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프로젝트

[자립프로젝트 - 파필랩]

두 번째 파필랩 : 극혐시대가 나에게 남긴 과제

  



글 : 차명식








0.

지난 910일을 기하여 올 3월부터 준비해온 <파필랩 시즌 2 : 극혐시대>가 마무리되었다. 두 번의 강좌를 합쳐 든 손님들은 쉰 명 정도 될까. 파필랩도 이것으로 두 번째인 만큼 생각보다 잘 되었다 느껴진 부분도 많았지만, 오히려 나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강의에 있어 좀 부족했다 할 만한 점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두 번째 강의에 왔던 대학 후배가 남기고 간 피드백이었다. 그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내가 원래 이런 공부를 하고 있었지 싶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그래봐야 이런다고 뭔가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2030이 파필랩 시즌 2를 기획한 본디 이유는 활기를 잃은 세미나에 확실한목표’를 두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우리는 관성적으로 세미나에 참가할 뿐 점점 세미나를 하는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필랩의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좀 더 생생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주제, 피부에 딱 와 닿는 주제를 찾고자 노력했고, ‘혐오는 그러한 고민의 결과였다.

혐오를 주제로 여섯 달 가까이 세미나를 하면서 여러 번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참 트렌디한 주제를 골랐다는 것이었다. 그 여섯 달 사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 테러는 난민과 이슬람 혐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벌떼처럼 일어난 여성혐오 담론은 말할 것도 없다. 헬조선 담론이야 작금에는 시도 때도 없이 나오게 된 이야기이고, 트럼프의 망언과 요상하게 돌아가는 미국 대선 이야기도 사흘에 한 번씩은 꼭 뉴스에서 떠들어댄다. 사실상 요즈음에 화두가 되는 요소들을 모두 아울러 버무릴 수 있는 주제, 그것이 바로 혐오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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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일까. 이번 파필랩에는 이전에 문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왔고, 그들 중에서는 특히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 후배도 그 중 하나였다. 후배는 나처럼 인류학을 전공했고 올 초에 졸업해서 얼마 전에 화학제품 유통회사에 취직을 했다. 바쁠 텐데도 시간을 내어 와준 것이 고마워 강의가 끝나고 저녁을 샀다. 그러면서 (헬조선을 주제로 했던) 강의가 어땠느냐 물었더니 말해준 감상이 저것이었다.

     


2.

헬조선을 헬조선으로 만드는여러 원인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특징,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분노와 혐오. 후배는 그런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로웠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자리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서 흥미와 공감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가는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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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자신이 직장에서 명백히 헬조선스러운일들과 맞닥뜨린다 해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올 수는 없다. 상사에게 대놓고 그런 일들을 지적하는 것은 실상 회사를 때려 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각하된다.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끼리 하루아침에 무언가 운동을 만들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 대부분이 회사에 묶여있는 이상, 결국 어떤 행동을 하기 어려운 이상 말은 말에서 끝난다. 혐오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되고, 그것이 왜 위험하며, 어떻게 실천되는지에 대하여 공부하고 또 그에 동의하게 된다 해도 변화가 없는 이상 생산되는 것은 무력감뿐이다. 나는 그 말에 쉬이 반박할 수 없었고, 결국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쳤다.

   

 

3.

우리가 흔히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자고 말할 때는 단순히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곧 어떻게 자신의 삶을 구성해나갈까의 문제이다. 또한 누가 자신의 삶을 구성해나가는가의 문제이다.

문탁이란 공간은 그 후배가, 그리고 대부분의 20대가 목매게 될 직장과는 여러 가지 지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탁에서는 실천이 함께 간다. 그것은 그래야한다는 당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공부했을 때, 그리하여 새로운 앎을 얻었을 때 그것을 어떤 행동으로 바꿔낼 수 있는 기반과 조건들이 문탁에는 존재한다. 함께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한 얼마든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동료들이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공부를 곧 삶의 변화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 그것이 문탁이란 공간에서 공부의 무게가 중한 이유다.

그러나 만약 아무리 공부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기 힘든 환경이라면 공부는 고통일 뿐이다. 내 감상과 생각과는 상관없이 특정한 행동의 양식을 강요당하는, 머릿속으로는 괴로워하면서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고문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 연쇄를 끊어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 어긋남 속에서 삶은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며, 실은 혐오역시 그 부패의 결과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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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므로 결국 우리의 공부의 시작은 그 지점을 둘러싸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약’, 연쇄의 단절. 나는 그 도약을 이뤄냈는가? 이뤄내지 못했다면,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낸 다음에야, 나는 언젠가 후배와 다시 한 번 그에 관환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파필랩이 내게 남긴 것은 바로 그러한 과제다.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