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플라톤이 돌아왔다 9회]

시(詩), 호메로스에서 문학레이블 '공전'까지

-국가』 7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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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철인왕 사관학교의 커리큘럼

국가7권에서는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와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플라톤의 인식론이 설명되고 있고, 이것을 철인왕의 교육방법에 적용한 커리큘럼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교육을 거쳐 철인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인가? 철인왕 후보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인가? ‘철인왕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알아보자.

이 사관학교에 들어오려면, 음악과 체육 수업으로 이루어진 예비학교에서 철인왕(수호자)에 적합한 학생이라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예비학교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통해 부드러움과 조화, 그리고 균형의 감각을 몸에 익힌 다음 체력 단련으로 들어간다. 체력 단련으로 근육이 단단해지면 그것을 교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단해지는 수업을 유연해지는 수업 다음에 배치하고 있다. 음악교육은 오늘날의 구분에 따르면 역사교육이며 문학교육이기도 하다. 음악교육의 내용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당대 유행한 비극이기 때문에, 음악교육에서는 멜로디와 리듬뿐 아니라 가사내용을 통한 역사와 문학 수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이건 국가3권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플라톤은 변덕스러운 신(황소와 거위로 변신하여 여인들을 후리는 제우스를 보라)이나 격정에 울부짖는 전사(트로이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에 슬픔에 빠져 식음을 전폐한다)의 모습은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검열을 거쳐 교과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에게 신은 영원한 진리의 표본으로 자리잡아야 하고, 무릇 전사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교육적 신념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입히고, 보이려는 요즘 부모들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신들의 변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하거나 감정에 휩싸여 전장에 나가는 일이, 현실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플라톤의 노파심은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준다. 특히 검열제도에 대해서는 거부감마저 든다. 우리의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제대로 된 교육만이 정치적 혼란을 해결할 사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음악과 체육으로 수학능력을 인증 받은 철인왕 사관생도들은 다음과 같은 수업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을 배우는 기초과학에 10, 변증법을 배우는 철학에 5,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모범생들에게는 15년의 현장실습 기회가 주어진다. 행정, 사법, 군사 관련 현장에 투입되어 실무를 익히고 통치에 대한 안목을 기른 다음,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된 최후의 1이 철인왕으로 등용된다. 마법학교의 퀘스트들을 통과해가는 해리포터처럼, 긴장과 스릴 넘치는 이 모든 과정을 마치려면 최연소 철인왕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50대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타고난 금수저라도 철인왕이 되려면 꽤 연식이 있어야 한다. ‘낙하산은 불가능하다.

철인왕 사관학교의 은 변증법 수업이다. 변증법 이전에 이수하는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학습을 통해 수, 공간, 운동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갖춘 다음에야 변증법을 익힐 수 있다. 도대체 변증법이 뭐길래 플라톤은 모든 학습의 정점에 변증법을 배치한 것인가? 변증법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논의의 기술 또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물을 설명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그 사물에 대한 설명을 끌어내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화자들과 함께 어떤 개념의 정의로부터 시작해 서로의 이해를 나누고 합의해가는 대화술을 학문으로 체계화한 것이기도 하다.

 

진리를 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 발짝씩 나아가는 방법, 매 발짝마다 다음 발짝으로 나아가기 전에 우리 자신의 것이 되도록 하는 방법,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는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확신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마음으로부터 진리를 끄집어내고 마음에 진리를 넣어주는 자연스러운 방법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이라는 그의 생각은, 교육은 상자를 채우듯이 마음에 무엇인가를 넣어주는 일이 아니라 영혼의 눈이 빛을 향하도록 돌려놓는 일이라는 그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중략) 학습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책 속의 사실들을 마음속에 집어넣기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자기 자신과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을 해야 한다.(네틀쉽, 플라톤의 국가론 강의, 276)

 

    

 

2. 플라톤의 역습, 호메로스식 교육을 멈춰라

플라톤의 교육체계를 정리해보면 호메로스로 시작해서 소크라테스로 끝나는 공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음악()-체육-과학-철학). 그런데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두 대가(大家)에 대한 대접에서 플라톤은 지극히 편파적이다.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은 모든 공부의 정점에 왕관처럼 놓여 있다. 반면 호메로스에 대해서는 국가10권에서 반 권의 분량을 할애해서 시에 대한 비판과 시인추방론을 주장할 만큼,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솜털 하나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처럼, 플라톤은 시적 감수성을 흡수하고 분해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특이체질인 것일까? 왜 플라톤은 시에 대해 이토록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철학과 시 사이에는 오래된 일종의 불화가 있다고 말이네. [여러 시편에는 철학에 대해] ‘주인을 향해 멍멍 짖어대는 개라든가, ‘짖으며 달려드는 개’,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의 실없는 이야기로 대단한이라든가, ‘지나치게 똑똑한 자들의 무리’, ‘시시콜콜 따지며 생각하는 자들’, 그래서 궁상맞은 자들’, 그리고 그 밖의 것들로 이들의 오랜 대립을 나타내는 수없이 많은 표현이 있으니 말일세. (국가1060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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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철학의 불화의 역사는 길다. 플라톤에 따르면, 시에 대한 철학의 적대보다 철학에 대한 시의 폄하가 먼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한 시의 조롱은 호메로스의 시대로부터 오래도록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플라톤의 시에 대한 비판은 시라는 장르가 아니라 호메로스의 시가 교육과 통치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점적 권위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되어야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전쟁영웅 아킬레우스의 노래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일리아스에는 군법, 전리품의 분배, 선박의 적재와 조정, 의술, 장례절차, 경기운영 등 공동체의 규범과 생활양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당대 사람들은 아킬레우스의 비극적인 운명에 눈물을 흘리며 동시에 공동체의 생활규범을 학습했다. 호메로스의 시는 공동체의 인식의 보고(寶庫), 윤리학, 정치학, 역사학, 기술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오늘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듯,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시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 했다. 따라서 시인은 암기력이 뛰어난 장인이며 가인(歌人)인 동시에 교육자이며 정치적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공동체의 역사와 규범은 시인의 기억을 통해 보존되고 전달될 수 있었다.

시인의 비범한 기억력은 많은 기술을 요했다. 운율과 추임새, 율동과 가창력이 자유자재로 구사될 때에야 완벽한 기억력이 발휘될 수 있었다. 시인들은 많은 기예를 갈고 닦아야 했는데, 시인들이 시와 일체가 되었을 때만 퍼포먼스는 청중들에게도 몰입과 일체감을 가져왔다. 이 일치의 순간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 일은 궁상맞은 짓거리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이유로 철학자의 지반은 옹색할 수밖에 없었다. 락밴드 퀸(QUEEN)의 콘서트에서 떼창을 부르는 청중들에게 음악비평가의 코멘트 따위가 들려올 리 없다.

플라톤이 경계하고 있는 것은 시의 감응력이 갖는 놀라운 파급효과였다. 시인이 기량껏 자신의 기예를 발휘할 때, 청중들은 빠르게 퍼포먼스에 빠져들었다. 몰입은 쾌감을 강화하고 도취와 열광의 분위기 속에서 시는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물론 시가 불순한 의도에서 이런 메커니즘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의 기억술은 암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암송 특유의 감응력은 마취에 가까운 것이었다. 호메로스의 시대와 달리 플라톤의 시대는 문자가 상용화 되고, 전달의 매체가 암송에서 문자로 교체되던 시기였다. 플라톤은 새로운 매체에 맞는 새로운 교육법은 호메로스식 몰입과 일체의 학습이 아니라 묻고 따지는 철학에 의해 혁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시에 대한 플라톤의 역습은 이러한 혁신의 기획 아래 놓여 있었다.

플라톤은 노래와 연극을 즐기지 않는 진지충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한때 비극작가를 꿈꾸었던 플라톤은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한 문청(文靑)’시절을 보냈고, 그의 대화편은 철학책이지만 연극 대본과 같은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물론 철학책이다 보니 극적 재미는 없다. 그의 또 다른 대화편 크리톤에는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중인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데, 꿈에 신은 소크라테스여! 노래해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는 신의 명령에 따라 노래를 짓는다. 플라톤은 왜 자신의 대화편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작업이 음악이었다는 것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내려 했을까? 시와 철학의 거리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지 모른다. 혹자는 말한다. “시와 철학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부딪치는 것은, 둘이 모두 낮은 수준에 있을 때이다. 위대한 철학자와 위대한 시인들은 서로를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 규칙이 되어 있다.”(플라톤서설, 에릭 A. 해블록, 글항아리, 342) 어쩌면 플라톤은 이러한 공공연한 비밀을 모르는 척 연기하며, 한편으로는 호메로스를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호메로스의 역할을 이어가려 한, 위대한 시인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3. 문학레이블 공전의 역습, 비주얼 문예지 <모티프>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시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하다보니, 문득 지금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들었다. 지금 내가 접할 수 있는 시는 쇼미더머니고등래퍼에 나오는 랩가사가 전부이다. 한때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을 깨는가와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을 읽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때도 있었지만, 모두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모처럼 인터넷서점에 신간시집 몇 권을 주문했다. 지하철로 오갈 때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시집을 꺼내 읽어봤다. 지하철 손잡이가 흔들릴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늘어났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새가 시라는 은유는 몰라요 시가 개라는 은유도 몰라요 누군가 시를 쓴다면 그건 그냥 시예요(중략)잘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기로 했어요”(황인찬, 멍하면 멍)


김수영의 시 절망을 차용하고 있는 황인찬의 이 시는 당당히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시어를 갈고닦고 삶에 대한 통찰과 직관이 빛나는 시만이 좋은 시인가 반문하며, 무위(無爲)의 시작을 보여준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은유를 쓰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싸늘한 겨울 주머니에 담뱃갑이 든 코트를 부여잡지 않는다(중략)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저기 굴러다니는 작은 사물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너는 이제 시인처럼 보인다)


황인찬은 우리가 흔히 시라고 생각하는 문법과 관념을 폐기하고 시인과 독자가 모두 알지 못하는 지점으로 자신의 시를 데려다 놓는다.


어린 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무작정 집을 나선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는데 자꾸 어딘가에 당도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이상하다”(이것이 시라고 생각된다면)


이 무섭고 이상한 기분이 황인찬 시의 맥거핀이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호하지만, 자꾸 거기로 우리의 시선은 끌려간다. 2015년에 출판된 황인찬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현재 11쇄를 찍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하는 황인찬의 시를 꽤 많은 사람들이 즐겨읽고 있나 보다.

황인찬이 많은 것을 지워가는 방식으로 낯선 시를 보여준다면, 문보영은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낯선 시의 또 다른 수준을 보여준다.


신이 거대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다 인간은 오리털 파카에 갇힌 무수한 오리털들, 이라고 시인은 쓴다 이따금 오리털이 빠져나오면 신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아 버린다”(오리털파카신)



문보영은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운명을 한없이 가벼운 오리털로 퉁쳐버리는 개그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문보영월드에는 이상한 도서관이 있다.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다 읽어 버리면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까 봐, 도서관은 모든 책의 1권을 지하창고에 숨긴다. 그래서 이 도서관 이용자들은 독서를 시작할 수 없다(호신). 이것을 스스로를 지키는 호신(護身)’이라고 부르는 시인의 농담을 피식 웃어넘기다가도, 움찔 놀라 생각과 판단을 멈추게 되는 순간과 만나게 된다.

 

, 하고 발음하면

자연히 웃는 입 모양을 하게 된다

그래서 웃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웃는 법을 가르칠 때

끝을 발음해 보도록 하면 좋다

(중략)

기어코 웃고야 마는 네 속에는 끝이 많구나

알약을 털어 넣는 순간 뒤로 꺾이는 목의 각도로

끝과 끝이 서 있는 곳에서 (문보영,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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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s://www.tumblbug.com/motif2019)

 

 

이십대에 등단과 출간을 동시에 이룬 운 좋은젊은 시인의 엉뚱발랄함은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함이 아니었다. 문보영은 첫 시집 책기둥(2017)에서 기호와 수식, 과학의 법칙과 판타지 등 시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시의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아무렇게나 쓰여진 듯 보이는 이 시들을 위해 시인은 무한히 많이 쓸모없는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문보영의 SNS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에 들어가 보면, 피자 한 판을 먹기 위해 매일 자전거로 도서관을 오가며 시 1.3편을 써야 하는 시인의 경제학이 유머러스한 일기로 표현되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왜 시가 아닌가?’ 들이대는 문보영의 화법을 수긍하게 되고, ‘이것도 시가 될까요?’ 너무 성실하게실험하는 문보영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싶어진다.

최근엔 패션지 <보그>에 도전장을 내민 비주얼 문예지가 출간되어 문학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문학레이블 공전이 소셜펀딩 텀블벅으로 제작비를 모아 출간하고 있는 문예지 <모티프>가 그 주인공이다. 2018년 창간호 ‘dirty money'에 이어 2’miss call’을 냈고, 201953시발점(始發點)’을 출간할 예정이다. 20대의 젊은 시인 4명으로 이루어진 <모티프>의 편집위원들은 작가들도 읽지 않는 매너리즘에 빠진 문예지에서 벗어나,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우선, 제작비 600만원에서 400만원을 과감히 사진에 투자해 패션지에 버금가는 비주얼을 담아내고 있다. 이런 투자는 단지 눈요깃감을 위해서가 아니다. ‘Storytelling Artwort’에서는 문학작품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해서 패션화보처럼 담아냄으로써,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Writer Modeling’에서는 작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독자들의 선입견을 떼어내기 위해 셀러브리티로서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문학레이블 공전의 시도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봄직한 일을 실제로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문학레이블 공전팀에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동네 미용실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잡지들 사이에서 <모티프>를 발견하게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그날을 위해 텀블벅에 참여하자!)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 시대와 매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는 계속되고 있다. 이 당연한 얘기가 봄꽃처럼 반갑다. 가끔 지하철에서 시집을 꺼내 읽어볼 일이다. 호메로스에서 문학레이블 공전까지.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