전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다급한 마음에 카드모스가 연못의 용을 죽이고 흙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힘을 합쳐 테베라는 국가를 만들었다는 전설을 이야기한다. 논리적으로 흙에서 사람이 태어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테베의 전설을 의심하지 않고, ‘을 테베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신화라는 것이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력한 믿음의 체계를 만들어낸다. 플라톤은 신화의 힘을 빌려서라도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수호자라는 다른 유형의 엘리트가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타고난수호자가 있어야만 이상국가의 설계도가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가 동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그로테스크한 아우라를 예고하고 있다. 4권에서는 파격왕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4. 감정에도 계급이 있다, 플라톤에게 분노하기 전에……

EBS ‘다큐프라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학벌 11.5%, 개인의 역량 13.5%, 인맥 13.8%, 부모의 재력 41.0%”라는 결과가 나왔다(경향신문, 2018418일자). 여기서 학벌이나 인맥이 부모의 재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부모의 재력이 성공의 마스터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타고나지 않으면 인생역전이란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청년들 사이에서 수저론으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구설수에 오르는 재벌3세들의 갑질을 보고 있으면, 타고난 복도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쥐가 고양이 걱정하는주제 넘는 망상이고, 흙수저로 태어나 성공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 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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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폭망한영화 <상류사회>에서 흥행성적과 별도로 장안에 화제가 된 대사가 있는데, “재벌만 겁 없이 살 수 있는거야.”라는 재벌가 딸의 조언이었다. 무릎을 꿇고 선처 바란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주인공 수애 앞에서, 재벌가 딸은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운다. 수애는 재벌을 우습게 본 대가로 어떤 모욕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납작엎드려 있다. 이런 이미지와 마주할 때, 확실히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거나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각이 든다. 위키피디아라면 아마도 계급없는 대한민국이라고 취소선으로 표시될 것이다.

하이옥타브의 고성이 아니면 일상대화가 되지 않는 항공사 사주 가족을 보면, 그들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만이 감정을 독점한 듯 거침없이 표출하는 그 퇴행적 유치함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것이다. 백화점, 레스토랑, 콜센터 직원들에게는 웃는 얼굴이 직무이며 유니폼이다. 이들은 자기 일에 충실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2018년 대한민국에는 신분상의 계급은 없을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분명 계급이 있다. 나는 도로나 지하주차장에서 외제차를 만날까 겁이 난다. 나의 경미한 실수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보험료의 수직상승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쫄보가 된다. 재계약을 앞둔 비정규직들과, 꼬박꼬박 월세를 올려 받는 건물주를 둔 세입자들, 수명이 늘어난다는데 국민연금하나만을 기대고 살아가는 퇴직자들. 이들에게는 불안과 우울의 감정만이 전유된다. 이 비대칭적인 감정의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우리는 비로소 플라톤의 금은동족신화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게거품을 물며 분노할 수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