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통신

(152호)2017 월든, 올 댓 핸드메이드!

2017.01.24 00:23

봄날 조회 수:303

[작업장통신] 

2017월든, 올 댓 핸드!

 




글 :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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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의 바느질 취미는 아주 오랜 것이다.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1/2 축소형 저고리 만들기부터 시작해 나는 가정 과목의 모든 만들기에 재미를 느꼈고 물론 거의 만점을 받으며 완성하곤 했다. 이후에도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는 어김없이 흥미를 느꼈다. 바느질뿐만 아니라 건설업으로 뼈가 굵은 아버지의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철근을 묶는 무스비(묶는다는 의미의 일본어 표현)작업을 너무 즐겁게 또 너무 뛰어나게 해내서 어른 품삯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그런 취미와 흥미가, 그저 취미나 흥미가 아닌 이 된 것은 바로 월든이라는 공간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20122, <마을작업장 월든>이 문을 열었을 때,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삶의 변화를 도모하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자본의 구속을 벗어나고 경제적 자립을 포함한 다른 삶을 실험하는 공간에 동참하면서 나는 내심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자립을 꿈꾸었다. 밤늦게까지 먼지 나고 어둠침침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투박한 생산품들은 오히려 기성의 제품들과 차별성을 어필했고, 머지않아 입으로만 말하던 자립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혼자 일을 하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재미가 없어졌다기보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단독작업의 한계라고나 할까,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하는 회의가 불쑥불쑥 올라왔고 사실, 돈을 버는 문제도 생각만큼 진전되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마운 가죽더미와 천 조각들이, 쌓여있는 걸 보기만 해도 뿌듯했던 마음들이 갑자기 짜증과 싫증으로 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2016년은 월든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던 해이다. 문탁과 파지사유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것과 달리, 월든은 만드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중고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생산이라고 하는 용어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월든은 한정된 사람들의 전용공간 같은 인식이 강했다. 그같은 구분을 없애는 계기가 된 것은 매니저 제도와 공동작업 프로젝트(세월호 희생자 이름 수놓기, 청바지 리폼방석 만들기 등)였다. 월든이 문탁네트워크의 또 하나의 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논의하는 가운데, 월든을 지키는 것을 밥당번처럼 누구나 하는 일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으로 시작해서 결국 열 명이 넘는 이어가게 지킴이(매니저)가 탄생했다. 한 해 동안 이어가게 매니저들은 공간 청소에서 시작해서 물품정리와 판매, 소소한 운영에 함께 했다. 회의를 정례화해서 활동과정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나누고 새로운 기획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월든에서 만든 물품을 소개하고, 기증받은 물품으로 경매를 진행했던 월든 런치쇼는 함께 한 기획의 결과물이었다.


한편으로 월든이라는 공간이 주는 독특성을 살린 기획은 바로 바느질이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도 사오십대의 엄마들 중에 많은 이들이 퀼트나 자수 같은, ‘눈 빠질 것 같은바느질이나 단번에 드르륵박아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어 내는 재봉질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마치 남자들이 눈 빠지도록외제차 리스트를 훑거나 혼자 훌쩍 떠나는 낚시에 대한 로망을 가슴에 품고 살 듯이 말이다. 그런 감성을 툭 건드린 것이 월든의 공동작업 프로젝트 아니었을까.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수놓는 것은 기억의 괴로움을 다독이고 천 위에 수놓는 한 땀처럼 촘촘하게 각자의 다짐을 마음에 새겨넣는 과정이기도 했다. 기억하는 수놓기에 이어서 우리 곁에 가깝게 월든을 느끼는 무언가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의 공부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공부좌탁의 방석. 문탁이 생겨난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던 방석은 우리의 공부이력 만큼 오래된 티를 냈다. 올드패션 청바지를 조각내어 각자의 감성으로 이어붙인 청바지 리폼방석이 만들어져 문탁 대강의실에 펼쳐졌을 때, 나 혼자의 작업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경지를 보았다. 그것은 솜씨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꼼꼼함과 털털함 같은 성격이 문제가 되지 않는 합동예술같은 데서 오는 감동이었다.

 

2017년 월든은 에 주목하고 있다. 이어가게 매니저들과 함께 공간을 지키는 월든 매니저는 한편으로는 봄날길쌈방의 제품 생산에도 동참하고 있다. 작년까지 한정적으로 생산에 임해왔다면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월든 매니저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된다. 모처럼 오랜 고민 끝에 사들인 가죽전용 재봉틀과 피할기(가죽뒷면을 얇게 깎아내는 기계)가 제 값을 하려면 나 뿐만 아니라 월든 매니저 모두가 두려움 없이 이들을 사용해야 한다. 벌써부터 지금과 달팽이, 띠우, 토용은 여태껏 월든에서 만든 적이 없는 (비록 카피이기는 하지만)백팩을 시도하고 있다. 누구는 손으로, 누구는 재봉으로 다들 첫 경험의 제품을 무작정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을 보며 놀랄 뿐이다. 그들은, 머릿 속에 전체의 제작과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도할 수 없는 나와는 다른 인류이다. 말하자면 머리보다 의 영리함을 믿는 사람들이다.

 

기왕 월든 공간을 책임지는 매니저가 된 사람들은 자주 만나 회의를 하게 된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이어가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물건들이 들어오고, 때로 물건들을 정리해 밖으로 내다놔야 하는 경우도 있고 공간 자체의 관리에 자잘하게 손 써야 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제품 제작도 그렇고 하여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요구와 질문이 들어오는 곳이 바로 월든이다. 처음에는 이어가게에 들어오는 물품 하나에 가격을 매기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배 매니저들도 같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어떤 일이건 알아서 하는 일이 많다. 알아서 한다는 건, 내 맘대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비슷해지는 어떤 감각, 다시 말해 공통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공통감각은 어떻게 길러지는 걸까? 정기회의 속에서, 오가는 대화 속에서, 곁눈질 해가며 배우는 일상 속에서 길러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공통의 감각을 키우는데 텍스트를 통한 공부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은 나만의 주장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월든 식구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부가 2017년에 시작된다. 이른 바 <손의 인문학>이다. 각자 이미 정한 공부와 함께 병행하는데 버겁지 않도록 조금은 여유를 두고 우리는 에 대한 다양한 텍스트를 읽어갈 것이다.

 

이제 올 한해 주력해야 할 협동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들 이름을 수놓았던 것이나 청바지 리폼방석을 만든 것이 모두 손끝에서 시작됐던 것처럼, 올해도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 의미 있는 해보려 한다. 몇 주 전, 문탁식구들 몇몇이서 안산 교육청 옆에 있는 기억의 교실합동 분향소를 다녀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엄청난 비극 속에서 눈물을 거둘 수 없었지만, 우린 거기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왔다. 기억의 교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외로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고 있지만, 책상 위에 놓인 쪽지들은 쉽게 낡아지고, 계절에 맞게 따뜻하게 감싼 아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특기가 된(?) 청바지 리폼방석을 희생된 각자에게 만들어 주는 것을 올 한해 월든의 협동프로젝트로 결정했다. 수놓으며 그 이름을 마음에 새긴 것이 작년의 일이라면, 이번에는 조각조각 청바지천을 이어붙여 방석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에 새기는 것이 될 것이다. 먼저 간 안산고 아이들이 살았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씨를 가졌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었는지 일일이 기록한 약전(略傳)을 읽으며, 의식과도 같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우리의 생각을 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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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를 좋아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월든은 유지되지 않는다. 여럿이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 있는 반면, 나 스스로 월든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나는 월든에서 살면서 월든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다. 5년째 접어드는 월든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세상에 대한 꿈, 또는 다른 세상을 위해 일하는 친구들의 일상에 대해 적고 싶다. 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 올 댓 핸드메이드 세상을!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