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소

(82호) 시간을 허비할 각오가 되었는가?

2014.03.31 11:26

블랙커피 조회 수:1754

[세미나투어 05]

시간을 허비각오가 되었는가?



글 : 블랙커피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100달러에 인쇄된 밴자민 프랭클린이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이 말은, 시간은 돈처럼 소중하니 낭비하지 말고 아껴서라 정도로 해석되어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사실 우리 현대인들은 이 시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 어떤 일을 할 때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당연시 되고 있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의 낭비이며 자연히 도태되어야 할 그 무엇-일리히는 이것을 부정가치로 얘기한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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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공부라는 것에도 그러한 관점이 침입하여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적은 돈을 들여 무언가를 배운 후, 그것을 쓸모 있게 써서 돈을 벌수 있을까? 의 궁리 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모습에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아직 의문을 품지 않았다면 당장 미하일 엔데의 소설 『모모』를 읽어보길 적극 권장한다.


사실 나도 이번 ‘2030세미나 투어’가 아니였다면 다른 읽을 책들에 밀려 『모모』를 읽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모모』는 지난 2주 전 ‘2030도시부족세미나’를 통해 나에게 훅 다가왔다.



2030도시부족과의 만남

그날은 아직 봄이라 불리기에는 다소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던 일요일 오후였다. 가족들과 복닥복닥 주말을 보내다 혼자 떨어져 나온 그날은 평일과는 다른 셀렘이 있었다. 그것은 문탁의 다수인 40대와 50대가 아닌 2030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어떤 신선함(?)에 대한 기대까지 더해져 더욱 특별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 시간 남짓의 2030도시부족과의 만남은 역시 젊은 에너지와 열의를 느끼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그날 2030도시부족세미나는 『엔데의 유언』을 읽는 첫 번째 자리였는데, 란님의 친절한 발제덕분에 책을 읽지 않아도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이자수익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어, 왜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는가? 라는 질문과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노화되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가치가 감소하는 돈인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이론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노화하는 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얼마 전에 복작복작 세미나에서 읽었던 ‘100% 화폐’와 맥을 같이하는 화폐개혁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돌파하려는 시도로 보여 졌다. 이에 대해 세미나투어에 함께 한 자누리님은 맑스의 화폐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에서의 화폐가 가지는 기능은 단지 가치의 척도와 교환수단이라는 단순한 기능뿐만이 아니라 지불수단과 축장화폐로써의 의미가 더해져야 함을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화폐 안에 숨은 사회적 관계를 건드리지 않고 표피적인 것만 건드리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라 볼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시기도 하셨다. 


이것은 화폐개혁적 방법은 화폐의 여러 기능 중 교환적 기능은 긍정하고 축장의 성격은 부정하는 방식이지만, 사실 교환을 통해 화폐를 사용하는 순간에는 등가교환의 관계가 전제되기 때문 교환하고자 하는 대상의 질은 무시되고 오직 양적인 계산만이 남는다는 것이며, 이것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래서 화폐를 통한 교환관계보다 증여를 통한 순환의 관계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는 문탁에서 대안화폐로 쓰이는 ‘복’으로 향했다. 과연 ‘복’이 교환의 관계가 아니라 증여와 순환의 관계로써 자리 잡고 있는가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2030에게도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는 주거비용의 문제까지 얘기해 보는 등 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나 빠르게 말들이 이어져 나오는지 기록하는데 팔이 아플 지경인 2030의 빠른 속도의 이야기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날은 거의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적는 것에 만족해야 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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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돈

집에 와서야 그날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서 엔데의 『모모』와 『엔데의 유언』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마침 복작복작세미나에서 하비의 『맑스「자본」강의』중 화폐부분을 읽고 있어서 화폐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심도 있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모모’는 단순한 시간도둑에 대한 환타지가 아니라 현대 산업사회에서 시간과 화폐의 본질을 꿰뚫는 소설임을 감탄하며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우리의 삶에서 유일한 가치척도가 되는 순간 삶은 그 이전과 달라진다. 그것을 『모모』에서는 마을 이발사 푸지씨에 대한 이야기로 극명히 보여주는 있다. 


푸지씨는 그가 살고 있는 거리에서 소소한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던 중 회색신사의 방문을 받는다. 회색신사는 푸지씨의 일상생활을 분석한 것을 들이 밀며 그것을 시간으로 계산한 후, 그가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사는지를 말한다. 회색신사의 말에 의하면 나이 드신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과 앵무새를 보살피는 시간, 연인과 만나는 시간, 노래하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는 시간, 자기전의 명상 시간 등은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된다. 그 시간을 계산하여 아끼고, 그것을 시간 저축은행에 맡긴다면 은행에서는 저축한 시간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므로 그는 10년 후, 20년 후 엄청난 시간부자가 되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회색 신사의 말에 푸지씨는 시간을 절약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싸구려 양로원에 보내지고, 앵무새는 팔아버렸으며, 연인에게는 작별을 고하는 편지를 쓴다. 이발하러 온 손님과는 일체의 잡담을 금하고 꼭 필요한 동작으로 이발을 함으로써 일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고 절약했지만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졌고, 일을 하면서 예전과 달리 조금도 기쁘지 않았으며, 그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간다. 회색인간의 꼬드김에 넘어간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고,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절약한 만큼 인근마을 사람들보다 옷을 잘 입기는 했지만 피곤과 불만과 허기가 그들의 삶을 가득 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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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사회에서 시간이 돈인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화폐에 대한 정의다. 맑스가 자본주의를 분석한 『자본』에서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다. 즉 시간은 자본주의적 가치를 이루는 핵심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는 화폐로 실현되는 바, 자본주의에서 시간과 화폐는 동어반복이 된다.

실제로 시계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것은 산업혁명시기와 겹치며, 시계는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리듬에 사람들의 생활을 맞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시계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 사람들의 삶은 자연과 사회의 흐름 속에 있었다. 피지 제도의 난디 섬 사람들이 시각을 ‘소를 풀밭에 데려갈 때’, ‘염소를 풀어 놓아야 할 때’ 등으로 표현했고, 조선시대 시간 표현을 봐도 한식경(一食頃)이란 밥한끼 먹을 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한다경(一茶頃)이라고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시간은 그런 식으로 뭉뚱그려지고 흘려보낼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었다. 이제 몇 시간 몇 분 몇 초는 계산되고 그것은 곧 돈이 됨에 결코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며, 인간은 시간의 그물 속에 갇히게 되었다.



2030도시부족과 옥상에서 삼겹살 구워먹기

2030도시부족의 세미나 투어는 나에게 봄바람과 같은 신선한 기운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한 번의 엿봄에서만 가능한, 지나치듯 매이지 않는 여행자만이 갖게 되는 시선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였다. 그리고 나의 공부와 너의 공부가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복작복작세미나에서 화폐에 대한 공부를 하던 중에 만난 2030세미나의 『엔데의 유언』은 화폐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으로 나를 이끌었으며, 시간과 돈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 세미나 투어 이후 문탁 안에서 나의 시선 또한 확장이 되었다. 홈피를 보면서 2030세미나의 글들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되었고, 그래서 2030세미나의 옥상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덕에 주방 옆 가구의 용도가 옥상으로 가는 계단임을 알고 깜놀하기도 했다. 이들이 더운 여름날 옥상에서 삼겹살파티를 하기를 은근히 고대하는 1인으로, 옥상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면 즉시 젓가락 가지고 합류할 의사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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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시간과 돈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을 지을 때가 된 것 같다. 『모모』에서 회색인간은 시간을 훔치지 못할 때 죽는다. 그것은 두 가지 다른 방향의 대안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시간을 축적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시간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즉 시간이라는 것을 유일한 가치로 삼는 삶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시간 생까기’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생깐 시간 대신 다른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이다. 전자는 ‘노화하는 돈’등의 아이디어를 포함하는 화폐개혁적 대안을 말하고, 후자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아닌, 대안적 관계를 통한 새로운 가치창조의 방법이다. 이것은 화폐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반 일리히는 이에 대해 경제적 가치에서 토착적 가치로의 전환, 즉 가치에서 선으로를 말한다. 경제지상주의에서 시간과 화폐를 유일한 가치의 척도로 삼아 열심히 달리는 순간, 우리는 다양한 삶의 가치를 놓치게 되고 , 다양한 가치 속에서 풍요롭고 여유롭던 인간적인 삶은 상실한다. 이러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은 나에게는 이반 일리히, 칼 포라니, 미하일 엔데로 이어지는 책읽기와 세미나 속에서 각각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모모』는 ‘자, 이제 시간을 허비할 각오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를 이끈다. 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어찌되었건 확실한 것은 2030도시부족과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시간을 허비할 각오는 되어있다!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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